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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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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공백 메운 유해물질

대기유해물질인데 배출 기준조차 없는 물질 PAHs 등 16종이나…

아스콘 발암물질 논란 환경부 뒷북 행정이 초래한 정책 참사
등록 2018-01-23 14:02 수정 2020-05-03 04:28
1월16일 <한겨레21>이 방문한 제일산업개발 품질관리실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고체가 아스콘 샘플이다.

1월16일 <한겨레21>이 방문한 제일산업개발 품질관리실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고체가 아스콘 샘플이다.

“솔직히 정부가 원망스러워요.”

지난 1월16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연현마을에 있는 제일산업개발에서 만난 공장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공장이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것에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스콘 공장으로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고 있는 연현마을 엄마들이 할 법한 말을 공장 관계자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나 벤조피렌이 대기에 배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랐어요. 좀 무지했죠. 최근 건강 문제가 제기된 뒤 알게 된 게 많아요.”

벤젠·벤조피렌 지난해 첫 검사

지난해 말 경기도 지역언론은 제일산업개발이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발암물질인 PAHs를 배출해 ‘공사 중단’이라는 행정처분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기도는 행정처분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리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누락했다. 제일산업개발이 PAHs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대기오염물질 배출 규제를 받는 전국 5만여 사업장 가운데 PAHs 방지시설을 설치한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대기환경보전법과 하위 법령들을 토대로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현행법상 PAHs는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배출 허용 기준을 설정해 규제하는 물질이 아니다.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은 물질별로 제시된 배출 허용 기준을 근거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환경 규제를 받는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관계자는 “PAHs는 특별히 유해한 물질인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돼 있지만, 기준치가 없기 때문에 해당 물질 배출이 곧 위법하다고 판단하기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런 문제가 있어 올해 안에 PAHs의 기준치를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건강한 연현마을을 위한 부모 모임’이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제일산업개발 대기오염도 시험성적서를 보면, 2015년까지 시험 항목은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단 3가지였고, 2017년 3월에야 △벤젠 △총탄화수소 △벤조피렌 △PAHs를 새로 검사한 것으로 확인된다. 경기도의 의뢰를 받고 검사를 실시한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현행법상 아스콘 공장에 대한 배출 허용 기준은 2015년까지 검사한 3가지 물질에만 있다. 나머지 항목은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검사하지 않았다. 이번에 사회적으로 아스콘 공장이 문제가 되고, 경기도의 요구가 있어 분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은 대기환경보전법이 배출 규제를 하는 사업장의 대기오염도 검사를 맡고 있는 검사기관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PAHs와 관련해 검사하는 대기배출 사업장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원래 아스콘 공장은 허가 대상 시설이 아니라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3가지에 대해 신고만 하면 인가가 나는 시설이다. 520개 아스콘 공장 가운데 3개 물질 말고 다른 물질과 관련해 허가를 받은 시설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민원이 발생한다고 단발성 시험으로 시설 폐쇄 명령이 나오니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기준 마련 손 놓은 환경부
제일산업개발 아스콘 공장 내부의 모습. 1984년부터 아스콘을 생산해왔지만 환경부를 비롯한 어떤 관리·감독 기관도 공장 가동 중에 배출되는 발암물질을 규제하지 않았다.

제일산업개발 아스콘 공장 내부의 모습. 1984년부터 아스콘을 생산해왔지만 환경부를 비롯한 어떤 관리·감독 기관도 공장 가동 중에 배출되는 발암물질을 규제하지 않았다.

아스콘 공장에서 발암물질이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은 사업주뿐만이 아니다. 관리·감독 기관인 지자체도 까맣게 몰랐다. 경기도 환경안전관리과 관계자는 “(PAHs 같은) 그런 물질이 나올 줄 몰랐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국회의원이 요청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을 통해 체크하게 된 것이다. 제일산업개발을 비롯해 지난해 경기도 의왕·평택·용인 지역 아스콘 공장 4곳만 조사했는데, 다른 아스콘 공장에서도 배출될 것이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관내 업체들을 대상으로 측정해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대기환경보전법에 숨겨진 거대한 행정 공백은 의왕경찰서, 안양 연현마을 등 아스콘 공장을 둘러싼 건강 피해 사건의 ‘거대한 공범’이다. PAHs가 대기환경보전법상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법은 특정대기유해물질을 “저농도에서도 장기적인 섭취나 노출에 의하여 사람의 건강이나 동식물의 생육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위해를 끼칠 수 있어 대기 배출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물질”이라고 정의한다. 환경부는 지정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사업장의 실질적 관리·감독을 할 수 있는 ‘배출 허용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현재 배출 허용 기준이 마련된 특정대기유해물질은 35종 가운데 19종뿐이다.

환경부는 배출 허용 기준이 없던 특정대기유해물질 16종과 관련해 올해(8종·PAHs, 테트라클로로에틸렌, 1,2-디클로로에탄, 클로로포름, 아크릴로니트릴, 스티렌, 에틸벤젠, 사염화탄소)와 내년(8종·아세트알데히드, 에틸렌옥사이드, 프로필렌옥사이드, 베릴륨화합물, 히드라진, 아닐린, 이황화메틸, 벤지딘) 2년에 걸쳐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6년에 배출 허용 기준 설정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었다”며 올해 배출 허용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전남 남원 내기마을과 같은 주민들의 건강 피해가 불거진 뒤 이뤄진 ‘뒷북 행정’은 아니라고 했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관계자는 이어 배출 허용 기준치 설정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처럼 국가적으로 배출량이 방대한 대기오염물질 쪽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에 유해성이 있지만 소량인 (PAHs 같은) 물질 관리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런 현실에 대해 “미량이지만 위험한 물질로 지정해놓고 배출 허용 기준치가 없는 조금 이상한 상황이다. 대기오염물질의 유해 정도를 실제 평가하고 규제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는 일에서 인력, 시설, 기술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생 아스콘 사용 장려 뒤 규제 없어

노인과 아이, 여성들의 건강에 해를 끼친 아스콘 발암물질 논란은 환경정책 관련 주무 부처의 뒷북 행정이 초래한 ‘정책 참사’다. 그런데 책임은 아스콘 공장 사업주가 홀로 떠안은 모양새다. 아스콘 공장이 연간 생산하는 2500만~2800만t의 아스콘 대부분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아스팔트의 도로 유지·보수에 사용하는 ‘관급물량’이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고속도로에는 일부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가 아닌 일반 콘크리트를 쓰지만 일반적인 도로에는 맞지 않다. 일반 도로는 하수관 공사 등 깼다 부수고 다시 포장하는 등 수시로 보수해야 하는데, 아스콘이 가장 용이하다. 도로 포장률이 80%에 이르기 때문에 신규 도로 수요는 없지만 유지·보수 물량으로 한 해 2500만t 이상 꾸준한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굳는 아스콘의 특성상 아스콘 공장은 부지에서 1시간30분~2시간 거리에 있는 도로의 공사 물량을 책임진다. 연현마을 제일산업개발은 안양, 과천, 의왕, 평택과 서울 서남부 권역의 도로에 아스콘 물량을 댔다. 제일산업개발 관계자는 “안양과 의왕, 수원을 지나는 1번 국도를 포장할 때 우리 회사가 아스콘 물량을 댔다”고 말했다.

일반 아스콘보다 주민들의 건강에 더 큰 피해를 주는 재생 아스콘은 정부가 권장한 사업이다. 환경부는 2004년 10월 ‘건설 폐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1km 이상 도로 공사 등에는 재생 아스콘 사용을 의무화했다. 제일산업개발을 비롯한 상당수 일반 아스콘 업체들이 재생 아스콘 공장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도 2004년부터다. 2008년엔 재생 아스콘으로 재활용되는 폐아스콘의 양을 당시 1.6%에서 2020년 50%까지 확대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이 재개정됐다. 환경부는 이 과정에서 아스콘 공장의 환경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다. 제일산업개발은 지난해 사용 중지 명령을 받은 뒤 재생 아스콘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연현마을 엄마들은 또 어디에 구멍이 뚫려 있는지 두렵다. 엄마 ㄱ(41)씨는 지난해 경기도가 제일산업개발에 실시한 대기오염도 검사에서 벤조피렌이나 PAHs보다 일산화탄소 수치가 높게 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의 작은아이는 2014년 3월 중추신경 손상에 따른 뇌압 상승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시력을 잃은 적이 있다. 지금은 시력을 일부 회복했지만, 딸아이는 온몸을 압도하는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많다. ㄱ씨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중추신경계가 손상된다고 하더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산화탄소 수치 주변 비해 300배

ㄱ씨가 경기도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지난해 4월 제일산업개발 대기오염도 시험성적서를 보면 당시 제일산업개발 배출구에서 측정된 일산화탄소 배출 수치(210.3ppm)는 연현마을과 가까운 안양2동의 일산화탄소 1월 평균 수치(0.7ppm)의 300배에 이르렀다. 배출구에서 나와 대기에서 희석되는 걸로 알지만, 연현마을엔 대기오염 측정소가 없는 탓에 ㄱ씨는 부정확한 수치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상 아스콘 공장은 일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받지 않는다. ㄱ씨는 환경부에 일산화탄소 배출 규제 대상 시설에 아스콘 공장을 추가해달라는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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