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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이 지배한 현실 자이로드롭

조국의 역설, 아베 도발, 북-미 협상 결렬, 미친 부동산 ‘격랑’
등록 2019-12-25 09:55 수정 2020-05-03 04:29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1월1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접견한 뒤 차량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1월1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접견한 뒤 차량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림씨(형용사). 떼어내고, 강조하며 현실을 바르게 그리는 일에 자신감 잃었다. 적폐 수사로 힘 얻은 검찰이 적폐가 되어 있고, 한때 ‘정의로운’이면 족하던 사람 앞에 여러 수식을 덧대야 하는 현실. 부동산 앞에 불안과 욕망이 한 몸인 채 붙어 있고, 한·일 과거사와 정치적 득실과 세계경제 변화가 얽혀버린 현실. 도무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끊어내야 할지,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리는 일을 사명 삼은 언론조차 자기 안의 혼란을 그릴 말을 찾지 못해 헤맸다. 그저 혼란한, 그저 모순인 우리를 온전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을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조국, 카오스의 뚜껑을 열다
제1282호 표지이야기 ‘나의 조국 당신의 조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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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조국’은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2019년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갈등은 진보와 보수 간의 익숙했던 대립에 그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을 지지했던 진영 안에서도 찬반 논쟁이 치열했다. 그의 ‘행동하는 지식인’ 모습에 지지를 보냈던 이들 중 상당수는 그의 도덕성 논란에 크게 실망했다. 도덕성을 공직자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던 이들이 그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했다.

반면 조국을 감싼 이들은 그가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를 댔다. 조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을 향해 야당과 보수언론이 융단폭격을 퍼붓는 모습은 이들에게 참여정부 때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기득권 세력의 막무가내식 저항에 속수무책이던 참여정부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부끄러운 관행과 결별하기

조국으로 인한 촛불 세력의 분열은 개혁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부동산, 교육, 재벌, 비정규직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데도 개혁이란 말은 더 이상 참신하게 들리지 않는다. 개혁에 소홀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조국’이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정치적 독립을 빙자한 검찰권 남용은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윤석열 검찰’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청문회 당일 그의 부인을 졸속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표창장 위조 시점과 방법 등 주요 공소사실을 기소 이후에 변경한 뒤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으나 최근 기각당했다. 청문회 당일 기소가 대통령의 장관 임명에 영향을 주려는 정치적 행위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검찰이 ‘정치해결사’를 자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다.

윤석열 검찰의 폭주는 역설적으로 조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적폐 수사’ 명목으로 전직 대법원장까지 수사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우뚝 섰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윤석열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촛불’의 요구인 검찰개혁은 뒷전으로 밀렸다.

‘조국’은 언론개혁의 필요성도 부각했다. ‘검찰발 받아쓰기’는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유로 용납되지 않는다. 깨어 있는 시민은 언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부끄러운 관행과 결별하지 못하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4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시작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월4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시작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치 앞 무릎 꿇은 자유무역의 신화
제1251호 표지이야기 ‘일본의 양심을 만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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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시작은 25년 전이다. 아다치 슈이치 변호사는 강제동원 한국인 피해자를 대리해 1995년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07년 12년의 소송 끝에 일본 정부는 원폭 지원금 배상 책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일본이 들썩였다. 역사의 물줄기는 바다 건너 한국으로 향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소송에서 신일철주금(10월30일), 미쓰비시중공업(11월29일)에 손해배상 책임을 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은 올 2월 일본의 변호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적 흐름에 맞는 정당한 판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 피해자의 전후 보상 소송에 참여한 일본 변호사가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일본 내 양심의 목소리는 크게 공명하지 못했다. 결국 아베 정권은 판결을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섰다. 7월1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전격 발표했다. 일본 내 지식인이 모여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국산화 요구가 커졌다

아베의 도발은 계속됐다.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 국가)에서 배제했다. 표면적으로는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카드를 꺼냈다.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면 ‘민감한’ 군사정보 또한 교환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선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이 나섰다. 지소미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축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기반이다. 11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이 잇따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했다.

한국 정부는 종료 당일인 11월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했다. 이 결정으로 한-일 관계 복원의 발판은 마련된 것일까. 12월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를 기회 삼아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린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아베 총리는 12월13일 외교 관례를 무시한 채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그의 관심사는 한-일 관계보다는 일본 내 정치 여론을 향하고 있다. 수출규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관철된다 해도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월18일 한·일 기업과 정부가 참여하고 시민의 기금을 더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주자는 ‘1+1+알파(α)’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반대 여론이 높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 차원의 사실 인정과 사죄 표현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관계가 복원돼도 치유하기 어려운 균열은 경제에도 남았다. 정치적 득실 앞에 맥없이 분절되는 자유로운 무역의 신화를 당사자로 겪었다. 믿을 건 우리뿐, 국산화 요구가 커졌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12월19일 발표된 2020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16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2월16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낚아채라

제1270호 표지이야기 ‘2019.6.30 판문점’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8년 드디어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왔다는 기쁨이 넘쳤다. 그래서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빅딜’이냐 ‘스몰딜’이냐는 예상이 무성했다. 다들 크든 작든 어쨌든 회담 성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됐다.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성과 없이 결렬)이었다. 4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말까지 북-미 협상 시한을 정하고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다.

지난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세밑 북한과 미국은 대화는커녕 말싸움을 점점 거칠게 벌이고 있다. 연말 협상 시한을 넘길 경우 북한은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공언했다. ‘새로운 길’의 내용은 비핵화 협상 중단 선언과 핵보유국 재확인, 대북제재에 맞서 자력갱생 경제 강화, 중국·러시아와 국제협력 강화 등이 꼽힌다.

문제는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이른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다. 2020년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만있기 어려울 것이다. 이 경우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돌던 2017년처럼 ‘화염과 분노-괌 포위사격’ 같은 극한 대결로 돌아갈 수도 있다.

독자적인 남북관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북-미 비핵화 협상 결과에 남북관계를 연동해온 한국 정부의 전략을 바꿔야 한다. 한국 정부는 북-미 관계가 잘 풀리면 북미-한미-남북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때 자리만 만들어주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멍석 외교’를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에 북-미 관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남북관계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등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한 연말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카이로스(Kairos)란 그리스·로마 시대의 시간 개념이 떠오른다. 당시 사람들은 카이로스 이미지를 앞머리는 무성한데 뒤는 대머리고, 손에 칼을 들고 발목에 날개를 단 모습으로 묘사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 확 잡아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고, 뒤가 대머리인 이유는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바람과 함께 최대한 빨리 사라지고, 칼을 든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은 데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북한의 연말 협상 시한을 반박했다. 시간은 북한 편도 미국 편도 아니다. 양쪽은 지금 시간의 긴 앞머리를 낚아채지 않으면 ‘놓친 기회’의 대머리 뒤통수를 뒤늦게 바라봐야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 넘을 수 없는 벽”(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중) 올해 남북관계, 북-미 관계 등 출렁거린 한반도 상황을 돌이켜볼 때 드는 솔직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는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에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한다.

집 따위로 운명 바뀌지 않게
제1287호 표지이야기 ‘순간의 아파트가 평생을 좌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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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지난 11월,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36살 문정주(가명)씨의 집주인이 또 바뀌었다. 새 주인은 정주씨보다 10살 적은 26살. 2018년 6월 처음 전세 계약을 할 때, 20평 아파트의 주인이 정주씨 아빠뻘인 74살에서 또래인 39살로 바뀌었는데, 2년도 안 돼 조카뻘인 26살로 또다시 달라진 것이다. 새 주인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6월에는 ‘2억9천만원짜리 전세’를,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문씨는 내년에 다른 전셋집을 알아볼 계획이다. 문씨는 “‘(부동산) 시장이 미쳤구나’ 하고 생각한다”며 “허탈감, 상대적 박탈감,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든다”고 했다.

문씨의 집은 서울 아파트를 통해 자산이 세대 간에 빠르게 이동하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1999년 1억원이 안 되는 돈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74살 첫 주인은 2018년 6월 4억6천만원에 집을 팔아 20년 만에 3억원가량 자산을 불렸다. 그에게서 집을 산 두 번째 39살 주인은 1년여 만에 집을 내놔 6천만원가량의 시세차익(세금 불포함)을 봤다. 여기서 만약 집값이 더 오르면 이번엔 26살의 집주인이 자산을 불릴 차례가 된다. 그렇게 주인들이 번갈아가며 돈을 벌 때 세입자 문씨는 오히려 주거비로 돈을 썼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조바심

문씨의 새 집주인처럼 서울 아파트로 자산을 늘리려는 2030세대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11월, 은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산 연령대는 30대이고 20대도 갈수록 많이 사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런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9월보다 10월에 30대와 20대의 매수세가 더 강해진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때문에 ‘나도 집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2030세대의 욕망과 ‘지금 아니면 영영 서울에 집을 살 기회가 없다’는 조바심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2월 셋째 주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25주 연속 올랐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비싼 아파트를 소유한 상위 10%와 전·월세 주거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90% 사이에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2030세대가 뛰어들 만큼 이상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불을 확실히 끄겠다며 12월16일 대출·세제·분양가 규제를 종합한 대책을 내놨다. 시세 15억원 초과 ‘초고가’ 아파트에는 대출을 아예 금지해 강남에 집중된 투기 수요를 잡고, 보유세는 올리되 양도세는 일시적으로 풀어 수면 아래 잠긴 매물을 시장으로 끌어내겠다는 것이 뼈대다.

12·16 대책이 효과를 내면, 집 한 채에 인생을 거는 상위 10%의 욕망과 불안도 조금은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다음엔 정부가 점점 더 비싼 주거비를 내며 점점 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내몰리는 나머지 90%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2030세대는 말한다. 김지선 서울청년시민회의 주거분과운영지기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근본적으로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임대료 상한제가 필요하다”며 “(당장은) 서울시가 내년에 청년 1인 가구(중위소득 120% 이하)에 월세 20만원을 지원하는 것처럼 정부도 주거비 지원을 해야 하고, 벨기에나 영국처럼 집의 품질 규제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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