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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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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의 숨은 죄인은 국가다”

‘낙태 커밍아웃’ 홍승은, 지구지역행동 나영, 남성 이찬우씨가 낙태죄 폐지운동 나선 이유

‘국가 vs 생명’ 문제 ‘여성 vs 태아’로 호도하는 사회, 그리고 무책임한 남성
등록 2016-10-25 05:57 수정 2020-05-02 19:28
이찬우 ‘강남역 10번 출구’ 미디어팀(왼쪽),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장(가운데), 홍승은 인문학카페 36.5도 운영자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환경에서 낙태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용일 기자

이찬우 ‘강남역 10번 출구’ 미디어팀(왼쪽),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장(가운데), 홍승은 인문학카페 36.5도 운영자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환경에서 낙태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정용일 기자

한국 형법 제269조 1항에는 낙태죄가 명시돼 있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문제나 질환, 성폭행에 의한 임신 등의 이유에 한해서만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낙태를 허용한다.

여성 스스로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모아 좌담회를 열었다. 홍승은 인문학카페 36.5도 운영자,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장, 페미니즘 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미디어팀 이찬우씨가 10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지 들어보았다.

이들은 한국의 ‘낙태죄’가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인생과 여성의 삶이라는 차원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생명권’이라는 것은 단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의 생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이후 삶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태어난 이후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환경에서 낙태를 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파트너 남성을 지우고”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죄’라고 생각한다.
“태어난 아이의 이후 삶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도 생명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이런 삶의 영역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낙태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나영. 정용일 기자

“태어난 아이의 이후 삶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도 생명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이런 삶의 영역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낙태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나영. 정용일 기자

나영 윤리적·종교적 차원에서 얘기하는 죄와 법적 차원에서 말하는 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법적 차원의 죄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를 합헌으로 결정했을 때) 헌재에선 여성의 결정권과 아이의 생명권이 대치돼 있는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 아이의 생명권은 공적 영역, 여성의 결정권은 사적 영역에 있으므로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이 법체계를 지배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지 태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태어난 아이의 이후 삶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도 생명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여성의 판단은 단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적 조건과 연관돼 있다. 이런 삶의 영역을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낙태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기술이 이미 새로운 생명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배아 연구 과정이라든가, 저출산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난임 지원을 하면서 다태아 임신이 되었을 때 그중 일부만 선별하는 과정도 그렇다. 필요에 따라 인구 통제를 하고, 장애인이나 10대의 출산은 사회적 여건을 만들어 보장하지 않는 국가가 생명을 운운하며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을 강화하는 건 모순이다.

홍승은 임신하기 전까지 많은 사회적 요소가 있다. 만연한 성폭력 문화, 성교육 부재,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도 있다. 100% 완전한 피임도 없다. 임신 뒤엔 미혼모 문제, 양육 환경 등이 있다. 지금의 사회적 토대가 한 생명이 존엄하게 살아가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전후 맥락과 파트너 남성을 지우고 ‘생명’이라는 잣대로 여성에게만 죄를 묻게 하는 건 부당하다.

생명권에 대한 고민 없이, 추상적 이미지로 ‘낳는 것’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그렇다. 아직 언제부터 배아를 생명으로 볼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은 논의되지 않는다. 성교육이라면서 어릴 때부터 아이 죽이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런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더라. 그러면서 낙태한 여성을 향해 “너는 몸을 함부로 굴리면서 아이를 이기적으로 (낙태)하느냐”고 한다.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죄와 사람들이 느끼는 죄라고 하는 것이 (다르다).

이찬우 형법상 낙태죄가 존재하고 사회적, 도덕적 관점으로도 낙태를 죄로 규정한다. 그러나 왜 죄로 여겨지고 규정될까라는 질문은 별로 없다. 지금 그런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1960∼70년대에는 가족계획사업의 산아제한 방식 때문에 정부가 10년 동안 여덟 번이나 낙태 합법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예산 문제와 종교계 반대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낙태를 불법으로 두고 실질적으로 단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온 거다. 몇 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로 다시 낙태를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낙태 합법화·불법화 주장 모두 국가 인구 조절 계획에 의해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려는 맥락이 있는 것 같다. 국가와 사회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을 명령하는 것인데 여기서 여성에게 재생산권이 있다는 의식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출산이 애국이다’ ‘낙태가 죄다’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여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나영 전세계 인구 1천 명당 출산율 통계를 보면 낙태죄를 강화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지 않다. 낙태를 합법적으로 또는 보험 지원까지 해가며 보장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더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루마니아는 1966년 독재정권 때 낙태를 전면 금지했는데 10년 만에 다시 출산율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고아나 노숙하는 아이가 늘었고 특히 모성사망률은 800% 가까이 증가했다. 국가는 태어난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낙태하면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낙태하지 않으면 어느 연도에 몇% 올라간다는 계산을 해놓은 것 자체가 여성을 단순히 필요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도구로 보는 것이다. 아이와 자신의 이후 삶까지 고려해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자율적 판단 주체로서 여성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찬우 출산율과 낙태죄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여성에게 재생산 의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사고 같다. 그 연관성을 깨는 것이 여성 억압을 해소하는 일이라고 본다. 출산율을 논하고 싶다면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 공공서비스, 보편적 돌봄에 대해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홍승은 모든 여성을 어머니로서 정상 가족 안에 욱여넣으려는 시선이 여전히 있다. 국가와 여성의 구도는 중상층의 남성 지배권력과 그 외 존재들의 관계와 비슷하다.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동물, 자연도 그렇고 자신 이외의 모든 존재를 계획적으로 통제하려 한다. ‘출산율’이란 말 자체가 폭력적이다.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그걸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고방식이 이 문제뿐 아니라 직장, 학교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낙태 처벌법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너무 자연스럽다.

“여성의 성적 권리가 중요해져”[%%IMAGE6%%]

이들은 각자가 경험한 ‘낙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승은씨는 10월10일 페미니스트들이 만드는 저널 에 ‘나는 낙태했다, 나는 불법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자신의 임신중절수술 경험을 적은 글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라간 이 글은 현재까지 ‘좋아요’ 2만8천 개를 기록했고 8401회 공유됐으며 6294개 댓글이 달렸다. 홍씨는 글을 올린 뒤 ‘문란하다’와 ‘불쌍하다’는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여성 인권과 낙태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낙태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영 낙태와 관련해 여성 인권을 얘기하면 보통 건강권, 여성의 프라이버시, 선택권 등이 등장한다. 성적 권리는 대체로 빠져 있었는데 국제사회에서도 성적 권리를 점점 중요하게 고려하는 추세다. 낙태는 여자가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실제 임신중절수술 비율을 보면 기혼 여성이 더 많다. 그런데도 낙태라고 하면 대부분 미혼 여성을 떠올린다.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여성도 대부분 미혼 여성이다. 기혼 여성은 가족관계 안에서 자녀 터울 조절 등의 이유로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넘어가지만, 10대를 포함한 미혼 여성에게 붙는 것은 성적 낙인이다. 결혼도 안 했는데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낙인. 여성의 성적 권리도 중요하게 얘기돼야 한다.

홍승은 여성이 공적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족 외의 존재로서 여성이 독립적으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신할 권리, 임신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혼외관계에서 임신할 권리도 있고, 혼인 중 임신을 거부할 권리도 있고, 성소수자 커플이 아이를 키울 권리도 있다.

가족 구성원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많은 상상력을 열어놔야 할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혼, 미혼, 여성, 출산 등으로 (가족 범위가) 제한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어떤 가족 형태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찬우 4년 전에 친구가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연락해왔다. 그때 수술해주는 산부인과도 찾기 어려웠고 비용도 80만원인데다 카드는 기록이 남아 현금을 마련해야 해서 힘들어했다. 게다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경우였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다시 연락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수술 이후 책임지겠다며 사과, 회유를 해 다시 몇 개월 사귀었다. 남성 파트너가 임신중절을 관계 유지를 위한 볼모로 잡는다는 사례가 많다. 낙태가 불법일 땐 그런 문제가 심하다.

나영 이찬우씨 친구가 4년 전에 겪은 일이면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중절수술을 한 의사들을) 고발한 뒤인 것 같다. 이후 수술 비용이 폭등했다. 지금도 60만원 정도다. 그 이전에는 20만원 정도였던 걸로 안다.

몇 년 전에 10대 여성이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고 베란다에 버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옆방에 아버지가 있는 상태였다. 모든 여론과 언론의 논조는 10대 여성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임신 기간을 거치고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나 상황은 신경 쓰지 않았다. 10대가 임신했고 아이를 낳았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 있었다.

여성이 관계를 가진 남자에게 자기 의사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면, 피임법에 대해 알았거나 임신 초기 상태에서 상담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10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지금 사회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다들 그저 10대의 섹스가, 낙태가 문제라고 한다.

홍승은 중학교 때 옆반 친구가 낙태했다는 소문이 나서 자퇴를 했다. 옆학교 상대 남학생은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더라. 여성에게는 ‘걔 걸레야’라는 낙인이 찍혔다. 지금 10년이 넘었어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나조차 그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함께한 남성과 다른 부분은 다 지워지고 여성만 남는다.

“내 몸에 대한 애도는 없다”홍승은씨는 최근 낙태 경험에 대한 글을 썼다. 굉장한 용기를 냈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썼나. 글을 올린 뒤 반응은 어땠나.
“(낙태 경험에 관한) 글을 올린 뒤 반응에 온도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문란하다’와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홍승은. 정용일 기자

“(낙태 경험에 관한) 글을 올린 뒤 반응에 온도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문란하다’와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홍승은. 정용일 기자

홍승은 굉장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성애자고 섹스하는 여성이면 콘돔이나 다른 피임법을 사용해도 다 불안함이 있지 않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썼을 뿐이다. 그래서 글을 올린 뒤 반응에 온도 차이가 있을 줄 몰랐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문란하다’와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문란하다’는 쪽은 “여성은 몸관리 잘하자” “역시 혼전순결이 답이야”라는 식이었다. 몸의 향락 때문에 생명을 죽여서야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절반 이상인데, 낙태의 이미지는 ‘미혼의 성적 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전히 순결이 여성의 덕목이 되는 걸 느끼며 너무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 ‘불쌍하다’는 것도 비슷했다. (임신 확인하러 병원에 가면) 사진을 준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검은 세포가 있는 사진이다. 그걸 받자마자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이걸 보면서 슬퍼하고 애도해야 하나.

임신 당시 남자친구는 “책임질 수 있고 낳아보자,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게 싫었다. 임신도 낙태도 여성인 내 몸에서 일어나는데 그걸 연장선으로 보지 않는다. 내 몸에 대한 애도는 없다. “힘내세요, 불쌍하다”는 말을 들으면 죄책감을 강요받는 느낌이다. 나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임신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일이지만 낙태 이슈에서 남성은 대부분 빠져 있다.

홍승은 내 동생도 이번에 (낙태)수술을 했는데 많이 아파했다. 남자친구가 2주 정도 미역국을 끓여주고 나서 잠수를 탔다. 자기가 지금 공부해야 하는 시기인데 동생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고 원망했다. 수술비 50만원도 친구한테 빌려서 냈고, 안 갚으면 부모한테 이르겠다고 협박당했다고 말하며 뻔뻔하게 나오더라. 동생도 당시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고 이 아픔에 대해 말하기 힘들어 고립감을 느꼈는데도 그 남자는 자기 희생만 강조했다.

낙태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 남성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 여자친구가 너무 정신병자 같다, 너무 우울해한다, 신경질적으로 변했다고. 남자는 낙태를 자신의 책임으로 연결짓지 못하는 것 같다.

나영 10월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집회할 때 한 분이 발언했다. 임신 때문에 너무 고민돼서 남자친구한테 얘기했더니 남자는 “그럼 나 이제 아빠 되는 건가”라고 말했다더라. 남자들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에 따라오는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 여성과 남성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환상으로 생각하거나 그 책임을 벗어나버리고 싶어 하거나 그런 태도다.

대중문화에서도 그렇다. 최근 힙합 가사를 보면 ‘김치녀’의 대표적 요소로 아무랑 자서 낙태한 게 마치 전형인 것처럼 쓴다. 마치 (낙태 여성을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 구현인 것처럼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

남성에게 낙태는 어떤 의미인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여성이 억압받는 환경에 대해 많이 듣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억압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찬우. 정용일 기자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여성이 억압받는 환경에 대해 많이 듣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억압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찬우. 정용일 기자

이찬우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여성이 억압받는 환경에 대해 많이 듣는다. 그렇게 되면서 애인과 성관계를 할 때도 어느 순간 즐겁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 억압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피임을 아무리 잘해도 서로 걱정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다 학생이라서 (낙태에 대한) 경제적 부담까지 더해진다. 수술비 80만원을 구한다고 하면 어떻게 구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사회가 부여하는 죄책감에 섹슈얼리티적인 것이 파괴되는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임신이나 출산의 부담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 남성의 정관에 (피임 도구를) 삽입하면 임신을 99% 방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남성이 피임약을 먹으면 여성이 먹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적다고 한다. 같이 병행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승은 여성이 피임을 주도적으로 얘기하면 경험 많은 여자로 낙인찍힌다. 친구의 고민을 들었는데 남자친구가 “요조숙녀가 피임약을 챙겨먹느냐”라고 비꼬며 모욕을 줬다더라. 엄청 상처였다고 했다. 동거하는 남자친구가 올해 안에 정관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이걸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그런 남자 없다”는 반응이더라. 남성은 콘돔을 쓰는 것만으로도 ‘개념남’ 소리를 듣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관수술을 하는 남성은 신격화된다. 왜 여성에게만 피임을 강요하나?

“여성 개인의 결정이 아니다”

이들은 낙태가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생명’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낙태죄 폐지뿐 아니라 폐지 이후에도 여성의 요구에 의한 임신중지에 대해 국가가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서비스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남성으로서 드물게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이찬우씨는 “페미니즘은 남성·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낙태에 대해 ‘생명권 대 선택권’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나영 그간 페미니스트들도 ‘결정권’ ‘선택권’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왔다.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맥락으로. 그 얘기는 정말 중요하지만, 실제 맥락과 달리 임신 중지가 마치 여성 개인의 결정 여부에만 달린 문제인 것처럼 인식돼오기도 했다. 그러나 임신중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리는 결정은 가족, 경제적 상황, 건강 상태, 상대 남성과의 관계, 양육 능력 등 굉장히 많은 것을 고려하고 내리는 판단이다.

‘생명권 대 선택권’ 프레임에서는 그런 맥락이 삭제된다. 그러면서 생명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모두 전가해버린다. 이 생명이 태어나서 자랄 수 있으려면, 또 그런 결정을 여성이 할 수 있으려면 사회가 그런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한 채 조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제 ‘결정권’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폭넓게 얘기해야 한다. 이 문제는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생명’의 문제다. 아이가 태어나서 생명으로 살아갈 조건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지 않은 문제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낙태죄 폐지 뒤 나아간 정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나영 보통 현행 모자보건법에 ‘사회·경제적 요건’을 넣는 방향을 많이 이야기한다. 이 경우 특정 사회·경제적 요건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출산하기 어려운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있다. 허용 조건을 따로 두지 않고 ‘여성의 요구에 의한 임신중지’를 합법화한 국가의 경우 대체로 (임신) 주에 따른 제한이 있다. 12주·18주·24주 정도로 나누며, 임신 기간을 크게 3기로 구분해 시기에 따라 법적 허용 기준을 둔다. 프랑스도 오래전에 여성 동의에 의해 12주 전까지 낙태를 허용했고, 2013년부터 전면 보험 적용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2주도 굉장히 짧다. 그때까지 임신인 줄 모르는 경우도 많다. 12주가 지난 경우에 대비한 방안도 있어야 한다. 임신·출산뿐 아니라 피임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선 12살부터 18살까지 무료로 피임 도구를 제공받는다. 임신중절은 시기가 빠를수록 안전하다. 한국도 임신 초기에 낙태약을 복용할 수 있게 한다거나, 되도록 이른 시기에 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보장하고, 피임에 대해서도 어릴 때부터 다양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이찬우 임신중절 비용이나 정보를 알아봐야 하는 것도 전부 당사자가 부담을 지는데 그런 부분도 공공서비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태죄 폐지 과정에서 의료보험 수급 범위까지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적 비용으로 그런 걸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예산이 아까워서라도 피임법 교육이나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정부 처지에선 차라리 콘돔을 나눠주는 게 더 싸다고 여기지 않을까?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기 힘든 사회·경제적 조건 개선도 당연히 필요하다. 임신중절 전후 심리상담 서비스도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리얼 버전 털어낼 날 왔으면”낙태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최근 많은 이가 낙태 경험을 공개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가 뭘까.

나영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임신중지와 관련된 경험을 얘기할 때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여성이 많았다. 실명이 아닌 닉네임이나 가명을 쓰고, 인터뷰할 때도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워했다. 지금은 굉장히 다른 분위기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면서 페미니즘이 여성의 자신감으로 연결되고 지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느끼고, 세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사회적으로 낙태죄 폐지가 이슈가 되어 나올 수 있던 것은 분명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얘기를 하고 뭉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 연대의 확인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가능해졌다. 섹슈얼리티에 대해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졌다. 이번에는 낙태죄 폐지 이슈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감염인, 10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조건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찬우 얼마 전에도 몇백 명이 거리로 나와 ‘낙태죄 폐지’를 외쳤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SNS의 특수한 문화가 여성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큰 힘이다. 가끔 남성이 이런 활동을 하느냐란 얘기를 듣는다. 페미니즘은 남성·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지금 이런 새로운 흐름은 하나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홍승은 목소리가 목소리를 부른다. 그런 게 확 와닿는 요즘이다. 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또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음을 느낀다. 페이스북 글도 스스로 엄청 타협해서 올린 것이다. 더 리얼 버전이 있는데 이건 ‘쓰는 중’ 폴더에 있다. 이 폴더를 다 털어낼 날이 왔으면 좋겠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정리 배지현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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