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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연 6500만원까지 지원하는 미국 주

미국·독일·일본 등의 장애인 정책, 장애인 당사자 욕구에 기초해 제도 설계…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방식으로 성장 과정에 따라 지원
등록 2019-11-27 09:33 수정 2020-05-03 04:29
발달장애아동이 동물 보조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 REUTERS

발달장애아동이 동물 보조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 REUTERS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한 살 아래 여동생 로즈메리 케네디(1918~2005)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운동을 즐길 정도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였지만 명문가인 케네디 집안은 딸의 장애를 숨기고 싶어 했다. 결국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버지는 딸이 성인이 되자 검증되지 않은 뇌 전두엽 제거 수술을 받게 했다. 의사들은 수술로 상태가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로즈메리의 상태는 오히려 악화해 남은 삶을 병원에 갇혀 환자로 보냈다.

가족사 때문이었을까. 케네디 형제·자매들은 발달장애인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로즈메리의 세 살 아래 여동생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1921~2009)는 발달장애인 올림픽인 ‘스페셜 올림픽’을 만들고 그 뒤에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 변화를 호소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도 1961년 ‘정신지체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와 프로그램 개발을 주문했다. 이 흐름은 1975년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 제정으로 연결됐다. (한국은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미국을 비롯해 독일·일본 등은 일찍부터 장애를 개인적인 손상이나 불행이 아닌 사회가 떠안고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왔다. 한국의 경우 이제야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정착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의 장애인 정책은 기본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에 기초해 정부 제도가 설계돼 있다. 5살 이하 발달장애 영유아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에선 장애인 정책이 아직까지 공급자(정부) 중심이다. 장애 당사자들의 필요와 상관없이 의학적 심사로 등급을 나누고 거기에 맞춰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는 ‘장애등급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장애인들의 꾸준한 개선 요구로 지난 7월 폐지됐지만, 관련 예산 증액 문제로 장애인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행동치료 ABA,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 모두 지원

발달장애인 지원체계가 잘 갖춰진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을 예로 들면,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와 ‘어린이건강보험’(CHIP·메디케이드 자격을 갖추기에는 소득이 높지만 민간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가정의 어린이를 위한 제도)에서 발달장애 영유아(0살부터 혜택)·청소년·성인의 치료 비용을 연간 일정 한도 안에서 지원한다(주정부별 지원 한도는 제각각.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1년 약 5만6천달러(약 6590만원)).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은 거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필요한 치료를 받고 각종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비용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나눠 부담하고, 수급자 자격이나 지원 범위는 주정부별로 다르다.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센터 등에서 치료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민간에서 치료받은 뒤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비급여 항목인 행동치료 ABA(응용행동분석),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이 모두 지원된다.

미국도 1981년 이전까지는 격리시설이나 병원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만 이러한 혜택을 줬으나, 법을 개정해 주정부에 메디케이드 수급자 선정 권한을 넘겼고 장애인들이 가정과 지역사회에 살면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희귀·난치·중증 질환을 겪는 차상위계층의 가계재정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약 40개 주가 개정된 법을 적용했지만 재정 부담 등의 이유로 실제 시행은 ‘오바마케어’(환자 보호 및 건강보험료 적정 부담법)가 시작된 2010년을 전후해 이뤄졌다.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의 꾸준한 요구도 디딤돌을 놨다고 한다.

2018년 노스캐롤라이나주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 위탁해 운영하는 ‘자폐 및 의사소통장애 아동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살펴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자폐성장애를 위한 미국 메디케이드의 역할 확대와 시사점’( 2019년 여름호, 윤지은·이진용) 논문은 “만일 이 규정(개정된 법)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1만 명의 자폐성장애인 본인이나 그 가정이 연 6천만원 이상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 자폐성장애인의 의료비 부담은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 규정은 가계 파산을 막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고 설명했다. 논문을 보면 2016년 기준 캘리포니아는 11만5천여 명, 뉴욕은 7만5천여 명의 발달장애인(0~21살)이 지원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미국 저소득층 의료보험 ‘메디케이드’ 누리집 갈무리.

미국 저소득층 의료보험 ‘메디케이드’ 누리집 갈무리.

절반이 메디케이드·건강보험 혜택

미국의 건강 관련 비영리단체 카이저패밀리재단(KFF)의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특별한 의료 서비스(지적·자폐·정신장애 등)가 필요한 1330만 아동(0~17살)의 절반가량(47%)이 메디케이드와 어린이건강보험 프로그램의 혜택을 직간접으로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살 이하 영유아는 21%를 차지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요구하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보니 미국의 발달장애인 지원제도는 지역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작업치료(발달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와 교육)를 전공하며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을 현장에서 지켜본 정봉근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BK 부교수는 과 한 통화에서 미국의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에 대해 말했다. “주정부와 대학, 지역 자선단체, 부모 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니 우리처럼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요구하면 정부가 검토해 지원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방식’으로 제도가 운용된다.”

통합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주정부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메디케이드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서비스가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구축되는 밑돌을 놨다고 한다. 앞서 인용한 논문은 “메디케이드를 중심축으로 연방정부와 개별 주가 자폐성장애인에 대해 보건·의료·교육·고용·복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그리고 각 주의 상황에 맞게 독립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봉근 교수도 “메디케이드를 중심에 놓고 발달장애아동의 성장 과정에 따라 지원하는 일원화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2018년 9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발달장애인 생애주기에 따른 통합 시스템 구축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제야 걸음마를 뗀 셈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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