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불안 관리는 브레인 피트니스”

공황장애·우울증 겪은 한의사가 들려주는 ‘체질에 맞는 치료법 찾기’
등록 2020-02-15 08:01 수정 2020-05-02 19:29
.

.

‘불안장애,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다나을한의원 주성완(사진) 원장의 공저 의 프롤로그 제목이다. 주 원장 말처럼 누구든 공황장애 같은 ‘불안의 병’에 걸릴 수 있다. 한의사인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 원장은 1월8일 인터뷰에서 “한의대 재학 시절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았다”고 말했다. 이를 한의학적 치료로 극복하면서, 한의사이면서도 신경정신 질환의 치료와 예방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에도 관심이 커져 한의원 옆 건물에 개인 도서관을 마련해 관련 서적을 쌓아두고 연구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갑자기 도수 맞는 안경을 쓴 기분

주 원장은 “원래 예민하고 강박적인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카페인 민감도가 높아 대입 공부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한의대에 입학하니 오히려 공부량이 더 많았다. 커피를 다량으로 마시면서 밤새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생활리듬이 깨졌고 불면증이 시작됐다. 수면장애로 집중력이 저하되고, 무기력, 짜증이 늘었다. 우울증이 왔다.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던 어느 날, 숨이 편하게 쉬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유체이탈 같은 환각에 시달렸다. 공황이 왔다. 공황장애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은 뒤 불안이 가라앉았다. 대신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몸이 처졌다. 쓰러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빛이 보이지 않는, 끝없이 긴 터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몸이 약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 증상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심리상담도 받았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심리상담은 좋은 치료법이지만, 역시 자신에겐 맞지 않았다. 정서적인 면을 체념했다. 체력이라도 회복하려고 대학 선배가 하는 한의원을 찾았다. 한방치료와 운동을 병행하자, 기대하지 않았던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불면증이 나았고 몸의 컨디션이 개선됐다. 몸이 회복되자 불안과 우울 증상도 크게 개선됐다. “도수 안 맞는 안경을 쓰다가, 갑자기 도수 맞는 안경을 쓴 기분”이었다. 신경정신과적 질환은 완치보단 ‘관해’(완화)라는 표현을 쓴다. 주 원장은 지금까지 “관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의학에서 신경정신과적 질병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설다. 주 원장을 “한약 팔아먹는 장사치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신경정신 질환에 대한 한의학 연구의 전통은 역사가 길다. 대표적으로 ‘화병’은 한의학에서 다루던 질환이 공식 병명으로 인정된 사례다.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심신의학 관점’(몸과 마음은 하나)에서 발전해왔다. 한의학에선 몸의 전체적인 상태를 개선해 정신 문제를 개선한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칠정’(七情·일곱 감정)으로 보고, 칠정의 변화나 정서 불안정으로 인한 ‘정상 범주를 벗어난 신체 증상’을 질환으로 간주한다. 칠정이란 일반에게도 익숙한 희(기쁨)·노(분노)·우(근심)·사(생각)·비(슬픔)·공(공포)·경(놀람)이다. 불안장애 증상은 ‘경계’(驚悸·깜짝 놀라 두근거리는 증상)나 ‘정충’(怔忡·두근거림이 심해지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상태)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칠정 중에선 공·경의 정서와 관련이 깊다. 사·비는 우울·불안증과 연관이 있다. 특히 공황장애는 심담담대동(心澹澹大動)이라 해서, 갑자기 심장이 심하게 뛰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상태다.

심장을 안정시키고 튼튼하도록

주 원장은 약물치료가 필요한 공황장애 환자가 한의원을 찾으면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낸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등 신경정신과 약물을 써야 낫는 환자가 분명히 있다. 다만 신경정신과 약물이 체질에 잘 맞지 않는 환자도 있다. 또 신체적 문제가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 한방 치료가 효과적일 때가 많다. 공황장애 환자를 진료해보면, 자세가 굉장히 흐트러지거나, 호흡 상태가 나쁘거나, 신진대사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문제가 확인된다. 주 원장은 “오장육부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식습관과 수면 습관 등을 꾸준히 관리하면 불안이 와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의학적으로 공황장애 등 불안장애와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장기는 심장이다. 불안함이란, 곧 여러 원인에 의해 심장이 크게 동요한다는 신호다. 그래서 심장을 안정시키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는다. 심장이 지나치게 흥분해서 나타나는 상태는 심화(心火)다. 심화 환자는 열을 내리고 기운을 가라앉히는 한약을 처방한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혈자리에 침도 놓는다. 반대로 심장이 지나치게 쇠약해져 나타나는 상태는 심허(心虛)다. 심허형 환자는 쇠약해진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약재를 처방하고, 그에 해당하는 혈자리에 침을 놓는다.

심허형 환자는 위장 기능도 약해져 있을 때가 많다. 이럴 땐 위장을 강화하는 약재를 함께 처방한다. 주 원장은 “소화 기능이 저하되거나 식사량이 줄면 체내 혈당이 불안정해지고, 뇌에서 불안이나 우울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에도 차질이 생긴다. 또 최근 논문들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장 내부 염증과도 연결짓는 추세라 소화기관이 건강해지도록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불안장애를 다룰 때 양방과 한방의 가장 큰 차이는 약물이다. 주 원장은 “서양의학의 약물은 뇌에 다이렉트(직접)로 작용해 뇌의 신경전달물질 농도를 정상화”한다고 설명한다. 반면 “한방에서 쓰는 한약재는 분자가 커서 뇌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고, 대신 신체 건강을 개선해 자연스럽게 뇌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자세 교정도 중요한 치료법이다. 불안장애 환자 중 척추 변이(척추측만증 등)가 있거나 척추 부분 근육의 긴장이 심한 경우가 많다. 주 원장은 “경추 1번 주변부에 (뇌와 관련된) 신경이 많이 몰려 있다”며 “척추 부분에 만성적인 문제가 있는 분들은 그 영향으로 불안장애가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환자에게 추나요법이나 목·턱 관절 교정 치료를 하면 불안도가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한방도 양방처럼 치료 효과는 개인차가 크다. 치료 기간은 12~16주가 가장 많지만, 1년 이상 걸리는 환자도 있다.

불안을 개인적으로만 해결하려 말라

주 원장은 “한해 한해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체감한다. 불안을 관리하는 것은 이제 필수이며 “일종의 브레인 피트니스” 같다고 본다. 중요한 건 신체적·감정적·인지적인 부분 중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스스로 잘 아는 것이다. 주 원장은 “운동이나 명상 등 개인적인 방법으로 불안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땐 병원이나 한의원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