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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끼 입어야 하나요?

노동법을 읽는 것도, 노조 간부가 되는 것도 처음인, 누구나 하는 ‘아무나 노조’들

제1253호
등록 : 2019-03-10 16:27 수정 : 2019-03-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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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노동조합은 1월31일부터 서울 서초구에 있는 SPC 사옥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인스타그램과 팟캐스트 등으로 점포별로 흩어져 일하는 조합원들과 소통한다. 김진수 기자.

(누가) 특별한 혁명가나 운동가가 아니라 평범한 누구나

(언제) 특별한 때가 아니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어디서) 권력기관이나 시위 광장이 아닌 삶터와 일터에서

(무엇을) 거대한 권력 교체나 축소된 자기 개발이 아닌 일상을 바꾸는

(어떻게) 이익이나 권력을 넘어 관계를 바꿔서

(왜) ‘여기 있어 좋다’고 느끼는 공동체 감각을 높이기 위한 혁명


‘노멀 레볼루션’의 육하원칙이다. 노동운동가 조건준씨는 책 <노멀 레볼루션>을 통해 ‘특별한 활동가나 뛰어난 활동가에 의한 위대한 혁명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 ‘아무나’가 주체인 혁명을 ‘노멀 레볼루션’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이 책이 만들어진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7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살펴보면 1년 새 12만1천 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추가로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10.8%) 이후 가장 높은 노조 조직률(10.7%)이다.

제도와 질서의 바깥에서 ‘노조’라는 결론으로

고용노동부의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에서 내부적으로 집계한 조합원 수 증가세를 고려했을 때, 최근까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수는 이보다 더 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겨레21>은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노조 조직률을 기록한 2017년을 기점으로, 2017년 이후 새로 태어난 노조에 ‘아무나 노조’라는 이름을 붙였다. ‘누구나 하는 아무나 노조’라는 뜻이다. 그리고 육하원칙대로 물었다. “노조를 지금, 왜, 어떻게 만들었어요?”

<한겨레21>이 2월15일부터 3월6일까지 만난 ‘아무나 노조’를 만든 새로운 노조 주체들은 특별한 혁명가도, 운동가도 아니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으로 대표되는 기성 노조 이름도 ‘들어본 적은 있다’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었다. 노동법을 읽는 것도, 노조 간부가 되는 것도 처음이었다. 각자의 삶터에서, 일터에서 노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나 노조는 노동운동의 ‘노멀 레볼루션’이었다.

‘노동자다. 동시에 대학원생이다.’ 2015년 성균관대학원에서 비교문화 협동 과정을 수료한 구슬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지부장이 밝힌 정체성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는 2018년 2월24일 태어났다. 대학원별로 대학원생들의 자치 활동을 위한 총학생회는 운영됐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용자’이자 함께 일한 ‘동료’였던 대학교수들도, 직원들도, 대학 밖 노동자들도 물었다. “왜 하필 노조냐?”

이 질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답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대학원생 1906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연구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 비율이 25.8%였다. “공동 수행 연구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응답은 34.5%였다. 수치로도 드러난 대학원생의 이중적인 정체성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자 연구실에서 연구, 행정 업무 등을 분담하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지도교수와의 특수한 사제 관계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노동권·인권 침해를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든 질서나 제도의 바깥에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민주노총 신규 가입, 비정규직 14.4% 늘어

전국대학원생노조의 탄생은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를 넘어서는 실험이었다. 다만 전국대학원생노조에 가입하더라도 대학원생이어서 언젠가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한계는 여전히 있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고용안정 같은 전통적 구호로는 일반화하기 어려운 새로운 노조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민주노총 상급 단체에 가입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최근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직장갑질119’와 공동으로 1월8일 카카오톡에 ‘대학원생119’ 오픈채팅방을 열어 대학원생들이 겪는 갑질을 제보받고 법적인 문제를 상담하면서 노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2017년 한 학회에서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 관련 연구를 발표한 신정욱 현 사무국장과 만난 것이 아무나 노조를 만든 계기가 됐다. 당시 많은 사람이 광장에 나갔다. 나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촛불을 혁명이라고 말했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혁명은 삶터와 일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일상을 바꿔나가는 거였다. 당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학원생들과의 만남이 (노조를 만든) 계기였다”고 했다.

실제로 촛불 혁명을 겪으면서 노조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85.5%가 “우리나라에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노조가 부당대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인식은 2007년 33.6%에서 2017년 70.3%로 10년 새 두 배 넘게 뛰었다. 2017년 전후 촛불 혁명으로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셈이다.

아무나 노조의 등장과 특징은 수치로도 일부 드러난다. 민주노총이 2017년 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집계한 ‘촛불 항쟁 이후 민주노총 신규 노조 가입 및 결성 현황’을 보면 새로 만들어진 184개 사업장(응답 기준) 가운데 정규직 사업장이 61.4%, 비정규직 사업장은 38.5%로 나타났다. 2017년 1월과 견줘 비정규직 사업장의 증가세는 14.4%포인트에 이른다. 분야별로 봐도 공공 분야(공공운수노조)에서 교육공무직 노조 등이 만들어지면서 2017년 한 해 동안 2만109명이 늘었다. 이 가운데 1만3천여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대학 노조도 18개 대학에서 정규직은 물론이고 무기계약직 노동자 1005명이 유입됐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에도 파리바게뜨지회 가입에 이어 네이버 등 정보기술(IT) 업체가 들어오면서 5611명의 조합원이 추가됐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대학원생의 노동권을 정당하게 보장받기 위해 처음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노조에 별명 붙이고 컵과 목걸이 ‘굿즈’ 제작하고

130개 신규 사업장(응답 기준)의 30%는 결성 동기로 ‘처우 개선’을 꼽았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공공 분야를 비롯한 전반적인 분야에서 아무나 노조가 대거 탄생한 데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노동 존중 사회’ 기조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촛불 항쟁 이후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직접 행동이나 실천의 필요성을 자각해 처우 개선 욕구도 커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김재민 연구위원은 ‘아무나 노조 세대의 등장’ 제목의 칼럼에서 말했다. “아무나 노조들은 노조를 만들기 위해 회사에 공문을 보내는 것도 처음일 거다. 노동법을 읽는 것도, 노조 간부가 되는 것도 처음이다. 투쟁할 때 <단결투쟁가>보다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익숙할 거다. 집회에 참여할 때는 빨간 조끼와 머리띠보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쓴 가이 포크스 가면이 더 익숙한 세대다. 아무나 노조에 대해 고민해야 할 점은 민주 노조를 만들기 위해 싸웠던 기존 민주 노조 세대의 방식에 거리두기를 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농성할 때는 꼭 결연한 음악이 깔리면서 투쟁과 승리를 외치는 게 떠올라 노조에 가입하면 전장에 나가는 투사가 돼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ㅋㅋㅋ” 2017년 청년유니온이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교육위원 수련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청년유니온이 주변 청년들에게 물어본 기성 노조에 대한 이미지였다. 노조를 떠올리면 ‘강성’으로 상징되는 기성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아무나 노조는 자신들만의 친숙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조합원에게 다가가려고 시도한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노조를 직접 만든 우리도 노조가 처음인데, 조합원들은 오죽하겠나. 노조에 가입하면 막연하게 불이익을 당할까봐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네이버지회는 IT 업계만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반영해 ‘공동성명’이라는 별명을 노조에 처음 붙였다. 별명을 지은 1호 아무나 노조였다. 이후 별명이 적힌 컵과 목걸이는 ‘굿즈’(기념품)가 됐다. 이들은 조끼 대신 초록색 후드 재킷을 입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아무나 노조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에서 노조를 홍보하고 의제를 공유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 지부 역시 유튜브에서 조합원들이 직접 나와 ‘직연통신’을 연재하며 ‘노동조합? 노동운동? 뭐가 어때서!’ 등의 방송을 진행한다. 박창진 지부장은 “한때 인천공항에 아침저녁으로 나가 직원들에게 직접 유인물을 나눠줬다. 하지만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편하게 읽지 못했다. 오히려 유튜브에 방송을 올리니까 직원들이 편한 시간에 반복해서 방송을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파리바게뜨지회는 초기부터 인스타그램에서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을 홍보했다. 점포에서 혼자, 많아야 두세 명이 일하는 제빵 기사들은 전국에 흩어져 일했다. 회사가 부당하게 수당 5만원을 소급했는데도 동료들과 얘기할 사무실이나 작업장 같은 공간도 없었다.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자신이 만든 빵과 케이크, 샌드위치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공유하는 동료들의 공통점을 고려해 인스타그램에 노조를 알리기 시작했다. 제빵사 모자를 쓴 캐릭터 배지는 20~30대 여성 조합원들에게 인기였다. 이후 점포에서 일하면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 조합원들을 위해 팟캐스트도 운영한다”고 했다.

촛불 혁명 때의 ‘아무 깃발 대잔치’처럼

촛불 혁명 때 ‘민주묘총’ ‘혼자 온 사람들’ 같은 재치 있는 깃발이 등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아무 깃발 대잔치’를 열었다. 기성 노조도 아무나 노조와 함께 연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월26일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동조합 조직화 사례 연구 워크숍’에 참석한 오상훈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팀장은 “최근 상담을 받아보면 촛불 혁명 이후 노조에 가입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다며 가입 여부를 묻는 사람이 많다. 청년 조합원도 늘었다. 하지만 동시에 ‘기성 노조는 낡았다’는 비판도 듣는다. ‘굳이 노조 조끼를 입어야 하느냐’고 묻는 아무나 노조와 어떻게 함께 혁신을 만들어나갈지 고민한다”고 했다.

최근 파리바게뜨에 이어 네이버, 넥슨, 카카오 등 IT 업계에서 대거 가입한 민주노총 화섬노조도 앞으로 기성 노조의 역할과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 연구할 예정이다.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은 “처음 신생 노조를 만났을 때 노조원끼리 서로 이름에 ‘님’을 붙이거나 영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낯설었다. 기존 문화나 운동 방식이 아무나 노조의 정서와 일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기존 방식으로 노조를 만들어 투쟁해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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