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발달장애 건강보험 지원은 ‘의사 상담’뿐

문재인표 생애주기별 대책에서 ‘조기 진단’에 초점 맞추고

영유아 조기 치료는 빠져 있어, 부모 교육 강화가 다
등록 2019-11-26 00:52 수정 2020-05-02 19:29
다큐멘터리영화 <어른이 되면>의 주인공 발달장애인 장혜정씨가 2018년 9월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큐멘터리영화 <어른이 되면>의 주인공 발달장애인 장혜정씨가 2018년 9월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발달장애인의) 부모님들은 내가 아이들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끝까지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아픈 마음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따뜻하게 마음을 보여줬는지, 그런 반성이 듭니다.”

2018년 9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 그러다 목이 멘 듯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였다. “(발달장애인에게) 조기에 맞는 치료를 받게 하고 전 생애주기에 맞춰 필요한 돌봄을 드리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을 받고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언어·인지학습·신체발달·행동 치료 모두 비급여

문재인표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만 0~5살 취학 전 영유아기에서 시작한다. 이 단계는 주로 ‘조기 진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영유아 건강검진 발달선별검사 결과 발달지연(또래보다 발달 속도가 6개월 이상 느린 경우) 혹은 발달장애(1년 이상 느린 경우) 가능성이 있는 영유아는 상급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서 영유아의 장애 여부를 좀더 빨리 발견하겠다는 것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이 시행된 2007년부터 역대 정부에서 해오던 일이다.

집이나 병원에서 취학 전 아이의 발달장애 위험을 빨리 발견하는 사례가 늘면서 공식 발달장애 아동 수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장애인 현황’을 보면 2018년 기준 정부가 정한 발달장애인에 속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으로 등록한 만 0~5살은 3027명으로, 5년 전(2401명)보다 26% 늘었다. 등록장애인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영유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때 자녀가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크게 호전될 거란 기대로 부모가 장애인 등록을 미루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치료비 가장 저렴한 병원에서도 한 달 118만원

문제는 조기 발견된 발달장애 영유아들이 조기 치료 지원을 받고 있느냐는 점이다. 문재인표 생애주기별 대책에서도 이 부분은 빠져 있다. 부모가 조기에 자녀를 치료할 수 있도록 부모 교육을 강화하는 정도다. 우선, 지적·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아동에게 건강보험 지원이 사실상 없다. 이들은 보통 대학병원이나 재활병원, 어린이재활병원의 정신의학과에서 특성에 따라 크게 언어·인지학습·신체발달·행동 치료를 받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 하나도 없다. 모두 비급여 치료로, 개인이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지적·자폐성 장애 영유아도 뇌병변장애아동처럼 재활의학과에서 신체적 재활을 돕는 물리치료나 작업치료를 받으면 연령과 병원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50~95%의 치료비를 보장해주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 지적·자폐성 장애 영유아가 정신의학과에서 건강보험에 따라 지원받는 의료 행위는 의사 상담뿐이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작업 및 오락 요법’이 있긴 하지만 성인들과 함께 입원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는 등 간단한 조치를 해주는 것으로 아이에 대한 개별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또 지난해 ‘인지행동치료’가 신설됐으나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를 위한 치료다.

의료기관에서 비급여로 이뤄지는 치료의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치료 유형에 따라 30~40분 기준으로 2만~3만원짜리 언어치료도 있고 6만~8만원짜리 행동치료도 있다. 치료비가 가장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장애센터에서 보통 수준으로 행동치료 주 3회(50분), 언어치료 주 2회(30분), 작업치료 주 2회(30분), 음악치료 주 1회(30분), 인지치료 주 1회(30분)를 받는다고 가정해도 매주 29만7천원, 한 달이면 118만8천원이 들어간다. 민간 의료기관에 다니면 한 달에 300만원 이상인 경우도 허다하다. 보험사의 실비보험에 가입한 경우 일부 치료에 비용의 80~90%를 지원해주지만, 그마저도 아이가 어떤 장애 진단을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원인을 모르는 발달지연’에는 보험료가 나와도 자폐성장애 등에는 보험료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병원을 다닐 수 있는 아동은 운이 좋은 편이다. 발달장애아 비율이 늘더라도 아동인구 감소로 수익성이 낮아져, 민간병원이 어린이 재활치료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밖, 장애인복지관이나 사설 기관에서 이뤄지는 발달재활서비스에 대한 지원도 10년째 제자리다. 발달재활서비스는 국가 혹은 민간 자격증을 가진 치료사들이 시행하는 재활서비스를 말한다. 병원에서 의사의 관리·감독을 받는 치료사가 하는 재활치료와 다르다. 병원의 치료 제공 규모가 제한적이다보니, 부모들은 장애인복지관이나 사설 기관의 치료(재활서비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과 별개로, 정부가 지적·자폐성 장애를 포함해 재활서비스가 필요한 만 18살 미만 장애인이 있는 가구(평균소득 150% 이하인 가구)에 소득에 따라 월 14만~22만원을 바우처 형태로 지원해주고는 있다. 발달장애아를 포함한 모든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제도다. 서울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발달센터·아동상담센터·치료연구소 등이 334곳에 이른다.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책이지만, 정부가 서비스를 시작한 2009년 이후 대상자와 지원액이 그대로다. 운 좋게 복지 대상으로 선정돼도 월 14만~22만원으로는 하루 이틀 치료받기에도 빠듯하다.

제때 치료받아야 비용 줄어

사회적 지원이 적다보니 발달장애 치료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격차가 발생한다. 부모가 소득·자산이 많거나 빚을 낼 여력이 있는 발달장애아동은 병원과 사설 기관에서 여러 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아이는 꼭 필요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다.

김남욱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발달장애아동 누구나 취학 전에 치료적 개입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출생시 400g 정도에서 만 36개월이 되면 약 1100g으로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 1300~1400g 정도 된다. 출생시부터 만 36개월까지의 성장이 매우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뇌의 양적 성장에 더해, 여러 방향의 신경 연결 만들기, 중요한 신경 연결 제외하고 없애기, 중요한 신경 연결을 좀더 효율적으로 만들기가 일어나는데, 이 과정은 만 36~48개월까지 정점을 이룬다. 이러한 영유아 뇌의 특성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에서도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는 설명을 한다.”

대다수 아동이 받는 치료부터 급여화

발달장애 영유아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다. 서동수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장애센터장은 “미국에서는 영유아나 학령기 시기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아이들이 치료를 많이 받게 하는 비용이, 치료받지 않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도 저소득층과 일부 중산층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발달지연이 있거나 미숙아와 같이 장애 가능성이 예측되는 아동에게는 만 3살까지 조기 치료를 받는 비용은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에서 지원해준다.

우리 건강보험이 발달장애 영유아 치료를 지원하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2014년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은 신체·감각장애인 외에 발달장애인도 ‘생애주기에 따른 특성·복지 욕구에 적합한 지원과 권리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의학계에선 언어치료나 작업치료처럼 대다수 발달장애아동이 받고 있고, 의학적 근거가 뚜렷하며, 치료사들이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한 분야부터 건강보험 급여화를 해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보건복지부도 2017년 병원 언어치료에 처음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려고 추진했으나, 사설 기관의 반대 등에 가로막힌 적이 있다. 꼭 필요한 치료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고 나머지 선택적 치료나 교육은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줬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발달장애아동 치료를 국가의료서비스에서 무상 제공하면 부모들이 경제적 부담도 덜고, 급여화가 된 치료를 기준점으로 (자녀 치료를) 좀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해나가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종합대책 중간점검


병원도 학교도 무소식


발달장애 영유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질 높은 재활치료 서비스를 받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에는 문재인 정부 임기 안인 2022년까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충남·경남·전남권 3곳에 짓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올 초 경남권과 전남권 병원을 운영할 사업자를 공모했으나 어떤 지방자치단체도 응모하지 않았고, 연말까지 진행하는 2차 공모 상황도 비슷하다. 충남권은 지난해 대전시가 사업자로 선정돼 총 건립 비용이 447억원으로 잡혔는데, 이 중 국비 지원은 78억원에 불과해 건립 지연이 예상된다.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 치료·교육 정보를 얻고 향후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을 주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도 17개 시도에 설치됐으나 핵심인 ‘개인별 지원계획’ 활동은 아직 미미하다. 센터 관계자는 “센터가 아동뿐 아니라 청소년, 성인, 노인까지 전 생애주기를 맡다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강조한 보육·교육 서비스 확대도 더디다. 정부는 유아 단계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교육을 활성화하겠다며 100억원씩 들어가는 통합유치원을 2017년 1개에서 2022년 17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2019년 현재 통합유치원은 2개뿐이다. 설립에 250억원씩 필요한 특수학교 역시 2017년 174개에서 5년 안에 23개 더 만들겠다고 했지만, 2년 동안 3개 더 설치됐다. 다만 5천만원이 들어가는 유치원 특수학급과 학교 특수학급은 지난 2년간 218개, 780개 더 신설돼 당초 목표치를 채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