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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 계승할 새 헌법

“헌법의 기본 정신은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지, 5·18도 헌법 전문에 넣어야”
등록 2017-05-25 07:17 수정 2020-05-02 19:28
문재인 대통령이 5월19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만나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9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만나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며 개헌 의지를 표시했다. 대통령 취임 뒤 개헌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담는 개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5월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광주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 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다”라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려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말에 참석자들 사이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국가의 기본 가치 담는 헌법 전문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는 4월12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회의에 참석해 “국회가 2018년 초까지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면 개헌이 완성된다”고 시기를 언급한 뒤 “새 헌법 전문에는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 정신을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공약집인 ‘나라를 나라답게’에선 “기능을 다한 1987년 헌법을 개정해 새 시대 헌법을 열겠다”고 했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근원과 기본 가치, 건국 이념을 담는다. 현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돼 있다. 3·1 운동과 4·19 의거는 들어가 있지만 이후 1987년 체제의 출발인 5·18 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 등은 명시돼 있지 않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며 새 정부의 근원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폄훼에 대해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 업무지시 제2호로 을 9년 만에 제창하도록 한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들어갈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정권인수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으로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고, 국민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에 대통령의 제안을 충분히 숙고해 담아주기 바라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헌법학자 다수가 찬성

5·18에 대한 법적·역사적 정의는 이미 공식적인 결론이 났다. 1995년 12월 국회가 여야 합의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 법에 따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 내란 목적 살인죄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5·18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 매년 정부 요인들이 참석하는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묘역 역시 2002년 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됐다.

헌법학자들 다수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의 통화에서 “헌법 전문에는 현 정부 체제의 기원을 담는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와 해방, 4·19 의거가 담겨 있는 것이다”라며 “5·18은 1987년 체제로 이행한 가장 큰 전환점이자 출발이었다. 프랑스혁명의 결과물이 근대 입헌주의고 헌법이 의미를 지닌 게 그때부터다. 헌법의 기본 정신이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지라고 볼 때 5·18로 대표되는 시민의 저항 의식은 반드시 전문에 넣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4·19 못지않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를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으로 전문에 추가하자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이다”라며 “아직도 일부에선 5·18에 대해 북한 개입설 등 악의적 명예 훼손 시도가 있지만 법적·역사적으로 이미 평가가 끝났다”고 말했다.

진보·보수 이념 논쟁으로 번질 우려

실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개헌이 이뤄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기하시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을 당대표로 뒷받침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보수를 대변하는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은 녹록지 않다. 개헌을 하려면 개정안에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120석)과 국민의당(40)을 합해도 겨우 과반이 되는 정도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제안 뒤 부정적인 뜻을 피력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은 숙성이 안 된 갑작스러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문제는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협의해가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바른정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도 “헌법은 가장 큰 국민 통합의 장치이고 이에 들어갈 내용은 헌법 제정 권력인 국민이 동의해야 한다”며 “과연 헌법 전문에 들어갈 만큼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중지를 모아야 한다. 대통령의 제안은 큰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칫 논의가 다시금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으로 번질 소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선 결과에서 보듯 아직 영호남의 온도차가 있다. 전체 국민의 호응과 공감대를 얼마나 얻어내느냐가 5·18 정신을 개정 헌법 전문에 넣는 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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