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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로 불똥 튄 경제제재

일, 수출규제 이유로 안보 들자 한국서 ‘지소미아 폐기론’ 나와
등록 2019-08-06 09:55수정 2020-05-02 04:29
2016년 11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 쪽 관계자와 함께 국방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2016년 11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 쪽 관계자와 함께 국방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이하 지소미아)은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를 반전시킬 카드가 될 수 있을까. 일본 정부에 의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 국가) 배제로 치달으면서 7월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기한 지소미아 폐기론이 힘을 얻고 있다.

2016년 체결된 지소미아는 당사자가 한국과 일본이었을 뿐 실상 미국의 오랜 바람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일본을 묶어 한·미·일 삼각축을 꾸리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1960년대 전후로 본격화한 시도는 한국 내 반일 감정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제2의 을사조약’ 비판 잠재운 미국

반세기가 흐른 2016년 아베 신조의 일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지소미아에 전격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협정 체결에 나섰다가 ‘굴욕 외교’ ‘국민 동의 없는 비민주적 협정’ 등의 뭇매를 맞고 서명 1시간을 남기고 뜻을 접을 정도로 국민적 반대가 거셌던 사안이다. 4년이 흘렀지만 한-일 관계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이어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독도 문제도 언제든 갈등으로 비화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당시는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초기였다. 정권 처지에서는 여론을 관리하지 않으면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협정 체결 뒤 ‘제2의 을사조약’ ‘총체적 안보 무능’ 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비판 여론이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이 전면에 나서면서 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앞서 2014년 한·미·일 정보 공유 약정으로 공조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소미아 체결 7개월 전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한국과 일본 사이 지소미아를 비롯해 외교안보 협력 강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으로 ‘수소탄 시험 성공적 진행’을 발표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직접적 위협이 됐다는 점도 작용했다.

수출규제를 중심으로 폭주하던 일본은 지소미아라는 새로운 의제가 등장하면서 걸음이 꼬이게 됐다. 미국 때문이다. 미국 뜻에 따라 지소미아 체결을 한국에 먼저 제안한 것도 일본이다.

7월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안전보장을 위해 무역관리를 하는 것은 각국의 의무”라며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한국과의 안보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안보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7월3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안보 분야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로서 한-일 관계가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력해야 할 과제는 확실히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출규제와 함께 안보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면서 딸려나온 의제 안에 지소미아가 등장하자 둘을 나눠 접근하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전략물자 수출에서 신뢰할 수 없으니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과 그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군사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판단은 논리적 모순으로 보인다. 지소미아 폐기를 가장 먼저 주장한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은 과 한 통화에서 “우리를 불신하며 안보협력 과정에서 금도를 넘은 것이 일본이라는 점은 명확하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지소미아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모순된 태도를 보이자 신중론이 우세했던 우리 여권에서도 지소미아 폐기론에 힘을 싣고 있다. 외교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경제와 안보를 한 테이블에서 논의한 지는 오래됐다. 일본이 먼저 안보를 이유로 경제 위협을 가해놓고 자신들이 필요한 지소미아는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라며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상응하는 조처를 해야 하고 그중에서 지소미아 폐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말했다.

2016년 4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열었다(왼쪽). 7월3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주장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2016년 4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열었다(왼쪽). 7월3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주장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폐기론 주장 쪽 “한국 안보에 득 없다”

폐기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아예 지소미아가 한국 안보에 득이 될 것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협정문을 보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주고받는 군사비밀정보로는 “구두, 영상, 전자, 자기 또는 문서의 형태거나 장비 또는 기술의 형태”라고 돼 있다. 한국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주로 탈북자 등에게서 얻은 인적정보(HUMINT)이고, 일본이 건네는 정보는 정보 수집 위성과 지상 레이더 등에서 얻은 신호정보로 알려졌다.

국방 분야에 정통한 한 여권 관계자는 “일본이 획득해 제공해온 정보는 한국에 긴급을 요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일본 입장에서 우리 군이 탐지한 실시간 미사일 발사 사실 등은 결정적인 정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이 제공하는 신호정보는 주로 북한 미사일과 관련됐는데, 그것만 보면 우리 군의 탐지 능력은 일본보다 앞서 있다. 특히 지형적으로 일본에서는 북한을 탐지하는 데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7월25일 북한이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발사한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의 탐지·추적에 일부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조기경보 효과가 중요한지 궤도 정보가 중요한지는 판단의 영역 안에 있다. 또 이번 미사일은 일본의 정보 자산이 접근할 수 있는 북태평양 방향으로 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 정도로 파악할 수 있었지, 방향을 달리했다면 일본이 파악했을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미사일 탐지에서 한국군의 실력은 2012년 북한 위성 발사 포착 등 여러 차례 입증됐다. 지소미아가 추진되던 2016년 다케이 도모히사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은 “레이더가 수평선 아래는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바로 탐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정보 교류의 실효성뿐만 아니라 교류 자체에 이미 균열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따라 교류된 군사정보는 2016년 1건이었다가 2017년 19건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2018년 2건에 불과하고, 올해 들어서도 2건에 그치고 있다. 애초 지난해 정보 교류가 적었던 이유는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김종대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안부 합의가 파기된 뒤 일본 방위성 내에서는 한국과 정보협력을 하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한국 대법원의 과거사 판결 뒤 경제보복을 하기 전에 이미 정보보복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 지소미아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8월1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우리 정보 당국이 확인해본 결과 일본이 (지소미아 체결 뒤) 한국에 도와주지 마라, 가르쳐주지 마라, 관계 맺지 마라 등의 지침을 일선 외교관들한테 내렸다”고도 주장했다.

입장 표명 없는 군, 신중론에 무게

물론 정치권 내 신중론도 여전하다. 7월30일 기자회견에 나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당 내 비등한 지소미아 폐기 여론에 대해 “지소미아는 한-일 상호가 동북아 지역에서 여러 군사정보 교류를 하는 기조로 작동해왔다. 우리가 제공한 정보도 있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제공한 정보도 있다. (지소미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지소미아를 폐기하면 우리가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한-미 동맹 차원에서 신뢰성에 대한 비난도 우려된다”고 했다. 정부의 ‘검토’가 실제 폐기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청와대 관계자는 에 “지소미아와 관련해 내부 분위기는 가닥이 잡혀 있지만 일본에 우리 패를 먼저 보일 필요는 없으니 일본이 향후 어떻게 나오느냐를 보고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지소미아는 알려진 대로 1년 기한으로 만료되고 한쪽이 폐기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폐기 뜻이 있는 일방 당사자는 만료 90일 전(8월24일)까지 통보하면 된다. 묘하게 시기가 겹치면서 정치권에서는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항하는 카드로 지소미아 폐기를 꺼내들었다. 협정이 폐기되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대상은 군이다. 현재까지 합참 등 군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온 바 없다. 군 통수권자와 다른 의견은 없을 것이라는 정도다. 하지만 내부 목소리는 신중론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분위기다.

2000년대 초반 참여정부에서 자주국방과 관련한 기획에 참여한 바 있는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놓고 보면 미군은 우리에게 절대적이다. 자주국방을 이상으로 삼더라도 당장 전쟁에 승리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처지에서 미군의 도움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 관점에서 보면 군에 지소미아는 유사시에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사시’라는 건 현재 전시작전권을 보유한 한미연합사령부가 군을 통솔하고, 한국의 미 육군과 일본에 주둔한 미 해군·공군·해병대 등이 동원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특히 현재 병력만이 아니라 증원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유엔사 기지가 병참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면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해군 쪽 영관급 장교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작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군 자산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 군의 처지에서는 작전을 위해 일본군 정보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제제재 이후 첫 한-일 장관회담 이견 차

8월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중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일본의 경제제재 조처 이후 첫 회담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일본의 폭주를 멈추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만난 뒤 지소미아 연장을 재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일 안보 협력의 틀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며 지소미아 파기 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이 수십 년 공들여 쌓은 한·미·일 삼각축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제징용 판결로 불거진 한-일 갈등의 불씨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옮겨붙고, 다시 안보를 불쏘시개 삼아 출렁거리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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