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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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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삼성 ‘삼죄’

사상 처음 삼성 총수 구속될까…

뇌물공여, 위증, 선대부터 내려온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가지 죄
등록 2017-01-17 06:08 수정 2020-05-02 19:28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12일 아침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12일 아침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는 이따금 아이들과 탁구를 친다. 하루는 아들이 평소 사용하던 펜홀더형 탁구채를 셰이크핸드형으로 바꿨다. 웬일이지 하면서 게임을 했는데, 평소 점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점수 차로 지고 말았다.”(이건희 에세이 , 1997)

어린 아들 이재용은 아버지 이건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펜홀더형은 공격형, 셰이크핸드형은 수비형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짚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해야 한다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이건희는 이런 생각을 했다. ‘기업도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으로 변신해야 한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아들

2014년 5월, 아버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지난 2년9개월여 아들은 한편으로 아버지를 흉내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지자 삼성서울병원 이사장으로서 허리를 90도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고, 갤럭시노트7 배터리 화재 사건에 발 빠른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

2017년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아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이건희의 아들’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람들’(미래전략실)이 쳐놓은 장막 속에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정경유착과 로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탓이다. 수비에는 능했지만, 공격적 변신에는 실패했다.

지난 1월12일 아침 9시3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건물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국민들께 정말 송구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특검은 ‘참고인’이 아니라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재용 부회장의 검찰 소환조사는 세 번째다. 지난해 11월12일 다른 재벌 총수들과 함께 검찰에 비공개 소환된 것을 제외하면 공개 소환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승계, e삼성 부당 지원 의혹 사건 등으로 소환된 2008년 조준웅 특검 조사였다. 9년 전과 지금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당시 조준웅 특검팀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두 차례 소환조사했으나,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4조원이 넘는 차명재산을 찾아내고서도 횡령이 아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했고,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한 편법 승계에는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이재용 당시 전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아 기소되지 않았다. “저 때문에 늦게까지 수고하셨습니다.” 2008년 그는 14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에는 조사 시간이 22시간으로 길어졌다. 다음날인 1월13일 아침 8시 특검 사무실을 빠져나온 이재용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은 채 서초동 삼성 본관으로 출근했다. 지친 듯한 그의 얼굴에는 언뜻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삼성 총수 일가는 그동안 유독 ‘감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병철 창업 회장은 한 차례도 검찰에 불려간 적이 없고, 이건희 회장이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조사 받은 게 처음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한테 사면 ‘선물’을 받았다.

한 번도 감옥 가지 않은 삼성 총수들
2011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첫 출근길에 동행했고(왼쪽), 2014년 5월 아버지가 쓰러진 뒤로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1년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첫 출근길에 동행했고(왼쪽), 2014년 5월 아버지가 쓰러진 뒤로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검 중수부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한창 벌이던 2002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이 기소될 때도 가장 많은 370억원을 건넨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소환조사도 받지 않았다. “내가 다 알아서 했다”고 주장하는 이학수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2005년 노회찬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X파일’ 사건 때는 이건희 회장이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서면조사만 진행하고 무혐의 처분했다. 2008년 삼성 특검이 불구속 기소한 사건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최종 판결이 내려진 지 4개월 만인 2009년 12월3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전례 없는 ‘원포인트 사면’(이건희 회장 1명만 사면)으로 새해 선물을 안겨줬다.

정몽구(현대자동차), 최태원(SK), 김승연(한화), 이재현(CJ) 등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 한 번씩 감옥에 다녀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삼성한테는 유독 너그러웠다. 이건희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혐의는 최초 고발 뒤 10년 가까이 시간을 끌다가 겨우 기소됐으나, 2009년 대법원에서 팽팽한 법적 공방 끝에 5(유죄) 대 6(무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그야말로 ‘법 위의 삼성’이었다.

박영수 특검팀은 1월13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주말 사이에 결정하겠다. 뇌물공여와 위증을 주된 혐의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과 앞서 조사받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대한승마협회 회장) 등의 형사처벌 수위를 일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이번에도 ‘운 좋게’ 구속이란 칼날을 비켜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건희 회장의 빈자리로 인해 사실상 총수나 다름없는 ‘황태자’가 처음 수의 입은 모습을 보이게 될까. 이재용의 삼성이 저지른 세 가지 죄, 이른바 ‘삼죄’(三罪)를 차례로 따져본다.

1. 뇌물

이 사건의 실체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삼성과 박근혜 대통령-최순실이 어떤 부당거래를 했느냐다.

2014~2015년은 삼성그룹에는 중요한 시기였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새로운 지배체제를 순조롭게 닦아야 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첫 관문이었다. 그런데 2015년 6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그룹은 전방위적으로 뛰었다('이재용 형사처벌로 끝일까' 참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된 이후인 7월25일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따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2014년 9월 1차 독대할 때 부탁했던 대한승마협회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이 부회장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삼성은 대한승마협회장을 맡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독일에 보내 최순실과 정유라를 전폭 지원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8월 최순실이 독일에 소유한 비덱스포츠와 220억원 상당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80억원을 송금했고,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세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했다(하단 표 참조).

박영수 특검팀은 이것이 수백억원의 ‘뇌물’이라고 판단한다. 특검팀이 만지작거리는 뇌물과 관련한 카드는 두 가지다. 형법 제130조 ‘제3자 뇌물제공’ 혐의와 형법 제133조 ‘뇌물공여’ 혐의다.

두 혐의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하려면 ‘대가를 기대한 부정한 청탁’이라는 구성 요소를 갖춰야 한다. 정유라 승마 지원금이나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기부금이 대표적인 제3자에게 제공한 뇌물에 해당한다.

삼성은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쪽의 강요에 의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지원한 것일 뿐 ‘대가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키도록 도와달라’는 식으로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정유라에게 말을 사준 게 아니라는 의미다. 대가를 바라는 구체적 청탁이 없었다면 제3자 뇌물제공죄를 적용하긴 어려워진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확실한 지시가 있었다는 ‘마지막 퍼즐 조각’도 맞춰야 한다. 최순실→박근혜→안종범 또는 문형표→홍완선(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끼워져야 하는 셈이다. 이에 더해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실제 ‘청탁’이 오갔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7월17일)은 2차 독대(7월25일) 이전”이라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반면 뇌물공여죄는 좀더 포괄적이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사건 때 수백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기업인들의 재판에서 대법원은 ‘포괄적 뇌물죄’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대통령은 정부의 중요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등 기업체 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 대가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는 ‘경제적 동일체’라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 삼성이 설사 ‘대가’를 바라지 않고 ‘관리’ 차원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최순실을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뇌물죄가 성립될 수 있다. 아주 두툼한 ‘떡값’이었던 셈이다.

특검 수사 내용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이미 검찰 특수본에서 뇌물죄에 대해 굉장히 탄탄하게 수사를 해놓은 상태에서 수사자료가 넘어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하에 어떤 일을 했는지 마지막 퍼즐이 덜 맞춰진 상태였는데, 특검팀이 ‘키맨’에 해당하는 문형표 전 장관을 구속시키고 삼성 쪽 수사를 하면서 대통령이 뇌물죄의 주체로 등장하는 단계까지 접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뇌물공여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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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증

삼성 쪽의 변명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만 해도 ‘모르쇠’ 태도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독대한 자리에서 대한승마협회 관련 이야기가 오가거나, 최순실이나 정유라의 존재를 암시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말이 바뀌었다.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1차 독대 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했고, 2015년 7월 2차 독대에선 질책까지 받아 최순실 쪽과 컨설팅 계약을 맺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최순실과 정유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시점 등에 대해서는 ‘모르쇠’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특검팀에서는 삼성이 사실상 정권 초기부터 최순실과 정유라의 존재를 파악하고 ‘관리의 삼성’답게 ‘관리’ 또는 ‘투자’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박상진 사장 등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서로 엇갈리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월13일 특검팀이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도 중요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1월12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특검팀이 고발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조처다. 국회증언감정법 제14조는 국회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했을 경우 1년 이상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2월6일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대부분 “모르겠다”거나 “보고를 못 받았다”는 취지였으나, 특검팀은 명백한 거짓말이 있었다고 본다.


특검팀에서는 삼성이 사실상 정권 초기부터 최순실과 정유라의 존재를 파악하고 ‘관리의 삼성’답게 ‘관리’ 또는 ‘투자’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우선 최순실 딸인 정유라의 존재를 언제 처음 알았고, 언제 보고를 받았느냐가 핵심이다. “(최순실의 존재를 안 건) 2016년 2월 언저리쯤이 아닌가… 언제 정확히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유라에게 말 사는 돈을 줬다는 것은) 문제가 되고 나서 미래전략실 사람들한테 들었습니다.” “(비덱스포츠에 지원된 80억원이 최순실한테 갔다는 건) 문제가 되고 나서 들었습니다. 그런 세부적인 내용까지 저한테 보고를 안 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사를 맡으면서 승마협회에 복귀한 게 2014년 12월이고, 박상진 사장이 승마협회장으로 취임한 게 2015년 3월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2016년 2월에야 알았다는 대답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승마협회는 2015년 6월 이미 삼성이 지원할 것을 전제로 ‘정유라 올림픽 지원 로드맵’을 짜둔 상태였다. 박상진 사장은 2015년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유라 지원을 지시받은 김종(구속 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긴밀하게 연락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2015년 7월25일 2차 독대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언급이 있었는지도 관심을 모은다. “(2015년 7월) 독대가 있었을 때는 이미 주주총회라든지 합병이 다 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그런 합병 건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이재용 부회장 국회 청문회 발언)

하지만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7월27일치 업무수첩에 ‘삼성-엘리엇 대책’이라는 문구를 적어둔 것으로 특검은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이재용 부회장은 “(안종범 수석에게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는 의혹은) 그런 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인했다.

3. 쇄신 실패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다.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를 보좌할 뿐 아니라 기획, 대외협력, 홍보 같은 주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룹 내 핵심 인력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미래전략실의 뿌리는 1959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만든 비서실이다. ‘그림자’처럼 회장을 보좌하는 직원이 점점 늘어났고 회장 재산까지도 이곳에서 관리했다.

이건희 회장 취임 뒤 비서실은 2008년 없어졌다. 대신에 구조조정본부가 생겼다. ‘구조본’이라 불리던 이곳에서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승계를 주도했다. 대외협력이란 명목으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인맥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작업도 구조본이 도맡았다.

2006년 ‘X파일’ 사건이 터진 뒤 구조본은 전략기획실로 축소 개편됐다. 하지만 인적 쇄신은 이뤄지지 않았고 팀만 줄였다. 그러다가 2008년 삼성 특검에서 4조원에 달하는 차명계좌의 존재 등이 알려진 뒤에야, 이건희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이 복귀하면서 없어졌던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만 바꿔 단 채 슬그머니 부활했다. ‘이재용의 가정교사’로 알려진 최지성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을 맡은 것은 2012년 6월이다. 그렇게 이학수, 김인주가 빠진 자리는 최지성, 장충기, 김종중 등이 채웠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이 모든 사태의 궁극적 목적이었지만, 정작 이 부회장은 여기서 전혀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모든 일이 미래전략실 주요 임원들의 기획과 집행에 의해 짜였다. 미래전략실이 불법, 편법을 저지르는 것을 총수가 막지 못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했다. 삼성물산이 합병을 앞두고 의결권 확보 차원에서 KCC에 자사주를 넘기는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도, 결국 미래전략실 임원들에게 설득당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지금의 미래전략실 임원들은 아버지의 가신들이다. 삼성은 왕조다. 왕세자가 선왕의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가신들은 어릴 때부터 왕세자를 봐왔기 때문에 ‘너를 위한 일이야’라고 설득하면 왕세자가 거기에 적극 반대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지금이 이재용에게는 마지막 기회다. 가신이라는 인의 장막을 벗어나,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경영은 전문경영인한테 맡기고 자신은 외부와 소통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로 리더십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발 딛고 있는 ‘토대’는 아직 취약하다.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고리를 만들긴 했지만, 지주회사 전환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고 복잡하다. 더구나 불법, 편법 승계라는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1999년 아버지가 물려준 60억원 가운데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산 것이 이재용 부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원천이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제일모직, 삼성물산으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원죄가 사라지진 않는다.

‘경제 악영향’ 근거 없어

최근 정치권에선 재벌 총수의 중대범죄에는 집행유예형이나 사면이 불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재용 구속’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특검팀의 구속영장 청구가 현실로 다가오자, 반대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특검팀이 여론에 휩쓸려 대가성이 확실치도 않은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엮어 구속하려 든다고 비판하거나, 국내 최대 기업의 총수를 구속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니 불구속 기소하라고 충고한다.

이와 관련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1월12일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재벌 총수 구속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있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해본 것이다. 분석 대상이 되는 시점은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으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2007년 10월부터 이건희 회장이 특별사면된 2009년 12월까지다.

이 시기를 다시 4개로 나눠서 살폈다.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전체 기간에 해당하는 1시기, 조준웅 특검팀이 출범한 뒤 불구속 기소되기(2008년 5월)까지의 2시기, 기소부터 집행유예형을 선고받기(2009년 8월)까지 ‘실형’ 우려가 팽배했던 3시기, 최종 확정판결 이후 특별사면(2009년 12월)까지의 4시기.

전 교수는 이 시기에 이건희 회장에 대한 형사처벌 또는 유죄 선고가 삼성전자의 총자산이익률(ROA), 자기자본이익률(ROE), 매출액증가률, 영업이익과 매출액 등의 성과 지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는지 회귀분석했다. 한국·미국 경제성장률, 유로 금리, 직전 분기 성과 등이 미친 영향도 함께 살폈다.

네 시기 모두 사법처리 여부가 미친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 교수는 “재벌 총수를 형사처벌한다고 해서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그동안의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책임질 게 있으면 책임지겠다” “제 책임이 있으면 물러날 의사도 있다”고 말했다.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2008년 4월 물러났던 아버지는 2010년 다시 돌아왔고, 허물은 그대로 남았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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