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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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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로 이직한 아빠들

전업주부 된 3명의 남자…

“엄마, 아빠 구분 없이 집안일 하는 모습 보여주는 게 좋은 교육”
등록 2019-02-03 01:02 수정 2020-05-03 04:29
<font color="#008ABD">우리 가족은 나, 동생, 엄마, 아빠 네 명이에요. 아침에 엄마는 출근 준비를 하고 아빠는 아침밥을 준비해요. 아침잠 많은 날 깨우는 건 아빠예요. 그런데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는 이상해요.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라고 해요. 넥타이를 매지 않는 우리 아빠는 집에서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요. 아빠가 만들어준 케이크,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어요. 우리 아빠는 정리 정돈도 잘해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 집이 궁금한가봐요. 자꾸만 집에 있는 아빠가 뭐하냐고 물어봐요. 요리 잘하고 청소 잘하는 우리 아빠의 직업은요, 주부랍니다.
*전업주부아빠 문희주씨 가족 이야기를 아들 휘운이의 말로 재구성했습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font>
집에서 찍은 주부아빠 문희주씨의 가족사진이다. 지난해 12월 딸이 태어나 네 식구가 됐다. 문희주 제공

집에서 찍은 주부아빠 문희주씨의 가족사진이다. 지난해 12월 딸이 태어나 네 식구가 됐다. 문희주 제공

노승후씨는 두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친구 같은 아빠가 됐다.

노승후씨는 두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친구 같은 아빠가 됐다.

“탁탁탁, 탁탁탁.”

1월25일 오후 5시 인천 연수구 송도동. 노승후(41)씨가 양파를 썰고 버섯을 다듬는다. 미소된장국에 넣을 재료다. 아내가 퇴근하고 올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은 그의 곁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와, 된장찌개다!” “아빠, 스파게티 해주면 안 돼?” “이미 밥했으니 스파게티는 내일 해줄게.”

<font size="4"><font color="#008ABD">먹고살려고 배운 요리</font></font>

노씨는 7년차 주부다. 첫째가 5살, 둘째가 20개월 때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로 이직했다. 퇴사는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이를 봐주던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맞벌이하던 부부는 육아 때문에 둘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외향적인 아내가 바깥일을 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맘때 직장생활 10년차 되니 회의감이 들고 뭔가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 노씨는 그 무렵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느라 매일 잠든 아이들의 모습만 봤다고 한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했다.

주부로 이직한 첫해에는 자신이 선택한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1년 육아휴직 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 더욱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하나의 사업을 한다는 책임감으로 시작했다. 제일 어려운 게 요리였다. ‘삼시 세끼를 어떻게 하나’ ‘반찬은 뭐하지’라는 생각에 매일 눈앞이 캄캄했다.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요리학원에 다녔다. 정말 먹고살려고 배운 거다.”

노씨는 주부가 되기 전에는 “가부장적인 남자였다”고 한다. 맞벌이를 했지만 육아와 살림은 아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요리도 설거지도 안 했다. 그때는 아내와 많이 싸웠다. 가사일과 육아가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몰랐다. 주부가 돼 ‘독박육아’를 했을 때 절절히 깨달았다.

“아내가 자격증 시험공부 하느라 주말에 독박육아를 했다. 그때가 주부 1년차였다. 집안일도 육아도 서툴러서 더 힘들었다. 삼시 세끼 준비하고 아이들 돌보고 외출도 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너무 힘들고 막막했다.”

주부 3년차 때는 우울증을 겪었다. 이제 경력이 단절됐으니 재취업도 힘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다른 걸 하고 싶었다. 그러다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고 책 를 펴냈다. ‘주부 우울증’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노씨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세대를 보면 어릴 때 자녀들과 지내지 못한 걸 나중에 후회한다. 퇴직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는 삼식이(집에 있으며 세끼를 꼬박꼬박 먹는 사람)가 된다. 이미 다 큰 자식과 시간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 난 저런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딸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 노씨는 딸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딸과 함께 보낸 시간만큼 딸은 그를 따랐다. 그런 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아빠, 다시 회사 나간다”란다.

아내 이희정(39)씨는 “남편이 주부가 된 뒤 다툴 일이 없다”라며 웃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요리하고 설거지 등 뒷정리를 한다. 주방에 들어오지 않던 예전의 남편이 아니다. “퇴근 뒤 귀가해 신랑이 짜증나 보이면 이해가 된다. 그럴 땐 ‘왜 그래’가 아니라 ‘내가 할게, 쉬어’라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육아 정책자들도 ‘육필’ 2년 해야 </font></font>

노씨 부부는 가부장제 사회가 정한 ‘육아=여성, 생계 부양자=남성’이라는 성역할을 뒤집었다.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깬 이들 부부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 일반적이지 않다. 그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태섭 사회학자는 에서 “결혼해 정상 가족을 꾸리고 생계 부양자로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으며 강력하게 구속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최태섭 사회학자는 한국 사회에서 IMF 이후 몰려온 고용 불안으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타격을 입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런 모델이 존속할 수 있는 것은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 때문이다.

노씨 부부만 하더라도 이들이 성역할을 바꾸게 된 계기에는 돌봄의 성불평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맞벌이 부부라 해도 상당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노동 시간이 길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4년 생활시간조사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은 평균 가사노동 시간이 3시간13분인 데 비해 남성은 41분에 불과했다. 오찬호 사회학자는 에서 “기혼자들은 평등이라는 이론을 화석화하고 전통적 질서,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면서 가족의 화목을 도모한다”고 지적했다.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 집”이 된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성역할을 바꾸는 식으로 불평등한 우리 집을 바꾸려는 아빠들이 있다. 부산 남천동에 사는 문희주(43)씨도 그렇다. 문씨 부부는 결혼과 육아 때문에 엄마가 일을 그만두는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영화 스태프로 일했던 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일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외동아들로 자란 문씨에게 집안일과 육아는 낯선 영역이었다. 그런 그가 6살 첫째 휘운이가 생후 2개월 때부터 육아와 가사일을 전담했다. 2∼3시간씩 깨는 아이 옆에서 쪽잠을 자며 분유 수유를 했다. 아이를 키우는 돌봄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를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가 주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그렇게 살지 말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돈 벌면서 살면 좋겠다’ 라는 무언의 압력을 줬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아들이 집에서 애 본다는 이야기를 못했다고 한다. 실은 문씨 스스로도 자괴감에 시달렸다. 남자가 주부면 ‘무능한 아빠’라는 사회적 편견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경력 단절에 대한 괴로움도 겪었다.

“주부들의 카페 익명 게시판에 들어가면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뒤 두렵고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한 글이 많다. 나도 주부가 되니 그런 심정이었다. 주위에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있었지만 그들에 대해 너무 몰랐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은 뒤 암묵적으로 일을 그만두길 강요받아왔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지나쳤던 주부의 고단한 삶이 보였다고 한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삶이 이제야 보인 것이다. “여자의 삶이 이해되면서 그들의 감정에 공감이 갔다. 일례로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고 분노했다. 한편으로 남자인 내가 가해자인 기분이 들었다. 예전의 일을 되짚어보니 밤길에 좁은 골목길을 갈 때 앞서 걷던 여성분이 나를 보고 두려워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밤길이 두려운 적 없지만 ‘여성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주부인 자신을 친구들은 ‘집에서 논다’거나 ‘팔자 좋다’고 생각한다. 남자친구들 중에는 애가 셋인데 기저귀 한번 갈아준 걸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집에서 왕처럼 산다는 얘기다. “그 친구에게 니네 애들인데 기저귀를 안 갈아주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집에 애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데, 내가 왜 기저귀를 갈아야 하냐고 되물었다. 그런 친구들이 직접 육아를 해봐야 아이 키우는 세계를 알 텐데 말이다. 이 친구들뿐 아니라 육아 정책 만드는 남자들도 ‘육필’(육아 필수) 2년 정도 해야 한다.(웃음) ”

‘육필’ 2년을 한참 넘긴 문씨는 “아이가 커가는 매 순간을 보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크는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오로지 아이와 나 둘이서만 보낸다는 게 기쁘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잠시일 테니 이 예쁜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신이 잘하는 것 중심으로 가사 분담</font></font>
문희주씨가 유치원 끝나고 나온 아들 휘운이를 업고 있다.

문희주씨가 유치원 끝나고 나온 아들 휘운이를 업고 있다.

문씨는 예전에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행동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고 있다. 문씨는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된다’ ‘울면 안 된다’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러지 않으면 ‘여자 같다’ ‘소심하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상대방과 대화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됐다. “힘든 일이 있어도 ‘뭐, 이런 걸 굳이 남한테 이야기하나’ 생각했다. 결혼하고도 그랬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다보면 짜증나고 힘든데 그걸 쌓아두면 나중에 싸움이 된다. 내가 왜 힘든지, 짜증이 났는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 문씨는 자신의 양육관, 소소한 감정 등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한다. 이들 부부가 함께 만들고 싶은 가족의 모습은 이렇다. “아이가 집안일은 누구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 부부가 엄마, 아빠 구분 없이 집안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교육인 것 같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없기를 바란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정우진(46)씨는 결혼 전에도 “주부가 되고 싶다”는 말을 곧잘 했단다. 요리 등 집안일을 하는 게 적성에 맞아서다. 출판 편집일을 했던 그는 아내가 육아휴직 3년을 하고 복직할 무렵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딸아이가 6살 때 주부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주양육자가 아빠인 경우가 드물다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다르게 본단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부모 도서관 봉사를 신청했다. 학부모 봉사자 중에서 아빠는 자신뿐이었다. “선생님이 아빠가 오신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빠가 가서 불편했는지 1학기 때 봉사를 했는데 2학기에는 봉사하러 오라는 연락이 안 왔다. 두 학기에 한 번씩 하는 봉사인데 말이다.”

정씨가 보기에 다른 아빠들의 모습이 이상하다. “젠더(성) 의식이 있는 아빠들이라도 다르지 않다. 맞벌이인데도 가사 분담을 똑같이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소파에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본다. 결혼만 하면 다들 왜 이리 비슷한 가부장 아버지가 되는지 모르겠다.”

정씨 부부는 성별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가사 분담을 했다. 정씨의 담당 분야는 요리고 아내는 빨래다. 정씨는 요리하는 걸 즐긴다. 김치도 담그고 못하는 요리가 없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딸아이 친구들이 집에 오면 간식을 준비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딸뿐 아니라 친구들 입맛까지 고려해서 간식 메뉴를 정한단다.

정씨가 자발적으로 주부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워커홀릭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에너지를 너무 일에만 쏟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하느라 힘들어 집에 오면 누워만 있고 결국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이 깨져 삶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육아를 위해 유연근무제를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결국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성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font></font>

그렇게 일하는 엄마,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아빠가 만드는 이들 가족이 그리고 싶은 풍경은 어떤 걸까. 정씨네 주방에는 만화가가 꿈인 딸이 그린 아빠와 엄마 그림이 있다. 그림에는 프라이팬을 든 요리하는 아빠의 모습이 담겼다. 가부장제 사회가 만든 ‘엄마답게’ ‘아빠답게’는 없다. 냉장고에는 평등 가족을 위한 ‘15계명’이 붙어 있다. “같이 할 것. 성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억압에 대해 가르칠 때 억압당하는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차이에 대해 가르칠 것.” 정씨 가족 모두가 실천하고 노력하자는 다짐이다.

<font color="#008ABD">글</font>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 </font>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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