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치료사(발달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와 교육을 하는 이)인 지석연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 소장은 20여 년 전 뇌성마비와 자폐성 장애가 있는 4살 아이를 ‘고치려고’만 했다. 하지만 목표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아이를 중국에 데려가 다양한 치료를 해봤다. 뇌성마비로 굳은 몸이 풀렸지만 6개월이 지나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에게 강박적으로 나타나던 반향어(상대방이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서 말하는 것. 자폐아동에게 많이 나타남) 성향이 사라졌다. 이유를 찾아보니 아이가 중국에선 무슨 말을 해도 “하지 마”가 아니라 “잘한다, 잘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지 소장과 부모는 ‘고친다’는 생각 대신 장애를 받아들이고 아이의 장점과 강점을 보기 시작했다. 치료와 교육은 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손톱을 깎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다. 성장 과정에서 아이의 몸이나 신경 기능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스스로 삶을 꾸리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기술은 점차 나아졌다. 성인이 된 아이는 ‘삶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도 잘 살고 남도 잘 살자”라고 답했다 한다.
아이의 발달장애를 확인한 부모는 막막하다. 아이의 ‘장애’라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애를 고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11월19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에서 만난 지 소장은 20여 년 전 아이의 사례를 꺼내놓으며 부모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장애를 인정해야 그다음 길이 보이더라고요. 아이의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아이에게 맞는 치료를 하나씩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요구들부모들은 5~6살까지를 ‘골든타임’이라 생각하고 많은 치료비를 투입합니다. 발달장애 아동과 부모에게 이 시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연구소를 찾는 분들에게 방문한 이유를 물어봐요. 0~3살 부모들은 ‘감정적으로 안정됐으면 좋겠다’ ‘운동능력이 발달했으면 좋겠다’ ‘언어가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세요. 문제 되는 부분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요구죠. 입학을 앞둔 4~6살 부모들은 신체 기능 회복에 대한 요구가 강하죠. 하지만 아이가 나이 들면서 ‘일상생활에 참여하게 해주세요’라는 요구를 많이 하세요. 아무래도 5~6살 미만 아이의 부모들이 가장 불안해하세요. 아이 ‘인생’을 보기보다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구나’ ‘내 잘못이구나’ 같은 죄책감이 맞물리면서 치료로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시죠. 그러다보니 근거 있는 좋은 치료도 왜곡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요.
‘치료를 많이 받을수록 좋다’ ‘비용을 들여 주 35~40시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저희는 아이의 ‘강점’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아이의 문제와 증상에 기반한 의료적 접근에 치우치고 있어요. 개인의 운동과 감각은 평생 크게 바뀌지 않아요. 하지만 당뇨병에 인슐린을 처방하듯, 5살 아이들에게 약 처방하는 식으로 치료에 접근하죠. (부모들이 선호하는) ABA(Applied Behavior Analysis·응용행동분석) 치료가 있어요. 아이가 특정 행동을 하면 초콜릿 같은 보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면서 행동을 수정하는 방식인데 설계가 잘된 치료법이에요. 중증 지적·자폐 장애 아동에게 좋은 기법입니다. 그런데 이 치료법이 당사자 중심이 돼야 해요. 하루 8시간 5일, 40~44시간 하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보니 그게 프로토콜(규약)처럼 됐는데, 모든 아이가 이 치료에 집중하기는 힘들죠. 제 경우 어떤 아이를 30분간 치료했는데 잘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치료가 끝나자마자 “엄마, 가자” 하며 확 나가버리더라고요. 탈출하기 위해 치료사인 제 말을 잘 들은 거예요. 무조건 하루 8시간 목표에 맞춰 일대일로 가둬서 치료하면 아이는 눈치만 보고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죠.
그럼 좋은 치료는 무엇인가요?
치료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일상생활을 잘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집중치료를 하는 시기가 있고,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에 맞는 치료를 설계하고 진행하는 게 치료사들의 역할이에요. 그러려면 언어치료사, 행동치료사, 때론 사회복지사 등이 팀 어프로치(협업)를 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이런 치료가 건강보험이나 공적 시스템에 들어와 있지 않고 민간에 맡겨 있죠. 어떤 치료가 근거가 있다고 하려면 공공 기준이 있어야 해요.
결국 국가가 기준을 만들거나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일본과 싱가포르는 작업치료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요. 미국도 최근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에 ABA 치료가 포함됐고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하는 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죠. 이러면 민간기관의 치료도 정부에 보고서를 내야 하고 심사받게 돼 관리가 됩니다. 팀 협업도 이뤄지기 쉽죠. 이런 지원으로 부모들이 생업을 유지할 수 있어요. 또 외국을 보면 발달장애 연구가 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례가 계속 나와요.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비약물 치료’에 인색해요. 그래서 오히려 여러 치료가 민간에서 난무하게 되죠. 정부에서 이와 관련한 시범사업이든 추적조사든 할 필요가 있어요.
그 밖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치료와 교육을 통해 생활과 환경에 적응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나요. 그런데 이들을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하면 아이들이 힘든 행동을 더 하게 돼요. 일정한 규칙(단계별 행동)이 적용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할 수 있으면 문제행동이 잘 나타나지 않게 돼요. 아이의 뇌를 바꾸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아이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해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장애를 진단받는 순간부터 자신을 추스를 여유 없이 모든 것을 감당합니다.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세계보건기구에서 개발한 ‘양육자기술훈련’ 프로그램이 있어요. 국내에서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가 도입했는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부모님이 건강해야 한다’ ‘장애는 당신의 죄가 아니다’예요. 엄마뿐만 아니라 가족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아버지·시어머니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지원해주면서 사이가 좋아진 집도 있어요. 아이의 장애를 확인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나 앞서 경험한 부모들의 단체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에서 아이가 어떤 치료를 받으면 좋을지 정보를 얻고 상담받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글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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