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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은 “에이즈”라 불렀다

대구교도소 HIV 감염인 ‘표지’해 차별 대우하며 인권침해
등록 2019-06-10 14:40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30년 전만 해도 ‘죽음의 질병’이었다. 병이 어떻게 퍼지는지도 몰랐고 치료법도 몰랐다. 그저 이 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는 방법이 최선으로 보였다.
30년 동안 의학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이제 이 병은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다. 아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조차 아예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감염 경로가 명확히 밝혀졌고,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안다. 면역체계가 손상되는 병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와 그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이야기다.
의학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30년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에이즈 환자나 HIV 감염인을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다수다. 일상생활에서는 감염되지 않는다고, 약만 꾸준히 먹으면 성관계를 해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도 에이즈/HIV 감염인 중 누군가는 ‘악의 없는’ 사회적 왕따로 고통받는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소문날까 두려움에 떨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인권침해를 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올해 1월23일. HIV 감염인 3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상대는 법무부 장관과 대구교도소장. 진정인 3명은 2018년 대구교도소에 수감된 동안 교도관들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까지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후니’(가명)씨는 진정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떤 범죄행위로 수개월간 대구교도소에 갇혀 있다 얼마 전 출소했다. 구체적인 범죄사실이나 복역 기간은 밝힐 수 없지만 성범죄는 아니며, 에이즈/HIV와 관련된 죄목도 아니다. 다른 진정인들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5월29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상담실에서 후니씨를 만났다.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몸에 HIV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몇 달째 제대로 자지 못해서다. 대구교도소에서 겪은 일로 트라우마가 생겨 지금도 하루 1~2시간밖에 못 잔다고 했다. 밤에 누우면 ‘살기 싫다’는 생각만 자꾸 들어 잠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은 후니씨가 대구교도소에서 겪은 일을 재구성했다. 후니씨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 HIV 감염인 3명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낸 진정서, 이들이 레드리본인권연대, 인권운동연대 등으로 보낸 편지에 담긴 내용을 종합했다. 후니씨 말고 다른 두 명이 겪은 경험도 비슷하다.

대구교도소와 상위 기관인 법무부는 HIV 감염인 인권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양쪽 주장이 충돌하고, 이 사안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으며, 아래 내용은 한쪽의 주장임을 미리 밝힌다.

진정했지만 피해 당사자 조사도 없었다
후니씨가 대구교도소에 왔을 때, 그가 HIV 감염인이란 사실을 사동도우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사동도우미는 교도관을 도와 청소 등 여러 업무를 하는 수용자를 말한다. 교도관들은 사동도우미들에게 후니씨가 ‘에이즈’라고 주의를 줬다. 에이즈 환자가 쓴 손톱깎이는 별도로 관리하라고 했다.
엄밀히 말해 후니씨는 에이즈 환자가 아니었다. HIV 감염인이긴 해도 치료약을 꾸준히 먹어서 에이즈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상태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 HIV와 에이즈를 구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HIV 감염인들이 쓰는 방에는 ‘특이환자’라고 크게 쓴 표찰이 붙어 있었다. 교도관들은 HIV 감염인을 큰 소리로 “특이환자”라고 불렀다. 때로는 “에이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이 있는 의료사동(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모아놓은 수감 시설)의 다른 수용자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한 교도관은 다른 교도관이 HIV 감염인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에이즈 방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교도관은 의료사동의 다른 수용자에게 치료약을 줄 때는 마스크를 벗고 있다가 HIV 감염인의 방 앞에서 마스크를 썼다.
교도소에선 수용자들이 운동장에 나와 운동하는 시간이 있다. HIV 감염인들은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운동하지 못하고 따로 시간을 배정받았다. 간혹 같은 시간에 하면 교도관이 운동장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HIV 감염인이 있다는 사실은 의료사동을 넘어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퍼져나갔다. 어떤 수용자는 운동장에서 만난 후니씨에게 대놓고 “에이즈세요?” 하고 물었다. 후니씨가 접견실에서 면회를 기다리며 우연히 만난 한 수용자는 의료사동에 있다가 일반사동으로 옮긴 사람이었는데, “옆방에 에이즈 환자가 들어와서 도저히 못 있겠어서 나왔다. 조심하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후니씨가 HIV 감염인인 건 미처 몰랐다.
HIV 감염인들은 법무부와 교정본부 등에 이런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내고 처우 개선, 이감 조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피해 당사자 조사도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감염되지 않지만

위 내용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사동도우미나 다른 수용자도 HIV 감염인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게 왜 인권침해지?’

먼저 첫 번째 의문의 답부터 말하자면, 다른 수용자가 HIV 감염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는 없다. HIV 감염인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도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대구교도소에서는 HIV 감염인들이 모두 독거방(1인실)을 쓰거나 감염인끼리만 방을 썼다). 질병관리본부는 다음 사항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HIV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힌다.

△감염인과 식기나 컵을 함께 사용할 때 △감염인과 화장실 변기 등을 함께 사용할 때 △감염인과 침구류 등을 함께 사용할 때 △감염인과 피부 접촉이나 포옹, 가벼운 키스를 할 때 △에이즈 환자를 간병할 때 △감염인과 수영장이나 대중목욕탕을 함께 사용할 때 △감염인과 함께 운동할 때(땀 접촉) 등. 또 △감염인의 기침이나 재채기, 구토물로 인해 △모기 등 벌레 물림으로도 감염되지 않는다.

HIV가 일상생활에서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아주 약한 바이러스로 인체를 벗어나서는 바로 비활성화되거나 사멸”하기 때문이다. 열에도 약해 71도 정도의 열을 가하면 완전히 사멸하고, 체액이 건조해도 사멸한다. 특히 염소계 소독제에 약해 수돗물 정도의 염소 농도에서 바로 비활성화돼 감염력을 상실한다.

HIV는 대부분 성접촉으로 감염된다.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 15개 의료기관이 참여해 진행한 ‘코호트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 기간 감염 경로가 확인된 1406명 중 성접촉으로 감염된 사람이 99.2%인 1395명이었다. 성접촉이 아닌 경우는 수혈 3명, 정맥주사약물 1명, 혈액응고제제 2명, 기타 5명 등 총 11명에 불과했다.

설령 교도소 안에서 감염인이 다른 수용자와 성접촉을 해도 감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속해서 치료약을 복용해 혈중 바이러스 농도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HIV 감염 수용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 “수용자에게 직업 활동, 운동에 대한 제한과 분리, 격리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수용자의 치료와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는 비밀이고, 의료인에게만 이용 가능한 서류에 기록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국에서도 교도관이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한테 병력을 공개하면 현행법 위반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제74조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7조는 감염인을 관리하는 자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5월29일 대구에서 만난 후니씨. 신상보호를 위해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변지민 기자

5월29일 대구에서 만난 후니씨. 신상보호를 위해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변지민 기자

70% “같은 물잔 사용하기 두려워”

대구교도소에 있을 때, 사동도우미를 했던 배아무개씨도 과 한 통화에서 후니씨가 HIV 감염인이란 사실을 “교도관에게 들었다”고 했다. ‘손톱깎이’가 계기였다. 교도소에선 손톱깎이처럼 날카로운 물건을 개인에게 주지 않고 사동도우미가 공용으로 관리한다.

후니씨는 감염 사실을 퍼뜨린 교도관들이 “악의는 없어 보였다”고 했다. 자신이 항의하고 괴로움을 호소하자 잘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 교도관도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의문도 풀어보자.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게 왜 인권침해일까. 감염인 정보는 교도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대구교도소에는 약 2100명의 재소자, 약 500명의 교도관이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후니씨의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교도관은 물론이고 재소자도 언젠가 출소하므로 지역사회에서 마주칠 수 있다. 그리고 후니씨가 다니는 직장에서,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소문을 낼 수 있다.

한국처럼 HIV에 사회적 편견이 강한 사회에서 소문은 곧 사회적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2016년 3월 발표한 ‘2015 에이즈에 대한 지식·태도·신념 및 행태 조사’를 보자. 전국의 만 15~59살 남녀 1천 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응답자 중 71.7%가 “나는 같은 동네에 에이즈 감염인이 있다면, 같이 어울려 잘 지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응답자의 70%는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물잔을 사용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고, 74.4%는 “에이즈 감염인들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했다. 응답자의 47%는 “에이즈 감염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인식은 실제 차별과 배제로 나타난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 공동기획단이 2017년 7월 발표한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는 2016년 한 해 동안 15명의 HIV 감염인 조사원들이 104명의 감염인을 만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한 결과물이다. 조사 결과 HIV 감염인이란 이유로 사교 모임에서 배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응답자의 7.7%를 차지했다. 가족 활동 배제는 6.7%, 자신에 관한 뒷소문은 25%, 폭언·모욕·협박은 13.5%, 신체적인 모욕감이나 위협은 2.9%가 경험했다.

후니씨는 HIV 감염인이란 사실이 드러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모인 한가운데 혼자 고스란히 발가벗겨져 있는 거예요. 아무리 옷을 입으려고 해도 입을 수 없어요.”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를 보면 HIV 감염인 중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36.5%에 이른다. 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51%,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64.4%였다. 이런 내재적 낙인은 타이,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 독일 등 다른 나라의 HIV 감염인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2019년 2월14일 레드리본인권연대 등 대구 지역 인권단체는 대구교도소 앞에서 HIV 감염 수용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레드리본인권연대 제공

2019년 2월14일 레드리본인권연대 등 대구 지역 인권단체는 대구교도소 앞에서 HIV 감염 수용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레드리본인권연대 제공

법무부 관계자 “부지불식간에 소문 날 수밖에”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인권운동연대,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은 2월14일 대구교도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IV 감염인 인권침해를 문제 삼은 바 있다. HIV/에이즈 인권활동가네트워크도 4월12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 기자회견에 참여해 전국 교도소 HIV 감염인 인권침해 실태 전수조사를 주장했다.

당시 법무부는 HIV 감염인을 배제 또는 차별하거나 개인정보와 감염 사실을 유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과 한 통화에서 “대구교도소에서 개인정보를 고의로 유출한 사실은 없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이후 우리가 공문을 보내서 개인정보를 철저히 관리해라. 다른 수용자들과 표시 나게 분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HIV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였다. 해당 관계자는 “교도소에서는 외부에서 상상하기 힘든 온갖 일이 벌어진다. 환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싸움이 나서 상처가 날 수도 있고 성접촉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함께 사는 수용자들이 인권침해받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손톱깎이도 별도로 써야 하지 않겠느냐.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보니 부지불식간에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자가 5월29일 대구교도소에 수감된 HIV 감염인(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인 중 1명)을 10분간 면회했을 때도 ‘변함없음’을 느꼈다. 그는 “4월19일 교도관이 다른 수용자들이 듣는 데서 ‘에이즈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바뀐 점이 없다”고 했다. 그는 트라우마로 수면제 없이는 자지 못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직 이 진정 사건을 판단하지 않았다. 후니씨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는다고 느껴 최근 진정에서 빠졌다. 대신 대구교도소 교도관들을 고소할 예정이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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