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소비자가 거절할 수 있다면

프로젝트 참여 독자들 “이렇게 크게 포장할 필요 있나” 쇼핑몰에 문의해보니…
등록 2019-06-05 04:22 수정 2020-05-09 02:29
한 대형마트에서 열린 ‘플라스틱 어택’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의 포장지를 벗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형마트에서 열린 ‘플라스틱 어택’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의 포장지를 벗기고 있다. 연합뉴스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이 초래할 재앙에 대해 보통 ‘생산에 5초, 사용하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라고 한다. 이 표현은 전세계가 골치를 앓는 ‘플라스틱’ 문제의 본질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당장의 편의는 가깝고 이후 벌어질 문제는 멀리 있다.
문제는 편리함을 이유로 외면해온 플라스틱의 재앙이 점점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한 해 3억4800만t(2017년 기준)으로 추정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외국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것을 보면, 1950년 150만t이던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50년에 11억24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 규모로 생산된 플라스틱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1950~2015년 플라스틱 누적생산량은 8억3천만t으로 이 가운데 4억9천만t(59%)이 쓰레기로 매립되거나 버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플라스틱을 삼켜 죽는 거북이와 물고기는 지금도 세계 바다 곳곳에서 꾸준히 발견된다.

지난해 11월 <한겨레21>은 제1239호 ‘독자의 발제가 표지가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편집위원회(독편)3.0 중간보고를 하며 독자 표지공모제의 출발을 알렸다. 당시 독자들은 <한겨레21> 표지에서 가장 보고 싶은 주제로 ‘일회용품의 나비효과’를 꼽았고, 내부 회의를 거쳐 ‘플라스틱 로드’로 구체화했다. 나날이 쌓이는 플라스틱 문제를 편리하다는 이유로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독자들의 의지가 담겼다.

<한겨레21>의 내부 사정으로 3월 초(제1251호)에야 플라스틱 로드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전자우편과 독편3.0 단체대화방을 통해 의견을 주신 분들은 25명이다. ‘<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단체대화방에 참여해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함께하신 분은 13명이다.

든든한 25명의 ‘동료’와 머리를 맞댔다. 제1265호 표지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한겨레21>과 독자들의 끈끈한 연대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곽민희·손승희·이삼식·정유리·장인숙·조배원·지윤정 등 ‘<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참여 독자 25명
플라스틱을 올바로 버리는 방법도 제대로 알았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요령도 공유했다. 하지만 머릿속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소비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올바른가? <한겨레21>과 독자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플라스틱 로드’에 한 걸음 내디뎠다. 플라스틱이라는 벽을 매일매일 높게 쌓아올리는 ‘범인’을 쫓기로 했다.

“최근 플라스틱 쓰레기에 관심이 많아져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사용에 5분, 그리고 분해에 500년 이상 걸린다더군요. 본격적으로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기 위해 최근 ○○○에서 책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주문했습니다. ‘이제 난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 테야!’라는 두근거림을 가지며 상자를 뜯는데! 엄청난 비닐 완충재에 둘러싸여 포장된 책을 보고 급실망… (중략) 그래서 ‘플라스틱 프리(Free) 포장’ 도입을 제안합니다. 이용자들이 책을 주문할 때 ‘(책이 좀 구겨져도 되니) 플라스틱 프리 포장으로 받겠습니다’라고 선택한 분들에게 비닐 포장지·완충재를 쓰지 않으면 어떨까요?”

4월19일 ‘플라스틱 로드’ 독자 오프라인 회의에 참석한 장인숙씨는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을 한 온라인서점에 보냈다. 온라인서점은 어떻게 답변했을까? “상품 상태 관련 지적을 많이 해주시는 고객님들이 있다보니, 현재의 에어캡 포장 등 포장재 없는 배송 진행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포장 방법 개선을 위해 저희도 노력하겠습니다.” 온라인서점 답변이 이러했다고 말하자,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다른 독자들이 “플라스틱을 안 쓰려 해도 소비자 선택권이 없다”는 이야기를 앞다퉈 쏟아냈다.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서 택배를 받을 때마다 제품을 꽁꽁 싸맨 비닐 소재 완충재와 ‘이렇게 크게 포장할 필요가 있나’ 싶은 플라스틱 제품 포장을 기계적으로 분리 배출하던 일이 기억났다. 독자들은 “과다 포장을 하지 않은 제품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 환경문제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한겨레21> 독자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포장 따로 해야 해…” “발송 일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재활용 쓰레기 대란’ 1주년을 맞아 실시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및 해결 방안에 관한 대국민 인식도 조사’ 결과(한국리서치 3월25~28일 전국 성인 1010명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조사에서 쓰레기 대란, ‘쓰레기산’ 발생, 필리핀 쓰레기 불법 수출의 원인에 대해 65%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과도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해야 할 최우선 정책으로 응답자의 60.3%가 ‘플라스틱 소비량 줄이기’를 꼽았다. 지난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였다”(57.1%)며 실천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사용량을 줄이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들(41.6%) 가운데 66%가 그 이유로 “소비자 선택권이 없다”(대안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고 했다. 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에 응답자들은 “대체품 있는 일회용품 퇴출 로드맵 구축”(87.5%)과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전면 사용 금지”(88.5%) 등에 높은 비율로 동의한다고 했다.

‘소비자 선택권’ 관점에서 온라인 쇼핑몰 택배가 양산하는 포장재는 눈앞에 바로 보이는 문제이니 독자들과 함께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각자 이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고객센터나 일대일 상담 창구에 장인숙씨와 비슷한 제안을 올리기로 의기투합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 2곳, 생활협동조합, 온라인 핸드메이드(수제) 마켓에 “플라스틱 프리 포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을 올렸다.

생활폐기물 중 포장폐기물 30% 차지

중소 판매자에게 판매 공간을 내주는 형태(오픈마켓)로 운영하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문의하신 제품을 물류센터에서 일괄 출고하기 때문에 포장을 따로 빼서 진행하기 어렵다” “각자의 판매처에서 상품이 발송되는 부분으로 포장에 대한 사항을 판매처에 요청하기는 어렵다. 개선 사항을 취합해 판매처에 권고할 수는 있다”는 답이 왔다. 물류 체계상 제품별로 따로 포장할 수 없거나, 개별 생산·판매자들의 상품 포장을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나마 생협의 경우 판매자나 소비자 모두 어느 정도 문제를 인식해 답변의 어조가 조금 달랐다. “플라스틱 빨대나 숟가락을 받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독자의 제안에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 자제를 위해 종이 빨대 등을 검토 중이다. 조합원들께서 공감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핸드메이드 마켓의 경우 “통신판매업 중개인으로 모든 작품 제작과 발송에 대한 부분을 작가들께 일임하고 있어, (중략) 제재하기 어렵다. 배송 과정에서 파손 위험성도 크기 때문에 포장이 과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양해 구한다”며 “포장재를 최소한 분해가 용이한 재질로 변경을 권해보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한겨레21> 독자들의 ‘촉’은 남달랐다. 독자들 의견을 참고해 취재하니, 현재 택배 업종은 정부 규제의 사각지대였다. 정부는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해 제품별 포장 기준을 정하지만, 규칙 제2조는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 포장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제품 파손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고려했지만 그동안 온라인쇼핑 시장이 급성장한 시대 변화는 반영되지 않은 조항이다. 국내 택배시장 물량은 2012년 14억598만 개에서 2018년 25억4278만 개로 크게 늘어났다(한국통합물류협회). 2015년 이후 매년 10% 안팎 성장세를 보인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조사 결과, 2018년 국민 1인당 택배 이용은 평균 49.1회로 집계됐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 등의 서비스가 대중화하며 소비자의 택배 이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택배가 늘고 포장재가 많아지는 추세와 함께 생활폐기물 배출량도 같이 증가했다. 2018년 발표된 환경부의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보면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2012년 하루 평균 4만8990t에서 2017년 5만3490t으로 늘었다. 환경부는 이 가운데 포장 폐기물이 30% 이상 차지한다고 본다. 지난해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불거진 뒤 환경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워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규제를 강화하는 종합 대책을 내놨지만(2018년 5월10일), 온라인 유통 포장재의 주요 개선 대책은 2019년으로 넘겼다.

대부분 폐비닐, 수익성이 떨어져 폐기물로

그럼 택배 상자를 감싸는 비닐테이프, 상자 안 상품을 감싸는 에어캡(일명 뽁뽁이), 스티로폼, 비닐 완충재, 아이스팩은 재활용이 될까? 먼저 비닐테이프는 일반 쓰레기로 분류된다. 5월23일 플라스틱 폐기물 이동 경로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 강북구 번동의 강북재활용품선별처리시설(선별장)을 찾았다. 생활폐기물을 부지런히 분류하는 공정 한쪽에서 스티로폼 상자에 붙은 비닐테이프를 떼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선별장 관계자는 “스티로폼을 재활용하려면 비닐테이프를 떼야 한다”고 설명했다.

에어캡이나 비닐 완충재는 폐비닐로 분류돼 재활용될 수 있지만 수익성이 떨어져 재활용 업체들이 기피해 폐기물로 버려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며 폐비닐이 갈 곳을 잃었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폐비닐을 고형연료(SRF)로 만들어 열병합발전소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장려됐지만, 최근 미세먼지 문제로 관련 규제가 강화(오염물질 배출 기준)돼 폐비닐 재활용에 제동이 걸렸다. 선별장 관계자는 “예전보다 강화된 규제 때문에 폐비닐 민간 재활용 업체들이 질이 낮은 폐비닐을 꺼린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전국 곳곳의 민간 선별장, 폐기물 처리 업체가 쌓여가는 비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선식품 온도를 유지하는 아이스팩은 화학물질 냉매일 경우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즉, 택배 상자 안 포장재는 일반 폐기물로 매립·소각되거나 야산에 방치될 수 있다. 실제로 5월15일 찾은 경북 의성의 17만t 규모의 쓰레기산에는 폐비닐 쓰레기가 가득했다. 결국 생산-소비 단계에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부도 택배 등 유통 포장재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 1월 과다 포장재 대책을 내놓으며 ‘유통 포장재 감량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재사용 상자 사용 활성화, 비닐 완충재를 종이 완충재로 전환, 물을 사용한 아이스팩 사용, 제품 맞춤형 적정 포장 설계로 포장재 사용 최소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현재로써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에 불과하다. 일단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뼈대로 5월9일 씨제이 이엔엠(CJ ENM) 오쇼핑, 롯데홈쇼핑, 로지스올 등 3개 유통·물류 회사와 ‘유통 포장재 감량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종이테이프, 종이 완충재를 활용한 친환경 포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쇼핑몰 자체 생산 제품에 적용돼 중소 판매자들이 보내는 택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독자들은 묻는다. 친환경 포장 의무화를 시행령·규칙 등으로 법제화하거나,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친환경 포장 정보를 쇼핑몰에서 공개한다면 어떨까? 실제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은 최근 음식을 주문할 때 “플라스틱 수저를 받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며 소비자에게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선택권을 줬다.

‘친환경 포장’ ‘수저 선택’ 업체도…

환경부도 업계와 소통하며 법적 기준 마련을 검토한다는 입장인데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환경부 관계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오픈마켓 쇼핑몰의 경우 중소 판매자에게 페이버(배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비용 부담 문제가 있어 업체들도 고민하는 상황이다. 배송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도 여전히 많아 일괄적으로 친환경 포장을 적용하는 것은 고민해야 한다. 현장과 소통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 등을 접목할 수 있을지 검토할 예정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플라스틱 로드’ 참여 독자 25명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