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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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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전세보증금까지 손댈 줄이야”

삼표시멘트 해고노동자 임차보증금·부동산·통장 가압류…

민주노총 24개 사업장 1867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중
등록 2017-08-01 10:51 수정 2020-05-02 19:28
2015년 2월25일, 해고 통보 8일차 강원도 삼척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삼척시청 앞에서 집회를 했다. 김진수 기자

2015년 2월25일, 해고 통보 8일차 강원도 삼척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삼척시청 앞에서 집회를 했다. 김진수 기자

그해 겨울, 그는 정년을 앞두고 있었다. 12월31일이면 만 55살이었다. 정년을 앞두고 노후생활의 꿈에 젖었다. “애들도 장성해서 나가 살고 부인과 아파트나 하나 마련해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다음해 부부에게 닥칠 일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박아무개(58)씨는 강원도 삼척 광산노동자였다. 서울에서 16년 동안 사무직으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가가 있는 삼척에 정착했다. 2003년부터 삼표시멘트(전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지난 7월26일 박씨는 과의 통화에서 “그땐 하청이 뭔지도 몰랐고, 일한다는 게 그저 즐거워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2007년 6월1일부터 그는 ‘동일 주식회사’ 소속 노동자로 일했다. 46광구에서 일하다 2010년 6월 생산을 시작한 49광구에서 정년까지 석회석 운반 일을 했다. 그가 속한 업체 동일은 삼표시멘트의 100% 자회사 삼표자원개발(전 다물제이호)과 매해 도급계약을 맺는 하청업체였다.

최저임금만 받고 고용 불안 느끼고

그가 정년을 앞둔 2014년 5월17일 동일 소속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를 설립했다. 박씨는 “그땐 ‘비정규직 철폐’ 같은 말도 몰랐고 그냥 후배들과 같이 차별받는 것 좀 해소해보자며 참여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하청노동자에게 거의 최저임금만 줬고,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해도 처우가 달랐다. 하청노동자에게만 귀마개(1개)·마스크(4개)·장갑(10개) 사용 개수 제한을 뒀고, 노동절에 선택할 수 있는 선물 품목을 제한했다. 2013년 10월 삼표시멘트 법정관리가 개시되면서 현장에선 정규직만 고용 승계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청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을 느꼈다. 지부는 설립 한 달 만인 6월26일, 동일의 파견법 위반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정년이 지난 뒤에도 박씨는 촉탁직으로 현장에 남아 더 일했다. 촉탁직으로 일한 지 두 달 만인 2015년 2월17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를 포함한 동일 소속 노동자 101명이 대상이었다. 태백지청이 2015년 2월13일 삼표시멘트에 ‘동일 소속 노동자들과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고, 직접고용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한 지 나흘 만이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길바닥에 나앉았다.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정문 앞, 공장 본관 로비, 49광구 출입구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하고 통근버스 진입 저지 투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최창동 전 지부장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는 등 형사처벌됐다. 박씨는 “거의 항상 조합원들과 같이 있었지만, 몸싸움을 하지도 사진을 찍히지도 않아 형사재판을 받진 않았다”고 말했다.

“손배소·가압류, 노조 파괴 위한 작업”

고용노동부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 행위를 인정했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2015년 6월5일 “동일 주식회사의 2월28일자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한다”며 “30일 안에 원직 복직시키고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15년 11월17일 “삼표시멘트는 동일 소속 노동자들과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고, 2월28일자 도급계약 종료 통보는 부당해고이며, 불이익 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박씨가 고용된 동일 주식회사와 원청 삼표자원개발은 각각 위장도급 업체와 생산부서 성격으로 하청노동자와 실질적 고용관계를 맺은 건 삼표시멘트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도 박씨 등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삼표시멘트는 김아무개씨 등 50명에 대해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거나 고용해야 한다”고 2016년 12월20일 판결했다.

앞서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온 지 한 달 만인 7월2일 삼표자원개발은 박씨 등을 상대로 재산 가압류 신청을 했다. 다음달 춘천지법 강릉지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박씨가 살던 20년 된 20여 평 아파트의 전세보증금도 4천만원 가압류됐다. 전세보증금은 4500만원이었다. 집주인이 먼저 결정문을 송달받고 이 사실을 알려왔다. 집주인에겐 “당장 주인집에 손해 보는 건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박씨는 “한창 복직 투쟁할 때 동료들이 명의를 변경하고 그랬는데, 설마 전세보증금까지 손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전세계약 만료 기한인 2016년 9월이 다가왔다. 박씨는 “정말 밖에 나앉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집주인한테 사정사정하니 다행히 보증금 500만원을 올리는 선에서 정리됐다.” 그는 현재 삼표자원개발에 의해 통장도 가압류됐다. 가압류 금액은 농협 500만원, 우리·하나·신한·국민은행 250만원씩 총 1500만원이다. 그는 결국 제2, 3금융권 통장을 개설했다. 현재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 19명 가운데 임차보증금 가압류를 당한 이는 3명, 부동산 가압류는 2명, 통장 가압류는 8명이다. 그 뒤 삼표시멘트의 자회사 삼표자원개발은 2016년 3월 지부 조합원 24명을 상대로 15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반년 뒤인 9월 그 액수를 50억여원으로 올렸다.

삼표시멘트는 노동부의 부당해고 노동자들을 원직 복직시키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안영철 동양시멘트지부 법규부장에 따르면 회사는 “현재 네 차례에 걸쳐 총 15억537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물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8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위장도급 형태로 노동자를 불법파견 받은 혐의(파견법 위반)로 최종구 전 삼표시멘트 대표이사 등 6명에게 벌금 700만~1500만원을 선고했다. 동양시멘트지부는 회사 쪽이 최근까지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취하와 조합 탈퇴를 조건으로 손배소·가압류를 취하해주는 것으로 파악했다.

박씨는 “손배소·가압류로 압박하는 것은 노조 파괴를 위한 작업”이라며 “그런 압박에 노조를 탈퇴하는 건 굴복이다. 같이 가면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삼표시멘트는 동양시멘트지부와 지난 7월25일 1년8개월 만에 교섭을 재개했다.

노동조합법은 국회 계류 중

‘손배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 ‘손잡고’는 지난 6월28일, 6월 현재 기준으로 24개 사업장에서 65건 총 1867억여원 규모(가압류 179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손잡고’는 “2002년 이후 집계(2004~2010년 미집계)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최대치다. 급여 압류 조치 사례(KEC)가 처음 등장했고 지난해(삼표시멘트)에 이어, 올해(하이디스) 임차보증금 가압류 사례가 등장했다”고 밝혔다.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면 대안은 나와 있다.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사용자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면책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시민모임 ‘손잡고’는 쟁의나 집회, 시위로 인한 손해배상 가압류 현황과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단체 또는 개인의 제보를 받습니다.(문의: 손잡고 02-725-4777/ www.sonjabgo.org)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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