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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져라 ‘마음의 여유’

<한겨레21>이 불 지핀 ‘기본소득 실험’ 시민단체 등 민간으로 확대…

이젠 자치단체·정부 나설 때
등록 2018-05-15 16:54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11월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21>이 주최한 기본소득 실험의 첫번째 주인공을 추첨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겨레21>은 민간 부문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다. 김진수 기자

2016년 11월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21>이 주최한 기본소득 실험의 첫번째 주인공을 추첨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겨레21>은 민간 부문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다. 김진수 기자

2017년은 ‘세계 기본소득 실험’의 해였다. 2016년 6월 ‘월 300만원 기본소득’을 안건으로 스위스에서 벌어진 찬반 국민투표의 영향이었다. 결국 부결됐지만 이후 이탈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등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불이 붙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엿보는 운동이 일어났다. 정부가 한발 물러나 있는 동안 언론과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작은 규모로 실험이 이뤄졌다.

달라진 삶의 질과 여유

민간에서 가장 먼저 깃발을 올린 곳은 이었다. 2016년 12월 은 카카오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를 통해 1천만원을 모금한 뒤, 만 18~34살 지원자 206명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1명을 뽑아 6개월간 월 135만원씩 지급했다. 수급자로 뽑힌 대학원생 임지은(27)씨는 2017년 7월 “삶이 여유로워진 게 제일 큰 변화”라고 에 밝혔다.

임씨는 당시 기본소득으로 받은 금액을 가죽공예, 온라인 퍼스널트레이닝(PT), 토익스피킹학원 수강, 책 구입, 공연, 스포츠 경기장 관람 등에 썼다. 그는 “예전에는 돈이 없어 못하겠다고 생각한 취미생활을 해보면서 ‘이건 앞으로 돈 없어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했다. 주말에 친구들을 자주 만나며 행복감이 올라갔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마음의 여유’는 모든 기본소득 실험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점이다. 대전, 강원도 춘천, 전북 등에서 한 실험들에서 공통으로 드러났다.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는 최저시급 6470원(2017년 기준) 이상의 돈을 후원한 177명 가운데 3명을 뽑아, 2017년 3월 ‘띄어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월 50만원씩 6개월간 기본소득을 지급한 것이다. 수급자로 뽑힌 김다영(25)씨는 인터뷰에서 “달라진 삶의 질과 여유”를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2017 춘천기본소득실험프로젝트’의 결과도 비슷하다. 춘천기본소득실험기획단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무작위 추첨으로 청년 2명을 뽑아 2017년 7월부터 월 30만원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6개월간 지급했다. 기금 360만원은 춘천 시민 165명이 후원했다. 수급자로 뽑힌 권명은(25)씨는 지역신문 과 한 인터뷰에서 “건강검진과 생필품·책 구입, 영화보기 등에 사용했다”며 “여가시간이 풍성해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수급자인 홍용희(36)씨는 “수입이 불안한 상태여서 생계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2017년 8월부터 진행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의 ‘쉼표 프로젝트’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26~29쪽 기사 참조).

재원 부족한 민간 실험의 한계

재원이 부족한 민간에서 이뤄진 실험이라 한계가 있긴 하다. 기본소득의 3대 원칙 ‘보편성, 무조건성, 충분성’에서 ‘무조건성’ 정도만 충족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의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무작위 추첨으로 1~4명의 적은 인원을 뽑아 돈을 지급했다는 점, 그 액수가 생계 유지엔 불충분한 월 30만~50만원었다는 점에서 보편성과 충분성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본소득의 효과와 가능성을 온전히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서한나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장은 “기본소득 실험을 눈으로 지켜본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모두 기본소득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으로 확장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한 건 경기도 성남시가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하다. 2016년 1월부터 시작했고, 현재 ‘청년배당’이란 이름으로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에게 매분기 25만원씩 지역화폐를 주고 있다.

반응은 예상 이상이다. 2016년 9월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 대상자 49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407명(81.7%)이었다. 2회 이상 청년배당을 받은 367명 중 압도적 다수인 350명(95.3%)이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기본소득 정책에 공감을 표한 응답자 407명 가운데 247명(60.7%)이 “기본소득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첫 번째 걸림돌로 ‘증세’를 꼽는 상황에서, 미래를 책임질 청년층이 증세 필요성에 선뜻 공감하고 나선 것이다.

‘포퓰리즘’ 공세도 넘어야 할 산

기본소득 실험은 이제 민간을 넘어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시도해봐야 할 차례다. 성남시와 비슷한 시점에 청년 대상 기본소득을 하려던 서울시는 보수 진영의 ‘포퓰리즘’ 공세에 한발 물러난 상태다. 소득수준이 높은 청년을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사용처를 구직활동 등으로 제한해, 기본소득의 보편성과 무조건성 원칙을 충족하지 못했다. 기본소득이라기보단 ‘청년 구직자 지원금’에 가까운 형태다. 경기도와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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