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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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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배우 정우성과 사회운동가 홍세화가 말하는 난민
등록 2019-06-25 01:04 수정 2020-05-02 19:29
“누구라도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과 유엔난민기구(UNHCR)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내게는 무척 큰 행운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행운을 통해 그들을 만나면서 난민에 대한, 난민 문제에 대한 내 의식이 조금씩 확장되어감을 느꼈다. 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내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제다. 하지만 내가 이런 확신을 갖기까지 특별한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기에, 이런 생각을 섣불리 강요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이며, 이 책 역시 그 대화의 일부이길 바란다.” -(원더박스 펴냄) 머리말 중에서
배우 정우성은 누구보다도 친근하게, 또 끈질기게 한국 사회를 향해 난민을 이슈로 ‘말 걸기’를 시도해왔다. 그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지난 5년간 세계 각국 난민캠프를 찾아 보고 느낀 것을 담아, 다시 한번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화를 제안하는 책 을 냈다. 책에는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았고, 한국 사회에 난민 인권 보호를 위한 제안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의 추천사가 실렸다. 이 지난 1년간 연재해온 ‘#난민과 함께’ 기획을 뒤돌아보면서, 서로 교집합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강한 연대의 목소리를 내온 두 사람의 대담을 싣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난민을 직접 만나온 배우와 스스로 난민이었던 사회운동가가 본 ‘그것’을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대담은 6월17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아티스트컴퍼니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정우성 친선대사(이하 정) 제가 아무리 난민캠프를 갔다 오고, 난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얘기해도 ‘난민’이라는 호칭 때문에 ‘우리와 거리가 먼 집단’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아닌 타자로서 난민 문제를 보게 되잖아요. 저도 그런 간극을 줄이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거든요. 홍 행장님은 실제 난민으로 사셨기 때문에, 더 깊은 얘기를 들을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하 홍) 프랑스에서 귀국한 뒤 한국에 온 난민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관심을 가져왔고, 10년 전 난민인권센터 창립 때부터 참여했어요. 지금은 난민인권센터와 공익변호사 단체 등이 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한국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나아지는 속도가 아직도 굉장히, 너무 느려요. 특히 우리 자신이 피난민 2~3세이며 무국적자들의 후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난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와 무지가 관철되고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정 대사의 역할을 보고 연대감을 갖고 있었어요. 정 대사가 책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반가웠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이 진솔해서 좋았어요. 정 대사 책이 한국 사회에서 많이 읽히고, 많은 사람이 정 대사가 본 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4년 11월 네팔부터 2019년 5월 방글라데시까지 5년간 6개국 7곳) 난민캠프를 다녀온 기록, 그동안 인터뷰했던 기사들이 있어서 책 발간을 어렵지 않게 논의할 수 있었어요. 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볼 기회도 되지 않을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는데, 책을 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많았어요. 제가 캠프에 다녀와 인터뷰했을 때 기사를 못 본 분들이 이 책을 읽어주신다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감이잖아요, 세대 간에도 계층 간에도. 공감을 상실하면 배타로 이어지고요.

난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 사회의 수준

유럽, 프랑스에서 저의 난민 경험을 통해 반추해보면, 한국 사회가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로 한국 사회의 어떤 층위, 수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어요.

특정한 시대적 감정이라는 게 한 시대에 갑자기 돌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대의 정치적 상황들이 이 시대를 사는 국민 정서를 형성하는 ‘이음’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고요. 20대에서 제주에 온 예멘 난민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제가 “20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얘기한 이유이기도 해요. 대한민국 20대가 놓여 있는 상황, 그들이 느낀 피해의식과 절박감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왜, 전쟁을 피해 이역만리 여기까지 온 사람들에게 배타적으로 행동하는지, 이런 사회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고민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난민 자체의 모습이 아니고, 예멘 난민을 투과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거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쳤는데,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젊은이들이 단절된 느낌이에요. 국민으로서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 하는데, 교육에서도 역사성을 배제한 채 적자생존만 가르쳤어요.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내가 잘 먹고 잘사는 것, 물질이 최우선이야’ 이런 분위기로 내몰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여유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국가가 무엇을 해주었는가?’ 싶을 거예요. 대학 잘 가고 공부 잘하고 취업 잘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분위기 조성해놓고, 지난 10년간 빈부 격차는 심해졌어요. 그런 구조적 불만이 있던 차에, 촛불혁명으로 뭔가 해결될 것 같고 뭔가 해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운 나쁘게 그때 제주에 예멘 난민이 들어온 거죠. 다이너마이트 터지듯 사회구조적 불만이 난민을 향해 발화되면서 더 큰불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공부가 이뤄지지 않는 거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요. 전쟁과 분단이 있었고, 적폐 70년 상황에서 일제 부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죠. 특히 현대사 공부를 제대로 할 여건이 전혀 아니었던 건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예요. 세대 단절이라기보단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자화상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기본 입장이에요.

또 하나는 분단 상황이 우리에게 준 정치 환경의 문제가 심각해요. 정치사상가 레지스 드브레에 의하면 정치는 결국 희망과 공포 두 요소로 구성돼요. 희망이 있을 땐 공포를 동원할 필요가 없죠. 희망이 없을 때 공포를 동원하는 겁니다. 한국 극우세력이 분단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안보를 강조했어요. 희망이 있을 땐 경제적 희망 쪽으로 정치가 움직일 수 있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문제를 부각해서 불안과 공포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거죠.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과 개신교 세력이 그렇죠.

성폭력 범죄 우려? 성폭력 전제는 권력

제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들도 다 읽었어요. 왜 반대하는지 느껴야 하거든요. 근데 논리 없는 댓글들은 웃기죠. 저한테 ‘중학교 졸업한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이런 식이에요. 한국에서 전문가 집단 중 개신교 목사에 의한 성폭력 비율이 제일 높은데, 마치 난민이 다 성범죄자인 것처럼 말하는 건 너무 비약적이잖아요.

정 대사는 그게 비약이라는 걸 금방 느끼잖아요.

한 번만 생각해보면 돼요. 그분들은 나라를 잃었어요. 남의 나라에서 난민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얼마나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앞두고 있어요? 범죄행위를 하면 곧바로 강제 추방되고 실정법에 따라 처벌받게 돼요. 이런 생각을 한 번만 해보면 되는데…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여성들을 성폭행한다고 하고, 심지어 한국은 그 사람들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를 깔고 있는 거니까, 너무 안타깝죠.

성폭력은 기본 전제가 권력관계에서 이뤄지는 거거든요. 정 대사가 비현실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갈 데도 없고 언제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전망도 없는 난민들이 성폭행범이라니,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인데 페미니즘 진영 일부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왔어요. 제가 말씀드린 공포의 정치에 너무 익숙해져서 일단 모든 걸 의심하는 관계를 맺게 되는 거죠.

한국은 일제강점기도 그랬지만 분단 상황 속에서 몸을 존중하기는커녕 고문하고 학살하고, 인간을 함부로 한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성찰하거나 사죄하지 않았어요. 서지영 검사의 미투에서도 보듯이, 다른 곳도 아닌 장례식장에서 선배라는 이유로 여성의 몸에 범접하는 사회, 몸을 존중하는 기본 자체가 무너진 사회예요. 이런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을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여기서 핵심 문제는 권력 작용인데, 화살을 예멘 난민 같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서는 안 돼죠.

제가 난민캠프에 가면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우리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한국 사회의 관심이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지난해 11월 제가 예멘인이 어떻게 제주도까지 오게 됐는지를 역으로 한번 되짚어 찾아가봤어요. 어떻게든 그들의 상황을 날것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예멘인이 예멘을 탈출해 제주까지 온 경로를 밟아보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지부티와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예멘 난민을 만났어요. 그때처럼 “고맙다”는 얘기 듣는 게 부끄럽고 난처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정정당당하게 들을 수 있는 사회인가, 그런 질문이 떠오르면서 한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어요. 우리는 지금 왜 난민을 이렇게 배척하고 혐오하는가, 시간이 지났다고 그 논의마저 끝나면 안 될 것 같고 대한민국이 좀더 성숙한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배우 인기 위해 신념 포기할 순 없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하시는 거 보면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가 약자를 위한 정치적 활동에 나선 경우는 드물지 않았나 싶어요. 권력을 홍보하는 자리에는 경우에 따라 나서기도 했지만요.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많이 알려진 사람이 그 명성을 사회적 자본으로 앙가주망(engagement), 일종의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빈번한 편이에요. 우리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는 권력의 요구가 있었는데, 사실 정치적 중립 기준은 권력이에요. 권력에 맞는 말은 해도 되지만 권력에 벗어나는 얘기는 하지 마라. 이게 교사·공무원·노동자·배우·예술인들에게 강요돼왔던 정치적 중립입니다. 정 대사께서 한국 역사에서 없던 모습, 하나의 역할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제가 유별나서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이 시대가 저 같은 사람을 허용하고 있다는 방증일 거 같아요. 그만큼 국민이 깨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도 멀쩡히 활동하고 있다는.(웃음)

그래도 인기가 중요한 배우인데, 앞으로 이런 활동을 계속하는 것에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세월호 참사 때 ‘한 전직 대통령이 그냥 뇌물 사건에 휘말려서 죽은 게 아닌데, 그냥 배가 침몰한 사고가 아닌데,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지?’ 개인적으로 미안함이 몰려왔어요. 서로 대화를 안 해도 우리 사회 많은 분이 똑같이 느끼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던 거 같아요. ‘이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나갈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명예사절이 된 거죠. 2015년 6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임명됐고요.

저는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연기 공부도 안 하고 혼자 사회에 뛰어들어 배우도 운 좋게 됐어요. 긴 시간 많은 사람에게 스타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굉장히 많은 걸 그냥 얻었다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게 나는 어떤 선배가 돼야 할까 그런 생각이 좀 많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인 일의 성공만을 위해, 잡음 없이 깨끗하게 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내 신념이 얘기하라는 내 목소리를 계속 줄여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친선대사 하시면서 배우시는 것도 많죠?

어느 것 하나라도 당연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가장 커요. 우리가 아침에 눈 뜨면서 잠들 때까지 만나는 수없이 많은 관계,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고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그것을 잃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하고, 그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보게 됐으니까요. 저라는 사람의 삶의 질을, 외면이 아닌 내면적으로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값진 시간인 거죠.

저는 제주도민이 실제로 예멘 난민을 접촉한 경험이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공포의 정치를 얘기했지만, 일단 모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거든요. 접촉해서 만나고 어떤 사람인지 그 느낌을 공유하면 달라지거든요. 정 대사 책에도 나오지만 서울 아주중학교 학생들이 이란에서 온 친구 민혁이를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잖아요. 제주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든 접촉하고 만나고 호흡하고, 말 안 통할 때 손짓 발짓하면서 소통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편견이 씻겨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거죠. 개개인의 만남 자체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와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6월17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아티스트컴퍼니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와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6월17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아티스트컴퍼니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은 UNHCR 민간 후원금 세계 2위

한국이 유엔난민기구 민간 후원금이 세계 2위예요(1위는 스페인).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온정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예요. 그걸 알기 때문에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 여론 반발이 심하다고 해도 크게 우려하지 않았어요. ‘(혐오 여론이) 어떤 세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온라인을 장악했던 여론은 제주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뭍에 있는 사람들이었잖아요. 제주도 상황이 어떤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 쏟아낸 휘발유 같은 말이 많았어요. 제가 지난해 제주포럼 때문에 제주도를 찾았을 때 예멘 난민들을 만났거든요. 제주도민들께서 따뜻하게 보호해주려 노력하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렇지, 이게 우리 민심이지’ 싶더라고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이 이 논의에서 어느 쪽으로 흘러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점에서 와 의 가짜뉴스(‘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보도가 ‘한 건’을 했다고 봐요. 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난민 관련 가짜뉴스의 온상지였다는 걸 밝혀주셔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어? 내가 듣고 있는 소식과 뉴스가 다 진짜는 아닐 수 있겠구나’ 경각심을 준 것 같아요.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가 없다고 하는데, 지금 이 상황도 한국 사회 구성원의 수준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요. 한국엔 난민 ‘보호’ 개념이 없고 ‘통제’ 개념이잖아요. 저는 프랑스 외무부 산하 ‘난민과 무국적자 보호국’에서 심사를 받았어요. 한국은 법무부 소관인데, 법무부에서 하면 출입국 관리·통제가 기본입니다. 난민 보호가 목표여야 하고, 난민을 심사하려면 소통을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외무부에서 관장해야 해요. 난민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보다 외국인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정부를 비롯해,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다고 생각해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언젠가 “난민을 왜 도와야 하죠?” 같은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날이 온다면, 더 나아가 더 이상 한 명의 난민도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친선대사로서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이룬 게 아닐까 하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좀더 열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홍 행장님이 말씀하셨듯이 ‘난민’은 평화·폭정·정치·종교 문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인류의 사랑과 관심·이해가 어느 정도 내포된 큰 개념이에요.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정부가 이런 문제에서 중립적 입장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는 정부가 책임 의식을 갖고 국민에게 바른 방향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거든요. 지금 정부를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중립적 입장에서 계속 눈치만 보고 있어요.

‘난민을 왜 도와야 하나’ 질문이 없는 세상

정 대사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신 거예요. 이런 점에서 한국에 정치인은 많은데 정치 지도자는 적다는 거예요. 대중추수적인 정치인 말고 그야말로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적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기 의지로 추진해나갈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뚝심을 가지고 난민 이슈를 연중 기획으로 보도해주셔서 감사해요. 인도적 체류마저 불허돼 누르(제1236호 표지이야기 참조)의 아내는 결국 바레인으로 갔죠? 이런 개개인의 사연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 그분들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지속적으로 알려줬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기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난민캠프를 방문해서 현장 활동가들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둘러보고, 그곳에 사는 난민들 이야기를 들어요.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하나하나의 사연에는 경중을 갈라 분류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어요. 난민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이들 역시 우리와 닮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정리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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