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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없는 ‘아빠 공약’ 이번엔 잘될까

‘역대 최장 초저출산 사회’ 오명…

1~2순위 대선 공약에도 재원·사각지대 해결해야
등록 2017-04-05 02:42 수정 2020-05-02 19:28
출산·육아 공약은 표를 얻으려는 선심성 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 구조를 개혁하려는 쪽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선거용 보육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위쪽)들과 2016년 4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 아이를 안고 표결에 참여한 영국 아넬리스 도즈 의원. 한겨레 이정아 기자, REUTERS

출산·육아 공약은 표를 얻으려는 선심성 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 구조를 개혁하려는 쪽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선거용 보육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위쪽)들과 2016년 4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 아이를 안고 표결에 참여한 영국 아넬리스 도즈 의원. 한겨레 이정아 기자, REUTERS

“한국인은 멸종위기종입니다. 2006년 영국의 권위 있는 인구 관련 연구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습니다. …지난 10년 무려 80조를 저출산에 쏟아부었지만 1.2명이라는 세계 최하위 출산율이 꿈쩍 않는 이유…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에서 속된 말로 독박을 쓰고 있습니다.”(심상정 정의당 대표, 1월23일 대선 공약 1호 발표 기자회견)

“지난 11년간 100조원 넘는 예산을 퍼부었으나, 저출산 문제는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인구 재앙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안 낳는 이유는 부모가,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책임을 더 짊어진 여성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박 육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의 육아 부담은 큰데….”(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2월26일 대선 공약 3호 발표 기자회견)

‘독박 육아’ 해결할 적임자는 누구

조기 대선 출산·육아 정책에는 좌우가 없다. ‘멸종’ ‘재앙’ 같은 극단적인 묘사나 저출산 원인을 여성이 ‘독박’을 쓰는 출신·육아 환경에서 찾는 등 정치적으로 상극이나 마찬가지인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가 같은 문법으로 출산·육아 정책을 설명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탓이 크다. 한국 여성이 가임기에 낳는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1960년 6.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65명)의 1.6배에 달했으나, 2014년엔 1.21명으로 OECD 평균(1.68명)보다 낮았다. 2016년엔 1.17명으로 더 떨어졌다.

OECD는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의 경우를 ‘초저출산 사회’로 간주한다. 한국은 2001년 초저출산 사회에 진입한 뒤 16년이 지나도록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이전에 초저출산을 경험한 11개국 가운데 한국만 유일하게 1.3명 이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일본은 3년(2003~2005년), 독일은 4년(1992~95년), 이탈리아는 11년(1993~2003년) 만에 초저출산 딱지를 뗐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되는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의 목표도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높여 초저출산 사회를 탈출하는 데 있다. 출산·육아 정책이 여성정책이나 복지정책의 일부로 다뤄지던 과거와 달리, 이번 조기 대선에서 여성·복지·노동·교육 정책을 망라한 ‘패키지 공약’으로 앞다퉈 제시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경선이 마무리되고 정당마다 대선 후보를 확정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 등을 담은 당 차원의 출산·육아 공약이 곧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경선 과정에서 일부 발표한 공약을 토대로 유권자가 향후 출산·육아 공약을 평가할 때 눈여겨볼 핵심 쟁점을 정리했다.

① ‘아이 키울 아빠 권리’ 공약 줄줄이

이번 출산·육아 공약의 특징은 ‘아빠 공약’의 등장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아빠휴직보너스제’와 현행 3일에 그치는 아빠 유급 출산휴가 기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엄마·아빠 모두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성평등 육아휴직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해 수립된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보면,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10명 미만 사업장(3.1%)이나 300명 이상 사업장(4.1%)이 큰 차이가 없었다. 여성은 사업장 규모별(64.8%-91.3%)로 차이가 커서 이용 격차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지만, 남성은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육아휴직 이용률이 현저히 낮다. 제3차 기본계획의 슬로건 ‘브릿지’(BRIDGE)의 알파벳 D는 아빠(Daddy)의 D다. 기본계획은 캐나다 퀘벡주의 경우 남성 육아휴직자가 3만8천 명에서 6만 명으로 늘어난 시기에 출생아 수가 7%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아빠들이 육아를 위해 가정에 뛰어들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육아휴직 같은 정책뿐 아니라 근로시간 같은 근본적 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

현재까지 가장 적극적으로 아빠 공약을 내놓은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다. 심 후보가 지난 1월 대선 첫 번째 공약으로 내놓은 ‘슈퍼우먼방지법’을 보면, 현행 3일인 아빠 출산휴가를 30일로 확대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12개월에서 16개월로 확대하되 이 가운데 3개월은 아빠가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는 ‘아빠·엄마 육아휴직 의무할당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아빠 공약이 본격화하면서 출산·육아 정책과 노동 정책이 쌍을 이룬다. 대선 공약 대표 슬로건이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일 정도로 출산·육아 공약에 공들이는 유승민 후보는 아예 출산·육아와 관련된 노동의제만 모아 2호 공약으로 발표했다. △퇴근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 등으로 업무 지시를 하는 ‘돌발 노동’ 제한 △근로일 사이 11시간의 최소휴식시간 보장 △근로시간 공시제 등이다. 기자회견 제목은 ‘칼퇴근 시대를 열겠습니다’였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2월16일 ‘성평등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키워야 한다. 아빠들에게도 아이를 키우고 함께 시간을 보낼 권리와 의무가 있다”며 출산·육아 정책의 첫 번째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정착, 특별 사유 없는 연장근로 금지 등의 노동 정책을 내세웠다. 아빠 육아휴직 보장은 두 번째였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이 말했다. “결국 아빠들이 육아를 위해 가정에 뛰어들게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육아휴직 같은 정책뿐만 아니라 근로시간 축소 같은 근본적 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돼 있는지 따져야 한다.”

② 재원 없이는 또 ‘박근혜식 가짜 보육’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출산·육아 공약의 옥석을 가리는 잣대로 ‘재원 마련 방안’을 꼽았다. “돈 얘기가 나와야 한다. 재원 확보 공약 없이 출산·육아 정책만 확대한다고 하면 또다시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구적 프레임에 갇히기 십상이다.”

박근혜씨의 2012년 대선 공약집에는 ‘확실한 국가 책임 보육-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이 국민행복 10대 공약 가운데 두 번째 순위에 올라 있지만, 대통령이 된 뒤 4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추가 확보하지 않고 시도 교육청이 기존 초·중·고 교육예산으로 투자하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떠넘겼다. 부모들이 ‘보육비 자부담’ 걱정에 내몰리는 ‘보육 대란’이 임기 내내 반복됐다.

재원 조달 방식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관련 재원을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양육 지원 예산이 프랑스는 2.8%, 스웨덴은 2.9%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0.94%(2014년 양육 지원 예산 13.9조원, GDP 1486조원)로 3분의 1 수준이다. 합계출산율(2014년 기준)은 프랑스 1.98명, 스웨덴 1.91명으로 한국 1.21명보다 높다.

한국의 양육 지원이 보육비 지원에 치우쳐 있어 국가 전반을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재원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42.5%)와 덴마크(49.8%)의 경우 출산·양육 지원을 포함한 가족정책에 지출하는 예산에서 보육비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못 미치지만, 한국(85.0%)은 보육비 외에 지원되는 예산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아동수당’을 제시하는 후보가 적지 않다. 유승민 후보는 초·중·고교 자녀 1인당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도입한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0~29살 아동·청소년·청년에게 연 1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개념의 수당을 공약했다. 문재인 전 대표 역시 3월22일 열린 민주당 경선 6차 토론회에서 “아동수당은 아직 설계가 안 돼서 발표하지 않았다. 아동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은 섰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진석 교수가 지적했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아동수당은 지급되는 쪽으로 정책화할 것으로 본다. 다만, 재원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존 무상보육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도입되면 안 된다. 아동수당은 기존 보육 서비스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누리과정이나 영·유아 보육료 지원, 가정양육수당 등은 여성의 경제활동을 위한 것이며 아동수당은 아동인권 차원에서 아동 빈곤을 원천 방지하려는 완전히 다른 제도다.”

③ 중소기업·외벌이 등 여전한 사각지대

출산·육아 공약의 의도치 않은 ‘편향성’도 검증 대상이다. 대체로 현재까지 제시된 후보들의 공약은 대기업 편향과 맞벌이 가정 편향을 보인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아빠휴직은 기존에도 있던 방안인데 실행이 안 됐다. 공공기관이나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가능하겠지만 대다수의 민간기업이나 중소·영세 사업장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여성은 고용보험 제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이용을 보장할 수 없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앞으로 외벌이 부부에 대한 공약도 나와야 할 것이다.”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지난해에 태어난 아이는 40만6300명인데, 2015년 기준 출산 전후 휴가자 수는 9만4590명에 그친다. 30만여 명의 아이를 낳은 부모들에 대한 지원이 없으면 국가가 원하는 수준의 출산율 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출산·양육 정책을 이용하는 부모들 사이에 ‘이용 격차’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제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보면, 전체 노동자의 9% 남짓한 대기업 노동자가 전체 육아휴직자의 47.1%를 차지한다. 출산휴가만 쓰고 육아휴직은 못 쓰는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10명 미만 사업장은 35.2%에 달하는데, 300명 이상 사업장은 8.7%다.

현재까지 이용 격차 관련 공약은 ‘정규직 엄마 외에 전업주부와 비정규직 엄마에게도 혜택을 주는 출산수당 150만원 지급’(문재인 전 대표), ‘부모보험을 도입해 비정규직, 자영업자, 영세기업 노동자 등 육아휴직 급여의 혜택을 못 받는 사각지대 해소’(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있다.




대선  주자별  출산·육아  공약


*후보 이름은 가나다순
문재인

-정규직, 비정규직, 전업주부 모든 엄마 위한 출산수당 150만원
-아빠도 육아휴직 보장하는 아빠휴직보너스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정착
심상정

-출산휴가 120일, 유급 3일인 배우자 출산휴가 30일로 확대
-유아휴직 기간 12→16개월
-부부가 3개월씩 나눠 쓰는 ‘아빠·엄마 유아휴직 의무할당제’ 도입
안철수

-남녀 모두를 위한 성평등 육아휴직제
-30일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
-보육교사, 아이돌보미 포함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
안희정

-육아휴직 급여 못 받는 비정규직, 자영업자, 영세기업 근로자 위한 부모보
험 도입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단기적 30%, 장기 50%
-보육교사 처우 개선, 정부 지원 확대
유승민

-육아휴직 기간 1→3년
-육아휴직 대상을 만 8살 이하 자녀 둔 부모에서 만 18살(고3) 자녀 둔 부모
까지 확대
-돌발 노동 금지 등 칼퇴근법 제정
이재명

-육아휴직 급여대체율 40→80%
-모든 가정에 산후조리비 100만원 지원
-일·가정 양립 해치는 부당노동행위 감시 위한 1만 명 노동경찰 제도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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