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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남순례길에 노란 리본을!

‘1968 꽝남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베트남 호이안 인근 꽝남순례길 1코스를 소개합니다
등록 2018-01-18 14:49 수정 2020-05-02 19:28
지난해 12월30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쭝동 ‘하미 위령비’. 출입문에 베트남어로 ‘미안해요, 베트남’이라고 적힌 노란 리본이 매여 있다.

지난해 12월30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쭝동 ‘하미 위령비’. 출입문에 베트남어로 ‘미안해요, 베트남’이라고 적힌 노란 리본이 매여 있다.

여기저기서 한국어로 호객 행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 20불! 오빠!” 20달러 내고 배 한 번 타란 소리였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심코 투본 강변을 걸었다. 강 건너 화려한 등불들이 강에 붉고 넓은 물비늘을 입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발걸음은 왠지 호사로웠다. 지난해 12월29일 호이안 밤거리였다. 16~19세기 무역항으로 번창한 호이안은 옛 도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에는 요즘 한국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총 소요 시간 약 5시간50분

전날 초저녁 호이안시 공동묘지 안에 있는 껌안 학살 희생자 집단묘지에서 본 비문의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우리 전체 당, 전체 군대, 전체 인민들은 남조선 병사들에 대한 원한을 뼛속 깊이 새기며… 이 원한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잊지 않겠노라.’ 1968년 1월30일 호이안시 껌안구 안떤동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이 민간인 11명을 세워놓고 총을 난사한 모래언덕에는 지금,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서 있다. 호이안 옛 도시에 어둠이 내리기 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흔적을 찾아 순례길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한베평화재단과 이 수차례 답사 끝에 ‘꽝남순례길 1코스’를 만든 이유다.

꽝남순례길 1코스는 1968년 1~2월 호이안 인근 마을에서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 청룡부대(제2해병여단)가 민간인들을 학살한 세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다. 3개 학살이란 껌안 학살(1월30일, 11명 학살), 하미 학살(2월22일, 135명 학살), 하꽝 학살(2월29일, 36명 학살)을 이른다. 세 사건 모두 위령비와 집단묘지가 있다. 청룡부대가 호이안 지역에 주둔한 직후인 1968년부터 꽝남성 일대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흔적은 이렇게 위령비와 묘지로 남아 있다.

순례길 이동 시간은 차로 넉넉잡아 1시간50분이다. 출발점(꽃집)을 제외하고, 8곳의 장소에 30분씩 머문다고 가정하면 4시간이다. 총 소요 시간은 약 5시간50분. 오전 10시에 출발하면 오후 4시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다(점심 식사를 위한 식당도 순례길 중간 지점에 하나의 장소로 정했다). 이동 수단은 렌터카(베트남에선 운전기사를 같이 붙여준다)나 도보(일찍 출발)를 추천한다.

학살 생존자 할머니의 유언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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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은 유심칩, 향, 라이터, 불쏘시개용 종이 여러 장, 꽃, 리본용 노란 끈이다. 유심칩은 스마트폰 구글 지도를 이용할 때 필요하다(위령비 등의 위치는 ‘1968 꽝남대학살 인터넷 지도’(goo.gl/cwvSCC)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항 환전소 주변에서 약 1만원에 유심칩을 사서 새로 끼우면 15~30일 데이터를 쓸 수 있다. 향과 꽃은 참배할 때 필요하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한번에 향을 많이 피운다. 향에서 나오는 연기가 위령비와 묘지를 많이 덮을수록 고인에게 좋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서너 명이 한곳에서 약 100개짜리 한 묶음(약 1천원)을 쓰면 적당하다. 꽃을 샀다면 위령비 단상 옆에 놓는다. 꽃은 한 단에 2천~3천원이다. 참배 방법은 어렵지 않다. 향을 두 손에 모아 들고 허리를 굽혀 3차례 절한다. 잠시 묵념하고 향로와 무덤 곳곳에 향을 나눠 꽂으면 된다.

노란 리본은 베트남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플루메리아(베트남어로 ‘호아쓰’)의 노란 꽃을 보고 떠올렸다.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또는 참전군인으로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면 노란 끈 양 끝에 각각 영어와 베트남어로 ‘미안해요, 베트남’(Sorry, Vietnam· Vietnam)이라 적고 순례지 철문(하미 위령비)이나 주변 나무에 리본 모양으로 묶는다. 꼭 리본 모양이 아니어도 좋다. 끈은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 간혹 꽃집에서 구할 수도 있다.

먼저 껌안, 하미, 하꽝 위령비를 차례로 방문한다.(②③④) 세 사건 위령비가 있는 곳은 학살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하미 위령비 뒷면은 연꽃 무늬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2001년 건립 때 주민들이 뒷면에 절절하고 적나라하게 학살을 묘사한 비문을 넣었지만,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비문을 덮었다고 한다. 다음은 덮인 내용의 일부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 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친 것보다도 더 참혹했다.’

청룡부대 여단본부 옛터(⑤)엔 출입구 흔적인 돌기둥 2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 주민은 청룡부대 옛터에 현재 리조트가 건설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곳에서 300m만 걸으면 해변이다. 하미 해변 식당(⑥)은 해산물 요리점 응옥꾸이 식당이다. 100m 앞 바다가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고 팜티호아 할머니(⑦)는 하미 학살 생존자다. 학살이 벌어질 당시 나이는 41살이었다. 한국군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던진 수류탄에 두 발목을 잃었다. 딸(5), 아들(10), 사촌올케와 그의 아이 셋은 목숨을 잃었다. 생전 하미 학살에 대해 여러 증언을 남긴 팜티호아 할머니는 2013년 6월16일 타계하기 전, 가족에게 유언을 남겼다. “과거의 원한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갈 거야. 그러니 나 없어도 한국 친구들이 찾아오거든 잘 대해줘.”

순례길 마지막 장소 ‘껌안 집단묘’

하꽝 학살 희생자 집단묘지(⑧)는 민간인 학살 희생자 집단묘지로는 이례적으로 열사묘역에 이장됐다. 다른 열사묘들과 달리, 고인들의 이름 없이 ‘집단묘’라고만 쓰여 있다. 하꽝 학살은 한국군이 하꽝촌 마을 주민들을 딘씨 사당에 모아놓고, 사당 기둥에 지뢰를 놓고 기름을 부은 뒤 총을 난사해 36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껌안 학살 희생자 집단묘지(⑨)는 호이안시 공동묘지 맨 뒷줄 오른쪽에 있다. 순례길 마지막 장소다. 다시 호이안 중심가로 갈 시간이다. 아쉬운 기분이 든다면 마지막 노란 리본을 묶고 떠나자. 호이안에는 아직 밤이 오지 않았다.

꽝남(베트남)=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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