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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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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기자가 보는 아베의 야심

아베의 개헌 시도, 3대를 이은 비원이자 헌법 개정 총리로 이름 남기고 싶어 해…

‘소극적 지지’로 지탱되는 현실에서 쉽지 않아
등록 2019-08-06 01:50 수정 2020-05-02 19:29
일본 참의원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7월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속 힘찬 주먹질과 달리 현장은 야유로 가득했다. EPA

일본 참의원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7월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 속 힘찬 주먹질과 달리 현장은 야유로 가득했다. EPA

최근 일본에서 참의원선거가 치러졌다. 참의원은 미국으로 치면 상원에 해당하며 양원제 의회에서 법률안을 확정짓는다. 일본의 대한 무역제재로 분출된 한-일 관계가 악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선거 결과가 큰 관심거리였다. 아베 신조 총리가 선거에서 압승할 경우 자위대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에 가속도를 내는 등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아베는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압승은 못했다. 오랫동안 한반도 이슈를 다뤄온 의 요시노 다이치로 기자는 선거 이후 아베가 여러 이유로 개헌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등이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글을 에 보내왔다. 그는 1997년 에 입사한 뒤 국제부, 사회부, 아사히디지털, 허프포스트 재팬 등을 거쳐 현재 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미디어 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다. _편집자

올해는 장마전선이 정체돼 일본 도쿄에서 7월 상반기 동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낮게 늘어진 무겁고 답답한 구름 아래서 치러진 7월21일 참의원선거도 날씨처럼 가라앉았다. 여야 사이 눈에 띄는 정책 대립 축이 없었고, 논쟁 역시 달아오르지 않았다. 야당의 분열이 장기화한 탓에 정권에 비판적인 표가 분산됐고, 갈 곳 잃은 많은 유권자가 기권을 택했다. 투표율은 24년 만에 처음 50% 밑으로 떨어졌다.

아베가 바꾸고 싶어 하는 ‘전후 체제’란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에 반대하는) 미약한 역풍을 느꼈다. 정권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간토 지방 선거구에서 재선을 확정지은 한 자민당 현역 의원 역시 선거로 고양된 느낌은 없었다. 이 지역은 ‘보수의 왕국’이라 일컫는 곳으로 재선이 확실했던 현역 의원이 야당 통일 후보에게 약 9만 표 차로 따라잡히기도 했다. “지명도가 낮은 상대 후보에게 이렇게 쫓기다니 충격이었다.” 이 후보 선거 진영의 한 간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권은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친 연립여당의 의석을 합쳐 (참의원의) 과반수를 확보했다. 이는 ‘야당 분열’이란 상황에서 예견된 결과였다. 사실상 승패를 가르는 선은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여당과 개헌을 지향하는 정당 의석을 합쳐 헌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였다. 하지만 이는 넘지 못했다. 이번 참의원선거를 ‘승자 없는 선거’라고 하는 이유다.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로서 연속 세 번째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 전까지 헌법이 개정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사실상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에 그 전망은 이제 안갯속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전에서 헌법 개정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자위대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헌법에 자위대 (관련 규정을) 확실히 명기하겠다.” 지론인 자위대 헌법 명기 필요성을 거리연설과 토론회 등에서 호소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선거 이후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베 정권에 기대하는 정책’ 가운데 ‘헌법 개정’은 겨우 3%에 불과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아주 낮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시작된 1차 집권 이후 ‘전후 체제에서 탈각’을 주장하며 전후 첫 헌법 개정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쪽수의 힘으로 당과 국회를 장악하며 독선적인 정권 운영을 거듭했고 그 결과 약 1년 만에 정권은 붕괴하고 말았다. 1차 집권에서 실패한 교훈을 살려 2012년 12월 시작해 6년 넘게 지속된 2차 집권에서는 장기 집권을 위해 안전운전을 해왔다. 물론 아베 총리에게 정권을 내준 뒤 분열한 야당인 민주당의 부진에 도움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선거에 강한’ 아베 총리라는 이미지는 당을 묶는 구심력이 돼, 이후 국회에서 ‘아베 1강’이라는 체제를 쌓아올렸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한 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하는 헌법 개정에 긴 시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렇게까지 그가 바꾸고 싶어 하는 ‘전후 체제’란 무엇일까.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비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은 1947년 미국 등 연합국 점령 아래 일본국헌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며 헌법 제9조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51년 발효한 첫 미-일 안보조약이 사실상 미국이 일본에 대한 방위 의무를 일방적으로 지는 ‘편무조약’(片務條約·한쪽에게만 의무가 있는 조약)이 된 이유다.

그러나 곧이어 냉전이 격화하고 일본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은 일본에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 부담을 지도록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헌법 제9조를 이유로 내세우며 경제성장을 우선했다. 미국이 소련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함에 따라 1954년 자위대(당시 이름은 경찰예비대)가 발족했지만, 무력조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이 아니냐는 헌법학자들과 정치인들의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미국의 요구에 응해 1950년대 후반부터 헌법을 개정해 일본군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치인이 바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그러나 그는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하며 국민의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 결과 조약은 개정됐지만, 기시 총리는 (개헌이라는) 자신의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1960년 7월 퇴진한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전후 체제’란 헌법으로 군사력 보유나 행사를 제약한 현재 상황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아베 총리에게 헌법 개정이란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이어지는 비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 헌법 제9조가 개정되면 일본은 실질적인 군사대국이 되어 한반도를 다시 침략하는 등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아베 총리를 강하게 지지하는 우익 단체 ‘일본회의’는 일본의 군사적 존재감을 강화하는 것을 개헌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일본 내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20세기 전반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토 확장을 주장하는 사람이 일본 내에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한국인에게 70여 년 전 있었던 일본 식민지배 기억이 트라우마인 것처럼, 많은 일본인에게 군이 무모하게 영토 확장 노선을 추진해 궤멸적인 패배를 당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 역시 트라우마다. 게다가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와 장기 경제 부진의 영향 때문에 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놓고 다툴 수 있는 기력이 남지 않았다.

아베 총리 등 개헌 세력의 현실적인 목표는 주일미군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미국을 (일본에) 붙들어매 ‘세계의 경찰관’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맡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 한다. 패전한 때로부터 70년 이상 흘렀지만, 일본이 사실상 미국 식민지라고 하는 이유다.

아베 정권은 2015년 국민의 대규모 반대 의견을 뿌리치고 헌법 해석을 바꿔 해외 군사행동을 일부 가능하게 했고, 미국에 대한 협력 범위를 넓혔다. 헌법이 개정돼 군사적 제약을 없애면 미국은 일본에 한층 더 군사적 협력을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분쟁’에 말려들 것임이 분명하다. 많은 일본 국민이 아베 정권의 개헌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다.

헌법 개정한 총리로 이름 남기 원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앞으로 2년 남짓한 시간 안에 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 아베 총리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남은 임기 중에 당연히 헌법 개정에 도전하려 한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개헌이 이뤄질지는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국을 주도해갈 것으로 보인다. 정권 말기 ‘레임덕’(지도력 공백)을 피하고, 구심력을 유지하려는 목적과 제정된 지 72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일본국 헌법을 개정한 첫 번째 총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것과 같이 반대가 많은 항목은 연기하고 ‘교육 무상화’ 등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항목을 헌법에 명기해 자신의 ‘업적’을 만들려 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정을 보면 도쿄올림픽 이후인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가을 사이에 중의원을 해산해 선거를 다시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일본 중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총리대신이 언제든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개헌에 적극적인 세력은 이렇게 다시 치러질 수 있는 중의원선거와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는 일정을 그려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마디로 ‘개헌세력’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당에 따라 그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꾸린 공명당이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 방향에 반대할 수 있다. 불교계 신흥 종교단체인 ‘창가학회’를 지지 모체로 삼는 공명당은 전쟁 시기 창가학회 간부가 종교 탄압을 당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1964년 당이 만들어진 이후 ‘평화의 당’이라는 점을 내세워왔다. 자민당의 개헌안(자위대 명기)에 처음부터 부정적인 이유다.

아베 총리는 이미 옛 민주당에서 떨어져나온 분파이자 우파 노동조합을 지지 모체로 삼고 있는 국민민주당과 연대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민주당 역시 헌법 개정 논의 자체는 거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상당한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민주당 내부 의견이 하나로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정당은 지지율이 1%대로 당세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자민당과 연대를 강화한다면 탈당자가 속출해 당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옛 민주당의 또 하나의 분파인 입헌민주당만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입헌민주당은 옛 민주당의 좌파 세력이 모인 정당으로 아베 정권 아래서 이뤄지는 개헌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둔 7월24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연설을 위해 아베 신조 총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둔 7월24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연설을 위해 아베 신조 총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선거에 강하다’는 구심력의 그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아베 총리의 구심력에 이미 그늘이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아베 정권은 2012년 말부터 장기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럴 수 있었던 구심력은 ‘선거에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야당이 분열돼 우위에 설 수 있는 선거였는데 이기지 못했다. ‘선거에 강하다’고 하지만, 옛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대승을 거뒀던 정권 초기의 선거를 제외하면 중반 이후엔 야당, 즉 민주당의 분열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어왔다. 현재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가운데 ‘소극적 지지’에 지탱되는 것이 현실이다. 6월 여론조사를 보면, 내각 지지율은 45%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지만, 지지하는 이유는 ‘다른 정당 정치인보다 나아 보여서’가 55%로 가장 두드러진다.

또한 올가을에 일본 소비세가 8%에서 10%로 오른다. 그에 따라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여름 도쿄올림픽이 끝나면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올림픽 특수’도 끝난다. 아베 정권의 또 다른 간판 정책이던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실감이 약하고, 예상되는 여러 역풍을 막기 위한 유효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애초 아베노믹스는) 국민연금 등의 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해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기분 내기 정책’이란 측면이 컸고, 성장산업 투자는 그리 진척되지 않았다. 부진을 겪는 일본 경제를 재부상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에 더해 약 7년이란 집권의 장기화로 아베 총리 개인도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측근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피곤하다”고 속내를 밝히는 일이 늘고 있다 한다. 자민당 내에선 이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나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등 ‘포스트 아베’를 향한 경주가 수면 아래서 시작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당칙을 다시 한번 개정해 ‘아베 4선’을 가능하게 하자는 안이나, 아베 총리와 가까운 정치인을 ‘단일 후보’로 등판시켜 3차 아베 집권을 노리자는 ‘푸틴-메드베데프 방식’(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대통령직을 잠시 넘겨준 뒤 다시 대통령직에 오른 방식)이란 안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가 계속 총리직에 머물러주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앞으로도 당내외에서 나올지는 분명하지 않다.

가장 불확실한 요인은 트럼프

이처럼 일본 국내적 요인을 보면,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에 유리한 상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더 불투명해 이런 국내 요인을 한번에 뒤집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불확실 요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존재다. 2017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둘러싼 일촉즉발 상태였던 미국과 북한이 2018년 갑자기 정상회담을 열어 비핵화 교섭을 시작했다. 이처럼 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 안전보장 환경은 어느 날 갑자기 격변할 수 있다. 이는 주일미군의 지위나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세계의 경찰관’을 그만두고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등 관계 국가들에 미국의 역할을 대신 떠받쳐주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임을 내세운다. 그러나 거듭되는 ‘골프 라운딩’이나 ‘로바타야키 접대’가 비즈니스 감각으로 정치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내년 가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는 일본 헌법 개정 향방을 점치는 데 눈을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요시노 다이치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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