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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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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으로 짓는 ‘성경의 나라’

기본소득 1200만원 ‘헌금’한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목사…

“기본소득은 재산 나눠가진 초대교회와 가장 닮은 사회정책”
등록 2018-05-15 16:50 수정 2020-05-03 04:28
기본소득 1200만원을 지원한 전주화평교회의 이영재 목사는 “기본소득은 재산을 나눠가진 초대교회와 가장 닮은 사회정책”이라고 말한다.

기본소득 1200만원을 지원한 전주화평교회의 이영재 목사는 “기본소득은 재산을 나눠가진 초대교회와 가장 닮은 사회정책”이라고 말한다.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엔 불평등이 없다고 한다. 성경이 증거한다. ‘하나님 나라’의 원형, 에덴동산엔 불평등이 없었다. 교회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공동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엔 불평등이 있다.

“한국 교회, 특히 대형 교회들은 불평등에 편승하고 있어요. 1% 상류층이 몰려 사는 강남·분당 일대에 교회를 짓고 자유를 강조하며 평등 운동을 좌익 운동으로 보는 거죠.” 진보적 사회학자의 발언이 아니다. 전북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담임목사가 지난 5월8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헌금으로 마련한 기본소득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의 기본소득 실험을 이끈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와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정우주 대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의 기본소득 실험을 이끈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와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정우주 대표.

이 목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본업에 천착하고 있다. 2016년 7월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세계 총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뒤부터, 그의 고민은 ‘기본소득’에 닿아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지난해, 전주화평교회는 성경에 근거해 기본소득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첫발을 내디뎠다.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이하 전북네트워크)의 기본소득 실험 ‘쉼표 프로젝트’ 예산 1200만원 전액을 지원한 곳이 전주화평교회다. 주민 대다수가 노인인 가난한 동네, 등록신자 100여 명에 출석신자 70여 명인 작은 교회다. 오로지 기본소득 헌금만으로 전체 예산을 마련한 것은 ‘놀라운 역사’다.

담임목사가 기본소득에 적극적이지만, 전주화평교회의 헌금이 이 목사의 의지로 강행된 것은 아니다. 전주화평교회는 기본소득을 교회의 ‘사회선교 과제’로 정하기에 앞서, 성경에 비춰 인문학을 공부하는 평신자 모임을 만들었다. 강도 높은 학습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위원회가 꾸려졌다. 기본소득 헌금 항목 신설도 위원회가 제안했고, 교회 내 정식 승인 절차를 거쳐 결정됐다.

지난해 전북네트워크 설립에도 전주화평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정우주 전북네트워크 대표는 전주화평교회 교인이다. 정 대표는 교인과 전북 지역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했고, 운영위원회를 조직했다. 현재 월 5천~1만원씩 회원비를 내는 회원 58명과 운영위원 6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보면 미약하지만, 지역에서 생긴 신생 시민단체치고는 참여가 활발한 편이다. 정 대표는 5월8일 인터뷰에서 “전북네트워크는 자발적으로 봉사하려는 각계 시민이 모였고, 운영위원 대부분은 비기독교인”이라고 설명했다.

성경에 있는 기본소득 근거

기본소득을 설명할 때, 이 목사는 좀처럼 우회를 모르고 직진했다. “평등 대신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 개신교의 주장은 잘못됐다. 기본소득은 성서적 근거가 충분하며, 교회가 스스로를 정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교회가 기본소득에 앞장서면 한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줄곧 직진하던 이 목사가 잠시 돌아갈 때는, 사람들이 혹여 기본소득을 ‘물질만 나누는 것’으로 오해할까 싶어서였다. 이 목사는 “이념적 지향이 혼란에 빠진 시대, 기본소득은 ‘가진 것을 내려놓고 나누자’ ‘전 국민이 세금을 내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같은 비율로 나누자’고 제안한다”며 “단순한 개념이지만 영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은 ‘인간의 성장’이며, 그곳에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려는 기독교의 목적이 있고 기독교의 꿈이 서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성직자답게 “교회의 사회참여 방향과 원리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선교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만큼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구약학 박사이기도 한 이 목사는 “이 세계의 모든 토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이 토라(율법서)의 기본 선언”이라고 소개했다. 성경에 따르면, 자연재는 하나님이 모두에게 사용하라고 주신 공유자산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위기 25:23)는 율법 아래 사회부조와 이웃사랑을 실천했던 원교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신명기 15장을 관통하는 대원칙도 “가난한 자가 없게 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백성들은, 당시 왕이 지배하던 권력·경제 불평등 체제를 무너뜨리는 대안사회를 이뤘다.

신약성경에서도 가난한 포도원 일꾼들에게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동일한 품삯을 주는 것이 예수의 정의관이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사도행전 4:32)한 초대교회도 있었다. 사도행전 4장 32~37절은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교회의 모범’으로 자주 인용된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농촌인구 유출 막는 안전망

기독교 언어로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모든 사유재산을 내려놓고 세속 국가들이 보장하는 소유관계를 완전히 부정했다. 빈부 격차가 심각하고 주변에 실직자가 널려 있고, 가난한 자가 많은 현재의 공동체는 분명 반성경적이다. 이 목사는 “성경은 명백히 공동소유, 공동분배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나 제도권 교회는 실천 불가능하다며 이를 경원시해왔다”며 “기본소득은 초대교회가 재산을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었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사회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는 이월금이 800억원이나 있는데,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한 주에 몇억원씩 헌금이 들어온다는데, 서초구 사랑의교회는 그렇게 부자인데, 그 많은 재산을 기본소득으로 나누면 성경 말씀도 실천하고, 전세계가 기독교의 새로운 변화를 주목할 테고, 개혁교회의 큰 진보가 이뤄질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6개월간의 ‘쉼표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뒤, 참가자 4명은 각자의 형편에서 유의미한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정 대표는 “예산 부족으로 실험 참가자 수가 적어 처음부터 일반화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참가자들이 주관적으로나마 ‘일상의 여유 회복’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우리를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전북처럼 청년인구와 농촌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선 기본소득이 인구 유출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다. 정 대표는 “전북에서도 25~29살 인구가 다른 도시로 많이 빠져나가고 농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기본소득을 주면 지역에 살면서 좀더 안정적으로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면 단위 교회는 사람이 없어 교회 자립이 불가능한데,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목회자가 농촌을 지키는 경제적 기초가 될 수 있다”고 교회 차원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지방의회에 조례 제정 촉구

전주화평교회는 교회들이 앞장서 주변 읍·면·동 단위에서라도 상징적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장기적으로는 전북도의회에 기본소득 조례 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다만 재정자립도가 30% 수준으로 너무 낮아 당분간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전북네트워크는 차선으로 전주시가 600여 명에게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간담회에서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뜻의 답변을 했다고 정 대표가 전했다.

전북네트워크는 6·13 지방선거 국면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한테 기본소득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다. 답변을 정리해 발표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압박하고 지속해서 캠페인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전주=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전주화평교회의 소박한 기본소득 실험


기본소득 헌금 내고 모두가 나눠


전주화평교회는 지난해 5월부터 또 하나의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다달이 희망하는 교인들이 기본소득 헌금을 내고, 헌금을 냈든 안 냈든 전 교인이 똑같이 ‘엔(N)분의 1’로 나눠갖는다. 교인 1인당 분배되는 금액은 1만~1만5천원에 불과하지만, 교회 안팎으로 초대교회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실험이다.
처음엔 낯설어하는 교인이 많았다. 정우주 집사(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대표)는 “‘난 낸 것도 없는데 왜 주느냐’며 어색해하는 분이 많았지만, 지금은 교회의 한 문화로 정착했다”고 소개했다.
송국현(40)씨 가족은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준다’는 기본소득 원칙에 따라, 부부와 6살·4살 두 딸 등 4명이 모두 교회에서 기본소득을 받는다. 수학 강사였던 송씨와 간호사였던 아내가 도시 생활을 접고 최근 농촌에 정착한 탓에 기본소득 헌금을 많이 내지는 못한다. 한 달에 1만원 정도 ‘아내 몰래’ 내고, 가족 합산 4만원 정도를 받는다.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큰돈은 아니어도 중산층 이하 가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체감’을 하고 있다. 송씨 가족은 기본소득 전액을 여행 목적의 저축통장에 넣는다. 송씨는 “2년 정도 모으면 100만원 정도 될 텐데, 아이들에게 여행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통해 기본소득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앙인으로서 기본소득이 성경 말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사회적으로는 특히 저소득층에게 ‘금액 이상’의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중·고교생 교인들의 반응은 더 뜨겁다. 매월 기본소득을 배분하는 첫쨋주 일요일엔 중등부 출석률이 100%로 치솟는다. 기본소득 실험 전에 5~6명이었던 중등부 교인이 최근 18명으로 늘기도 했다. 고1 이우진(17) 학생은 “처음엔 공짜 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성도님들이 헌금을 내서 공평하게 나눠주신 거니까 헛되이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나중에 기본소득 헌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 내내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 35만~40만원을 번다. 용돈은 넉넉한 편이지만 기본소득의 반을 떼어 저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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