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종 기자
‘할 말이 없다’는 김인수(사진)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을 어렵게 설득해 만났다. 와 로 두 번이나 1천만 영화를 제작했고, 시네마서비스 대표를 지낸 영화인이다.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합류해 2013년 초 사무국장이 됐고 2015년 2월까지 영진위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블랙리스트’ 실행을 목격했다.
김 전 사무국장은 블랙리스트가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 라인에서 2014년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고 봤다. 국가정보원 기관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암약하며 해온 ‘작업’들이 누적돼 표출된 것임을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별다른 수사 없이 담백하게 말했다. 이야기 진도가 빨랐고 거침없었다.
문제가 되는 작품이나 이슈에 유선으로 부서장에게 직접 연락이 온다. 별 내용은 없다. 그냥 안 된다는 거다. 이슈가 민감할수록 절대 아래 직원들과 통화하지 않는다. 기록은 당연히 남기지 않는다. 문서로 연락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유선으로 전달받은 내용을 역시 구두로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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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나온 리스트는 본 적이 없다. 그건 문체부 장차관과 실무 책임자들끼리만 돌려본 것 같다. 산하기관은 부하직원이 아니니까 노골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건별로 지시를 내렸다. 리스트가 있었다면, 취합은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2014년부터 구체화한 것 같다. 부터 특히 더 무조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은 이례적 강도였다. 당시 부서장이 영진위 근무 20년 넘은 사람인데 “향후 부산영화제 예산까지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바로 내게 보고했을 정도다. 처음부터 은 상영되더라도 (당국의) ‘표 싹쓸이’가 있겠다 싶었다. 이전에도 문제가 되는 영화는 문체부나 부산시 등에서 상영을 방해하려고 인력을 동원해 미리 표를 싹쓸이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기술적으로 처리 가능하던 일들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진위 사무국장이 되고 2014년에 처음 영화 투자 모태펀드(fund of funds, 국내에선 중소기업청 주도로 만들어진 투자 관리 전문기관의 펀드를 일컫는다) 심사에 당연직 심사위원으로 들어갔다. 근데 “에 투자한 창투사는 선정 안 했으면 좋겠다”는 문체부의 연락을 받았다. ‘위에서 특정 캐피털을 찍어 거긴 안 된다’고 했다는 거다. 민간 회사의 영화 투자 심사를 위에서 개입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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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마 청와대가 직접 찍었을 거다. 문체부가 심사 날짜에 맞춰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었을 테고. 2013년 이 개봉했을 때 영화계 안팎에 “정치권에서 이 700만이 넘게 되면 정치 판도가 바뀐다고 하더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뜬금없는 소리의 출처가 막 비서실장이 된 김기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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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실제로 영화 개봉 이후 CJ한테 압박이 가고 제작자, 투자자, 배우 송강호까지 줄줄이 문제가 됐다. 송강호 관련 영화나 를 배급한 영화사들에 예산과 행정을 지원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박근혜 정부는 왜 문화예술 좌편향을 경계했을까. ]
김기춘 비서실장은 한평생 문화예술과 상관없던 사람 아닌가. 뭔가 틀이 있었다고 본다. 내 생각에 그건 MB 정부 때 청와대에서 나온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이다. 2008년에 작성했다 덮은 그 문건을 박근혜 정부가 다시 끄집어낸 거다.
영진위에 들어온 2011년 8월 무렵 누군가 (나에게) 그 문건을 보고했다. 영화계가 좌파에 점령당했고, 영진위 직원들조차 좌편향으로 물들어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기가 막혔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결국 그 틀을 실행한 것이다. 그전에 영진위 직원 물갈이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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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진위 오기 전에 직원들 성향을 조사해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성향 조사를 해서 좌천시키고 내부가 시끄러웠다. 직원들 사상 조사를 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다. 그 피해자들 중 아직 영진위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 작업을 문체부가 했을까? 글쎄…. 그런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기관은 오히려 국정원이 아닐까. 제작 배급 현장에만 있다가 영진위에 들어와 이런저런 상황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영화인들을 계속 분류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 그 작업은 국정원이 했을 거라고 본다. 건수가 없어 함부로 못 건드리다 이 터지면서 때를 만난 거다.
국정원이 기관 담당자들을 두고 있다. 영진위 내부에도 국정원을 끼고 (내부) 정치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다. 누군가 국정원에 의존하고 뭔가를 주고받을 때 항상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사무국장이 됐을 때도 국정원 담당자가 찾아와 “(영진위에서 일하는) A 본부장과 친분이 있다”고 했다. 영진위, 예술위 다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 파문은 국정원에 협조해 올라가려 한 (영진위 등 문화기관의) 내부자들의 문제와 겹쳐 있다. 국정원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그걸 권력으로 자기 지위나 승진에 활용한 문제다.
영진위 A 본부장 주도로 계속 내부 직원 성향 조사를 해왔다. 조사 후 직원들 좌천시키고…. MB 정부 시절인 2010년과 2011년 무렵에도 ‘희망버스’ 관련해 영화계 좌파 성향 리스트를 만들어 올렸다. 일종의 영화계 살생부였다. 그것이 모두 국정원에 보고돼 ‘블랙리스트’가 된 것이다.
영화인 성향·동향 보고를 했다는 구체적 증거나 자료가 있나.
그런 보고를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아랫사람에게 줄 리가 있겠나. 노출만 되도 자기 밥줄이 끊기는데. 내가 사무국장이었다고 해도 그걸 볼 수는 없고 얘기만 들었다. 어느 기관에나 사무국장이나 위원장 바뀌면 국정원 직원이랑 저녁 자리를 잡는 비선들이 있다. ‘블랙리스트’는 그 라인에서 오래전부터 관리되던 명단을 2013년 말 2014년 초에 보강한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국정원이 리스트가 필요하다고 했다면 영진위 내부의 누군가가 만들어서 보고했을 것이다. 국정원도 동향을 파악하는 게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최종적으론 청와대이고. 영진위든 예술위든 국정원이 기관 내 비선을 활용해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그게 문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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