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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용기가 될게

‘고발자5’ 주인공들 인터뷰…
“힘들지만 성폭력 문제 바로잡는 느낌” “다른 피해자들, 우릴 보고 용기 얻길”

제1194호
등록 : 2018-01-02 10:09 수정 : 2018-01-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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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 개의 싸움이 있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지난 한 해를 회상한다면, 너무 가혹한 축약일까.

<한겨레21>은 2017년을 떠나보내고, 2018년을 맞으며 세상과 힘겹게 ‘싸우는 여자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세밀화 세 편을 준비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것은 다소 지루한 싸움으로 보일지 모른다. 1980년대에 가정 내 ‘아내 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낸 여성운동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을 제정함으로써 가정폭력이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일’이 아님을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계기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2002년 1월 전북 군산 개복동 성매매집결지에서 일어난 처참한 화재 참사 이후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됐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로 이어지는 20여 년의 입법 투쟁 뒤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법이 아니라’ 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힘’”(<한국여성인권운동사2: 성폭력을 다시 쓴다>, 한국여성의전화 기획·정희진 엮음)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싸움은 2017년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특성과 결합해 폭발했다. 미국 영화계 인사들은 10년 전 자신이 겪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성추행·성폭력 경험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했다. 이들은 SNS 등을 통해 ‘나도 그랬어’라는 ‘미투 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에서도 성추행·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는 ‘해시태그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미국 언론 <타임>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올해의 인물’로 ‘미투 운동’을 촉발한 여성 당사자들을 선정했다.

한국에서 진행된 성폭력 고발은 미국과 같은 ‘해피엔딩’을 가져오지 않았다. 힘겹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은 여성들은 대부분 무고·명예훼손 등 역고소를 당하며 가혹한 법정 싸움을 감수하고 있다. 물론 긴 고민 끝에 고발을 선택하고, 담대하게 싸워, 법정에서 가해자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이들도 있다. 여성 문인 138명, 후원자 2321명이 동참한 <참고문헌 없음> 프로젝트의 출발점 ‘고발자5’가 그들이다.

<한겨레21>은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고발자5’ 당사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고통에서 벗어나 ‘피해자 낙인’ ‘피해자의 전형성’을 거부하며 더욱 건강해지고 있었다. 아니, 더욱 건강해지려 노력하고 있었다.

<한겨레21>이 조명한 두 번째 여성들은 디지털성범죄와 싸우는 ‘사자단’이다. 20대 여성(2017년 현재)들로 꾸려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는 낮엔 아르바이트로 월 50만원을 벌고, 오후와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엔 ‘사이버성폭력’이 뭔지 알리고, 사이버성폭력의 입법·정책적 대안을 정부기관에 제안하고, 제도화를 노력하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사성을 비롯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난해 9월26일 국무조정실과 14개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들의 싸움은 2018년에도 더욱 확장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영상콘텐츠+서명운동+펀딩의 삼위일체 패키지 캠페인 ‘Here I am’(내가 여기 있어요) 을 추진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장은선 <닷페이스> PD를 만났다. 이들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하려는 성매수남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조명하는 방식이다. 2018년에도 ‘싸우는 여자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2017년 12월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발자. 박승화 기자

“미성년자였던 저희들에게 한 시인이 행한 #문단_내_성폭력을 고발합니다.”

2016년 10월 22일 트위터 계정 ‘고발자5’가 첫 목소리를 냈다. 자신을 습작생 1, 2, 3, 4, 5로 명명하고 B시인이 자신들을 창작실로 불러 성추행을 하고 성관계를 요구한 사실을 고발했다. 이틀 뒤 습작생6이 합류했다. 그도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적은 글을 올렸다. 6명의 고발자는 경기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이다. 이들이 고발한 B시인은 고교 재학 시절 문창과 실기 교사였던 시인 배용제(53)씨다. 이들의 고발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불씨가 됐다. 문단을 넘어 영화·공연 예술계로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그들의 목소리를 응원하는 연대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2017년 2월20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문단_내_성폭력’ 싸움과 연대를 기록하고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한 출간 프로젝트 ‘참고문헌 없음’ 모금이 진행됐다. 참고문헌 없음은 여성의 목소리가 삭제된 기존 문헌에 맞서 여성의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에 목표금액의 309%인 6200여만원이 모였다. 후원에 참여한 이들은 2321명. 그 연대의 결실로 책 <참고문헌 없음>이 2017년 5월 출간됐다. 이 책의 인세와 수익은 ‘#문단_내_성폭력’ 관련 법률 비용과 의료비로 쓰였다.

법률 비용을 지원받은 고발자들은 배씨를 상대로 법적 싸움을 하고 있다. 2017년 9월12일, 1심 재판부는 배씨에게 미성년 제자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피고인 배씨는 항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지 1년이 지났다. 여전히 고발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의미일까. <한겨레21>은 2017년 12월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고발자5’의 습작생1과 습작생6을 만났다.

배용제에게 1심 징역 8년 선고

‘고발자5’는 2016년 10월22일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처음 올렸다. 트위터 ‘고발자5’ 화면 갈무리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습작생6 2017년 12월에 이어 2018년 1월 항소심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경찰서에서 9시간 진술하고 법정에서 다시 가해자 얼굴을 대면하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시간은 치유의 과정이었다. 내 손으로 (성폭력 문제를) 바로잡는 느낌이다.

습작생1 처음에는 법적 조처까진 안 하려고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저희를 노려보고 한숨을 쉬고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가해자를 보고, ‘저 사람은 본인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이런 법적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는 또 이런 일을 저지르고 다녔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을 고발하게 된 이유는.

습작생1 우리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전에 SNS에서 벌어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봤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글을 보고 우리도 (고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습작생6 그(트위터) 공간에는 누군가가 올린 글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이 우리에게 (성폭력을 고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트위터에서 고발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한 적 있나.

습작생1 2015년 3월 (같은 대학 선배) 남성 문인에게 배씨로부터 (성폭력)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가 한 말은 “너도 잤어?”다. 그에게는 그게 가십거리나 흔한 일 같은 것이었다. 용기를 내서 말해도 ‘남들은 이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한 번 더 상처받았다.

습작생6 정신보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말만 던지고 일을 보러 나갔다. 내 피해 사실을 어렵게 말한 건데 남한테는 그것이 명백한 피해가 아니라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일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 상담도 받았는데 “증거도 없는데 재판할 수는 없다”는 말만 듣고 나왔다. 상담이 5분 만에 끝난 뒤 무기력증에 빠져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때 ‘고발자5’의 고발이 없었다면 난 그냥 (성폭력 피해 사실을) 개인적인 아픈 경험으로 묻고 살았을 거다.

가족에게도 못한 그 이야기

‘고발자5’의 고발자들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습작생1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 (가해자) 그의 얼굴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걱정하니까 미안해서 말을 못했다. 그런데 ‘고발자5’의 다른 고발자들에게 그것을 말하면 이해하고 위로해준다.

습작생6 다른 연대자들과 다르다. ‘고발자5’의 고발자들과는 서로 얼굴을 알고 이야기할 수 있다. 위로가 되는 존재들이다.

고발자로 나서게 된 계기는.

습작생1 세상을 향해 힘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직까지 가족에게도 못한 그 이야기를.

습작생6 대학교 1학년 때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나처럼 피해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 그때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피해당한 날짜를 알게 됐는데, 순간 예전 일이 기억났다. 그날은 (가해자가) 나에게 창작실에 혼자 오라고 한 날이었다. 내가 핑계 대고 안 간 날 (가해자가) 그 친구를 부른 거다. 미안했다. ‘그때 내가 용기를 냈더라면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배용재씨는 2008년 3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고양예고 문창과 시 창작 과목 전공 실기 교사로 근무했다. 그 당시 배씨는 “시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나는 너의 가장 예쁜 시절을 갖고 싶다”며 미성년 학생의 가슴을 만지는 등 강제 추행했다. 지방에서 백일장 대회가 열린 날에는 “부모님께 백일장이 늦게 끝나니까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말해라”고 시킨 뒤 학생을 창작실로 불러 성폭행했다.

배씨는 창작 이론과 실기 지도와 더불어 입시 상담을 담당했다. 수시 전형을 통해 입시를 준비했던 문창과 학생들은 그의 범행에 맞서기 쉽지 않았다. 수시 전형으로 입학하려면 문예창작대회 수상 경력이 필요한데, 배씨에게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의 추천서를 써줄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1심 판결문을 보면, 배씨는 평소에 피해자들에게 “‘내게 배우면 대학에 못 가는 사람이 없다. 나는 편애를 잘하니 잘 보여라’거나 ‘문단과 언론에 아는 사람이 많다. 사람 하나 등단시키거나 문단에서 매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며 문단 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인정하며 “피고인은 피해자들과의 ‘관계적 요인’을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고 이에 대한 피해자들의 항거와 반항을 점차 무력화하는 데 활용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로 낙인찍는다”

성폭력 고발하고 1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습작생1 내게 가장 중요한 19∼20살 때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끝이 없는 생각이 들 때면 힘들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거나 안 좋은 상황에 처하면, 나만 혜택을 받은 것만 같아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습작생6 처음에 성폭력을 당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나중에 성폭력인 걸 인지했을 때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연 것 같았다.

지난해 9월 배씨가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습작생6 법정에서 1심 선고를 직접 들었는데 얼떨떨했다. 당시 가해자 표정이 안 좋은 걸 보고 (형량이) 잘 나온 것 같았다. 다들 “좋은 선례가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형이지만 성범죄에 엄격한 나라에서는 중형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범죄를 엄격히 처벌하게 하는 움직임이 필요한 것 같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어떻게 느끼나.

습작생1 피해자로 낙인을 찍는다. ‘피해자니까 불행했을 것이다, 건강하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보는 것 같다. 가끔 즐거울 때도 있는데 그런 모습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습작생6 대중이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건) 불쌍한 피해자 아니면 꽃뱀,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자기 내면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습작생1 이 일이 내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자책을 멈추게 됐다. 건강해지는 것 같다.

습작생6 일단 용기를 갖고 움직이면 뭔가 시작되는구나 싶다. 문제를 명확하게 직면하는 것, 그게 한 사람의 삶에 큰 의미가 된다.

“지금 담담하게 글을 쓰고 누군가의 힘이 되고 싶어 하는 나 또한 아직도 아프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며 악몽을 꾼다. 하지만 이게 당연한 거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며, 힘들 때 빛처럼 내려오는 손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참고문헌 없음> 고발자b의 글 중에서)

습작생1과 습작생6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며 그 경험을 담아낼 자신의 언어를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고발자’라 이르며 변화와 연대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 고발한 1년 전과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성폭력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사회에서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공개할 수 없다. 신상정보가 알려진 뒤 받아야 할 ‘2차 피해’ 때문이다. 얼굴 없는 고발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함에도 인터뷰에 응한 것은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서다. <한겨레21>의 인터뷰에 응한 ‘고발자’들이 앞선 이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듯, 이번엔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한다.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고발자5’ 지지하는 연대모임 ‘탈선’

문학하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탈선’의 운영진 박지원씨, 오빛나리씨, 정민재씨(왼쪽부터). 류우종 기자
“가해 지목인 B시인은 문학적 성취를 위해 ‘탈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로지 성착취를 합리화하기 위해 쓰인 언어입니다. 하지만 이제 ‘탈선’은 우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 우리가 새롭게 쓰는 탈선의 의미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 나아가자는 의지와 약속입니다.”

2016년 11월11일, 경기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이 ‘탈선’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이들은 고양예고 실기교사였던 배용제 시인이 제자들을 성추행, 성폭행해 왔음을 처음 고발한 트위터 계정 ‘고발자5’를 지지하기 위해 1년 전 처음 모여 목소리를 냈다. 107명이 탈선의 지지자로 참여했다. 오프라인에서 ‘고발자5’를 위한 연대의 장을 연 것이다.

이후 탈선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2017년 12월22일에 만난 탈선의 운영진 오빛나리(26)씨는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그 뒤의 구조를 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씨가 지난 1년간 여러 공론장에서 위계질서에 의한 성범죄가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단 권력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날도 ‘고발자5’가 폭로한 배용제 시인의 성범죄에 대해 “기성 문인이자 스승이라는 위계 권력과 ‘문학’과 ‘예술’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저지른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씨와 함께 탈선에 참여 중인 정민재(26)씨도 “가해자 한 사람을 징벌함으로써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성착취가 거듭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단에서 이뤄지는 개별적인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것을 넘어 ‘구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문학계 내부에서도 남성중심적인 문단 문화와 성별적 위계를 시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똑 부러진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탈선 참가자들은 ‘고발자5’를 지지하고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 과정에서 ‘연대자’로 성장했다. 오씨는 “문학한다는 건 아주 사적인 작업이라고 배웠어요. 세상사를 멀리 두고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글을 쓰는 게 멋진 일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를 위해 ‘내가 내 방에서 나올 필요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한다. 박지원(26)씨도 “남들은 ‘너네 몇 명이 목소리를 낸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고 말해요. 그것에 반기를 들고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보여줬죠. 그 과정에서 ‘난 혼자가 아니다’라는 연대감을 느꼈어요”라고 한다.

더불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생겼다. 정민재씨는 “그동안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 위해, 입시를 위해 기성문학을 따라 하는 글을 써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내 언어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쓰지 못한 거죠. 이제야 내 언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연대의 보폭’을 넓히려 한다.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의 모임이라는 울타리를 넘기 위해 ‘우롱센텐스’라는 새 이름을 단다. 전국 문창과 학생들 메일 주소록 만들기, 독립 문예지·웹진 발간, 유튜브 채널·팟캐스트 등 여러 소통 창구를 만들 계획이다. 1월12일에는 문창과 대학생들, 독립문예지 팀 등과 함께 ‘문단 내 성폭력 고발 후 1년,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라는 주제의 좌담회도 연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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