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뉴스 사서 스펙 만든 현대판 김선달’ 기사와 이어집니다.
흰색 실험실 가운을 걸쳤다. 12월10일 낮 12시께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근처 한 문구점에서 1만3500원을 주고 산 가운이다. 비닐 포장을 뜯어 펼친 가운에는 접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다리미로 어설프게 주름을 폈다. 이날 오후 3시께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그 가운을 걸친 순간, ‘조윤영 기자’는 ‘조윤영 친환경 화장품 업체 페이크 대표’로 변신했다.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 광고와 기사의 경계가 무너지다영화 의 주인공인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는 비행기 조종사를 사칭하기 위해 ‘호텔에 유니폼 세탁을 맡겼다가 분실했다’며 진짜 항공사 직원만 받을 수 있다던 유니폼을 손에 넣었다. 은 1960년대에 실제 일어난 사기극을 다루었다. 이 기사도 실화다. 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가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지 반세기가 지난 2018년에는, 조윤영 페이크 대표를 인터뷰한 기사와 실험실 가운을 입은 사진을 돈 주고 일부 언론사 누리집에 싣자 ‘진짜 같은’ 회사 대표가 만들어졌다.
취재진은 왜, 어떤 언론사들이, 얼마나 돈을 받고, 어떤 기사까지 써주는지 모든 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위해 ‘언론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사에 돈을 주면 원하는 기사를 실을 수 있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돈만 내니까 가짜뉴스도 진짜 뉴스가 됐다. 언론사 이름과 기자 이름이 달린 ‘진짜 기사 같은’ 기사는 최소한의 검증 없이 언론사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갔다.
일본의 게이오대학 정보기술(IT) 분야 조교수, 같은 대학 병원 수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자유치자문관 등을 사칭했던 서준혁(40)씨가 12월10일 과 한 통화에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이용했다고 한 ㅈ언론홍보대행사에 뉴스 게재 여부를 문의했다. ㅈ사 관계자는 ‘조윤영 페이크 대표’(기자)와 한 통화에서 “내용상 문제없다면 (돈을 내고 언론 홍보가) 가능하다. 1차로 언론홍보대행사에서 단순 교정·교열을 본다. 2차로 언론사도 내부 보도 방침에 따라 과장된 내용, 근거 없는 표현 등을 고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가짜뉴스 두 건이 12월12일 주요 일간지 ㄱ과 또 다른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각각 실렸다. 주요 경제지 ㄷ에 신청한 가짜 서면 인터뷰 기사만 ‘페이크의 누리집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사 게재가 보류됐다. 언론사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기사들은 12월13일 삭제했다. 하지만 이틀간 인터넷에 올라온 조윤영 페이크 대표의 기사는 가짜뉴스까지 충분한 검증 없이 돈을 받고 거래해온 기성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 기사와 광고, 진실과 비진실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였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과 한 통화에서 “돈을 받고 언론사가 언론홍보대행사에서 제공받은 보도자료를 검증도 없이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는 행태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떨어뜨린다는 거다. 인터넷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도 팽배해질 거다. 권력 감시와 사실 검증 등의 저널리즘 기능과 존재 이유를 언론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다”라고 했다.
30대 초반 여성이 가장할 수 있는 신분, 학력, 직업 등은 제한적이었다. 직업은 비교적 대중적인 뷰티업계로 골랐다. 꽃, 열매, 나무 등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 성분이 들어간 친환경 화장품을 개발하는 회사 대표로 정했다. 회사 이름은 ‘페이크’로 지었다. 페이크는 가짜, 꾸며낸 일, 허위 보도, 사기꾼 등을 뜻하는 영어다. 상대적으로 진위를 감별하기 쉬운 단어를 썼다.
언론사별로 5천∼23만원짜리 기사 거래‘조윤영 페이크 대표’는 ‘미국의 애버그네일대학교’에서 화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다. 하지만 애버그네일대학교는 미국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학이다. 대학 이름은 영화 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 이름에서 따왔다. 프랭크는 1960년대 미국의 천재 사기꾼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포털 사이트에 ‘애버그네일’ 단어만 검색해도 21살이 되기도 전에 비행기 조종사, 의사, 변호사 등을 사칭한 그의 사기 행각을 찾을 수 있다.
애버그네일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했다는 경력도 거짓이었다. 실제 있지도 않은 대학에서 조교수를 했다는 앞뒤가 안 맞는 경력이다. 조윤영 페이크 대표가 2012년부터 4년간 책임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언급한 ‘한국생명과학연구원’도 가상의 기관이다. 1985년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한 글자를 바꾼 것이었다. 만 나이를 단순 계산해도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미국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했다면 당시 나이는 24살이었다. 24살에 석사·박사 학위까지 딴 대학교수가 된 셈이었다.
가짜뉴스 초고는 천연 성분의 화장품,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연구·개발 등을 소개하는 기사를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실제 ㅈ사 쪽에 보낸 기사 초고에는 “친환경 화장품 회사 페이크의 조윤영 대표(31)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화장품 개발 등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조 대표는 미국의 애버그네일대학교에서 화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조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한국으로 귀국한 조 대표는 4년간 한국생명과학연구원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2016년 페이크를 창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학, 회사, 연구기관, 학력, 경력, 신제품 출시 일정 등 7가지 허위 사실을 담은 가짜뉴스는 일본의 게이오대학 IT 분야 조교수에 이어 같은 대학 병원 수련의 등을 사칭했던 서준혁씨와 견줘 규모 면에선 비교적 초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신분, 학력, 경력을 적은 가짜뉴스가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진짜 같은 뉴스가 되는지 살펴보기 위한 조처였다.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가 되는 절차는 비교적 단순했다. 언론홍보대행사에 돈만 내면 원하는 언론사에 기사와 사진을 실을 수 있었다. 단 ㅈ사와 제휴하는 언론사에 한해서다. ㅈ사가 누리집에 공개한 비용은 언론사별로 달랐다. 비용은 많게는 23만원에서 적게는 5천원까지 벌어졌다. 먼저 주요 일간지 ㄱ,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주요 경제지 ㄷ, 익명으로 적힌 경제지 ㄹ 등 언론사 4곳에 기사와 사진을 싣겠다고 연락했다. 총 54만7800원어치였다.
대출 연체 회사가 신제품 출시?난관은 세금계산서였다. ㅈ사 관계자는 조윤영 페이크 대표와의 전화에서 “사업자등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세금계산서 발급을 위해 회사·대표자 이름, 업태, 종목, 사업자등록번호, 회사 주소 등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조처였다. 하지만 정작 “대출 연체로 현재 사업자등록증이 말소됐다. 말소된 사업자등록번호를 알려주면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묻자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면 현금영수증으로 처리해주겠다”며 넘어갔다. 빚을 갚지 못해 사업자등록증이 말소된 회사에서 ‘내년에 신제품 5종을 출시한다’며 기사를 내려는데도 언론 홍보를 대행해준 것이다.
이어 서면 인터뷰 기사도 시도해봤다. 이 경우 질문도 답변도 신청자가 직접 써야 했다. 신청자가 제목과 부제도 직접 달았다. 보통 언론사에서는 취재기자가 기사 본문을 작성하고 편집기자가 제목과 부제를 붙인다. 서면 인터뷰 기사라도 취재기자가 취재원에게 서면 질문지를 보낸다. 하지만 신청자가 돈만 내면 기사 작성부터 제목까지 뉴스를 제작하는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했다.
ㅈ사 관계자는 “서면 인터뷰 기사는 내용이 겹치면 안 돼 언론사 한 군데만 노출할 수 있다. 일반 기사도 여러 언론사에 실으려면 단어나 문장, 문단을 바꿔 다르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12월11일 주요 일간지 ㄱ,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등 2곳에 일반 기사 게재를 요청했다. 주요 경제지 ㄷ에도 서면 인터뷰 기사 보도를 신청했다. 49만3900원을 주고 가짜기사 3개를 거래한 것이다.
이튿날인 12월12일 오전 9시43분께, 주요 일간지 ㄱ에 첫 번째 기사가 올라왔다. 같은 날 오후 3시께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에 기사가 연달아 나왔다. 앞서 ㅈ사 관계자는 “언론사 쪽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직접 연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사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주요 일간지 ㄱ과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실린 기사 내용은 ㅈ사에 보냈던 기사 초고와 사실상 거의 똑같았다.
언론홍보대행사나 언론사에서 추가했거나 수정한 내용은 부수적인 부분이었다. ‘최근’ ‘이에’ 등의 명사나 부사가 추가됐다. ‘업체 측에 따르면’ ‘∼라고 한다’ ‘∼라는 설명이다’ 등의 인용 보도로 일부 문장의 첫머리와 끝머리가 고쳐졌다. 일부 문장과 문단의 순서도 바뀌었다. 가짜뉴스가 조금 더 진짜 같은 뉴스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셈이다.
신청자가 인터뷰 질의응답에 제목까지 달아서 전송하지만 정작 가짜뉴스가 진짜 뉴스인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언론사 검증 절차는 생략됐다. 가짜 학력과 경력을 사칭하거나 허위·과장 광고를 하더라도 이를 걸러낼 기초적인 확인 보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성 언론이 언론사의 이름과 기자 이름을 내걸고 허위 학력과 경력의 가짜 화장품 대표를 사실상 공인해준 셈이다. 실제 일간지에 조윤영 페이크 대표 기사를 썼다고 이름(바이라인)을 적은 기자는 과 한 통화에서 “페이크가 실존하는 회사인지, 조윤영 대표의 경력이 사실인지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에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구두 발표와 홍보성 보도자료는 사실의 검증을 통해 확인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편집자는 독자들이 기사와 광고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편집한다’며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도록 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이 언론 홍보 대행사를 통해 그대로 받아쓴 기사들은 이런 준칙에 위배된다.
취재진은 언론사들이 가짜뉴스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자세하고 꼼꼼하게 내용을 확인하는지도 점검했다. ㅈ사에 보낸 기사 초고에 일부러 오·탈자를 적었다. “중소업체의 화장품이더라도 인체에 유해한 천연 성분을 강조한 제품들이 입소문이 나고 있다”고 잘못 썼다. ‘인체에 무해한’이라고 적는 게 맞는 문장이었다. 또 “2014년 한국으로 귀국한 조 대표는 4년간 한국생명과학연구원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2016년 페이크를 창업했다”고 적었다. 2014년이든 4년이든 시기적으로 둘 가운데 하나는 잘못 쓴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 역시 주요 일간지 ㄱ에 올라간 첫 번째 기사에 그대로 실렸다. 기자에게 ‘오·탈자를 수정해달라’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내고 나서야 문제의 내용이 수정됐다. ㅈ사 쪽에도 수정 여부를 문의한 뒤 같은 날 오후 3시께 나왔던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기사에서도 오·탈자 등이 고쳐졌다. 이는 적절하게 고쳐진 사례지만, 반대로 언론홍보대행 신청자가 언론사에서 이미 보도한 기사 내용을 임의로 부적절하게 사후 수정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취재진은 12월13일 오전 10시15분께 ㅈ사 쪽에 12월12일 주요 일간지 ㄱ와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누리집에 올라간 기사 2개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ㅈ사 관계자는 “삭제 사유서를 전자우편으로 보내달라. 언론사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기사를 수정, 삭제 시 포털 사이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 벌점을 받을 수 있어 정당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기사 한 건당 3만원씩 추가 비용도 발생한다”고 했다.
“언론사와 유관 기관 공동 메뉴얼 만들어야”ㅈ사에 삭제 사유서를 낸 지 3시간가량 지난 이날 오후 1시40분께 주요 일간지 ㄴ의 자매지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나간 기사가 삭제됐다. 이어 같은 날 오후 5시30분께 또 다른 일간지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기사도 지워졌다. 이로써 12월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인터넷에 올라온 조윤영 페이크 대표에 대한 기사는 모두 내려갔다. 하지만 이 기간 포털 사이트나 언론사 누리집에서 이 기사들을 읽었을 독자에게 조윤영은 페이크 대표로 기억될 뿐이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과 한 통화에서 “언론사가 수익 창출을 위해 돈을 받고 검증 없이 그대로 싣는 기사는 사실상 광고형 기사로 봐야 한다. 기사 상단에 ‘PR’ 또는 ‘AD’라고 광고임을 표시하는 기사형 광고와는 다르다. 이 때문에 최소한 기사를 읽는 독자가 광고형 기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 이제라도 언론사와 유관 기관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해 공동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보도자료 전재료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다만 기자 이름은 기사에 달지 않았고 ‘자료 제공’이라고 표시했습니다. 2014년 이런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 중지했고, 그 뒤로 현재까지 돈을 받고 포털에 보도자료를 출고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변지민 기자 dr@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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