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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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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50만원으로 버티는 ‘임금 압류’ 파업노동자

‘손배·가압류 피해’ KEC 19년차 정규직 김순희씨 인터뷰…

공장 점거 조합원 60명 회사에 ‘3년간 30억’ 갚는 질식당한 삶
등록 2017-08-01 10:42 수정 2020-05-02 19:28
매달 150만원이 초과되는 급여 차액을 모아 3년간 30억원을 회사에 갚고 있는 구미 케이이씨(KEC) 노동자. 통장과 전세보증금을 회사에 가압류당한 삼척 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 노동자. 벌금 300만원 부과받고 8일 노역을 살고 나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이들이 노동3권을 압류하고 저항에 벌금 매기는 사회를 고발한다. _편집자
금속노조 구미지부 케이이씨(KEC) 지회 조합원 김순희씨.

금속노조 구미지부 케이이씨(KEC) 지회 조합원 김순희씨.

파업의 대가는 가혹했다. 회사는 2011년 6월13일 파업 참가자들을 잔디밭에 소집했다. 반을 나눴다. 공장 점거 비참가자는 ‘창조반’, 공장 점거는 했지만 기소는 안 된 참가자는 ‘개혁반’, 공장 점거로 기소된 참가자는 ‘실천반’이었다. 김순희(37) 금속노조 구미지부 케이이씨(KEC) 지회 조합원은 실천반으로 배정됐다.

실천반 교육장(회의실) 정면에 커다란 현수막이 보였다. 흰 바탕에 빨간 글씨로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고 적혀 있었다. 340일의 파업, 이후 7주간의 ‘공장복귀교육’(회사는 ‘현장적응순화교육’, 지회는 ‘반인권교육’이라 부른다)을 받는 첫날이었다.

실천반은 ‘실천’이라고 적힌 주황색 옷을 입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개혁반은 파랑, 창조반은 노랑이었다. 교육장 입구에 배치된 용역 경비업체 직원 2명은 화장실이나 식당에 갈 때도 따라붙었다. 교육시간엔 강사가 공장 점거 당시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그리고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무거운 현실이 된 ‘일하면서 갚겠다’는 말

김씨를 지목해 반성문 발표를 시켰다. 김씨가 앞으로 나가 말했다. “나쁜 건 우리가 아니라 회사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파업하는 우릴 강제로 쫓아냈다.” 강사는 말을 끊고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 시험을 봤다. 사자성어나 명심보감 관련 문제였다. 보기를 순서대로 나열하라는 문제에선 정답이 매번 ‘다,나,가,라’ 또는 ‘나,가,라,다’였다.

수업 중간에 노동자는 한 명씩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 회사 간부가 있었다. 휴대전화 녹취를 의심한 간부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썼다. 2천만원이라고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부가 말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김순희씨랑 일하기 싫어해요. 이 돈 줄 때 나가요. 곧 손배(공장 점거로 인한 피해에 회사가 조합원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가 닥칠 텐데 그 돈 다 어떻게 갚으려고 해요.” 김씨도 지지 않았다. “일하면서 갚을게요. 갚으면서 회사 다니면 되잖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간부가 언급한 손배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6년 전 ‘일하면서 갚겠다’는 김씨의 말은 불행히도 무거운 현실이 됐다. 김씨는 2016년 10월10일 급여일부터 ‘150만원’이 초과되는 급여 차액을 회사에 압류당하고 있다. 회사가 공장 점거 파업 참가자를 상대로 낸 301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016년 9월 법원 화해 조정을 통해 30억원으로 낮춰졌다. 회사는 조합원 88명(현재 압류 대상자 60명)에게서 3년 동안 급여 압류 방식으로 이 돈을 확보할 계획이다.

김순희씨는 1999년 9월6일 케이이씨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케이이씨는 반도체 비메모리 트랜지스터(TR)와 집적회로(IC)를 생산하는 업체다. 2016년 기준 매출 2277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기록했다. 김씨는 초기 5년 동안 조립 공장에서 일했고, 그 뒤로 (조립 전 공정인) 팹(fab) 공장에서 일한다.

사내 커플이던 김씨는 2010년 2월7일 결혼했다. 그해 3~6월 단체협상이 난항이었다. 김씨는 “입사하고 나서 매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 시기에 하루이틀 파업하고 원만하게 타결됐는데 그해엔 유독 노사 의견 접근이 안 됐다”고 말했다. 케이이씨는 2010년 파업 전까지 ‘무파업’ 사업장으로 알려졌다. 교섭에 진척이 없자, 노조는 2010년 5월27일 파업을 결의하고 6월9일부터 경고파업 및 부분파업을 이어갔다.

파업 4일째, 6월13일 회사 관리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이아무개 당시 기획조정실장 등의 노동조합법 위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이 실장 등 4명은 파업이 끝난 뒤 조합원 교육과정에서 ‘친기업 성향’ 노조 설립을 목적으로 파업 참가자에게 사직서와 조합원 탈퇴서를 제시하고 노조 탈퇴를 강요한 혐의(노동조합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2015년 2월11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에서 벌금 200만~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2016년 11월께 그대로 확정됐다.

회사의 직장폐쇄와 기숙사 침탈

회사 관리부가 작성한 ‘노조 대응 전략’ 문서를 보면, 회사가 당시 관철하려던 두 목표 중 하나가 ‘현 집행부 퇴진’임이 확인된다. 문서에 담긴 ‘향후 전개 시나리오(출구전략)’ 항목에는 이미 ‘현 집행부 구속 이후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친회사 성향’ 노조 간부들을 지원하고 케이이씨 지회 내부 갈등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부분파업 초기에 회사가 현 노조의 와해와 새 노조 설립을 기획한 셈이다. 이듬해 케이이씨는 회사의 의도대로 ‘복수노조 회사’가 된다.

케이이씨 지회는 결국 6월21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김씨는 “입사 뒤 유니언숍(입사와 동시에 노동조합에 의무 가입된다)으로 바로 노조에 가입됐고, 매년 하는 임단협이었고, 조합원이니까 지회 지침에 따라 참가했다”고 말했다.

회사도 물러서지 않고 강경책으로 맞섰다. 회사는 파업 시작 열흘 만인 6월30일 파업 참가 조합원을 상대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날 새벽 1시 용역 경비업체 직원들이 여자 기숙사에 들이닥쳐 여성 조합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김씨는 “슬리퍼와 휴대전화만 들고 쫓겨난 동생을 보면서 맨날 ‘(우리는) 가족’이라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돌변한 게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회사의 직장폐쇄와 기숙사 침탈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했다. 신혼 반년차 김씨 부부도 농성장을 지켰다. 날이 어두워지면, 회사 정문 바로 안쪽 전광판에서 자막이 흘러갔다. “회사는 여러분들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월○일까지 복귀하십시오. ○월○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휴가비가 없습니다.” 7월19일 오후 4시 경북 구미시 반도체부품 제조업체 케이이씨 근처 카페에서 취재진과 마주한 김씨는 대화를 끊고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파업을 이어가던 케이이씨 지회는 급기야 2010년 10월21일 1공장을 점거했다. 김씨도 가세했다. 점거는 11월3일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10월30일 협상 자리를 빠져나와 농성장으로 돌아오던 김준일 지부장이 경찰의 기습 체포에 항의해 분신을 기도했다. 검찰은 ‘김 지부장 분신 기도 사건’ 이후에도 공장을 점거한 조합원과 간부들을 기소했다. 11월2일 점거 현장을 빠져나온 김씨도 기소됐다. 공장 점거 때 충돌 과정에서 회사 직원을 폭행하고 설비를 손괴하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였다.

“‘타임오프 파업’으로 몰고” 간 회사와 언론
김순희씨의 5월분 급여명세서.

김순희씨의 5월분 급여명세서.

법원은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파업의 주된 목적이 노조 전임자 급여 문제여서 목적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조합원들이 공장 점거 당시 회사 직원들을 폭행하거나 소금을 설비에 뿌려 시설물을 파괴해 수단·방법도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김씨는 다른 평조합원들과 함께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김씨와 케이이씨 지회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교섭위원이던 김성훈 케이이씨 지회장은 “법 개정으로 인해 노조 전임자 급여와 근로시간 면제 한도(타임오프)가 특별단협의 의제였지만 우리는 오히려 임단협의 임금·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교섭했다. 회사와 언론이 ‘타임오프 파업’으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김순희씨도 “소금은 공장 점거 때 단식농성을 위해 쓴 것이고, 폭행은 점거 당시 충돌 과정에서 서로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9월20일 확정된 법원 화해조정에 따라 김순희씨와 케이이씨 지회 조합원 59명은 2016년 10월10일부터 3년간 150만원이 초과되는 급여를 압류당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30억원을 갚아야 한다. 회사는 2010년 10~11월 13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중단, 설비 파손, 직원 상해 등의 피해액을 산정해 김씨 등 88명에 대해 301억3892만9322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회사는 이후 피해 내역을 재산정해 청구 금액을 156억여원으로 낮췄고, 재판부는 30억원으로 내려 조정을 이끌었다. 피고 88명 가운데 급여를 받지 않는 퇴사자·상급단체 간부·해고자를 제외하고 현재 김순희씨를 포함한 케이이씨 지회 조합원 60명이 급여 압류 대상자다.

실제 압류는 어떻게 이뤄질까. 민사집행법에 따라 월 실수령액이 150만원 이하면 압류당하지 않고, 150만~300만원이면 150만원을 제외한 금액을, 300만원 이상이면 절반의 금액을 압류당한다. 김씨의 경우 홀수달에 원래 실수령액이 130여만원이어서 압류되지 않는다. 상여금을 지급받는 짝수달엔 150만원을 남기고 압류당한다.

노조는 눈물을 머금고 이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김성훈 케이이씨 지회장은 “형사재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면책해줄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고, 회사 쪽에 재산압류 집행권이 넘어갔을 때 조합원 개인과 지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피한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화해조정이 이뤄지기 한 달 전, 변호사가 노조 사무실로 와 급여압류 화해조정 설명회를 했다. 당사자인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였다. 김순희씨는 “설명을 듣는 30~40분 동안 온몸이 떨렸다”고 말했다. 급여를 압류당하며 산다는 것 자체도 막막했지만 “만일 그 기간에 돈을 못 갚으면? 그다음엔 어떡하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김씨는 말을 끊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솔직히 화해조정을 받아들이는 게 싫었어요. (우리 잘못을) 인정해버리는 거니까. 차라리 인정 안 해서 깨지나, 3년 안에 못 갚아서 조직이 깨지나 마찬가지라면 인정하기 싫었던 거죠.”

화해조정이 집행되고 7월 현재까지 조합원이 열 달 동안 회사에 갚은 돈은 총 8억4500만원이다. 케이이씨 지회는 지금 추세라면 기한 3년 안에 다 갚을 것으로 내다봤다.

퇴사하면 급여 압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케이이씨 손배소송에서 지회 조합원을 변호한 금속노조 법률원 장석우 변호사는 “민주노총 사업장의 집계로는 회사가 파업 손배소 결과 조합원들의 급여를 실제 압류한 첫 사례”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좀더 세상에 알려진 조합원 상대 손배·가압류 사건들은 판결 확정 뒤 회사 쪽이 집행하지 않거나, 양쪽이 합의해 취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조합원 상대 50억원 손배소 취하),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파업(지회장 상대 158억원 손배소, 2014년 판결 확정 뒤 미집행), 2010년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지회 정규직화 이행 요구 파업(조합원 상대 90억원 손배소, 2017년 1월 판결 확정 뒤 미집행) 등이 그 예다.

손배소와 급여 압류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김씨는 “손배소 재판을 하면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아저씨 조합원들도 종종 악몽을 꾸며 욕해서 가족이 놀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호흡을 멈추고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돌고래 기사를 읽은 뒤 “나도 저 돌고래처럼 고통 없이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김성훈 지회장은 “급여를 압류당하는 조합원 중에 중·고등학생 자녀가 학원을 끊고 아르바이트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순희씨 가구의 소득은 급여 압류 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2년 케이이씨 지회 활동 과정에서 해고된 남편이 압류가 시작될 무렵 경기도에서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요즘 삶의 낙이 뭐냐고 물었다. “얼마 전 일요일에 동료 언니들을 만났어요. 시내에서 아이쇼핑으로 예쁜 옷을 보고 립스틱을 발라보고 하다가 든 생각이, 이런 걸 못했구나….” 김씨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그게 되게 기뻤어요. 남들은 쉽게 하는데, 그걸 잠깐 하게 돼 기뻤어요. 밖에 나가 즐기는 게 어차피 다 돈인 거니까….”

급여 압류 화해조정 뒤 65명 중 5명이 퇴사했다. 퇴사 이유는 생계비, 육아 대책, 지병 등이다. 퇴사하면 급여 압류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순희씨도 급여 압류를 앞두고 “급여가 압류되면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살까,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김씨는 끝내 퇴사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의리”라고 답했다. 압류 대상 조합원들은 자신이 퇴사하면 남은 조합원들에게 그만큼 압류 금액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체 노동자 65명 가운데 60명이 서로에게 기대며 10개월째 버티고 있다. 김씨도 압류가 시작되고 한두 달 지나 급여 압류당한 주변 동료들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급여가 압류돼서 좋을 사람 없지만 서로 내색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 학비를 내야 하는 조합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아파도 같이 아프고. 내가 너고, 네가 나고.”

회사는 8월 초 여름휴가비로 급여의 100%를 지급한다. 김순희씨에겐 어차피 ‘그림의 떡’이다. 대신 지회가 압류 대상 조합원에게 여름휴가비 50만원을 지급한다. 압류 대상이 아닌 조합원들이 조합비 외에 매달 자율적으로 3만~20만원을 모은 돈이다. 지난 설날부터 지회는 이 돈으로 설·여름휴가·추석 때 압류 대상 조합원에게 50만원을 지급한다. “그 얘길 듣고 눈물이 났다. 압류 안 당해도 힘든 조합원이 많다. 우리 조합원들이 공감을 되게 잘한다. 아파도 같이 아프고. 내가 너고, 네가 나고.” 김씨는 또 목이 메어 울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가 파업 이후 회사 쪽의 재산 가압류와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진 것은 2003년 1월9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노조 탄압 무기로 쓰이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정권이 세 차례 바뀌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은 민법의 불법행위 개념에 질식돼 계속 압류되고 있다.

구미(경북)= 김선식 기자kss@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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