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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수준은 삼바와 비슷, 대하는 기준·태도 달라져”

조국 펀드 범죄 비화 가능성 제시한 뒤 징계 회부된 김경율 참여연대 위원장
등록 2019-10-05 16:15 수정 2020-05-03 04:29
서울 종로구의 참여연대 모습.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그들은 조국 논란을 거치며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 종로구의 참여연대 모습.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그들은 조국 논란을 거치며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한겨레 신소영 기자

“니들 촛불혁명 정부에서 권력 주변 맴돈 거 말고 뭐 한 게 있나. 부처에서 불러주면 개혁, 개혁 입으로만 씨부리고.”(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페이스북)

문재인 정부 2년 반 만이다. 9월29일 경제금융센터 소장을 겸임하는 김경율 집행위원장의 페이스북 돌출 발언에 참여연대는 들썩였다. ‘권력예비군’ ‘위선자’ 등 참여연대 내부를 향한 말은 거칠었다. 회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참여연대는 9월29일 “김경율 회계사가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린 글은 참여연대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는 글을 올렸다.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결국 이튿날인 9월30일 참여연대는 “해당 글은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해온 사람들에 대한 폄훼로 볼 수 있어 상임집행위원회(상집)는 김 위원장의 이번 행위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참여연대의 대립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삼바 회계사기 사건 의혹 파헤친 주역

김 위원장이 10월1일 MBC 라디오 에 나와 “권력형 범죄의 비화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사실판단에 있어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하면서다. ‘충분한 증거’와 관련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삼바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어졌다는 혐의를 받는 삼바 사건 의혹을 파헤친 주역이다. 김 위원장과 참여연대 동료들이 그린 밑그림은 사실이 되었다. 이에 따라 삼성 임직원 8명이 구속되고 현재 검찰의 칼끝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하고 있다. 참여연대 내부를 향한 그의 한마디에 ‘조국 논란’에 참전했던 언론, 정치권 등이 주목했다.

그를 향한 질문은 간단했다. 그가 말한 ‘증거’가 무엇이냐고. 나아가 ‘그 증거가 얼마나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참여연대는 조국 장관에 대한 내부 비판 목소리를 봉쇄했으며, 김 위원장은 2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을 험한 말로 비난했는가’로 이어졌다.

은 김 위원장을 10월1일과 2일 두 차례 만났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이 가입한 사모펀드와 관련한 조언 외에 인터뷰는 어렵다고 했다. 함께 있는 내내 방송, 신문 등 다양한 매체로부터 온 전화에 시달렸다. 두 번째 만난 날, 김 위원장은 국정감사 준비 자문을 위해 한 국회의원실에 들어섰다. 곧바로 기자가 의원실에 들어섰다. 김 위원장임을 확인하자마자 “참여연대에 ‘조국 펀드’가 권력형 범죄로 보이는 것과 관련된 결정적 증거가 있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다시 의원실을 나섰다. 곧이어 다른 방송 매체도 의원실 앞을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제 참여연대 얘기는 안 하고 싶다. 오늘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지) 나흘째인데 솔직히 힘들다”고 했다. 하루 전 10월1일 만났을 때도 대화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았다. 참여연대 간사들이 김 위원장을 잡았다. 참여연대를 그만두겠다는 위원장이나 이를 말리려는 실무 간사들이나 딱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와 입장이 다른 참여연대 쪽 인사도 이날 찾아와 물었다. “증거가 있느냐?” 김 위원장은 답답한 듯 말했다.
“인터뷰에서 권력형 범죄의 가능성을 얘기한 게 전부예요. 사실 많은 언론사가 회계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저에게 조언을 구하죠. 그 과정에서 제가 본 것들을 종합하면 권력형 범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증거는 검찰이 갖고 있을 것”

이날 참여연대는 ‘참여연대가 조국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관련 의혹을 묵살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알림글을 회원 게시판에 걸었다. “경제금융센터 내부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해 김경율 회계사처럼 권력형 범죄 혐의로 보신 분들도 있고, 그런 주장을 하기엔 여전히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며 판단을 달리하신 분들도 있었다.” 다시 말하면, 김 위원장의 권력형 범죄라는 주장은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하기보다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주관적 판단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금융센터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참여연대가 단체 내부의 사정을 공개한 이유는 간단하다. 김 위원장이 말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논란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말은 ‘참여연대가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조국 장관 비호를 위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조국 장관을 모두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증거 제시와 관련해 참여연대와 김 위원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김 위원장은 대화 중 다시 ‘삼바’와 비교했다.
“지금 참여연대의 요구는 삼바 사건 때와 달라요. 그때 제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참여연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하라고 주장했을 때, ‘이 부회장이 회계 사기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가져와라’라는 말을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검찰이 아닌데 그 증거를 갖고 있을 리 없죠. 의혹을 제기할 내용이 있느냐고 물어봐야죠.”
김 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확실히 말하지만 조국 장관이 직접 개입했다는 확정적 증거는 없어요. 다만 사모펀드와 관련해서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주식시장 작전세력과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이 편법적인 수단을 통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재차 “사모펀드가 권력형 비리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증거는 있지만 그것이 범죄로 확정할 만한 증거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보 진영의 권력 감시에 이중 기준은 없나”

이 논란의 답은 결국 검찰 수사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외부로 불거진 김 위원장과 참여연대의 갈등이 권력감시를 내건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의 정체성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지난 8월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참여연대가 오랜 시간 공들여온 검찰개혁을 내걸고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면서 ‘권력감시 원칙론과 신중론’은 합의점을 찾기 더 어려워졌다. 지금 국면에서 김 위원장은 유독 조국 논란에 이전보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참여연대 내부에서는 언론의 부풀리기 보도와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를 고려하면 비판에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진영의 권력감시 과정에서 이중 기준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랐다. 권력을 향해 정면을 응시하지 못한 채 회원들의 반응이나 여론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촛불시민과 참여연대는 달라야 한다”고도 했다. 촛불집회에서 검찰개혁이라는 가치에 참여연대가 함께하는 것과는 별개로 단체의 정체성인 권력감시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도 결을 달리하는 참여연대의 목소리는 적지 않다. 인터뷰에 응한 한 참여연대 간사는 “이번을 계기로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더 투명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를 함께 이뤄내는 것이 단체가 해야 할 일이라는 분위기도 뚜렷하다”고 답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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