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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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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위한 계엄은 실화다

기무사 계엄 문건 현실화할 구체적 정황 여럿…

누구를 위해 조현천은 전두환과 같은 꿈을 꾸었나
등록 2018-08-14 05:28 수정 2020-05-02 19:29
계엄의 실체
착한 계엄은 없다. 계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총부리다. 1980년 5월 계엄 속 광주, 군 앞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발포명령이 있기는 했나”라고 회고한다.

합동참모본부의 2016년 <계엄실무편람>. 합참의 계엄 관련 부서 실무자들이 쓰는 계엄 시행의 기본 지침서로 7월 기무사 계엄 문건과 함께 공개됐다.

합동참모본부의 2016년 <계엄실무편람>. 합참의 계엄 관련 부서 실무자들이 쓰는 계엄 시행의 기본 지침서로 7월 기무사 계엄 문건과 함께 공개됐다.

2017년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같은 꿈을 꾼 것일까. 단선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전두환은 당시 12·12 군사반란으로 이미 신군부 세력의 정점에 있던 내란 수괴였다. 조 전 사령관은 전두환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계엄 문건의 내용만으로도 ‘계엄을 이용한 정국 장악’이라는 점만은 확연하다. 특히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합동수사단’(수사단)은 지난 7월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드러난 기무사 계엄 문건에 ‘내란’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38년 만에 벌어진 군에 의한 내란죄를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 붙은 ‘내란’ 혐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주도로 계엄을 실행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기무사 계엄 문건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위)과 이를 설명하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로 나뉜다. 8월2일 수사단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의 원래 이름이 ‘현 시국관련 대비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래 제목이 설명 자료의 제목과도 부합한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주도로 계엄을 실행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기무사 계엄 문건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위)과 이를 설명하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로 나뉜다. 8월2일 수사단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의 원래 이름이 ‘현 시국관련 대비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래 제목이 설명 자료의 제목과도 부합한다.

내란 혐의를 받는 대상자도 속속 늘고 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가 먼저 수사 선상에 올랐다. 8월3일 수사단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자택을 ‘내란음모’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장 전 총장은 계엄 문건이 작성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 확인한 합동참모본부의 계엄 지침인 ()대로라면 계엄의 개시와 함께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이 임명된다. 하지만 기무사의 불법 계엄 문건에는 이례적으로 장준규 전 총장이 사령관으로 기재돼 여러 의혹을 샀다. 적시한 혐의대로라면 장 전 총장도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과 실행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도 내란음모 혐의로 출국 금지된 상태다. 국방부 수사단에 민간 검찰이 합류하면서 몸집을 불린 수사팀은 이제 국방부를 넘어 칼끝을 당시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물론 기무사 내 주요 인물들은 이번 문건 작성이 지시에 따른 것이고 그 내용은 법적 절차를 검토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계엄 문건 작성을 주도한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은 7월24일 국회에 나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2월 위중한 상황을 고려해 위수령과 계엄 관련 법적인 절차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한 전 장관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한 전 장관도 이철희 의원의 위수령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문건 검토를 지시한 사실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기무사나 한 전 장관 모두 계엄을 실행하기 위한 문건 작성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7월22일 국방부가 추가 공개한 기무사 계엄 문건의 ‘계엄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살펴보면, 계엄 문건이 실행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에 30사단 1개여단과 1공수여단, 서울 광화문에 30사단 2개여단과 9공수여단(주둔지 대기) 등을 편성하거나 시위대 저항이 가장 적은 야간에 장갑차를 이용해 신속하게 투입하는 등의 계획은 실행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경우를 대비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현행범 사법처리로 아예 의결 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등의 반헌법적 국회 무력화 방안마저 담고 있다.

8월2일 수사단은 한민구 전 장관이나 기무사 간부들의 주장을 뒤엎을 만한 내용을 공개했다. 수사단은 삭제된 자료를 복구해 계엄 문건의 원래 제목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 소 참모장 등의 주장대로 한 전 장관의 지시에 따른 국회 답변을 위한 위수령 검토 문건이라거나, 법적 절차를 검토한 문건으로 보기는 힘들게 됐다.

또 2017년 초 기무사가 문건 작성을 위해 예산을 따로 마련해 별도의 장소에서 ‘미래방첩업무 발전 방안’ 태스크포스(TF)를 비밀리에 운영한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단은 “복구된 일부 파일에 계엄 시행 준비에 관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혔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수사단은 기무사 계엄 문건이 실행을 전제로 한 작업이었음을 입증하는 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 계엄 준비 정황 구체적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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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이후 한 달여 진행된 기무사의 불법 계엄 문건 작성 의혹은 결국 기무사 해편(해체 뒤 재편)을 이끌어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 부처 개혁 가운데 가장 지지부진하던 국방 개혁이 기무사 개혁을 중심으로 탄력받는 모양새다. 9월1일이면 4200명 규모의 기무사 요원들이 일단 모두 원대 복귀한다. 이들 중 2천여 명과 새롭게 합류하는 인력으로 3천 명 규모의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탄생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수사단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자택 압수수색을 포함해 한민구 전 장관을 넘어 그 윗선으로 수사의 방향과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들이 작성한 계엄령 문건이 실행력을 담보해 (친위) 쿠데타를 노린 것인지, 아니면 국회 제출 또는 법적 절차 검토를 위한 문건 작성에 불과한 것인지도 9월께 판가름 난다.

여기서 시계를 멈춰 다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세상에 공개된 7월5일로 돌아가 따져보자. 당연하게 생각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바로 기무사가 획책하려 했다는 ‘계엄’이다. 기무사가 만든 계엄 문건 세부자료가 폭로됐을 때 며칠 뒤 현행 계엄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합동참모본부 이 공개됐다. 은 기무사 문건의 불법성과 대비하기 위한 자료로 제시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불법성을 비교하기 위해 “기무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며 을 들고 흔들었다. 그렇다면 기무사가 획책한 불법 계엄은 합참의 안에 담긴 합법적 계엄과 다른 것일까. 기무사 계엄 문건을 주도한 조 전 사령관의 행적을 좇으면 답이 나온다.

이 만난 여권의 고위 인사는 조 전 사령관의 2016~ 2017년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조 전 사령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8월까지 기무사령관으로 재직해 여권 인사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사는 “조 전 사령관이 계엄 문건 작성을 위해 만든 티에프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수사에서 드러난 대로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초 기무사 내 티에프를 만들어 기무사 계엄 문건을 만들었다. 이 인사는 “(티에프를 설치하기 전) 조 사령관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합참을 찾아 계엄 시행을 상의한 것으로 안다. 합참은 소극적이었고 결국 기무사가 직접 기획을 맡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의 티에프 발족 배경에는 ‘합참의 거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 조 전 사령관은 합참이 계엄의 개시와 수행을 맡고 기무사는 합동수사본부를 맡는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무사가 2016년 10월29일 1차 촛불집회 직후인 11월3~4일 작성한 문건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건에는 ‘계엄 상황 관련 사령관 주요 조치사항’으로 계엄 선포 전 “강화된 위기 조치 기구를 운용하고, 예하 주요 지휘관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합동수사본부 운용을 준비한다”거나 “청와대, 국방부 등과 계엄 필요성 및 합동수사본부 설치 여부를 논의한다”고 기록됐다. 이 여권 고위 인사의 말대로라면 기무사 계엄 문건에서 계엄사령관에 왜 합참의장이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이 추대됐는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의문이 쉽게 풀린다. 지금까지는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이 3사 출신이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육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답처럼 회자됐다. 기무사는 합참에서 거절의 뜻을 밝히자 합참의장 다음 서열인 육군참모본부의 육군참모총장에게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계엄이 기획될 수 있다니

조 전 사령관의 행적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계엄을 누가 기획했느냐가 아니라 ‘계엄이 기획됐다’는 그 자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이나 합참 모두 계엄이 가져올 비극을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군 내부의 누군가가 계엄을 꾀하는 상황이 오면 군 조직의 경쟁과 협조는 계엄 자체를 추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계엄의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전두환이 이끄는 보안사령부가 핵심이었지만, 당시 육군본부·중앙정보부 등도 군이 나서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 속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계획을 ‘경쟁적으로’ 세웠다. 당시 계엄은 결국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었고, 38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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