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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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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과 이주노동자를 향한 우리 안의 시선

생존·진입 장벽에 부딪힌 200만 이주민 시대…

“시혜 대상이나 편리한 노동력 아닌 시민으로”
등록 2017-06-06 11:00 수정 2020-05-02 19:28
사업장 이동을 막는 고용허가제 철폐는 이주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핵심 고리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사업장 이동을 막는 고용허가제 철폐는 이주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핵심 고리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난민, 그리고 이주노동자. 2016년 200만을 넘긴 한국의 이주민 중 가장 높은 장벽과 맞닥뜨린 두 집단이다.

4.3%의 바늘귀

각자가 마주한 장벽은 다르다. 난민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진입 장벽’이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펴낸 2017년 4월 (이하 )를 보면 1994년 이후 4월 말까지 난민심사 결정이 종료된 사람은 1만5947명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난민인정을 받은 이는 688명뿐이다. 4.3%. 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2015년 기준 전세계 평균 ‘난민인정률’ 37%에 견주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한국 난민법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 때문에 자신의 국가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이라 정의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전쟁으로 인한 ‘시리아 난민’은 난민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난민법에는 별도로 ‘인도적 체류’ 조항을 두었다.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사람”에게 한국에서 체류할 자격을 주는 것이다. 지난 4월까지 이 조항에 따른 ‘인도적 체류자’는 1321명에 이른다.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를 모두 합치면 2009명. 숫자를 더해 셈해봐도 난민인정 신청을 한 뒤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자격을 얻는 비율은 12.5%에 지나지 않는다. 전세계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는 사회보장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 난민은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인도적 체류자의 경우 “(법무부 장관이) 취업활동 허가를 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의료보험 혜택은 당연히 받을 수 없고 취업을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계속 머물려면 체류 자격을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바늘귀 같은 난민인정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고 ‘추방’이라는 뜰채의 그물코만 간신히 빠져나온 인도적 체류자들의 삶은 불안하다. 불안의 뿌리는 제도에 있다. 유엔에서 ‘난민협약’이 채택된 것이 1951년이다. 이후 국가보다 테러집단이 더 강력해지는 등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난민은 아니지만 내전 등으로 자신의 나라를 등질 수밖에 없는 이들을 세계 각국에서는 ‘보충적’인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권리도 난민과 동일하게 보장한다. 난민 전문가인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하지만 한국은 인도적 체류자라는 틀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다. 쫓아내기는 애매해 체류 허가를 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의 사슬

이에 견줘 이주노동자 앞에 놓인 것은 ‘생존 장벽’이다. 를 보면 4월 기준 취업 자격을 가진 외국인은 57만2619명에 이른다. 이 중 비전문취업 비자(E-9)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6만7274명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보름 사이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돼지농장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별다른 법과 제도의 보호 없이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당연히 좋아서가 아니다.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권리’를 준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다. 마음대로 직장을 옮기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 결국 험한 일도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6월2일 한국이민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2017년 한국이민학회 학술심포지엄’에서 최홍엽 조선대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가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최소한의 주거 여건이나 작업 환경을 갖추지 못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여건에서 일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또 “새 정부 들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나 노동 존중 사회 실현 등이 중요한 사회 공약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정책 목표를 위해서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의 인권 보장이 긴요”하다며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장시간 근로와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면서 내국인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이룩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결국 한국 사회의 태도다. 사회가 난민을 귀찮은 시혜 대상으로, 이주노동자를 함부로 쓸 수 있는 노동력으로 보는 이상 장벽은 낮아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우리 공동체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구성원이다. 하지만 한국의 제도는 그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출입국관리법 제17조 2항이 그 상징이다.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주민지원센터 ‘친구’의 조영관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주민들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 지난겨울 촛불집회에도 자주 나갔다. 대선 때는 소수자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대통령이 당선됐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네팔 출신 이주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주민에게는 정치활동 자체가 불법이다.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경직된 제도는 결국 그 사회의 뒤처진 인식을 반영한다.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펴낸 를 보면 2015년 한국 성인 4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비율은 31.8%였다. 2010~2014년 세계 16개국에서도 같은 질문이 포함된 ‘세계 가치조사’가 이뤄졌다. 스웨덴은 같은 대답을 한 비율이 3.5%에 그쳤다. 중국은 12.2%, 미국은 13.7%였다. 한국보다 이주노동자와 이민자에게 더 부정적인 국가는 일본(36.3%), 싱가포르(35.8%), 러시아(32.3%)뿐이었다.

“아시아가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조영관 사무국장은 “대통령이 바뀐 것을 현장에서부터 느끼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경찰들이 지하철역 입구 등에서 불법체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불심검문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런 단속이 거의 사라졌다. 그만큼 기대도 높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한 사업장은 옮길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안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난민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일 변호사는 “정부가 난민 문제를 정책 대상으로 깊이 삼은 적이 없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고려해 의무감으로 해온 측면이 크다. 새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난민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시아만 놓고 보면 한국은 난민 정책의 선두 주자다. 난민법도 가장 먼저 만들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의 난민 정책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긍정적 변화는 아시아 전체의 난민 정책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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