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군 우보면 선곡리의 산자락. 골짜기 안으로 들어갈수록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인가가 끊어진 오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ㄷ종돈장. 돼지 4천 마리가 쏟아내는 똥냄새다. 똥독이다.
테즈 바하두르 구룽. 네팔 중서부 시앙자의 가난한 5형제 집안의 착한 둘째아들이다. 돈 벌어서 집안 일으키겠다고 한국에 왔다. 3년 전, 22살 때였다. 부지런하고 동료들을 잘 챙겼다. ㄷ종돈장에서 함께 일한 네팔 이주노동자 10명이 돼지농장 고참인 구룽을 많이 따랐다. 그의 영혼은 지금 한국에도 네팔에도 없다. 얼어붙은 몸만 경북 안동병원 장례식장 냉동고에 안치돼 있다.
차비 랄 차우다리. 22살, 구룽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 나이였다. 네팔의 가장 서쪽 카일랄리 출신. 지난 3월 한국 땅을 밟았으니, 이제 두 달이다. 시쳇말로, 아직 한국 생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초년병이다. 돼지똥 냄새 없는 한국 공기를 맡아볼 겨를도 없었다. 구룽 형이 하라는 대로 믿고 따랐다. 영혼이 떠난 그의 몸은 5월25일 네팔 고향 마을에서 태워졌다.
안전장비는커녕 마스크도 없어
5월12일 오후 2시. 똥더미로 막힌 집수조 구멍을 뚫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축사에서 흘러나온 똥물이 정화조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깊이 3m로 길게 파인 콘크리트 지하 통로다. 워낙 돼지똥이 독하고 양이 많아, 평소 기계로 하던 작업이었다. 강한 압력의 호스로 똥을 흡수하는 식이었다. 그날은 기계가 고장났다. 3년 베테랑인 구룽이 밑으로 내려가고 차우다리가 위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안전장비는커녕 마스크도 없었다. 집수조에 들어가기 전 독성가스 농도도 측정하지 않았다. 사실, 측정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구룽이 아래에서 양동이로 똥물을 퍼올리고 차우다리가 위에서 받아 비우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내 구룽의 다리가 흔들리면서 꺾였다. 첨벙, 똥물에 쓰러졌다. 놀란 차우다리가 구룽 형을 구하겠다고 아래로 뛰어들었다. 1시간 뒤 119가 출동했지만, 두 젊은이의 운명의 시계는 이미 멈췄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3리 우두산 자락. 자동차 창문을 열 수가 없다. 길이 끊어지는 곳에 낡은 철제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돼지 7천 마리를 사육하는 ㅊ농장이다. 농장 초입의 똥물 정화조 건물이 역한 냄새의 진원지였다. 나무 벽과 지붕이 허술하게 뚫려 있어 사방팔방으로 가스를 내뿜었다.
5월25일, 임신한 어미돼지 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500마리가 함께 지내는 돈사 아래 똥물이 빠져나가는 길이 막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돼지 방은 쉴 새 없이 싸대는 똥이 흘러내리도록 얼기설기한 철제로 바닥을 깐다. 그 아래로 피트(pit)라 부르는 폭 2~3m, 깊이 2m가량의 똥물 빠져나가는 통로를 길게 설계한다. 정오 무렵, 4명이 작업을 시작했다. 10년 이상 그 농장에서 일한 중국인 베테랑 타이 융난(45)이 현장을 지휘했다.
타이인 우띠끄라이 마이따띠왓(34)과 중국인 슝덴쥔(59)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ㅊ농장에서 일한 지 겨우 석 달이 지났다. 철제 바닥을 걷어내고 두 사람이 피트 아래로 내려갔다. 금세 눈이 따가워지더니 의식이 혼미해졌다. 위급 상황을 느낀 융난은 자기 몸을 철제 사다리에 묶고 아래로 손을 뻗어 동료의 뒷덜미를 잡았다. 죽을힘으로 잡아당겼지만, 이미 축 늘어진 몸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피트 아래로 몸을 숙인 융난도 잠깐 사이 황화가스에 중독됐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한국 사람들은 절대 일 안 하는 곳”
개죽음이었다. 한국 사람은 이제 이런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 마이따띠왓과 슝덴쥔은 피트 아래쪽이 더럽다고만 생각했지, 황화수소가 뭔지 그런 위험물질이 깔려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받은 적도 없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융난은 다행히 며칠 뒤 회복됐다. 위쪽에서 융난을 거들던 다른 중국인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그 또한 미등록 신분이었다. 그는 사건이 나자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곧바로 출입국보호소로 수감됐다.
구룽과 같은 마을 출신인 여성 이주노동자 ㅂ. 그도 미등록 신분이라 이름을 감춰달라고 했다. 군위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공단에서 일한다. “구룽은 같은 마을의 먼 집안 동생이에요. 종종 전화 통화를 했어요.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인데, 그때도 돼지 밥을 줘야 하니까 바깥으로 잘 나오지 못한다고 했어요. 나도 미등록 상태라 3년 되도록 서로 얼굴을 못 봤어요.” ㅂ은 착한 친척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몹시 안타까워했다. “돼지농장에서 네팔 사람 죽었다는 소식 듣고 다른 사람이겠지 생각했는데, 인터넷을 보니 구룽 이름이 나오더군요. 가깝게 지내던 오빠한테 물어보니 맞다고 했어요. 형제도 많고 집안도 어려운데, 구룽이 일해서 집안을 많이 살렸어요. 1년 더 일하고 좀더 있으면 네팔로 돌아간다고 좋아했는데….” ㅂ은 “죽은 동생을 보러 구룽의 형이 한국에 들어오려는데 현지에서 비자를 잘 내주지 않는다. 꼭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불법’ 이주노동자인 마이따띠왓과 슝덴쥔은 ‘죽음 이후’도 비참하다. 일주일이 되도록, 두 사람을 아는 친구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다. 농장과 가장 가까이에 사는 주민 정석진(81) 할아버지는 사건 발생 사흘 뒤 기자가 취재할 때까지 농장의 참변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방송에서 여주 돼지농장 사람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지, 그게 우리 마을인 줄은 몰랐어요. 농장 사람들은 마을 주민과 전혀 왕래가 없어요.”
보름 사이 이주노동자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돼지농장. 그 안에서 악취와 가스를 마시고 똥을 치우는 일은 이제 온전히 이주노동자의 몫이 됐다. 그 안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죽음도…. 전문가들은 두 돼지농장 사건이 판박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초보 이주노동자가 아무런 안전교육도 받지 않고, 안전장비도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돼지똥을 치우러 밀폐공간으로 들어갔다. 구조적이고 예고된 참변이라는 것이다.
경산이주노동자센터의 김헌주 소장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살인”이라고 강조했다. “사고 발생 뒤 현장에 조사하러 갔다. 기계가 할 일인데, 급하고 귀찮으니까 네팔 노동자들한테 들어가라고 시킨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 데서 절대 일하지 않는다. 외국인이니까 쉽게 생각했을 거다.”
김 소장은 처음 들어가본 돼지농장의 생활 환경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네팔 노동자들과 기숙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 현장 조사에 입회한 네팔 영사도 수시로 코를 쥐고 힘들어했다.” 한 축산 전문매체 발행인은 “한국 사람 같으면 피트 아래로 안 들어갔을 거다. 들어가라 해도 안 들어간다. 외국인 노동자니 잘 모르니까, 감내하고 일하는 거다. 농장주들의 인식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돼지농장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질식당할 가능성이 높은 밀폐공간 작업에 대해 사업주가 엄격하게 안전관리를 하도록 강제한다. 밀폐공간 아래 깔린 고농도의 황화수소에 노출될 경우, 눈과 호흡기가 자극을 느끼기 전에 한두 차례 호흡만으로도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돼지농장의 (정수조·집수조·피트 같은) 밀폐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작업장을 환기시킨 뒤, 공기호흡기나 송기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또 밀폐공간 경고 표시 스티커를 부착하고, 출입금지 조처를 하도록 법에 규정해놓았다.
도드람양돈농협 관계자는 “돼지농장은 안전 사각지대다. 이런 밀폐공간 질식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는데도, 전적으로 농장주들에게만 안전 문제를 맡겨둔다. 답답한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농장주들의 편차가 너무 커서, 알아서 잘하는 농장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농장주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이번처럼 일 터지기 전에는 무서운 줄 모른다. 농장주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이 미비하고, 돼지농장 이주노동자를 따로 모아 안전교육을 하는 경우도 없다. 농장주 처지에선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니 이주노동자를 교육할 수도 없다.”
실제 이번 사고를 일으킨 군위와 여주의 돼지농장은 ‘산업안전의 치외법권 지역’에 방치돼 있었다. 군위의 네팔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을 조사한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산재예방지도과는 “사고가 발생한 뒤 집수조의 황화수소 농도를 측정했더니, 기준치(10ppm)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5ppm으로 나타났다. 실제 사고 당시에는 황화수소 농도가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신경독성물질인 황화수소는 농도가 700ppm을 초과할 때 신경세포를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구강미 근로감독관은 “집수조 내부에 들어가 작업하면서 사전에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지 않은 것을 비롯해 여러 위법 사례를 적발했다. 사망자 2명이 발생한 큰 사건이어서 농장주에 대해 6월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여주 ㅊ농장 사건을 관할하는 성남고용노동지청 쪽도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 농장주에게 자동화 세척 장비를 도입하는 등 시설 개선을 하라는 안전보건개선계획 명령을 우선 발동했다. 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농장주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1천만 마리 돼지똥, 하루 2만t
농림축산식품부와 대한한돈협회는 사건이 터지자 ‘황화수소 발생에 의한 질식 경보’를 발령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군위와 여주 사건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전국 돼지농가에 기본 안전수칙을 이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헌주 소장은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평소 일반적인 안전수칙만 제대로 교육하고 지키도록 감독했어도, 두 돼지농장 이주노동자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돼지농장을 안전과 환경 무방비 지역으로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 대상 돼지농장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극도로 열악한 돼지농장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환경을 점검하도록 요구했다.
돼지농장은 잘 드러나지 않은 우리 일상의 치부다. 농장주도 전문가도 ‘있는 그대로’ 현실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꾸만 숨어든다. 방역을 이유로 문도 꽁꽁 닫아걸고 있다. 주민들은 악취 내뿜는 돼지농장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돼지농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골짜기 끝으로 내쫓기고 있다. 깨끗한 돼지농장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 여주 ㅊ농장 마을의 정석진 할아버지는 “악취를 피할 수도 없고 이곳을 떠날 수도 없다”고 체념 섞인 넋두리를 했다. 돼지농장을 피해 깨끗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도 냄새나는 땅을 살 사람이 없다. “돼지농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산 좋고 계곡 좋은 마을이었는데….”
전국의 돼지농장은 4500곳, 그곳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1천만 마리에 이른다. 돼지 1마리가 하루에 먹는 사료량은 평균 1.6kg. 물은 그 3배 정도 마신다. (새끼를 낳은 돼지는 하루에 최대 12kg까지 먹는다.) 많이 먹고 마시니 당연히 싸는 양도 많다. 돼지 1마리당 평균 하루 2kg의 똥을 싼다. 사료섭취량의 120% 정도가 물을 함유한 똥으로 배출된다. 전국에서 1천만 마리의 돼지가 하루에 배출하는 똥은 2천만kg, 2만t에 이른다. 1년이면 730만t이다.
이 똥을 관리해야 하는 돼지농장 노동자의 75% 이상이 이주노동자다. 관리자를 빼면 실제 일하는 노동자 대다수가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한 양돈수의사의 말이다. “차제에 우리 돼지농장의 어두운 구석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방역을 이유로 폐쇄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먹거리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소비자에게 개방해야 한다. 자신 있게 개방할 정도로 농장을 청결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상태에 방치한 것이 구제역 발생 원인이라는 지적도 깊이 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밥상의 양심을 묻자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우리 밥상을 지키던 이주노동자들이 보름 사이 4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양심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은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우리는 가보았는가? 거기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고 어떤 공기를 마시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의 돼지고기가 수입 돼지고기보다 깨끗하다 자신할 수 있는가?
정답을 찾아가는 키워드는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오늘 밥상에 국내산 돼지고기 한 점 올릴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여주(경기)·군위(경북)=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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