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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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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별’ 우버에 맞서라

블록체인 장착한 플랫폼 협동조합 잇따라 등장…

진정한 사이버 유토피아 시대 향한 첫걸음
등록 2017-12-05 06:54 수정 2020-05-02 19:28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1월14~17일(현지시각) 나흘 동안 열린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 폐막식 모습. 새로 선출된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게르코 회장(가운데 모자 쓴 이)과 물러나는 캐나다의 모니크 르루 전 회장(게르코 회장 오른쪽)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1월14~17일(현지시각) 나흘 동안 열린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 폐막식 모습. 새로 선출된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게르코 회장(가운데 모자 쓴 이)과 물러나는 캐나다의 모니크 르루 전 회장(게르코 회장 오른쪽)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우버는 글로벌 시장의 ‘데스스타(Death Star·죽음의 별) 플랫폼’이라고 한다. 데스스타는 영화 에 나오는 거대 우주 정거장. 가공할 화력으로 행성을 파괴하는 악의 화신이다. 우버는 페이스북보다 빠른 속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겨우 7년 사이에 전세계 300개 도시의 지역 택시사업을 파괴했다. 우버에선 운전자가 이익을 조금 가져가는 대신,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거대한 부를 독식했다. 무늬만 공유기업이고, 실상은 이용자들을 철저히 배제한다. 무시무시한 글로벌 독점기업이다.

우버에 맞선 택시 협동조합들

2016년 미국 뉴욕 거리에 주노(Juno) 택시가 등장했다. 이 택시는 고객과 운전자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우버 이상의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을 장착했다. 우버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정한 운전자들의 공유기업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버가 운전자가 받는 승차요금의 20~35%를 수수료로 떼는 데 비해, 주노는 10%만 받았다. 2026년까지 지분의 50%를 운전자 몫으로 돌린다는 계획도 실천에 옮겼다. 아쉽게도 주노의 ‘선한 실험’은 2017년 4월 택시회사 게트(Gett)에 인수되면서 중단됐다.

뉴욕의 주노는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고도의 디지털 기술을 채택한 새로운 ‘플랫폼 협동조합’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택시 운전자들은 2014년 ‘유니언 택시 협동조합’을 설립해 우버에 맞섰다. 조합원(출자자)인 운전자들은 서비스 품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모바일 플랫폼 구축에도 과감하게 투자했다. 유니언 택시의 운전자들은 차량 임대료를 경쟁사보다 3분의 1 덜 부담하면서, 더 많은 급여를 받고 더 적게 일한다.

2013년 설립된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유니언캡(Union Cab) 또한 뛰어난 디지털 플랫폼을 탑재한 협동조합 택시회사다. 유니언캡의 차량은 절반 이상이 친환경 하이브리드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에이티엑스, 미주리주의 더피플스라이드, 샌프란시스코의 옐로캡, 이탈리아 볼로냐의 코타보(Cotabo) 등 미국과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우버를 모방해 우버에 맞서는’ 새로운 플랫폼 택시 협동조합들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체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장착하고, 조합원인 운전자에게 우버보다 더 많은 급여를 안기고 있다.

11월14~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가 열렸다. 전세계 98개국에서 모인 협동조합 지도자 1800명은 우버 같은 데스스타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과 횡포를 막고 진정한 글로벌 공유경제를 열어가는 대안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들인 내린 결론은, 이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플랫폼 협동조합들의 싹을 세계 곳곳에서 틔우자는 것이다. 그렇게 이용자 플랫폼 협동조합들의 선한 힘을 모으면, 시장 경쟁에서도 거대 플랫폼 기업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유했다.

협동조합에 접목한 블록체인

세계 각지의 플랫폼 협동조합들은 택시사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뉴욕의 업앤고(Up & Go)는 청소부를 가정으로 보내는 성공적인 플랫폼 협동조합으로 인정받는다. 협동조합은 수수료 5%만 관리비로 떼고 무려 95%의 수입을 조합원인 청소원들이 가져가는 ‘기적’을 이뤄냈다. 디지털 개발 협동조합인 코랩(Colab.coop)의 지원으로 최상의 플랫폼을 구축했고, 조합원인 청소원 스스로 생산성을 극대화한 덕분이다. 협동조합끼리 협동하고 조합원들이 내 회사를 진정으로 아끼는, 그런 협동조합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의 협동조합 버전이라고 하는 독일의 페어몬도(Fairmondo), 사진작가들의 협동조합인 스톡시(Stocksy), 블록체인을 활용해 새로운 협동조합 플랫폼을 제공하는 백피드(Backfeed), 이웃끼리 물품을 공유하는 네덜란드의 피어바이(Peerby) 등의 플랫폼 협동조합들도 돋보이는 성공 사례다. 돌봄, 언론, 먹거리 분야에서 플랫폼 협동조합의 등장이 기대된다. 글로벌 공유웹진인 (Shareable)은 주노와 페어몬도 등 ‘진정한 공유경제를 만들어나가는 11개 플랫폼 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사람을 조직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가치를 창출하며 수익을 배분하는, 글로벌 경제의 기본 골격을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쿠알라룸푸르 총회에서는 전세계 플랫폼 협동조합이 해온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험도 소개됐다. ‘누가 로봇(빅데이터)을 소유하는가’ 세션에서 브라질 모에다(Moeda) 신용협동조합의 타이나 라이스 대표는 “지난 8월 인터넷으로 삽시간에 2천만달러를 크라우드펀딩했다. (개방성이 특징인 새로운 인증기술인) 블록체인을 활용해 전세계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을 우리 은행과 연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벌어들인 돈이 누구한테 가느냐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개인들이 이용한 데이터를 집적해 엄청난 돈을 벌지만 이용자에게는 한 푼도 안 돌려준다. 이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은 그런 점에서 ‘데스스타’들과 전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스코틀랜드 농협의 밥 유일 대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밀 판매 협동조합인 CBH그룹의 앤드루 크레인 대표도 “협동조합은 플랫폼 사업의 원천인 빅데이터를 스스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독보적인 장점이 있다. 조합원들이 실질적으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자신들의 데이터를 공동으로 이용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콥커넥트(Coop Connect, www.global.coop)의 니키타 골드스미트 대표는 “블록체인은 분권과 합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DNA와 잘 맞아떨어진다. 블록체인이란 엄청난 기술을 협동조합 사업에 꼭 접목하라”고 주문했다. 콥커넥트는 전세계 협동조합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기본 플랫폼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암호화폐 결제와 온라인 거래, 물류를 지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2010년 미국 뉴욕의 이타카에서 시작한 코랩 또한 “정의로운 경제를 새롭게 개척하는 이들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뉴스쿨은 2015년부터 해마다 11월 중순에 플랫폼 협동조합의 지혜를 모으는 이벤트(www.platform.coop)를 연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개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이벤트에선 우버와 페이스북 같은 데스스타를 대체하는 공정한 경제모델을 공격적으로 모색한다. 올해 세 번째 이벤트에서는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룰 수 있도록 각 나라의 정책과 법제도, 금융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9%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

사람들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다수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사이버 유토피아의 개막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모순투성이였다. 오히려 가장 분산된 인터넷이 전례 없는 데이터와 플랫폼의 독점적 소유를 낳았다. 이제, 싹을 틔운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진정한 사이버 유토피아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 이들은 이미 99%의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묵직한 첫걸음을 뗐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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