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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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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위해, 살기 위해 함께

은둔형 외톨이들의 자립 돕는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
등록 2019-05-22 02:24 수정 2020-05-02 19:29
K2인터내셔널 한국지부의 ‘돈카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K2인터내셔널 한국지부의 ‘돈카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506-100번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 바로 아래 3층짜리 적갈색 벽돌로 된 다가구주택이 있다. 여기엔 조금 특별한 식구가 살고 있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인, ‘함께’ 살기 위해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는 이곳에 2년 전 둥지를 틀었다.

한 방에서 생활하고 같이 식사하고

K2인터내셔널그룹은 1989년 설립됐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떠오른 ‘등교 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구직도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족 등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며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에 지부가 있으며, 한국엔 2012년에 지부가 설립됐다.

검은색 대문을 지나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 방문에 함께 방을 쓰는 사람들의 이름이 색종이에 쓰여 있다. 현재 일본인, 한국인,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자 등 15명이 3개층 방 8개에 나눠서 생활한다. 거실 왼쪽에 ‘기분 나쁜 보증’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K2 한국지부의 대표 고보리 모토무가 “기분이 나쁘면 참지 말고 말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얼마나 편하게 지내는지가 중요하다. 항상 웃으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면 지친다. 자신의 안 좋은 부분이나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 철학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고보리 대표도 과거 은둔형 외톨이였다.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있었다. 그때 학교 가는 게 두려웠다. 부모님은 나에게 왜 학교에 안 가느냐며 우셨고,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졌다. 15살 때, 엄마가 뉴질랜드에 있는 K2에 일주일만 다녀와보라고 제안한 게 K2와의 첫 인연이다. 뉴질랜드에 가서도 (적응을 못해) 처음에는 가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생활 20년째다.(웃음)” 고보리 대표도 다른 두 ‘멤버’들과 함께 방을 쓴다. “우린 ‘연수생’ 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냥 모두 멤버다.” 지금까지 30~40명이 K2 공동생활을 거쳤다. K2에서 공동생활 규칙은 단 하나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 같이 식사하기.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회의한 뒤 청소하는 게 전부다. 고보리 대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함께 식사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생활리듬을 만들기 위해서다. 집에 있을 때는 할 게 없으니까 밤낮의 생활이 바뀌고 뒤죽박죽이 되는 거다. 여기서 지내면 습관을 기르고 활동도 할 수 있게 된다. 또 식사하는 것 자체가 ‘같이’ 하는 작업이다. 함께 밥을 짓고 먹으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다.”

‘돈부리’ 파는 가게 함께 운영

K2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은 ‘식구’다. 함께 먹고, 자고, 웃는다. 이들은 함께 가게도 운영한다. K2 주택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의 정릉시장 안에는 돈부리(일본식 덮밥)를 파는 ‘돈카페’가 있다. 7평(23㎡) 정도 크기에 탁자가 3개뿐인 작은 가게지만 K2 ‘식구’들이 직업훈련을 하는 곳이다.

돈카페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일한다. 보통 3명이 출근하는데 한 명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한 명은 가게를 청소하고, 한 명은 재료를 준비한다. 5년째 정릉시장에서 돈부리와 다코야키(문어를 넣은 풀빵)를 팔고 있다. 직원은 파트타임을 포함해 총 6명으로 모두 K2에서 함께 산다. 가게 내부 인테리어는 대부분 K2 멤버들이 직접 했다. 나무 탁자와 의자에 못질을 하고, 벽면에 크게 붙은 메뉴판도 직접 만들었다. 가게 내부 디자인을 한 멤버는 K2에서 생활하다가 자립했다.

가게 문을 열 준비를 마치고 오전 10시30분이면 다 같이 앉아 이른 점심을 먹는다. 11시부터 직원들은 머릿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뒤,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가게의 열쇳말은 세 개다. 스피드, 건강(활력 있게 손님 맞기), 친절이다.

돈카페에서 일하는 성오현(29)씨는 지난 1월 K2를 스스로 찾았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또 방에 처박혀 있었다. 더는 은둔생활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인터넷 검색으로 K2를 발견하고 왔다. 여기선 일 속도가 늦다고 혼내는 사람도,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다 이해해준다.” 오현씨가 만드는 음식은 다코야키와 부타김치동(돼지고기김치덮밥), 돈페이야키동(삼겹살양배추덮밥)이다. 아직 배운 지 얼마 안 돼 메뉴판의 모든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대신 오현씨는 전화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른다.

돈카페에서 일하는 일본인 아사카 사야코(30)는 일본에서 발레를 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밖에 나가지 않았고, 섭식장애를 앓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무서웠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아사카는 4년 전 K2 오스트레일리아지부를 찾아 3년 동안 공동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 K2 한국지부에 왔다. “K2에 오면서 ‘보통 생활’을 하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식사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어도 된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섭식장애를 완벽하게 고친 것은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건강한 식단을 공부하고 싶다.”

K2는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지난 3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로서, 그리고 외국인 단체로서 처음이다. 고보리 대표가 말했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화장실도 안 가는 경우가 있다는데, 일본에선 그런 일이 드물다. 어쩌면 한국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에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가 거의 없다. 일본은 현재 장년층 히키코모리가 부각되며 8050(80대 부모에게 의존하는 50대 자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계속 방치하다간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비빌 언덕 되고 싶다”

고보리 대표는 K2가 지향하는 바를 밝혔다. “우리 목표는 취업이 아닌 관계를 만들어서 자립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양한 친구와 동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가 있을 자리가 필요하다. K2가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K2에서 지냈다가 나가더라도 언제든 다시 와도 된다는 안정감을 주고 싶다. 이곳에서 나간 뒤 좌절을 겪고 다시 방에 틀어박히는 게 아니라, 좌절하더라도 다시 K2로 돌아올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

글·사진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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