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소득주도성장은 어디로 사라졌나

정부가 최저임금 부작용을 담백하게 인정했다면

경제정책을 자신 있게 추진했을 텐데
등록 2019-01-26 08:11 수정 2020-05-02 19:29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말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말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해마다 다음 연도에 추진할 주요 경제정책을 담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한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가계소득을 적정 수준으로 올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을 ‘사람 중심의 경제’로 대전환하겠다는 포부였다. 같은 해 말에 발표된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표현이 10번이나 등장했다. “가계소득 확충을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노력을 강화하고 임금 격차 해소, 생계비 경감 등 소득주도성장 3단계 추진”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2018년 12월 발표된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 단 한 번만 거론됐다. 그것도 정책 내용이 아니라 ‘2019년 경제정책 기본 방향’이라는 도표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설명하며 스쳐가듯 언급했을 뿐이다. 1년 만에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라진 셈이다.

가장 쉬웠던 정책,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성장이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뒷순위 정책으로 밀린 이유는 최저임금 논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는 ‘가처분소득 증대→소비 증가→생산·투자 확대’의 경로로 경제를 살린다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실업 안전망 강화, 근로장려금(EITC) 확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손쉽게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단연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통령 선거 당시 모든 후보가 최저시급 1만원을 공약해 사회적 합의가 나름대로 이뤄진 상태였다. 자유한국당만 그 시기를 2022년으로 정했을 뿐 다른 후보들은 모두 2020년으로 못박았다. 둘째, 다른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달리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없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2017년 7월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 시급을 7530원으로 결정했다. 인상률은 16.4%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마중물이 돼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이에 따라 자영업자 매출이 늘고, 그래서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낳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경영계와 보수 야당·언론의 반격은 예상보다 거셌다.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내세우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바람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안이했다. 2018년 1월 당시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영향을 이렇게 예측했다. “당장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현재와 유사했던 2007년 사례를 검토했을 때 3개월간 조정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다 회복됐다.” 2007년에는 최저임금이 12.3% 올랐는데, 인상 전후 3개월간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폭이 30만 명대를 밑돌았다. 하지만 3월부터 예년 수준인 30만 명대로 회복했고 8월에는 40만 명대로 치솟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설명이다.

2018년 1월 취업자 증가폭이 33만4천 명으로 나타나자, 정부의 긴장감은 더 풀어졌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와 만나 “최저임금의 부정적 고용 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국내외의 실증분석 결과다. 보수 언론이 일부 자영업자 사례를 ‘침소봉대’했지만 통계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자신했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고용지표와 소득지표

정부에 자신감을 더해준 통계가 2018년 2월에 다시 나왔다. ‘2017년 4분기 가계동향 조사’에서 소득 하위 20% 가구(1분위)의 소득이 10.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 소득을 높인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지표였다. 통계가 나온 당일 공교롭게도 기자간담회가 예정됐던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분위 소득이 많이 증가하는 등 소득분배가 개선된 점은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말했고,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계”라며 반복해 소개했다. 하지만 2017년 4분기 소득 증가는 보통 3분기(7~9월)에 있던 추석 연휴가 2017년에는 4분기(10월)에 포함된 영향이 컸다.

정부를 안심시켰던 고용지표와 소득지표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고용지표는 2월부터 10만 명대 밑으로 떨어져 결국 2018년 취업자 수는 9만7천 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이후 최저치다. 2018년 1분기, 2분기, 3분기 1분위 소득은 각각 8%, 7.6%, 7% 줄었다. 임시직·일용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저소득 가구의 소득이 급감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라는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2018년 저임금 노동자(360만 명)가 2017년(475만 명)보다 115만 명이나 감소했고, 임금 불평등(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이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2017년 4.13배에서 2018년 3.78배로 개선됐다는 긍정적 효과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만 연일 조명을 받았다.

청와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애써 외면했다. 2018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또 8월 국무회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은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도시 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작년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지율까지 하락하자 12월에야 최저임금 정책 보완의 필요성을 공식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보완 조치도 함께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부작용=소득주도성장 실패’ 프레임

하지만 너무 늦었다. 1년 내내 최저임금 논란에 휩싸이면서 소득주도성장은 만신창이가 됐다. 최저임금을 제외한 실업 안전망 강화, 근로장려금 확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은 2018년 하반기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데 그 효과는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마저 잃었다. ‘최저임금 부작용=소득주도성장 실패’ 프레임이 형성돼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려 고용지표와 일부 소득지표가 곤두박질쳤던 2018년 초에 정부가 최저임금 부작용도 담백하게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일부 사라졌고, 부분적으로 그 영향으로 최하위 소득계층의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보완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면 말이다.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을 위한 실업부조를 도입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한층 강화됐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너무 늦은 후회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