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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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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그날 이후 엄마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2017년 3만4천 명 발달지연·발달장애 위험군 분류되지만,

행동·물리·인지·미술 치료 등 건강보험 적용되는 치료 없어
등록 2019-11-26 00:38 수정 2020-05-02 19:29
여섯 살 여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과 그네를 타고 있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가 있는 여진이는 산책하는 시간과 음악 수업을 가장 좋아한다. 엄마 이혜연씨 제공

여섯 살 여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과 그네를 타고 있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가 있는 여진이는 산책하는 시간과 음악 수업을 가장 좋아한다. 엄마 이혜연씨 제공

두 살 하준이 엄마는 자주 가슴이 쿵쾅쿵쾅 뜁니다. 밤에는 잠도 오질 않습니다. 약을 먹어야 잠시라도 눈을 붙입니다. 다섯 살 지후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 한때 우울증 약도 먹었습니다. 엄마의 아픔은 하준이와 지후가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모두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부모님에게 설명하는 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는 것도 엄마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아이가 어릴 때 좋은 치료를 받고 증상이 줄어들게 할 책임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발달장애아 엄마들은 혼자 아이를 치료하고 교육하느라 마음이 병들어갑니다. 발달장애인의 엄마로 살아가는 전 과정이 험난할 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막막한 시기를 겪고 있는 엄마들을 만났습니다. 만 0~5살 취학 전 아이를 둔 엄마들입니다. 그들이 거대한 사교육 시장과도 같은 발달장애인 치료 세계에서 아이와 분투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인 치료비용을 우리 사회가 나눠질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과, 어떤 치료가 엄마와 아이에게 좋은지도 함께 담았습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거실 한쪽, 2살 아이는 소리가 나오는 그림책에 푹 빠져 있었다. 조그만 입을 앙다물고 의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작은 손가락에 맞춰 여러 노래가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아이는 잠시 손가락 연주를 멈추고 빙그레 웃었다. 그 순간 엄마가 아이 뒤로 다가왔다. “하준(가명)아, 이제 엄마 차례야. 이거 줄까?” 엄마는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하며 그림책을 빼앗아 멀찍이 두었다. “아아.” 당황한 아이는 팔을 뻗고 집게손가락으로 그림책을 가리켰다. 그림책을 돌려달라는 하준이의 의사표시였다. “책, 책.” 엄마는 아이의 손가락을 함께 잡고 그림책을 꾹꾹 눌렀다. “우리 하준이 잘했네.” 그제야 엄마는 아이 품에 그림책을 안겨주었다. 이때 그림책은 하준이가 손가락으로 의사표현을 하게끔 유도하는 ‘강화제’고, 그림책을 하준이에게 돌려준 엄마의 행동은 ‘보상’이 된다.

잠시 뒤 엄마는 하준이가 보던 그림책을 재빨리 빼앗아 자신의 등 뒤로 감추고 하준이 앞에 퍼즐을 놓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꽥꽥 오리는 어디 놓을까?” “데굴데굴 공은 어디에 놓을까?” 엄마는 하준이의 손가락을 잡고 하나씩 퍼즐을 맞췄다. “우리 하준이 잘했네.” 엄마는 등 뒤에 감췄던 그림책을 다시 하준이에게 돌려줬다. 아이가 좋아하는 행동(그림책 읽기)에 평소 안 하던 행동(퍼즐 맞추기)을 살짝 끼워넣어 이를 하게끔 만드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그림책에 대한 흥미가 퍼즐로 옮겨가도록 엄마가 빠르게 두 행동을 ‘전환’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서와 선생도 없이 치르는 운명의 시험

11월18일. 엄마와 하준이가 ‘홈ABA’를 한 지 19일째 되는 날이다. ‘엄마표 ABA’라고도 한다. 그 덕분인지 하준이는 며칠 전 집게손가락으로 책이나 간식을 가리키는 데 처음 성공했다. 또래는 1년 전부터 하는 간단한 행동이지만 엄마는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며 웃었다. ABA는 응용행동분석(Applied Behavior Analysis)의 줄임말로, 홈ABA는 집에서 응용행동분석에 기반한 치료를 한다는 뜻이다. ABA는 모든 사람의 행동은 학습된다는 가정 아래 사람의 부족한 행동은 가르치고 부적절한 행동은 새로운 행동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미국에서는 만 3살까지 자폐성장애아에게 집중적으로 장시간 ABA 치료를 해서 이들의 지능과 언어능력, 일상생활 기술을 증진하는 ‘조기 집중 행동치료’가 1980년대 말부터 보편화했고, 한국에서는 지난 10년간 많이 이뤄졌다.

석 달 전만 해도, 엄마는 ABA가 뭔지도 몰랐다. 9월, 하준이의 생후 18~24개월(3차)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러 소아과에 갔을 때 엄마는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상급병원에서 추가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뜻의 ‘심화평가권고’였다. 아이와 매일 살을 비벼온 엄마도 하준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돌이 돼도 하준이는 “엄마, 아빠”를 하지 못했다. 간식을 달라고 가리키지도, 엄마 표정을 따라하지도 못했다. 결국 하준이는 대학병원과 재활병원에서 모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달지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또래보다 발달이 6개월 이상 느리면 발달지연, 1년 이상 느리면 발달장애로 분류되는데 “하준이는 발달장애 수준의 발달지연”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사는 엄마가 발달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꼭 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의 타고난 특성인 장애는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발달장애를 완치하는 치료법은 없고, 치료의 목적은 자폐 증상을 줄이고 아이의 발달과 학습을 도와 여러 기능을 증진하는 데 있다는 조언도 하지 않았다. “제가 돈을 최대한 많이 써서 치료하면 아이가 정상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엄마의 질문에 의사는 “30% 정도. (돈을) 많이 쓰세요”라고만 말했다. 어떤 치료를 얼마나 받아야 할지 물어도 의사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몇 회가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그날 엄마는 “70%는 안 될 수도 있지만, 30%를 부여잡고 다 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주 12시간 월 220만원, 주 20시간 월 280만원

그날부터 엄마는 발달장애에 대해, 치료법에 대해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았다. 병원에선 하준이의 증상에 맞는 장기 치료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 엄마들에게 전해들은 정보와 몇 권의 책에 의지했다. ABA·감각통합·특수체육·작업·언어·심리·미술·음악·상담 등 치료의 종류도, 치료하는 기관도 너무 방대했다. 그중 어디에서, 어떤 치료를, 얼마나 해야 하준이에게 좋을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었다. 교과서와 선생님도 없이 시험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엄청난 고민 끝에 엄마는 “미국에서도 발달장애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됐고 직접 경험한 부모들도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ABA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ABA에 근거해 ‘조기 집중 행동치료’를 하는 곳을 수소문했다. 좋은 대학에 보내려 ‘일타 강사’를 찾아다니는 마음이었다. 아이의 특성에 맞춰 치료사가 일대일로 30분~1시간씩 진행하는 ‘개별 치료’와, 어린이집처럼 아이 3~5명이 모여 온종일 수업하는 ‘조기 교실’이 있었다.

엄마는 이왕이면 하준이를 조기 교실에 보내고 싶어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우 강남과 마포 등에 몰려 있는 ABA 치료센터의 조기 교실을 다니려면 보통 주 12시간에 월 220만원, 주 20시간에 월 280만원이 들었다. 어떤 센터에서는 하루 7시간씩 주 5일 동안 35시간 수업을 받으면 월 781만원이라고 했다. “치료사들이 지방 출장을 가서 숙식하며 수업을 할 경우에는 한 달 비용이 1200만원까지도 들어간다”는 말에 엄마는 기가 막혔다. “아이를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엄마들은 2~3년씩 조기 교실에 보낸다”는 센터 쪽 말대로라면 1억원은 필요했다. 그마저도 조기 교실에 들어가려면 몇 달,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마치 “거대한 사교육 시장”과도 같았다. “아이의 하루하루가 아까운” 부모들은 비싼 고액 서비스에 매달리고 있었다.

엄마는 조기 교실에 등록하는 대신 홈ABA를 공부했다. 아이를 돌보려 무급휴직을 하고 남편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는 처지에 ABA 치료에만 한 달 200만~300만원씩 쓸 수 없었다. 다른 부모들은 집을 팔고 빚내서라도 치료를 받는다고 하지만 “장기 치료가 필요한 하준에게는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엄마는 판단했다. 그래서 매일 밤 아이가 잘 때면 ABA 전문가에게서 실시간 온라인으로 어떻게 ABA를 하는지 강의를 듣고, 낮에는 그 방법대로 아이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놀아준다. 똑같은 행동을 50번씩 반복할 때도 있다. 그러고는 동영상을 찍어 전문가에게 보낸 뒤 평가를 받는다. 이렇게 홈ABA를 해도 한 달 90만~100만원이 들어간다. 홈ABA를 배우면서 하준이에게 주 3회 언어치료와 주 2회 작업치료를 하는 데 드는 돈이다.

매년 수많은 아이와 엄마가 하준이네처럼 막막한 발달장애 치료의 세계로 들어선다. 국민건강보험의 건강검진통계연보를 보면 2017년에만 영유아 건강검진 발달선별검사 결과 3만4172명의 만 4~71개월 영유아가 ‘심화평가권고’를 받았다. 영유아 218만1934명 중 1.56%가 발달지연 혹은 발달장애 위험군이라는 의미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은 영유아 중 1.5~2%에게 정밀검사를 요한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영유아 100명 중 한두 명은 발달장애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1년에 두 번 발달선별검사에서 모두 심화평가권고가 나온 아이의 경우 의사의 재량에 따라 중복 집계됐을 수 있다.

학원 뺑뺑이처럼, 치료실 뺑뺑이

정밀검사 결과 발달지연,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 부모들의 각개전투가 시작된다. 아직 아이가 어린 부모들은 아이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아이가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 가족의 비난과 사회의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맞는 치료와 교육 계획을 체계적으로 짜주는 곳이 거의 없어, 대학 입시 전략을 짜주는 ‘입시 코디네이터’처럼 부모들은 아이의 ‘치료 코디네이터’가 돼 스스로 치료 프로그램을 짠다. 아이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대부분 부모의 목표다. 부모의 계획에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겪는 신체·인지·행동·언어적 발달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의학적 효과가 있는 치료도 많지만, 그런 효과가 불확실한 치료도 일부 포함된다.

치료는 곧 돈이다. 병원에서 하는 각종 치료에도 30분~1시간당 2만~8만원씩 들어간다. 전액 부모의 부담이다. 정부가 발달장애인으로 규정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는 사실상 공적의료 서비스 혜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에게서 받는 상담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나머지 전문의의 지도·감독 아래 치료사들이 진행하는 행동·물리·인지·미술·음악·놀이·감각통합·운동·작업 치료 등은 모두 비급여 항목이다. 병원 치료라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크게 저렴하지 않은데다 예약을 잡기도 어려워, 부모들이 사설 기관으로 몰린다. ‘아이가 완치될 수 있다’는 일부 사설 기관의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부모들도 있다.

5살 지후(가명)는 늘 바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뺑뺑이’를 도는 형과 누나처럼 어린이집이 끝나면 치료실을 옮겨다녀야 한다. 3년 전쯤 병원에서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은 뒤 생긴 변화다. 병원과 장애인복지관, 사설 기관 두 곳에서 ABA는 주 3회(회당 6만6천원), 언어치료 주 4회(1만2천~5만8천원), 음악치료 주 1회(5만8천원), 작업치료 주 2회(5만8천원), 특수체육 주 3회(3만~5만3천원), 인지치료 주 2회(4만5천원)를 받는다. 처음엔 이보다 더 많은 치료를 받기도 했다.

엄마는 마음이 바빴다.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아이가 “아들이라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생후 30~36개월 (4차) 영유아 건강검진 이후 “빨리 온종일 유치원처럼 특수교육을 하는 곳(조기 교실)에 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치료기관을 찾아다녔다. 다른 부모들처럼 “자폐성장애를 자폐의 경계에 있는 정도로 만들어 나중에 직장이라도 보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가 크면서 ‘상동 행동’(동일한 유형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 같은 자폐 성향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지후의 건강이 가장 걱정됐지만 지후를 바라볼 사람들의 눈도 두려웠다. 한때 엄마도 거리에서 장애아를 보면 “저 엄마는 아이가 장애아인 걸 알면서도 낳았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편견이 있었다. 1년 넘게 손주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말도 가슴에 꽂혔다. 아직도 시어머니는 남들 앞에서 누가 봐도 5살인 지후를 두고 “얘는 4살이에요” 하고 한 살 깎아 부른다. 또래보다 발달 속도가 느린 손주를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신경 쓰여서 그런다는 걸 엄마는 잘 안다. 그런 불안과 두려움과 상처를 혼자 껴안은 엄마의 마음에는 병이 들었다. “하루 종일 울면서 ‘어떻게 죽을까’ ‘교통사고로 죽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자폐성장애아인 지후와 엄마가 간식을 먹으며 놀고 있다. 박승화 기자

자폐성장애아인 지후와 엄마가 간식을 먹으며 놀고 있다. 박승화 기자

장애 영유아 양육비에 200만원 이상이 40%

일주일에 15번, 한 달에 60번 치료받는 데 들어가는 돈은 월 292만원. 이 중 276만원이 엄마, 아빠의 부담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는 없지만 그나마 정부가 ‘발달재활서비스’라는 이름의 복지사업으로 월 16만원의 바우처를 지원해주고 있다. 월 292만원의 치료비도 적은 편이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병원이나 사설 기관보다 비용이 30~50% 저렴한 복지관에서도 여러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관 치료는 2~3년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지후네는 치료비를 빚으로 감당한다. 자영업을 하는 아빠의 수입으로는 부족하지만 엄마는 “나중에 지후가 학교에 들어가서 (정부의 돌봄 서비스인) 주간활동 서비스라도 받게 되면 내가 식당이라도 나가고 계단 청소라도 해서 갚자”는 생각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지후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그럴수록 엄마는 “(또래 아이들 속도를) 더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치료를) 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실망감”이 들어 아이를 다그쳤다.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지후는 손톱을 물어뜯고 ‘틱 증상’(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 행동이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보였다. “나마저 이러면 아이는 ‘정말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하고 느끼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그때부터 엄마가 자주 칭찬하고 인정해주니 지후는 조금씩 밝은 얼굴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월 300만원의 치료 규모를 줄일 결심이 서지 않는다.

지후네는 치료비를 과하게 쓰고 있는 걸까.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연구소가 8월10일~10월4일 전국 만 0~5살 장애 영유아(초등학교 입학을 유예한 만 6~7살 일부 포함)를 둔 부모 98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다(전체 설문조사 내용은 12월10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할 예정). 989명 중 725명이 발달장애에 속하는 발달지연·지적장애·자폐성장애 영유아를 둔 부모였다. 이들 가운데 53.8%인 390명이 “월 100만원 미만의 양육비가 들어간다”고 응답했다. 양육비에는 의료비, 치료비, 교육비, 돌봄비용 등이 포함됐고 정부 지원액은 제외됐다. 장애아의 경우 부모가 의료비·치료비·교육비 등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양육비’로 포괄해 물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중 한 달 100만~200만원은 196명(27%), 200만~300만원은 24명(3.3%), 300만~400만원은 35명(4.8%), 400만원 이상 14명(1.9%)으로, 양육비에 200만원 이상 고액을 쓰는 가구가 전체의 40% 가까이 됐다.

영유아 무상보육이 실시되고 의료 혜택이 늘어난 상황에서 발달장애 부모의 양육비 부담이 높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 치료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발달장애 영유아가 받는 지원에 격차가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박창현 부연구위원은 “고소득층 부모들은 자기들끼리 교수급(치료사)들을 불러 아이를 치료하고 교육한다”며 “정부가 손을 놓고 시장에만 맡겨놓은 사이, 발달장애아의 치료와 교육도 마치 사교육 시장처럼 계급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기관인 서울시어린이병원 발달장애센터 서동수 센터장도 가끔씩 안타까운 가족을 본다. “한번은 ABA 치료가 필요한 아이 부모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없다보니 아이 조부모께 부탁드려본다고 했는데, 결국 아이가 치료를 못 받았어요. 한 달에 (30시간 해서) 150만원(아이 나이와 치료 집중도에 따라 다름) 정도 들어가는 치료였거든요. (치료비를) 감당 못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아빠 직업부터 묻는 치료센터

부모의 바람과 달리 과잉 치료는 가족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8살 동완(가명)이는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은 3살 때부터 집보다 치료실에서 더 많이 살았다. 엄마는 “아침에 눈뜨면 잠옷을 입은 아이를 차에 태워 해가 질 때까지 서울대학병원의 치료실이며 강남의 사설 기관의 치료실”을 다녔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힘든 일정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자폐는 장애가 아니라 치료만 잘하면 낫는 병이니, 다른 엄마들이 좋다고 하는 치료는 다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한 달에 490만~550만원씩 3~4년을 꼬박 썼다. 2억원쯤 된다. 억대 연봉을 받는 남편이 “후회가 안 남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며 적극 지원해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동완이는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자해와 타해도 심해졌다. 억지로 치료실에 들여보내도 ‘그로기 상태’(상대방에게 큰 가격을 당해 정신이 몽롱해지는 상태)가 돼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잘 따라와주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세상과 단절하고 치료에 인생을 걸었던 엄마도 함께 아팠다. 그러다 동완이가 6살 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와 아이가 분리돼야 한다”는 선배 엄마의 말을 듣고 치료를 크게 줄였다. 동완이의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치료보다는 동완이가 남들과 의사소통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성 확장반, 그룹음악수업, 특수체육 등에 월 200만원 정도를 쓰고 있다. 그사이 애초 자폐장애 2급이었던 동완이는 다시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지만, 엄마와 동완이는 어느 때보다 잘 지내고 있다.

동완 엄마는 발달장애아를 둔 엄마들이 “하도 다급하니까 치료에만 전념하며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후배 엄마들은 시행착오를 조금만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발달장애아 엄마들과 마을공동체 사업도 하고, 미술치료사들을 도와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부모 상담도 하고 있다. “어떤 엄마는 그래요. 한 사설 기관에 갔더니 아빠 직업부터 묻더래요. 그래서 회사원이라 답하니 ‘꾸준히 하기 어려우면 시작하지 말라’고 한 거죠. 한 달 비용이 1천만원인가 2천만원인가 하는 곳이죠. 그래도 엄마들 마음은 하고 싶어요. 또 어떤 엄마는 집에서 고압산소치료를 하기도 하고, 어떤 엄마는 생의학치료라고 해서 아이에게 많은 약을 먹이기도 해요. 그래서 간이나 신장이 망가진 아이도 있어요. (검증이 안 된) 자폐 (대안)학교를 찾아가는 엄마도 있고요. 부모가 크게 돈 걱정 하지 않고 아이가 꼭 필요한 치료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신 가족이 치료실에서 나와 친구도 사귀고 세상도 봤으면 좋겠어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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