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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68혁명’을 경험하다

‘블랙리스트’ 김정헌 작가가 말하는 촛불
등록 2017-03-14 12:27 수정 2020-05-02 19:2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김정헌. 스스로 ‘해방둥이’를 자처하는 1946년생. 한국 나이로 일흔둘의 노인이다. 보통 노인은 아니다. 서울대 미대를 나왔다. 민중미술 1세대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쫓겨나긴 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장관급)까지 지낸 관료였다.

김정헌은 ‘블랙리스트’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기 위원장이던 그는 참여정부 시절 임명됐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해임됐다. 김정헌은 거기에 맞서 대법원까지 가서 끝내 이겼다. ‘출근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탄핵 촛불에 애틋한 감정을 품었다. 서울과 경기도 가평의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늘 광장을 찾았다. 딱 한 번 빼곤, 계속 주말 광장을 지킨 촛불 ‘정근자’였다.

촛불의 의미에 대해 김정헌은 공동체주의자 매킨 타이어의 말을 꺼냈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로부터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김정헌은 “이번 경험을 통해 어쨌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교육을 받은 것”을 최대 성과로 꼽았다.

탄핵 인용에 대해선 처음부터 걱정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막상 탄핵 인용을 접하자 눈물이 났다고 했다. “1500만의 촛불이 탄핵을 원했는데 그깟 법이 뭘 어쩔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촛불의 힘으로 역사를 밀어 탄핵이 오고, 국민의 힘으로 헌법이 지켜졌고, 헌법 파괴자를 끌어냈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이번 촛불을 서구 사회의 ‘68혁명’과 견주는 그는 68혁명 이후 전세계가 ‘에로스 이펙트’(Eros Effect)를 맞이해 뒤집어졌던 것처럼 “한국 사회도 더는 역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68혁명은 감성 혁명이었다. 기득권, 부모 세대들이 구축해 붙잡고 살던 세계를 우린 못 참겠다며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페스티벌을 하면서 해방을 노래하고 춤췄다.” 68혁명과 마찬가지로 한바탕 즐거웠고, 그 즐거움이 체제를 바꾸는 변화를 경험한 이들은 이제 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나이로 보면 ‘태극기집회’에 더 어울릴 수도 있는 그는 그들을 타도가 아닌 “치유의 대상”으로 보았다. “맹목적 기독교 신앙과 반공주의가 겹쳐” 있는 상태에서 먹고사느라 그 의미가 뭔지 생각해보지 못한 채 “태극기만 들면 무조건 애국자라고 생각하며 고립되고 낙오된 사람들”을 더 방치하지 말고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촛불 이후 그 화두를 붙잡겠다고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 김정헌은 “노인들은 누구나 기회만 있으면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며 “이번 태극기집회도 그들의 집단 ‘발화’였다”고 분석했다. 발화함으로써 삶의 활기를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사회적으로 흡수해 문화와 예술로 개입해보는 ‘공공적 작업’이 그의 꿈이다.

그는 지금 발화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수화자를 자처하는 을 준비 중이다. 황혼을 향해 가는 사회참여 예술가 김정헌의 최후 작업은 그렇게 ‘국가’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굳어진 생각이기도 하다. “환대와 청취로서 타자의 추방을 막을 수 있는 국가는 가능할 것인가.”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드립니다. 탄핵/대선 특대호 1+1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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