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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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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산재 줄이려면 노조 조직률 높여야”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연금 강화”
등록 2019-10-29 01:43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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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유니온은 2013년 창립한 고령자들의 노동조합이다. 만 55살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세대별 노조로 현재 조합원 수는 300명가량 된다. 조합원 대부분은 70대 이상이고, 95%는 젊을 때 노조 미가입자다. 고현종(55·사진)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일자리지원기관인 종로시니어클럽 실장이기도 하다. 10월21일 서울 종로구 숭인2동 노년유니온 사무실에서 고 사무처장을 만나 노인 산업재해의 현실과 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들었다.

차별받다보니 노인 스스로 위축돼

최근 5년간 60대 이상 산업재해가 급증했다.
민간기업에선 50대 초반이면 대부분 나와야 한다. 그리고 청소나 경비 같은 단순노무직, 건설업이나 조선업 같은 업종에 일용직으로 주로 간다. 젊을 때보다 균형감과 근력이 떨어지는데도 더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서툴다보니 많이 다친다. 실제 산재를 당하는 고령자는 통계보다 훨씬 많다. 고령자 대부분이 하청, 재하청, 인력파견업체 등에서 일하는데 이런 곳은 산재가 많이 은폐된다.

노인 산재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노조 조직률이 높아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대책을 세우려면 먼저 당사자들의 이야기부터 모아야 한다. 지금은 고령자가 산재를 당해도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노조가 그 창구가 돼야 한다.

고령자에 대한 법적 차별도 없애야 한다. 고령자가 많이 일하는 경비 업무는 대부분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휴게·휴일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❶ 고령자는 다쳐도 휴업급여를 젊은 사람보다 적게 받는다.❷ 2년 넘게 계약직으로 일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안 된다.❸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❹ 단기적으로는 법정 정년을 높이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산재가 난 회사에는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업살인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불이익을 받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왜 노인 차별이 있는 건가.
고령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사회 인식 때문이다. 그저 소득을 살짝 보충하는 용돈벌이 정도로 취급받는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도 자원봉사에 약간 비용을 지원하는 성격이다.

법적으로 차별받다보니 고령자 스스로도 위축된다. 내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 각종 불합리한 요구에도 대응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야간 경비를 하던 한 조합원은 학교에 머무는 16시간 중 7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9시간은 휴게시간으로 한다는 자술서를 억지로 써야 했다.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던 분은 출퇴근 시간 차량 통제처럼 계약서에 없던 업무들이 추가돼도 거부하지 못했다. 재계약이 안 될까봐.

산재 역시 마찬가지다. 산재를 신청하려 하면 사용자가 싫은 티를 낸다. 그럼 눈치껏 산재 신청을 안 하고 자신이 감당하게 된다. 젊을 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게 나이 들면 당연하지 않다.

노후 빈곤, 저출산·청년실업과도 연결

노인 산재는 노인 빈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 산재를 본인이 부담하다보니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고, 빈곤하니까 조금이라도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노동시장에 들어오려 하고, 그러다보니 근로조건이 열악한 일자리라도 택하고, 다시 다치고…, 계속 반복된다.

노후 빈곤은 저출산, 청년실업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지금 젊은 세대가 노인들의 빈곤한 삶을 보면서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본인 노후를 준비하기도 버겁다. 게다가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해 노후 빈곤을 키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사회개혁 문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연금인가.
국민의 세금 부담률을 높여서 연금을 강화해야 한다. 중산층 이상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세액공제 제도도 폐지해 복지비용으로 돌려야 한다. 지금 국민연금 제도도 젊을 때 월급 많았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 연금을 많이 받게 돼 있다. 임금 격차가 연금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젊을 때 격차야 그렇다 쳐도, 나이 들어서는 평균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나.

증세와 복지 강화에 가장 반대하는 분들이 60대 이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분들이 젊었을 때는 가족 복지 중심이었고 그 기억이 강하니까. 그런데 요즘 보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기초연금과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복지를 체감한 뒤 너무 좋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자식보다 더 효자라고 말한다. 더 확대되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세금이 올라야 한다. 자식 세대에게 부담이 되니까 미안하고, 괜히 말을 꺼내면 노욕(늙은이가 부리는 욕심)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조심하는 거다.

변화 가능성이 보이나.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요인인 것은 맞다. 고령자들이 좀더 조직화돼 본인의 일자리를 늘려달라거나 연금을 현실적으로 설계해달라고 요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노년유니온도 만든 것이다. 50대 중반인 내가 노년 세대가 될 때쯤은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마지막 노동이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어떻게 보는지.
그나마 가난한 노인들에게 큰 힘이 된다. 단기 일자리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거라도 해야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인들이 살 수 있다. 다만 정부가 노인 노동권에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노인 산재와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달라.
어떤 일이든 마지막 순간이 우리 기억에 남는다. 삶을 마감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줘야 하지 않겠나. 노인들이 이 세상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가겠는가. 젊을 때 고생했더라도 나이 들어 보람이 있었다고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고령자에 대한 법적 예외 조항들



❶ 근로기준법 예외: 경비 업무는 상당수 ‘감시·단속직’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제63조 3호에 따라 △근로시간 제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지급 △연차 유급휴가 지급 등에서 예외가 된다. 2014년 기준으로 경비원·검표원 24만1193명 중 20만6817명(85.7%)은 55살 이상이다.

❷ 산업재해보상보험 감액: 산업재해를 당해 일을 못하는 노동자는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받는다. 그런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5조에 따라 60살부터 65살까지 한 살이 늘어날 때마다 휴업급여가 평균임금의 4%씩 감액된다. 즉, 휴업급여로 61살은 평균임금의 66%, 62살은 평균임금의 62%, 65살 이상은 평균임금의 50%를 받는다.

❸ 기간제법 예외: 55살 이상 노동자는 기간제법 제4조 1항에 따라 계약직으로 2년을 초과해 일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

❹ 고용보험 예외: 65살 이후 고용된 사람은 고용보험법 제10조에 따라 실업급여 지급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글·사진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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