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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교육혁명’ 대선 공약

정유라 ‘부정 입학’ 계기로 입시 공정성 문제 불거져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학생부종합전형 개선과 대학 서열 개혁

제1147호
등록 : 2017-01-23 22:12 수정 : 2017-01-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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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의. 이 자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행 대학입시제도 개선과 대학 서열 완화 등 대선 교육 공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국면에서 청년·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계기가 된 것은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이었다. ‘정유라’는 한국의 대학이 은밀하게 적용해온 선발 기준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부모 배경이 대학입시 성패를 가른다는 대중의 인식은 더욱 굳어졌다. 입시 결과가 나와도 승복이 어려운 현행 입시제도의 공정성 문제를 겨냥한 ‘금수저 입시’라는 말도 넓게 회자됐다.

이 때문에 입시제도 개편은 촛불 혁명의 과제이기도 하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입시제도 개편이 주요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월12일 국회에서 토론회(‘박원순 서울시장 초청 토론회-입시지옥에서 해방·교육혁명의 시작’)를 열어 교육 공약을 제안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촛불 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은 어떤 차별도 특권도 없는 공정하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라는 것”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은 교육혁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불복을 부르는 불공정한 입시의 대안은 무엇일까.

불복 부르는 불공정한 입시의 대안

현행 입시제도의 구체적 대안을 발 빠르게 준비한 대선 주자는 남경필 경기지사다. 남 지사는 현재 4년제 대학 전체 모집 정원의 70%를 선발하는 수시모집 비중을 40%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학 자율 선발 수시모집 비중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 선발 정시모집 비중을 현행 70:30에서 40:60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안이다.

2017학년도 입시에서 수능 성적이 당락을 가르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정시모집 비율은 모집 정원의 29.4%로 사상 처음 20%대로 떨어졌다. 반면 자기소개서·학교생활기록부·교사추천서 등의 서류와 면접평가, 논술고사 등을 활용해 대학이 당락 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수시모집 선발 인원은 70.5%에 달했다. 2002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도입된 수시모집이 주요 대학의 주된 선발 방식이 된 것이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부모 배경이 대학입시 성패를 가른다는 대중의 인식은 더욱 굳어졌다. 입시 결과가 나와도 승복이 어려운 현행 입시제도의 공정성 문제를 겨냥한 ‘금수저 입시’라는 말도 넓게 회자됐다.

심영주 경기도청 정책실 정책보좌관은 “도지사 선거 때부터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일성이 ‘수시모집 줄여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심 보좌관은 “장기적으로 수시모집이 확대되고 전형이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 다만 현재 학부모들 처지에서 수시모집이 너무 복잡하다보니 입시 결과가 나와도 수긍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최근 정유라 사건 때문에 수시모집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요구는 ‘차라리 학력고사가 낫다’는 것으로 모인다. 객관식 시험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이 있더라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수시모집 20% 축소’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날 국민의당 당사 민원실에 ‘격려 전화’가 폭주했다. 그만큼 수시모집에 대한 불신이 깊다.

지금 고등학생 자녀를 둔 4050세대가 ‘학력고사 세대’라는 점도 입시제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증폭되는 지점이다. 1981~93년 입시를 치른 ‘학력고사 세대’의 연령은 43~55살로 현재 중·고교 자녀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치른 입시는 역대 가장 단순한 입시제도로 평가받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자녀들은 역대 가장 복잡한 입시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2월 ‘수능폐지 이후 대입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한 김위정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학부모가 수시모집에 대해 갖는 불만은 ‘불확실성’이다. 아이들을 한 줄 세우기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아이가 어느 수준인지 어느 서열의 대학에 갈 수 있는지 불확실한 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준화된 수능이나 학력고사를 원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바람과 달리, 국가 주관 학력고사나 수능과 같은 객관식 지필고사가 다시 대세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학생부 기반 입시는 학력고사·수능 기반 입시가 고등학교 교육을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논문 ‘한국 대학입시제도의 사회사적 변천과 특징에 관한 연구’를 쓴 강창동 한경대 교수(교양학부)는 “입시 문제 해결을 위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안 해본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해도 효과가 없다. 수능 100%로 돌아가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가 이미 겪은 문제를 또다시 답습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폐지론 공론장에 세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00년대 초반 제기된 대학 평준화와 유사한 ‘대학입학보장제’를 대입제도 개선 방안으로 내놨다. 이 단체의 김성수 정책위원이 지난해 11월. 대학입학보장제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그럼에도 지나치게 복잡한 현행 입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번 대선을 통해 확실히 개선될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월12일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는 내신, 수능, 수시와 정시, 교과와 종합, 논술 위주, 실기 위주 등 온갖 조합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입시제도”라며 “대학교마다 천차만별인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고, 교내외 수상 및 각종 인증시험을 반영하지 않도록 해 우리 아이들이 불필요한 스펙 쌓기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대입에서 스펙 경쟁 유발하는 수상 실적, 각종 인증 등 반영 금지” 공약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선 후보의 캠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비교과를 많이 반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부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선 입시 문제 해결의 본질적 방안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대학입학보장제’를 제안하며 포문을 열었다.

대학입학보장제는 수능과 내신에서 일정 등급 이상을 획득한 학생들에게 희망하는 대학의 입학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희망 대학 6곳을 지원하면 고교 평준화 지역에서 하는 것처럼 학생들을 배정하겠다는 방안이다.

강태중 중앙대 부총장(교육학 교수)도 그 취지에 공감하는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기본 방향이나 취지는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방식이다. 좋은 성적은 순전히 학생 개인의 공이 아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훌륭한 유전자를 받고, 좋은 동네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등 수많은 사회적 변수가 있다. 그런데 나쁜 성적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물어서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측면에서 오히려 추첨이 옳다고 본다.” 실제 네덜란드 의과대학은 지원자 중에서 추첨해 합격자를 가린다.

지난해 10월까지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이범 교육평론가의 ‘메이저대학 공동선발제’ 역시 평준화에 기초한 방안이다. 서울 지역 사립대에 과감한 재정 지원을 하되, 학생 선발권을 국가로 환원해 사실상 추첨·배정하는 내용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평준화에 가까운 변화가 없으면 입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 등이 이번 대선에서 쟁점이 될 텐데,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 부분을 보전하기 위해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을 현저히 낮추는 사회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을 현격하게 줄이는 대책으로 평준화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논의를 가장 먼저 받아안은 대선 주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1월12일 국회 토론회에서 “국공립 대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울대를 여러 개 만들겠다”고 밝혀 ‘서울대 폐지’ ‘대학 평준화’라는 키워드를 공론장에 세웠다.

대학입학보장제 관련 연구를 맡고 있는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옛날에는 서울대 폐지론이나 대학 평준화를 꺼내면 ‘공산주의야?’ ‘좌파야?’ 의심받을까봐 정치인들이 부담스러워했지만, 이제 입시 고통이나 사회 불평등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불평등 완화가 대선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대선 후보들이 우리 단체에 교육 공약 관련 자문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평준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을 조정하자는 제안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국공립 대학 통합 네트워크’ 방안을 연구했던 김영석 경상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박원순 시장의 국공립 대통합 네트워크 방안이 나오자마자 취지보다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과거처럼 소모적 논란만 남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공립대 정원과 사립대 정원을 조정하는 일로도 서열 완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교육 여건 측면에서 서울 소재 사립대가 지방 국립대를 못 따라온다. 그런데 등록금은 국립대가 사립대 절반 수준이다. 이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시대인데,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나와도 취업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어디로 오겠나. 30:70 수준인 국립대:사립대 정원 비중을 50:50으로만 조정해도 대학 서열은 완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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