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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은 사회활동가 억압 통제하는 수단”

벌금형 대신 노역을 선택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 인터뷰
등록 2017-08-01 11:03 수정 2020-05-02 19:28
매년 수천만원의 벌금을 내다보니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게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옥순 사무총장은 스스로 문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벌금 납부 대신 노역형을 선택했다. 박승화 기자

매년 수천만원의 벌금을 내다보니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게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옥순 사무총장은 스스로 문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벌금 납부 대신 노역형을 선택했다. 박승화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상근 활동가 6명이 꾸려간다. 단체 규모로 보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활동가 6명이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바는 만만찮다. 최근 5년간 전장연 활동가와 회원들은 해마다 2천만~5천만원의 ‘벌금’을 꼬박꼬박 납부해왔다. 200여 회원단체와 1천여 명의 후원회원이 십시일반 꾸준히 그 금액을 납부해왔다. 그러나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벌금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벌이는 뜨거운 투쟁에 대한 차가운 보복이다.

전장연은 수년간 벌금을 납부하느라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어떤 이들은 묻는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안 싸우면 되지 않냐”고. 이는 사정을 모르는 말이다. 그들은 되묻는다. “우리가 몸에 쇠사슬을 감지 않았다면, 휠체어를 타고 도로에 내려서지 않았다면, 건물에 낙서하지 않았다면 누가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겠느냐”고. 그들은 여전히 ‘문제적 인물’이 돼야 겨우 어떤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릴 수 있다.

박옥순 전장연 사무총장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벌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기로 했다. 그는 4개의 사건이 병합돼 부과된 벌금 300만원을 납부하지 않고 자진 노역을 선택했다.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벌금을 납입하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된다. 유치장에서 노역해 벌금을 때운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8일간 노역을 살고 나온 다음날인 7월25일 박옥순 사무총장을 만났다.

“장애인들이 겨우 얻어낸 권리는 모두 투쟁 성과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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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납부 대신 왜 노역을 선택했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회원단체가 200곳이고 후원회원이 1천 명인 건강한 조직이다. 벌금 문제만 아니면 현재 6명의 상근 활동가에게 충분히 최저임금 이상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사무실 임대료 내고, 단체 운영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활동가들에게 떨어진 벌금 때문에 임대료를 못 내는 상황이다. 벌금을 마련하러 모금하고 후원 주점도 해봤지만 결국 안 됐다.

전장연이 납부할 벌금은 모두 얼마인가.

노역 들어가기 직전에 파악해보니 확정판결이 나서 납부 총액이 2400만원이었다. 재판 단계에 있는 것을 합치면 1900만원 정도 더 나올 것 같다.

어떤 혐의인가.

도로교통법상 도로교통방해,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 제일 흔하다. 폭력죄도 있다. 항의 집회하러 국민연금공단을 가려는데 경찰이 막았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법원에 자신에게 유리한 채증 자료만 제출한다. 주거침입죄도 있다. 교황이 방한했을 때 “꽃동네에 가지 마시라”고 청원했다. 그런 대규모 시설은 장애인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전제로 유지되는 곳이다. 그 자체로 폭력적이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교황청에 스페인어로 편지를 보냈는데 “방문은 하겠지만 할 얘기는 하겠다”고 답장이 왔다. 이를 알리려고 서울 명동성당에 들어갔는데 주거침입죄가 됐다. 차단기가 있어서 밀고 들어갔더니 재물손괴죄도 추가됐다.

왜 그렇게 전투적으로 운동하나.

전투적 투쟁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웃음) 장애 자체가 아니라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회가 벽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벽을 부수고 넘어야 한다. 우리가 조용히 문제제기하고, 정책 대안을 만들고, 정부에 요청하면 쳐다보지 않는다. 신경도 안 쓴다. 농성하고 항의하고 투쟁해야 겨우 말이라도 해볼 수 있다. 수십 년째 장애인운동을 했지만 보건복지부 국장을 1년에 두 번 만난다. 4월19일과 12월2일 밤이다. 그날은 장애인투쟁 전날(4월20일)이고 세계장애인의날(12월3일) 전날이다. 작심하고 투쟁하는 날인데 그때만 연락이 온다. 요구하는 게 뭐냐고 하면 결국 “집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애인이 겨우 얻어낸 권리는 모두 투쟁으로 이뤄낸 성과다. 정책 요구안을 친절하게 공문으로 만들어줘도 나 몰라라 한다. 결국 도로를 점거해야 만나주고, 한강다리 기어가야 만나주고, 지하철 철로 점거해야 들어준다.

“1년간 낸 벌금 2천만∼5천만원”

오래 싸우고, 겨우 조금 얻어내고, 벌금을 왕창 내는 것인가.

벌금은 사회활동가를 통제하는 수단이다. 손해배상 청구가 사 쪽의 노조 탄압 도구라면, 벌금은 좀처럼 테이블에 앉지 않는 사회운동을 억압하는 수단이다. 단체 활동가나 회원은 벌금형을 확정받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실무력을 소진한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주업으로 한다. 다른 문제 해결에 써야 하는 소중한 활동 시간을 잡아먹는다. 재판받고, 벌금 모금하느라 할 일을 못한다. 활동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어떤 활동가는 벌금고지서를 받은 뒤 가족이 반대하거나 불안해해서 활동 자체를 중단한다. 단체 재정도 악화됐다. 결국 활동가들의 활동비까지 손대 급한 벌금을 막는다.

지금까지 전장연이 납부한 벌금은 얼마인가.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1년에 2천만~5천만원을 내는 것 같다. 겨울마다 ‘함께 소리쳐’ 공연을 하는 건 순전히 벌금 때문이다. 지난해 모금한 돈은 벌써 소진됐다.

노동조합이나 노조 활동으로 부과되는 손해배상의 경우 사 쪽과 협상해 해결한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 활동가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최종적·불가역적 판결이다. 사회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제재하는 이 방식은 국가가 가장 손쉽게 사회의 역동성을 관리하는 것이자 저항을 뿌리째 말살하는 수단이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이 구조를 당연시하는 정서를,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며 벌금에 대해 ‘그러려니’ 생각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세상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노역을 선택했나.

정말 돈이 없었다. (웃음) 상황이 계속되면 전장연은 벌금 내다 거덜 나게 생겼더라. 정작 중요한 건 앞으로 계속 투쟁을 이어가는 것이다. 장애 있는 사람에게 투쟁의 힘은 엄청나다. ‘내 권리는 내가 찾는다’고 생각해 집회에 나온다. 집회 자체가 살아가는 힘을 갖게 한다. 권리를 찾는 삶들이 벌금으로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벌금 문제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공론화하고 싶었다.

구치소 쪽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귀빈이었다. 노역 살러 왔다니까 검찰이 난감해했다.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때가 있지만 여전히 벽도 느꼈다. 휠체어 탄 사람 2명이 노역하는 일은 여전히 사법 당국엔 당황스러운 일이다. 구치소는 별로 안 바뀌었다. 여전히 강압적이다. 교정이란 명목으로 사소한 것부터 인권 침해가 여전했다. 고압적인 명령어와 지시어는 기본이고 다리를 꼬고 있으면 ‘내리라’고 한다. ‘다리를 내려야 하는 이유를 친절하게 말해주면 내릴 수 있다’고 했더니 당황하더라. 인권활동가의 까칠함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왔다.

“문재인 정부 ‘벌금 사면’ 논의해보면 어떨까”

노역을 선택한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나.

상황이 알려지면서 모금이 늘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2년 동안 걱정 없이 싸울 수 있겠다. (웃음) 중요한 건 벌금 문제가 공론화됐단 점이 아닐까. 문재인 정부 탄생에 촛불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회운동이 갖는 변화의 힘을 문재인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벌금을 통해 사회운동을 억압하고 통제해온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이번 정부가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금까지 사회운동에 부과된 벌금을 탕감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을까. 인권이 어떻게 진전돼왔는지 그 역사를 잘 아는 대통령 아닌가.

가능할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경찰과 법원이 권력의 도구가 돼 벌금을 남발하는 방식을 자제해야 한다. 검찰 역시 기소를 통해 사회운동을 묶겠다는 발상을 말아야 한다. 검경 문제와 더불어 ‘벌금 사면’을 논의해보면 어떨까. 벌금이나 손배소가 나오면 기본적으로 개인 책임이다. 그러면 개인은 완전히 파괴된다. 반민주적 억압이다. 이걸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한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원탁회의 같은 것을 하면 좋겠다. 정부와 간담회를 해보고 싶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그게 정부에 반하거나 정부를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억압하고 처벌해온 구조를 바꾸자는 얘기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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