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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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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위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 노동자

국가·계층·세대·생태계 간 다층적인 기후위기의 불평등
등록 2019-08-20 02:57 수정 2020-05-02 19:29
2019년 42.6℃까지 올라간 날씨에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분수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9년 42.6℃까지 올라간 날씨에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분수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정이 넘은 시간, 방 안의 온도계가 31℃를 가리킨다. 지난해보다는 한국의 폭염이 주춤한 듯싶지만, 나라 밖 소식은 심상치 않다. 유럽은 40℃, 인도는 50℃를 넘나들고 있다. 북극권 알래스카도 평년의 두 배 넘는 30℃를 넘어섰다. 그런데 40℃, 50℃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녹색연합,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시민 125명과 함께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을 진행했다. 몇몇 참가자의 기록을 보며 놀라는 순간이 있었다. 배달노동자, 건설노동자 등 야외에서 일하는 분들의 체감온도가 40℃를 훌쩍 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땅에 살지만 같은 폭염을 겪는 것은 아니었다.

인류를 위한 마지노선

앞으로 폭염 일수는 더 늘어나고 그 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제 폭염은 재난이 되었고 그 배후에는 바로 기후변화가 있다. 최근 영국 언론사 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중립적인 단어로는 현실의 심각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폭염, 태풍, 산불 등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낳는 자연재난이 전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상기후는 식량 부족과 대규모 난민을 낳는다. 미세먼지와 오존 같은 대기오염을 가중한다. 말라리아와 열사병 등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생태계 붕괴 징조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빙하가 녹는 속도는 과학자들의 예측을 넘어섰고, 해수면 상승은 섬나라의 생존을 위협한다. 게다가 영구동토층과 심해의 메탄이 방출되면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난 5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기후복원센터에서 발간한 보고서는, 2050년 전세계 주요 도시 대부분이 생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후위기’ ‘기후재난’ ‘기후파국’이라는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에서 기온 상승을 2℃ 아래로 억제하기로 약속했다.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특별보고서에서 2℃가 아닌 1.5℃로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류를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파리협약에 따라 각국이 약속한 의무를 다 지켜도 지구 온도는 3℃ 이상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어떤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한국은 55위를 차지하며 ‘기후악당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의 가장 큰 주범인 석탄발전소 7기를 새로 짓고 있다. 세계는 아직 위기를 위기로,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의 저자 울리히 벡은 “스모그는 평등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현대사회에서는 환경오염 같은 위험 앞에 누구나 평등하게 노출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의 진실만 말해준다. 누구도 기후위기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으나 그 위기의 결과는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위기와 사회위기가 합쳐진 복합위기

기후위기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이 불평등은 다층적이다.

첫째, 국가 간 불평등이다. 전세계 인구 20% 이하의 이른바 선진국들이 전체 온실가스의 70%를 배출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온실가스의 3%만 배출하는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된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농업에 의존하는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은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둘째, 계층 간 불평등이다. 폭염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재난으로 닥친다. 폭염에 쓰러지는 이들은 냉방시설로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는 이들이 아니라, 땡볕에서 일하는 농민과 40℃ 넘는 아스팔트를 떠날 수 없는 노동자, 바람도 통하지 않는 쪽방촌 어르신들이다.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2009~2012년 서울 지역 사망자를 대상으로 폭염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낙후된 주거 환경과 낮은 소득수준에 처한 주민이 폭염으로 숨질 위험은 19.4%나 높았다.

셋째, 세대 간 불평등이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것은 기성세대지만 이를 감당해야 하는 건 지금 막 생을 꽃피우기 시작한 청소년들이다. 오늘날 기후운동을 주도하는 것이 청소년이란 사실은 놀랍지 않다.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 1인시위를 통해 기후정의를 호소한 17살 그레타 툰베리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청소년의 등교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후위기에 무책임한 어른들을 보며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과 자폐증에 걸린 그레타의 처지는, 미래 세대가 느끼는 위기감과 절망감을 잘 보여준다.

넷째, 인간만이 아닌 생태계의 불평등도 있다. 석유 한 방울 쓴 적 없는 바닷속 산호초와 고산지대 나무들이 죽어간다. 지구 온도가 2℃ 상승하면 산호의 99%가 사라진다. 현재 추세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아마존과 갈라파고스의 생물종 절반이 멸종에 이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실가스가 다른 무수한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가중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에서 “우리는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 위기에 당면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는 곧 정의와 평등의 위기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길은,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과 함께 간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폭염 시민모니터링에 참여한 가스검침원이 들려준 이야기다. 하루 1천여 가구를 맡은 그분은 종일 종종걸음을 쳐야만 한다. 담당하는 가구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천천히 걸어도 되는 전기검침원에게 부러움을 전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만드세요. 우리도 노조가 생기자 달라졌습니다.”

‘혼자 하는 실천’이 아니라 ‘함께하는 행동’을

이렇듯 변화는, 각자도생의 발버둥이 아니라 함께하는 행동으로 가능해진다. 기후정의를 향한 길은 서로 손을 잡는 연대에 있다. ‘혼자 하는 실천’이 아니라 ‘함께하는 행동’이 중요하다. 개인의 작은 실천도 필요하지만,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기후위기 책임은 대부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과 기업에 있고, 위기 앞에 침묵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변화를 가져오려면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공동행동이 필요하다. 9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맞춰 전세계 시민들이 기후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9월21일, 기후위기에 맞선 대규모 비상행동이 열린다. 폭염이 한창이던 7월, 배달노동자들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처럼 “빙하 위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 노동자는 같은 처지”에 있다. 불평등한 기후위기 앞에서 삶의 위기를 겪는 모든 이가, 함께 손잡고 행동할 때다.

황인철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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