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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겐 숨 쉬는 것이 노동”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정명호 장애인일반노동조합 준비위원장 인터뷰
등록 2019-09-25 01:59 수정 2020-05-09 02:24
정명호 제공

정명호 제공

정명호(29) 장애인일반노동조합 준비위원장은 장애인단체 활동가로 그동안 중증장애인이 처한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의문이 계속됐다. ‘사회는 왜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과 뜻을 모았다. 지난 6월12일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준비위)를 발족하고, 오는 11월 정식 출범을 목표로 한다. ‘일반노조’는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산업, 기업, 직종을 초월해 만드는 노동조합을 말한다.

‘장애인’과 ‘노조’의 조합은 낯설다. 8월 서울 동작구 준비위 사무실에서 한 차례 정 위원장을 만나고, 9월18일 서면으로 이야기를 들어봤다. 뇌병변장애인인 그는 목 아래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다. 언어장애도 있어 의사소통은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글자나 그림을 입력하면 음성으로 나옴)로 한다.

위원장 본인이 노동현장에서 느꼈던 문제는 뭔가.
19살 때 인천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저희는 이런 중증장애인도 일합니다’를 보여주기 위한 얼굴마담으로 치부되는 것 같았다. 정작 내가 잘할 수 있는 서류 작업을 배우려고 하면 막았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1년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일반노조의 설립 의미는.
장애인 운동을 한 지 10여 년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 한구석에 뭔가 답답함이 있었다. 왜 이 사회는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왜 장애인은 수용시설이나 방구석에 수십 년간 처박혀 살아야 하고, 주변에는 장애인 실업자가 넘쳐나는가? 우리도 환경만 갖춰지면 남들처럼 일하면서 삶을 풍성하게 계획할 수 있는데, 왜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볼까?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과 2018년 2월부터 노조 준비 모임을 했다. 장애인 고용과 부당 처우, 해고 위협 등 차별 문제를 노조를 통해 해결할 것이다.

노조가 정식 출범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장애인은 어떤 부문(계층)보다 실업자가 많다. 그만큼 정부 정책도 잘못됐고, 기업들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먼저 정부에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장애인 의무고용률과 부담금 대폭 상향 조정, 장애인 노동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 장애인 고용 안정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할 것이다. ‘사용자로서 정부’를 상대로 사안에 따라 단체교섭을 할 것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는 법이 정한 의무고용률을 지키라 투쟁하고 사업장 내 장애인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 편의 제공 등을 요구할 것이다.

노조는 장애인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자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인가.
노동은 교육 등과 함께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4대 권리이자 의무다. 섬에 있는 아이의 의무교육을 위해 교사를 파견하듯, 장애인 개개인의 노동은 권리와 의무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자본주의가 ‘생산성’ 문제로 막고 있다. 중증장애인은 노동 속도도 느리고, 아예 노동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도 있다. 기업 처지에선 쓸모가 없으니깐 중증장애인이 사회 격리 상태로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장애인 노동을 ‘가치 없는 노동’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기업 이윤보다 장애인들의 몸에 맞는 노동을 쟁취하려고 한다.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살아 숨 쉬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노동이다. ‘노동 평등성’이란 관점에서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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