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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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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선택권 주니 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6년 전 광주 북성중 채식 선택급식 실험이 남긴 것
등록 2019-12-04 01:49 수정 2020-05-07 04:42
2013년 채식 선택급식을 실험한 광주 북성중학교의 일반 식단(왼쪽)과 채식 식단. 윤영란 제공

2013년 채식 선택급식을 실험한 광주 북성중학교의 일반 식단(왼쪽)과 채식 식단. 윤영란 제공

밥 한 끼를 둘러싼 효율과 존중 사이, 실험이 있었다. “벌써 6년 지났네요.” 윤영란 영양사가 떠올린다. 2013년 윤 영양사가 머물던 광주 북성중학교는 ‘채식 선택급식 연구 시범학교’를 운영했다. 채식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고기와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식단을 따로, 매일 지원했다. 윤 영양사에게 기억과 경험이 남았다. 좌충우돌 몸으로 부딪혔다.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여느 해보다 자주 뭉클했다. ‘빈틈없이 모두를 먹이는 일’이기만 하던 급식을 ‘학생의 선택을 도와주고 존중하는 일’로 다시 이해했다. 실험은 2013년을 끝으로 멎었다. 그대로 묻히기 아쉬운 기억과 고민을 꺼내들 일이 많지 않았다. 정부의 관심이 사라졌다.

2011년 광주 모든 학교 주 1회 채식 급식

그때 학교 급식은 뜨거운 갈등 안에 있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 주민투표를 거치며 친환경 무상급식이 한국 사회의 복지 담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보편적 복지’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도 절감했다. 낯선 개념인 탓에 의미가 왜곡되고 절반만 이해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보편적 복지를 모두에게 같은 것만 주는 획일화된 복지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그저 지역 차원에서 알아서 시행하는 복지로 보기도 했다. “잘못된 이해”라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선 긋는다. “보편적 복지는 소득 계층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밥처럼 개인의 상황과 기호가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획일적으로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역시 운동과 요구가 지역 연대체에서 나온 것을 말할 뿐, 실행 과정에서 지방 재정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기초연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실업부조에 이르기까지 2010년대를 아우르는 굵직한 복지제도가 보편 복지를 품고 자리잡았다. 정작 그 담론을 세상에 던진 급식은 여전히 보편의 영역이 되지 못했다. 지역에만 내맡겨져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다. 2018년 기준 6조1천억원 급식비용 가운데 보호자 부담금은 여전히 1조2천억원(19.2%)에 이른다. 무상급식 확대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시행 여부와 재정 분담 비율을 두고 지방 교육청과 지방정부가 갈등한다. “재료비는 보호자에게, 시설비용은 지방 교육청과 지방정부가 알아서 부담하도록 하는 법체계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무상급식이 지방선거 공약이 됐다. 예기치 못한 지방 재정 부담은 생겼는데 그걸 정리해줄 법은 없는 상태다.”(조명연 교육부 학생건강정책 과장)

고 노회찬 의원 등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의무화하고 중앙정부가 비용 일부를 대도록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못 넘었다. 급식 정책은 무상급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수준에만 맴돌았다. 학생 의견을 존중하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데까지 세심하고 넓게 퍼지지 못했다.

그래도 부분적인 실험을 한 도시들이 있다. 광주광역시가 그중 하나다. 2010년 지방 교육감 선거부터 채식 선택급식 얘기가 나왔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 ‘초록세상을 위한 희망급식연대’(현재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가 채식 선택급식을 제안했다. 밥을 논할 때 건강과 환경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를 주도해온 조길예 교수는 “2009년 코펜하겐 기후협약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감축 움직임이 일었고, 주요 배출원인 축산업 규모를 줄이기 위해 급식 교육부터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한다. 교육감이 받아들였다. 2011년부터 광주의 모든 학교에서 주 1회 채식 급식을 시행했다. 2012년(풍영초등학교)과 2013년(북성중학교) 연구학교 두 곳을 선정해, 원하는 학생은 매일 채식할 수 있도록 했다.

똑같은 인원으로 두 가지 급식 준비

채식 선택급식 연구학교 이야기를 듣고 윤영란 영양사는 “우리 학교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 영양사 스스로 채식 위주 식단을 지향했다. 명상과 때때로 단식을 하면서 채식을 겸했다. “처음에는 건강 때문이었는데, 공부하면서 육식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문제를 보면서 좀더 그런 생각이 강해졌고요.”

가장 먼저 학생 교육에 나섰다. 밥 먹는 일이 단순히 주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을 넘어, 내 몸과 환경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선택도 가능했다. “삶 전체를 놓고 보면 가장 중요한 공부”였다. 채식 선택급식에 앞서 북성중이 주 1~2회 채식의 날을 지정해 운영했을 때, 학생들 반발을 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다. “채식 급식 맛없다며 급식실 방충망에 숟가락을 꽂아놓고 도망가는 식으로 시위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낯설었던 거죠. 물론 강요할 수 없지만, 최소한 놓여 있는 선택지와 그 의미는 알려줘야겠다 싶었어요.” 전문가 강의를 마련했다. 강의를 듣고, 채식의 날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지에는 ‘동의’ 표시가 가득했다. 26명은 매일 채식 급식을 하기로 선택했다. “아, 이렇게 알려주면 되는구나 싶어 힘이 났어요.”

다만 윤영란 영양사에게도 혼란이 있었다. 2007년 영양교사제도가 도입된 뒤, 학교 현장에는 정규 교사인 영양교사와 교육공무직인 영양사가 나뉘어 있다. 영양교사는 정규 교과에서 수업할 권한이 있다. 행정실 소속인 영양사에게는 교육에 주어진 시간이 없다. “영양교사는 선생님이 되고 저 같은 영양사는 아줌마가 돼버리는 거예요. 먹거리 교육의 중요성은 알지만,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어요.” 그래도 채식을 선택한 아이들을 급식실로 모아 채식 일기를 펼쳐놓고 이야기하고, 요리교실을 열고, 사과 따는 체험을 하러 다녔다. 학교 배려로 학부모와 학생에게 채식 식단 교육도 했다. 그 역시 분명 교육자였다.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채식 선택급식이 시작됐다. 급식실 공간을 갈랐다. 모두 채식하기로 한 화요일과 금요일을 뺀 나머지 날은 두 개의 식단을 짰다. 부대찌개와 함께 청국장을, 깻잎닭볶음과 함께 삼색밀쌈 채소볶음(2013년 5월27일 식단)을 내놓았다. 과일과 김치는 채식 식단 쪽에 더 풍성하게 놓았다. 아이들이 잘 먹었다. 일반 급식을 먹는 학생들이 채식급식 공간에서 과일과 견과류 간식을 집어먹는 바람에 음식이 모자랄까 노심초사했던 일도 많다.

일이 늘었다. 급식실 인원은 윤 영양사와 조리사 1명, 조리원 3명까지 5명이었다. 이전과 같았다. 준비해야 할 음식 가짓수는 늘었다. 조리실에서 급식실까지 동선도 복잡해졌다. 특별히 무슨 혜택이 있는 일도 아니었다. “저는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조리사, 조리원 선생님들께 너무 죄송했죠. 그렇게 일한다고 교사처럼 승진에 도움이 되거나 특별한 연수 기회를 얻는 것도 아니었고요.” 예산도 부족했다. 시설비나 연구비 등을 빼고 간식비로 지원받은 500만원 예산은 여름 무렵 바닥나기 시작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다. 지역 한살림 협동조합이 과일 무상 지원을 해준 덕에 그나마 11월까지 버티며 선택급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채식하고 나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요”

교육 공간에 목말랐고, 부족한 인력에 미안했고, 들어가는 비용에 초조했다. 그런데 자주 행복했다. “옆으로 자라던 아이들이 위로 자라는 게 눈에 보였다”고 윤 영양사가 웃었다.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의학영양학과에 의뢰한 신체 계측 연구에서 매일 채식한 아이들 체질량 지수와 변비 등이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마음도 변했다. “‘채식 급식을 시작하고는 학교 올 때도 걷거나 자전거 타고 다녀요’ 하는데 너무 기쁜 거예요.” 그 또래에서 찾기 어려운 자기 몸에 대한 관심, 건강에 대한 관심이 먹는 것이 변하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속된 1년이 그렇게 끝났다. 2013년 북성중을 끝으로 광주 교육청은 채식 선택급식 연구사업을 접기로 했다. 광주 교육청 쪽은 “여전히 전반적인 학생들 분위기는 육류 위주 급식을 선호하고, 확대까지 들어가는 예산이나 인력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더는 추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북성중의 실험이 끝난 뒤 6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어느 교육청에서도 채식 선택급식은 제대로 첫발을 떼지 못한 채 검토나 계획 단계에 머물고 있다.(상자기사 참고) 지역별로 복잡한 급식 지원 체계, 현장 급식 노동자의 처우, 부족한 인식이 뒤얽힌 ‘어른들의 사정’ 앞에 아이들의 선택권이나 지구 환경 같은 천진한 질문이 들어찰 여지는 여전히 좁다.

윤 영양사는 이듬해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속이 불편해 거친 고기를 넘기지 못하는 아이, 가정에서 채식하는 아이는 어느 학교에서든 종종 만난다. 그런 아이들에게 누룽지를 끓여주거나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라”고 말할 때면, 6년 전 채식 급식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 의미를 눈 반짝이며 말하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어른이 돼 있을 아이들, 무엇을 먹고 있을까.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을 존중해준다는 거잖아요. 가장 안타까운 건 그때 자기 몸과 환경을 얘기하던 아이들이 또다시 주는 대로 먹는 학교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겠지 싶을 때예요.” 그래도 각자에게 한 번뿐일 중학교 시절 한때, 먹을 것을 선택할 권리를 알게 된 아이들이 조금은 넓고 깊은 어른이 돼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채식 급식’의 현재


카페테리아형 급식 이뤄질까


“이제 학교 급식에서도 ‘채식선택권’ 보장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입니다.”(노옥희 울산교육청 교육감 페이스북)
지난해 노옥희 교육감 후보가 당선된 울산시교육청은 ‘채식 급식’에 적극적이다. 최근 시민단체 등과 채식급식권 실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월 1회 채식 식단 마련을 권장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채식 교육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이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한 뒤 시범학교를 공모해 채식 식단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당장 11월 말과 12월 중순 교원·교육전문직원 연수에서 점심 식사를 채식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채식 식단은 시민단체 ‘채식평화연대’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도 최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의에서 김 교육감은 도교육청 구내식당에선 2020년 1월부터 채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도내 혁신학교(136개)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식단 구성을 우선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전북교육청은 내년에 영양교사, 채식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적 전환에 집중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생태문명 전환도시 서울’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채식 급식 보장을 언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생태 전환 교육정책의 하나로 채식 관련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급식선택권에 초점을 맞춰, 올해 4월 ‘카페테리아 맞춤형 급식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예산, 인력, 학생 기호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아직은 기초 문헌 연구 단계”라는 입장이다.
현재 각 교육청에서 채식 급식을 시행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 ‘채식 급식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박은주 활동가와 함께 조희연 교육감을 찾아가고, 김승환 교육감에게 정책 제안을 한 황윤 영화감독은 “모두의 진심 어린 마음과 공이 모아져 변화가 만들어지는 현실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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