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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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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벌어진 그 틈에 희망을 건다

군소정당 분투기, 사표 심리보다 새 정치의 가능성 실험
등록 2020-01-23 02:27 수정 2020-05-0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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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끄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팀이 시즌이 끝난 뒤 다음 시즌 개막 전까지 팀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프로야구단은 경기가 없는 겨울 동안 전력 보강을 위해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고, 기존 선수들과 연봉을 협상한다. 4월 초 시즌 개막까지(올해 한국프로야구는 3월28일 개막) 팀 전력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팀을 구성하는 게 핵심이다. 구단이 선수와 ‘난로’(Stove)를 사이에 두고 연봉 협상을 하고, 팬들도 난롯가에 둘러앉아 구단과 선수 소식에 입씨름을 벌인다고 해서 ‘스토브리그’(Stove League)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해 겨울, 정당과 유권자의 모습도 스토브리그를 방불케 한다. 정당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고, 기존에 보유한 전력을 재정비하며 4월에 치르는 선거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유권자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자신이 가진 표를 어디에 던져야 할지 고민하고 주변과 입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와 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달라진 선거 규칙으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다. 유권자가 자신이 가진 2표(지역구 후보 투표 1표·비례대표 정당 투표 1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전과 달리 국회 구성이 달라지고, 정치 지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정당이 경쟁할 ‘리그1’(지역구 253석·비례대표 17석)과 상대적으로 작은 소수정당이 경쟁할 ‘리그2’(비례대표 30석·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는 유권자가 던지는 2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거대정당과 군소정당은 각각 자신의 전력을 바탕으로 유권자 선택을 예상하며 선거 전략을 짜고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변화는 국민의 삶을 좌우한다. 달라진 선거제도로 유권자와 정당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내게 됐다. 2표의 가치를, 2표의 ‘가성비’를 극대화하기 위한 스토브리그가 시작됐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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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벽은 엄연하다. 고심해 정한 비례대표 후보를 국회로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 지지율. “70만 표 이상 받아야 하는데 절대 쉽지 않아요. 우리처럼 돈도, 조직 기반도 없는 정당에는.”(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30석은 좁기만 하다. 작은 정당이 도전해볼 만한 연동 배분 의석수. “30석에 끼어들려는 거대정당의 ‘비례○○당’ 전략에다, ‘연동형 비례제 결사반대’를 외치던 극우정당이 수혜를 가져가버릴 수도 있고요.”(오태양 우리미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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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살 유권자 53만여 명이 새로 투표

선거법이 개정됐다. 개혁을 요구해온 작은 정당들 기대에 못 미쳤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47석으로 이전과 동일하다. 지지율과 연동되는(지역구 의원 수가 지지율보다 많을 경우 가져갈 수 없는 의석) 의석수는 30석뿐, 비례대표 원내 진출 최소 요건도 정당 지지율 3% 그대로다. ‘선거는 인물’ ‘선거는 연륜’ ‘선거는 조직과 자금력’이라는 말 앞에 내세울 게 정책의 진정성, 젊음, 그동안 조직되지 못했던 사람들뿐인 정당은 여전히 초라하다.

그래도 선거법 개정이 조금이나마 벌린 틈에 희망을 건다. 달리 도리가 없다. 정당 지지율 3%를 넘기면, 최대 4~5명까지 국회로 보낼 가능성이 생겼다. 이전보다 중요해진 정당투표의 힘이 후보 사이 승패에만 머물던 사람들 눈길을 정당 성격과 정책으로 돌리리라는 기대도 감돈다. 만 18살 유권자 53만여 명이 새로 투표한다. ‘21대 국회는 달라질 수 있다, 달라져야 한다.’ 작은 정당들은 일단, 다시 절박해져보기로 한다. 다짐하는 이들을 둘러싸고 총선을 앞둔 주류 정치권 풍경은 계절처럼 반복된다.

거대 양당에 인재영입의 계절이 돌아왔다. 인재 각자 가진 사연과 의미는 돌아볼 만한데, 이들이 정당과 어떻게 엮이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소수자성을 거대정당이 포용하고 싶다면, 본인들 안에서 꾸준히 소수자를 정치인으로 키워내고 정책화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야 정당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그 가치를 말하는 정치인이 나올 테니까요.”(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 녹색당은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예비후보를 뽑았다.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 같은 후보자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후보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간 녹색당이 꾸준히 주장해온 기후위기 대응, 성평등, 소수자 인권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추렸다. 민중당도 비슷한 전략이다. “청년, 농민, 여성, 빈민을 아우르는 진보적인 가치를 선거 때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어떤 길을 걸었는지 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민중당은 청소년·청년 위원회를 꾸준히 운영했고, 진보적 의제에 늘 앞장서왔으니까요.”(홍성규 민중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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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심리보다 새 정치의 가능성

이들의 과제는 ‘정책 정당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일이다. 조금은 유리해졌다고 하 위원장은 생각한다. “3% 정당 지지율이면 1명밖에 원내 진출이 안 됐던 예전과 달리 4~5명이 들어갈 가능성이 생겼고, 그러면 외국 소수정당처럼 인물 한 명이 아니라 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수 있어요. 기후위기 전담 후보, 소수자 전담 후보, 성평등 전담 후보 이렇게 팀을 꾸려서 이 팀이 국회에 들어가서 바꿀 것을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민중당도 4~5석 가능성을 기대하며 일찌감치 비례 2번은 농민, 비례 3번은 청년 몫으로 정해뒀다. 지역구 출마자 3분의 1 이상을 20~30대 청년으로 채울 계획이다.

심판의 계절이 돌아왔다. 정권을 심판해야 할까, 야당을 심판해야 할까. 누가 더 잘못했는지 가리는 웅성거림으로 혼란하다. “심판 프레임으로 누가 더 잘못했냐 따지는 선거는 그만하자는 거예요. 세대교체 프레임으로 바꿔내야 해요. 노회한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가 21대 총선의 시대 과제라고 믿어요.”(오태양 우리미래당 대표) 청년당에서 이어진 우리미래당은 ‘심판’에서 ‘세대교체’로 총선의 초점을 바꿔내고 싶다. 총선 전략 자체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정치개혁”이라고 외쳐왔다. ‘기성 정당에 청년이 얹히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정치세력이 된 청년들이 국회 전면에 나설 공간을 선거개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된 선거법을 보며, 실망했다. 그래도 놓을 수 없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짚으며 오 대표는 우리미래당의 원내 진입을 기대한다. “최소한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표 줘봐야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사표 심리보다 새 정치의 가능성을 실험해보자는 쪽으로 많이 옮겨가고 있다고 느껴요. 무엇보다 18살들이 투표를 시작하니까요. 세대교체 열망을 잘 담아내기만 한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력 싸움의 계절도 돌아왔다. 어떤 집단이 누구 편에 서고 얼마의 물량을 투입할 수 있는가. 그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저 먼 얘기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무직자들의 정당’이라고 얘기해요. 소득이 없거나 불안정한 당원이 많아요. 무슨 조직에 속하지도 못해본 분들. 4차 산업혁명 속에 대다수의 삶이 그럴 텐데, 정작 기성 정치권은 이런 사람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너무 느리고 부족하죠.”(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당명에 오로지 ‘기본소득’ 하나를 내걸고 기본소득당은 지난해 9월 창당 작업을 시작했다. 3개월여 만에 1만7천 명 넘게 모였다. 당원 평균 나이 27살, 10대 당원도 상당하다. 중앙당 창당과 비례대표 선출을 코앞에 뒀다.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책을 잘 아는 분들이 아니고, 대부분 그저 기본소득이 자기 삶에 필요하다면서 당원으로 가입해요. 거창한 고민보다 자기 삶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겁니다. ‘정당 처음인데, 내가 유튜브를 찍어주면 도움이 되냐’고, ‘친구들 더 가입시키면 기본소득 되냐’고 물어보는 분들 전화가 쏟아질 때는 뭉클하죠.”

‘한 줌 진보 진영 표를 분산하는 것 아닐지’ ‘기존 정당과 정책 연대 정도면 족하지 않을지’, 물음은 물론 용 대표에게도 있었다. 창당 과정에서 나름의 답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 지지 기반은 조직된 노동조합도 시민단체도 아니어서 기존 진보정당과 겹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쟁에 휩쓸려 기본소득 논의는 더디기만 한 상황에서, 당장 절박한 사람들 요구를 반영할 정당은 분명 필요하고요.”

당원의 소중한 5천원, 공보물 발송에 2억원

정책 정당이 주목받는 선거, 심판을 넘어선 세대교체 프레임, 조직 없는 이들의 정치세력화. 국회 밖 작은 정당들에 전략이기도, 정치권을 향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국회 진입이 가능할까? 전망은 아직 조심스럽다. “공보물 한 장 발송하는 데 2억원이라는 얘기에 당원들이 보내준 소중한 5천원의 가치가 마음에 걸려 고개를 떨구고”(용혜인) “당 대표자 직함 아랑곳없이 추운 겨울 벌벌 떨며 선거개혁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오태양) 짠한 하루하루를 ‘지금 꼭 필요한 정치’를 위한 날들이라 믿으며 나아갈 뿐이다. 정치개혁을 목표 삼은 선거법 개정이 용두사미에 그쳤어도, 어쨌든 이들은 “잘해서, 최대한 잘해서”(하승수) 정치를 바꿔내고 싶어 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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