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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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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우리 애 누가 돌보려나

방에서 나오지 않는 자식 둔 부모들의 절망과 고통…

사회적 시선에 상처받고 도움 청할 곳 없고
등록 2019-05-21 03:43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엄마 김진영(가명)씨는 매일 울었다. 저녁마다 울어 아침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나’ ‘왜 나만 불운한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방 안에 틀어박힌 아들 오주민(17·가명)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주민이는 중학교 2~3학년이 됐을 때, 하루 이틀 수업을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사춘기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첫 무단결석 때 다시는 결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어김없이 아이는 또 학교를 가지 않았다.

“나 혼자 겪는 일인 줄 알았어요”

결석이 장기화되고 진영씨는 불안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는 중요하잖아요. 무단결석해서 내신 점수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됐어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아이를 압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되니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이런 일을 겪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거든요.”

주민이는 중3 여름부터는 거의 학교를 가지 않았다. 주민이는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출석일수를 겨우겨우 채워 중학교는 졸업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일주일 만에 자퇴했다. ‘고등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까’ 진영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이는 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주야장천 봤다. 화장실 갈 때를 빼곤 방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낮에 자고 밤에 깼다. 집에 같이 있어도 주민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민이는 진영씨가 퇴근해 집에 오면 자고 있고, 진영씨가 출근하면 일어났다. 진영씨가 차려놓은 식사가 맘에 들면 방에 가지고 들어가서 먹거나, 아니면 편의점에서 대충 때웠다. “나 혼자 겪는 일인 줄 알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내가 먼저 상담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아이 문제 말고는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말할 수 없었다. 아이 사춘기는 곧 엄마의 성적표처럼 취급되는 현실, 아이 성적은 곧 부모의 성적이었다. 진영씨는 속앓이를 했지만 그것을 친구와 직장엔 알리지 못했다. 가족과 아주 내밀한 사람에게만 상황을 털어놨다. “초등학생이라도 시험을 보면 동네 엄마들이 내 아이의 성적을 나보다 먼저 알아요. 아무리 쉬쉬해도 소문(주민이 결석)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 금방 돌더라고요. 소신 있는 엄마인 척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나 생각했어요.”

‘내 탓인가’ 자책하는 부모들

진영씨는 아이를 ‘치료’하러 이곳저곳으로 아이를 끌고 다녔다. 어릴 적부터 겪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인가 싶어 신경정신과에도 데리고 가고, 아이 기질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털끝만 한 기대감에 한의원에도 데리고 갔다. 상담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멈췄다. 곧장 관련 정보를 찾아봤지만, 벽에 가로막혔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엔 은둔형 외톨이 관련 책이 별로 없었어요. 한 권인가, 두 권인가. 그것도 10년 전에 나온 책이었어요. 일본 사례와 비교해봤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진영씨는 절망했다.

엄마 이미연(가명)씨는 “암 진단을 받은 것 같았다”. 큰아들 우진(22)이는 6개월째 머리를 감지도, 손톱을 자르지도, 목욕하지도 않았다. 떡지고 덥수룩한 머리, 긴 손톱 그리고 냄새까지. 마치 ‘노숙인’ 같았다. 미연씨는 변한 우진이의 겉모습이 두려웠다. 그때 미연씨는 사태가 심상찮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본 ‘은둔형 외톨이’ 자가 진단 테스트에 우진이를 대입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 씻지 않는 것, 밤낮이 바뀐 생활 등등. 체크, 체크 그리고 체크. 테스트 결과는 우진이가 은둔형 외톨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진이에게 물었다. “사회가 두렵고 힘드니?” 우진이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미연씨는 자책했다. “남편이 사업하다 망해서, 서울 서초동에서 망원동 지하방으로 이사하게 됐어요. 우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나는 그래도 방 세 칸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진이는 그때부터 말수가 줄었어요.” 미연씨는 ‘우리 때문에 애가 이렇게 됐나’ 자책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남동생 둘과도 사이가 좋았다. 문제없이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우진이가 갑자기 수학 과외를 시켜달라고 했다. 과외 받고 두 달 뒤 시험을 보고 나서 우진이는 갑자기 공부를 포기했다.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 전 과목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 “학교를 자퇴하고, 특성화고를 가겠다고 했어요.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죠. 뭐 때문에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안 하니까.”

점점 학교를 안 가는 날이 늘었다. 학교에선 우진이가 3학년 되던 때 취업 위탁교육기관과 연결해줬다. “또 한 달쯤 가더니 안 가더라고요. 나중에 알아보니 앱 개발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하던 차에 교장 선생님이 잘하라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아이를 좀 다그쳤나봐요. 그 뒤 학교를 안 갔죠. 학교에선 미안하다고 방문 상담교사를 보내줬는데 애가 말을 안 하니 상담사들도 포기하더라고요.”

‘자력갱생’만이 살길이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멀쩡한데 우리 아들만 이상한 것처럼 보였다. 삶의 맥이 풀렸다. 여기저기 백방으로 찾아봤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미연씨는 논문까지 찾아 읽기 시작했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도움을 구할 수 없었어요. 너무 막막했어요. 지금 당장은 부모의 지원으로 우진이가 살아간다 해도 이후엔 누가 도와주겠어요.”

진영씨와 미연씨는 ‘자력갱생’을 택했다. “인터넷을 수도 없이 검색했어요. 거기서 ‘K2인터내셔널코리아’(이하 K2)라는 단체를 알게 됐죠.”(미연씨) K2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일본 요코하마에 본사가 있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한국에 지부가 있다. 한국에는 7년 전에 생겼다.

진영씨와 미연씨는 K2에서 만난 다른 은둔형 외톨이의 부모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 갔다가 적응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은둔형 외톨이 아들을 둔 구인준(가명)씨가 “이렇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아들을 공동생활에 데려다주고 좀 떨어지고 나니 살 것 같았다”고 하는 말에 다른 부모들도 공감했다.

미연씨가 말했다. “(아이와 실랑이하다보면) 너무 힘들다.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긴급상황 대응 요령을 설명할 때,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라고 하지 않나. (아이의 은둔이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심리 건강도 중요한 것 같다. 은둔형 외톨이는 본인이 의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가족이 원하면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은둔형 외톨이’ 가족의 고립을 막기 위해

K2에서 공동생활을 경험한 주민이와 우진이는 여전히 집 안에 있다. 그래도 달라진 점은 있다. “우진이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고 걸음이 당차졌어요.” 우진이는 현재 인터넷에서 게임을 가르쳐주며 돈을 조금 번다. 미연씨는 우진이에게 매달 생활비를 30만원씩 내라고 했다. “혼자 사는 법을 훈련하기 위해 우진이가 낸 생활비 30만원을 모아서 보증금 500만원에 30만원짜리 방을 구해 독립시킬 예정이에요.”

부모 모임을 하면서 진영씨와 미연씨가 아이들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학교를 안 가면 밥벌이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낙오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하지만 학교는 안 갈 수도, 지금 갈 수도, 나중에 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생각이 변했어요. 아직 우리 사회는 이 아이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름을) 받아주는 사회고, 이런 아이도 있고 저런 아이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회였다면 매일 울고 우울증 치료를 고민하지 않았을 거예요.”(진영씨)

일본에는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단체인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연합회’가 있다. 이들은 후생노동성의 지원을 받아 10년 이상 은둔 생활을 하는 가족을 찾아 실태를 조사하고,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와 가족의 고립을 막기 위해 상담을 지원한다. 또 국가와 지자체에 은둔형 외톨이 대책을 제안한다. 이를 본떠 진영씨와 미연씨는 네이버에 은둔형 외톨이 부모 모임 카페를 만들었다. “혼자 걱정하지 마시고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여 함께 고민하고 추후에 정책 제안까지 할 수 있는 단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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