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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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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크리스퍼 후속특허’ 스스로 포기했다

2013년 6월 툴젠과 크리스퍼 특허 관련 계약서 수정해 후속특허 권리 포기…

특허 관리 시스템도 총체적 부실
등록 2018-10-13 07:03 수정 2020-05-02 19:29

국가연구개발비는 종종 ‘눈먼 돈’(임자 없는 돈)이다. 일부 연구자가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공적 목적에 쓰일 돈을 사익 추구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면을 살펴보면, 나랏돈을 철저히 관리해야 할 연구기관의 직원들이 뒷짐 지고 곳간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다. ‘크리스퍼 특허’와 관련해 서울대가 보인 행동이 그 적절한 사례다.

서울대가 2013년 ‘크리스퍼 후속특허’를 스스로 포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서울대로부터 받은 자료와 취재 결과로 밝혀진 내용이다. 서울대는 잠재가치가 상당한 크리스퍼 특허를 헐값에 판 것도 모자라, 후속특허의 소유권이 담긴 조항마저 계약서에서 삭제해버렸다. 서울대 관계자는 “툴젠이 독자적으로 개량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까지 서울대와 협의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과도한 제약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은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서울대에 재직하던 2012년 무렵,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개발하고도 서울대에 거짓으로 발명신고를 해 특허권을 툴젠으로 헐값에 이전한 의혹(제1229호 표지이야기)을 다뤘다. 툴젠은 김 전 교수가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바이오기업이다. 크리스퍼는 세포 내 유전정보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이전 계약서 수정’ 문건 보니…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툴젠이 2013년 6월25일 계약서 수정을 한 내용이 담긴 서울대 내부 문서.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툴젠이 2013년 6월25일 계약서 수정을 한 내용이 담긴 서울대 내부 문서.

박용진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서울대는 2013년 6월25일 툴젠과 기존에 맺은 계약서를 수정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김진수 교수)-(주)툴젠 간 기술이전(지분양도) 계약서 수정’이라는 제목의 내부결재 문서에 수정 사항이 남아 있다. 2012년 11월20일 서울대와 툴젠이 맺었던, 크리스퍼 외 3건의 특허이전 계약서 중에서 ‘제6조(기술의 개량 등)’를 삭제하고 ‘제7조(명칭의 사용)’를 변경하는 내용이다. 변경된 내용은 서울대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방향이다.

핵심 내용은 제6조의 1항과 2항이 삭제된 것이다. 두 항목이 삭제되면서 서울대는 상당한 권리를 잃는다. 툴젠이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이용해 후속기술을 개발할 때 서울대에 통보할 의무가 사라졌다. 크리스퍼 후속특허를 공동 소유할 권한도 없어졌다. 서울대가 크리스퍼 특허를 자유롭게 활용해 다른 기관과 후속특허를 개발할 권한도 날아갔다. 다음은 삭제된 조항들이다.

“(제6조 1항) 본 계약기간 중 을(툴젠)이 본 계약기술(크리스퍼 외 3건)을 이용하여 개량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경우 을은 갑(서울대 산학협력단)에게 사전 통보하여 상호 협의하여 추진하기로 하며, 개량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갑과 을의 공동 소유로 한다.”

“(제6조 2항) 본 계약 체결 후 갑(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제3자와 계약기술(크리스퍼 외 3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단 갑이 정부출연금 등을 이외의 제3자가 부담한 연구비로써 수행한 개량기술을 을이 실시코자 하는 경우 별도의 실시계약을 체결하여 투입된 원금연구비 이상을 갑에게 기술료로 지급하기로 한다.”

서울대는 도대체 왜 이런 계약을 한 걸까. 서울대와 툴젠이 맺은 계약서들을 검토했을 때, 이런 권리 포기의 대가로 서울대가 다른 유·무형의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김진수 교수가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으로 선정된 시점은 9개월 뒤인 2014년 3월이므로, IBS와 충돌을 우려해 삭제했다고 볼 수도 없다. 서울대 해명처럼 이 조항이 기업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라면, 향후 특허 이전 문서에서 제6조가 빠졌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수십 건의 다른 특허들의 이전 계약을 살펴봤을 때 대부분 이 조항이 들어 있었다. 문구 자체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 부장급 담당자가 모든 결정 내려

서울대는 “계약 담당자가 퇴사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대답만 되풀이한다. 이 말에 실마리가 있다. 박 의원실의 자료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크리스퍼 특허 계약과 관련해선 조서용 전 서울대 산학협력단 지식재산관리부장 한 명이 사실상 모든 결정을 내렸다. 담당자 한 명이 사라지면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됐던 것이다.

조 부장은 크리스퍼 원천기술 두 번째 특허(P2)가 툴젠으로 이전되는 계약에서 산학협력단장 대신 최종 결재까지 했다. 이 특허는 실제 2014년 4월8일 결재됐지만, 서류상 계약일은 한 달을 앞당겨 3월12일로 맞췄다. 그러다보니 서류상으로는 특허가 서울대에 신고되기도 전에 툴젠으로 이전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크리스퍼 원천기술 첫 번째 특허(P1)는 서울대에 신고된 지 나흘 만에 툴젠으로 이전된다. 특허의 가치를 매기고 계약을 심사해야 할 지식재산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가치평가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은 특허 가치평가 과정 누락, 날짜 소급 계약서 작성 이유, 계약의 절차적 문제 등을 물어보기 위해 서울대를 퇴직한 조 전 부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서울대의 특허 관리 시스템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서울대가 그동안 보인 행동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보다 덮으려는 쪽에 가깝다. 서울대는 대전지방경찰청으로부터 2017년 9월12일 김진수 교수의 논문과 특허의 관련성을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객관적이고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조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전문가들은 분석 과정이 1년이나 걸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김진수 교수의 논문과 특허들을 분석한 변리사 A씨는 “바이오 분야를 맡은 경험이 있는 변리사라면, 김 교수의 논문과 특허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1시간이면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리사 B씨도 “논문과 특허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 2~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서강대는 비슷한 사건에 교직원 검찰 고발

최근 서강대가 자체적으로 인지한 ‘특허 빼돌리기’ 의혹과 관련해 특별감사를 하고, 이를 토대로 내부에서 공모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교직원들을 검찰에 고발까지 한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대의 행동을 외국 대학들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확인할 수 있다. 브로드연구소는 미국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공동 설립·운영하는 연구기관이다.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에서 크리스퍼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들은 에디타스(EDITAS)라는 기업을 공동 창업했다. ‘브로드연구소-에디타스’의 관계는 ‘서울대-툴젠’의 관계와 비슷한 셈이다.

브로드연구소는 에디타스에서만 해마다 수백억원의 특허 사용료를 받고 있다. 게다가 하버드대학은 자체적으로도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한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반면 서울대는 크리스퍼 기술을 다른 3개 특허와 묶어 1852만5천원에 툴젠에 팔았다. 크리스퍼가 3개 특허와 달리 취급된 게 아니므로 사실상 463만원에 이전된 셈이다. 그나마 이 금액의 대부분은 발명자보상금으로 김진수 교수에게 되돌아갔다. 서울대가 남긴 수익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브로드연구소는 사기업의 이익을 위한 특허 사용에는 철저하게 비용을 요구하지만, 비영리 연구나 학술을 위한 특허기술 사용에는 별다른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미국에서 학술기관이 사회적 책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서울대는 해당 특허를 툴젠에 팔아넘기면서 해당 기술이 공익이나 학술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가능성도 차단해버렸다.

박용진 의원은 “이번 계약서 수정 건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의도적 개입 정황이 의심된다”며 “직무상 배임이 있는지 국정감사를 통해 철저히 다룸과 동시에 향후 필요하다면 감사원 감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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