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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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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진실 촉구하며 거리에 나선 청소년과 청년들…

계속되는 불통에 분통 터진 시민들의 목소리
등록 2016-11-08 14:16 수정 2020-05-02 19:28
3_함성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할 말만 했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한 번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지 않았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하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치를 무시하는 행보도 여전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전혀 의논하지 않은 채 기습 개각을 발표한 뒤 야권 대선 주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하야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 용산구 성심여고 학생들이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11월4일 대자보를 붙였다. 학생들은 박 대통령에게 “진실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페이스북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 용산구 성심여고 학생들이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11월4일 대자보를 붙였다. 학생들은 박 대통령에게 “진실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페이스북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할 말만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단 한 번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지 않았다. 11월4일 대국민 담화문 발표 때도 준비된 말만 읽고 황급히 사라졌다. 불통 대통령의 영혼 없는 사과에 국민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담화문 발표에 앞서 집계된 대통령 지지도는 최저치를 또 한 번 경신했다.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와 관련해 ‘잘하고 있다’고 답한 국민은 5%에 불과했다(한국갤럽, 표본오차 ±3.1포인트). 20∼30대의 지지율은 1%에 그쳤다.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다.

은 대통령 담화문 발표 직후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ankyoreh21)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사람들은 절망을 거듭했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독자들의 날 선 목소리를 가감 없이 싣는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거리에 나선 청소년과 청년들의 목소리도 직접 듣고 전한다.

사과를 사과하라어느 부분이 사과인지 누가 설명 좀 해달라. 아무리 듣고 봐도 무얼 사과한 것인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그게 사과인가? 미안하긴 한데,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게 결론 아닌가. 그게 무슨 사과인가. 사과란 내가 이런저런 잘못을 했다, 사실은 이렇다, 그러다보니 어떤 결과가 나와서 죄송하고, 상황이 허락된다면 조치를 취하겠다, 이런 게 사과 아닌가.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속아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기업을 국가를 위해 만들었는데, 그걸 이용한 최순실이랑 안종범이 나쁘지 나는 아니다? 나머지는 검찰 수사 때문에 말 못한다? 이건 국민들 약 올리는 것이지 어떻게 사과라고 말할 수 있나. 참 대단하다. -김상민 자식 잃은 세월호 가족은 당신의 슬픔보다 백배 만배 힘들다는 것을 아나. 악어의 눈물에 구역질이 난다. 담화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 너무 힘들어. 나 피해자야. 그러니까 너! 검찰 (나) 잘 봐줘. 나 부모님 잃고 너무 힘들었어.’ -이대영대통령 담화문은 ‘난 잘못한 것 없는데 우매한 민중이 괜히 난리를 치고 있다’는 것을 매우 예의 바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 -박수현아무리 노력하고 양심 지키고 빚까지 지며 살아도 삶이 점점 더 고통스러운 이유는 권력의 부정부패, 사기꾼이 득세하도록 하는 잘못된 법 때문이다. 담화문에는 변명과 보이지 않는 꼼수만 가득하다. -이은실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아직도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철없는 대통령. 사과가 아니라 국민 협박하는 소리 같다. -지종원 혹시나 뭔가 나올까 기대하고 본 게 억울하다. 이런 게 전파 낭비다. 어디서 외로움 코스프레인가. -김은조청년 ‘예술혼’ 자극하는 시국
청년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10월27일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굿 공연을 벌였다. 김진수 기자

청년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10월27일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굿 공연을 벌였다. 김진수 기자

시종 감정에 호소하는 대통령의 담화에 누리꾼들은 냉소를 보내며 “거리에 다시 나오라는 뜻”이라고 이해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청춘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았다. 전 국민적 분노의 물결이 일어난 지난 10월 말부터 보수와 진보, 청소년, 청년 가릴 것 없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섰다.

중앙대학교 총학생회는 10월27일 시국선언과 함께 굿 공연과 뮤지컬 공연을 발표했다. 10월31일 오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캠퍼스에서도 시국을 개탄하는 굿판이 벌어졌다. 옛 안기부 터이기도 한 이곳에서 학생들은 ‘시굿선언’을 했다. 이 학교 전통예술원 학생들이 모여 만든 공연팀 ‘나길’이 주축이 되어 별신굿을 벌였다.

이날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한예종 총학생회장 황예정(24)씨는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시국에 비판적인 태도로, 작금의 무속신앙과 전통예술에 대한 소비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당일 현장에는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 외부인을 포함해 관객 400여 명이 모였고,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은 조회 수가 20만 건이 넘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 땅의 청년으로서 이들은 “투표를 통해 선출된 한 나라의 수장이 임기 내내 국민을 기만한 현 사태는 명백히 반헌법적 행위”라며 “부패한 현 정권의 퇴진과 동시에 완전한 해체,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새로운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인으로서의 목소리도 높였다. 황씨는 현 상황과 관련해 “이 혼란의 시대에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나누려는 예술가의 사명이 막중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11월1일 최초로 거리행진을 자발적으로 기획해 광장으로 나선 대학생 정주희(24)씨는 11월2일 과 광화문에서 만났다. 정씨 또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많은 대학생이 부끄럽고, 화나고, 이런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에 허탈감을 토로한다고 전했다.

자발적인 거리시위에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같은 뜻을 가진 600여 명의 학생, 교수, 학내 노동자들과 교문을 나섰다. 거리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정씨는 “학내에서 이 목소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회에 알리고, 지역 주민에게도 알려야 한다.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시국선언을 하면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학교 주변 주민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학교 밖으로 나서자 두려움보다 벅찬 마음이 들었다. 지역 주민들은 이들의 시위에 환호했다.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학생들이 시위하면 불편한 기색을 많이 보이시는데, (이번에는) 같이 사진도 찍고 박수를 많이 쳐주셨다. 대학생들 열심히 잘한다고도 했다. 어느 한 계층, 한 세대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적 분노라는 뜻이다.”

2012년 대학에 입학한 정씨는 그동안 느꼈던 학내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많았다. 20대 투표율도 낮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말도 안 되는 실책, 세월호 참사 등을 보면서 20대도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까지 참고 생각만 해오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그는 학생들의 행동이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대통령 모교 후배들의 대자보
전국의 대학생 단체는 11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을 진행했다. 김진수 기자

전국의 대학생 단체는 11월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을 진행했다. 김진수 기자

청소년들 또한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통탄을 뱉어냈다. 중고생을 주축으로 한 청소년단체 ‘나비정치연구소’는 10월3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고 물으며 “우리는 훗날 투표를 통해 직접 참정권을 행사하게 될 청소년들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이들 청소년 가운데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당원뿐 아니라 새누리당 당원도 있다.

현재 고3인 오병주 나비정치연구소장은 11월3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중에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도, 대전, 경북, 경남 남해, 전남 목포 등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중고생 회원 20여 명은 각자 집회에 나서는 한편 “이 사태가 한 개인의 잘못을 넘어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민주주의를 농단한 사건임을 주변에 알릴 계획”이다.

11월1일 오후 전북 김제의 중학생들은 “대통령은 국민 말을 들어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는데 한 종교인의 말만 들었다”며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수험생 시국선언’ 등을 발표했다. “비록 당장 거리로 뛰쳐나갈 수 없더라도 헌법을 유린한 최순실 일가와 박근혜 정권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아 청소년의 시위 참여는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11월4일 박 대통령이 졸업한 서울 용산구 성심여고에도 대자보가 붙었다. 또박또박 쓴 손글씨처럼 학생들은 현 사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들은 교훈인 ‘진실, 정의, 사랑’을 내세워 박 대통령이 “진실을 숨기고” “2012년 10월22일 말씀하신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실천하지 않았으니 “국민을 사랑으로 안을 자신이 없다면 책임을 지라”고 주장했다.

한편 수험생으로서 느끼는 박탈감도 호소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내거셨던 슬로건 문구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기억하시나요? 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닌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라며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2기’ 학생들은 11월5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114 청소년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폐기, 대통령의 국정 방관,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하야를 지시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_진실은? 분노와 함께 절망도 깊어졌다. 자신을 은퇴자라고 밝힌 허득길씨는 “정권이 두 번 정도 왕복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리라 인내하며 살아왔다. 발전이 있다고 자위하며 살았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이 답답함을 내 세대에서 끝낼 수 없는 불길함이 든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밝혀지지 않은 여러 진실이 수면에 드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그들의 손이 닿은 것인지, 이 나라에 뭐 하나라도 그들로부터 자유로이 정해진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고 검찰, 경찰이고 언론이고 누구 말이 진실인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왜 이런 나라가 되었는지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진실을 추구하는 지금의 들불이 이번에야말로 냄비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끝장을 봤으면 하는 바람과 희망은 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은 국민의 손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계속 궁금해하고 알려고 해야 한다. 잊히길 바라는 자에게 잊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자. -김우리
이 사건으로 이 정권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 반박의 여지 없이 드러났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꾸준히 있었던 온갖 비리들처럼 또 쉬쉬하게 될까봐 무섭다. 세월호 탐사보도를 파고들었던 것처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모든 사건들도 끝까지 파헤치길. -이채연 그동안의 경위를 국민은 궁금해한다. 그건 빼놓고 말로만 하는 사과. 국정 공백은 누가 자초하는지 진정 모르나? 우주가 안 알려주었나? -홍명희급작스럽게 이뤄진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도 최순실 비선조직이 연관됐는지 재조사해야 한다. -김종성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저 살자고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박근혜를 당선시킨 MB의 책임. 정권 유지에 눈멀어 자당의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은 채 대통령으로 세워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새누리당의 책임. 이들의 책임 또한 끝까지 물어야 할 것. -김미경“대통령은 수사에 철저히 임하라”

국민은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힌 대통령에게 철저히 조사받을 것을 주문했다. 거두절미하고 사퇴하라는 목소리는 계속됐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이들은,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들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도 상처받았다”고 맞받아쳤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당신은 국민에게 임기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처 주었으니, 이제 그만하자. 난 이제라도 이 나라 국민으로 자랑스럽게 살고 싶다. 백번 양보해, 국민들이 당신 뽑은 죄로 여지껏 벌 받았으니 이제는 당신이 물러나시라. -김은경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쳤고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줘서 가슴이 아프다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알겠네. 사퇴하시라! -김세중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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