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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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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숨 누군가에겐 다시 없을 숨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지상 중계… 독성 실험 중단, 은폐 정황 드러난 옥시와 SK케미칼, 독극물에 인증마크 붙여준 정부
등록 2016-09-07 20:29 수정 2020-05-03 04:28
여야 간 소모적인 말다툼은 없었다. 모든 화살은 대기업·정부기관의 수장들을 향했다. 그들은 머리를 조아렸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고개를 돌렸다. 구차한 상황을 예상한 듯 증인 다수가 재판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옥시를 변호하는 김앤장 변호사는 기밀유지 의무가 자신의 유일한 의무인 양 답변을 거부하다 퇴장당했다. 청문회 도중 마이크를 잡은 피해자들은 자주 울먹였다. 그들은 청문회가 끝난 뒤 화가 난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지난 8월29~30일, 9월2일 사흘간 국회 본관에서 열렸다.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31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가습기살균제 출시·사용 자제를 권고한 지 5년 만이다.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3일을 지상 중계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환경보건시민센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실 등으로부터 취재 도움을 받았다.
취재 김선식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
청문회장에 놓인 가습기살균제 제품들.

청문회장에 놓인 가습기살균제 제품들.

“나라에서 팔아도 된다고 허가를 내준,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판매한 옥시 가습기살균제로 우리 아이 인생이 망가졌다.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사람들만 남아 있다.”(참고인 권미애, 8월29일)

“옥시에서 만든 거니까”

엄마 권미애씨와 아들 임성준군이 8월29일 오전 10시께 국회 본관 245호 청문회장에 들어섰다.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가습기살균제 청문회) 첫날이었다. 증인·참고인석 오른쪽 뒷자리에 엄마와 아들은 나란히 앉았다. 검정 미키마우스 모자를 쓴 성준군은 1m가량의 산소통을 끌고 왔다.

성준군은 2살 때부터 만성 폐질환 진단을 받고 산소통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태어난 뒤 1년가량 집에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피해를 입었다. 또래 친구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성준군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집 밖에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준군은 이날 청문회를 끝까지 방청했다. 매일 거의 집에만 있다보니 밖에 나와 있는 게 좋았을 거라고 권씨는 생각했다.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들은 지난 5년간 4천 명을 넘어섰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가 지난 8월31일 기준 4486명(사망자 919명 포함)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1년 9월부터 정부에 신고된 규모다.

국내에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도입된 건 1994년이다. 유공(현 SK주식회사)이 출시한 ‘가습기메이트’라는 제품이다.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011년 8월 파악하기로는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살균제는 20종이나 됐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피해신고가 접수된 제품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하 가습기당번)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레킷벤키저그룹(이하 RB)의 한국 지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가 판매했다. 2001~2011년 국내에서 400만 개가량 팔렸다. 옥시 홈페이지에는 2001~2011년 가습기당번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지를 묻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i>“저는 이제 막 3개월째 접어든 신생아를 둔 엄마예요. 겨울이라 난방을 하니 집안이 건조해지고 아파트에 살다보니 더욱더 건조하더라구요. …옥시에서 만든 거니까 믿고 사용했거든요.”
“가습기당번은 세균 제거와 물◯의 발생을 억제시켜준답니다~^^ 아이가 있으니~~ 가습기당번은 필수로 사용하셔야 돼요~^^”
(2001년 12월5일 옥시 홈페이지 제품 사용 후기와 회사의 답글)
“어젯밤에 가습기당번을 넣고 가습기를 돌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좋지 못하고 계속 구토 증세가 나는데.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는데 왜 이런 걸까요?”
“물에 한 뚜껑 정도 희석하여 사용하시는 제품이며, 액성 자체 또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아님과 동시에 실수로 음용하셔도 특별히 인체에 해를 끼치는 성분이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가습기 내부 청소 상태 내지는 주무셨던 외부 환경으로 인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007년 11월26일 옥시 홈페이지 고객 상담글과 회사의 답글)
“얼마 전부터 이거를 사서 물에 넣고 나서 계속 기침을 하고 호흡기 쪽이 상당히 이상해진 거 같습니다. 왜 이런가요.”
“가습기당번 제품의 구성 성분은 95% 이상이 물이며 그 외 인체에 전혀 무해한 유기염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관한 부작용 보고가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권유드리는 바입니다.”
(2010년 1월28일 옥시 홈페이지 고객 상담글과 회사의 답글)</i>“흡입독성 시험 중단하고 자료 넘기라”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둘쨋날인 8월30일, 김철 SK케미칼 대표(오른쪽 끝)와 증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둘쨋날인 8월30일, 김철 SK케미칼 대표(오른쪽 끝)와 증인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옥시의 답글을 보면, 옥시는 가습기당번이 안전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다. 2000년 10월 출시된 가습기당번은 제품 라벨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썼다. 2004년께부턴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하지만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은 기계에 생긴 세균막을 제거하는 등 공업용 항균제 용도로 개발된 담황색 액체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주성분으로 한 ‘SKYBIO 1125’라는 물질이다. 옥시는 10년간 이런 독성물질을 함유한 공업용 원료로 만든 제품을 팔았지만, 한 차례도 안전성 검사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신현우 당시 옥시 대표이사 등은 가습기당번을 제조·판매하면서 흡입독성 시험 등을 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낳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지난 5월 기소됐다.

이날 청문회의 최대 쟁점은 RB 본사의 책임이었다. 신현우 전 대표 등 옥시의 책임은 수사·재판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이었다. 먼저 RB가 옥시에서 추진한 가습기당번 안전성 검사를 중단하도록 압박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제기됐다.

옥시는 2000년 가습기당번 출시를 앞두고 안전성 검사를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5월께 옥시 연구원에게 가습기살균제 개발에 흡입독성 시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증언(노승권 전 유공바이오텍 팀장)과, 2000년 3월께 옥시가 원료 중간도매상인 시디아이(CDI)를 통해 흡입독성 자료를 요청했다는 증언(시디아이 이숭엽 대표)이 나왔다. 그리고 2000년 11월께 옥시는 해외 연구소에 흡입독성 시험을 의뢰하려 했다가 결국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시험 중단 과정에 RB 본사가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주장이 나왔다.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2001년 2월8일 RB그룹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 책임자 퍼트리샤 배론(Patricia Barone)이 인천 옥시연구소를 찾아와 ‘가습기당번의 흡입독성 시험을 중단하고 모든 자료를 넘기라’고 했다는 신현우 당시 옥시 대표의 진술이 있다”고 밝혔다. RB 본사가 가습기당번의 흡입독성 시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시험을 막은 정황이다.

RB 본사가 흡입독성 자료가 없는 걸 알면서도 가습기당번의 안전성을 승인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도 공개됐다. 가습기당번 2004년 제품안전보건자료(PSDS)를 보면, 흡입독성 자료에 대해 “없다(None)”고 명시돼 있고, 승인 담당자는 RB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 어런 프래커시(Arun Prakash)로 되어 있다.

아타 샤프달 옥시 대표는 이에 대해 “2004년께 오스트레일리아는 한국에 대한 책임도 있었다”며 승인 담당자의 소속이 본사가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가족 최승운씨는 “실험적인 증명 없이 제품이 안전하다고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독성 실험 결과 조작·은폐 정황도
청문회 첫날인 8월29일 옥시 본사 영국 레킷벤키저 라케시 카푸어 대표와 페티 오헤이어 대외협력책임자의 사진을 들고 있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청문회 첫날인 8월29일 옥시 본사 영국 레킷벤키저 라케시 카푸어 대표와 페티 오헤이어 대외협력책임자의 사진을 들고 있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최은총씨의 남동생은 2013년 3월 가습기당번을 이용하던 중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입원했다. 원인미상 폐질환이었다. 남동생은 입원 넉 달 만에 49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날 청문회를 지켜보던 최은총씨는 휴식 시간에 청문회장 밖으로 나온 아타 샤프달 옥시 대표를 가로막았다. 최씨가 양팔로 엑스(X) 자를 그리며 “4단계, 사망” “더티, 더티”라고 말했다. 샤프달이 고개를 숙인 채 “아임 소 소리”(I’m so sorry)라고 말했다. 최씨가 이어 말했다. “그런 식으로 책임 회피하면 안 돼.” “3·4단계는 물에 빠진 거야. 물에 빠져도 잡을 게 없어.”

최은총씨는 환경부에 피해 접수를 해서 4단계 판정을 받았다. 환경부는 피해 접수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조사해 네 단계로 판정한다. 기준은 ‘가습기살균제 노출이 확인된 섬유화를 동반한 폐질환’ 가능성이다.

1·2단계(거의 확실·가능성 높음)만 공식 피해로 인정해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한다. 정부는 8월18일 기준 695명을 조사해 그중 258명을 1·2단계 피해자로 인정했다. 옥시도 정부의 기준에 따라 배상 신청 자격을 1·2단계 판정 피해자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3·4단계(가능성 낮음·가능성 거의 없음) 피해자들은 ‘폐섬유화를 포함한 폐질환 외에 천식, 비염, 기타 기저질환 등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i>실험 결과는 옥시에 불리하게 나왔다. 가습기당번이 실험쥐들의 폐질환을 유발하고 다른 장기들을 위축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실험 의뢰자 제난 애트래시(RB본사 연구원)는 2012년 9월 실험 방법을 문제 삼아 그 결과를 승인하지 않았다.</i>

샤프달 대표는 3·4단계 피해자 지원에 대해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노력해서 해결해나가면 좋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샤프달 대표는 이날 배상안 기획은 본사의 동의하에 진행됐다고 밝혔다.

RB 본사는 2011년 8월 이후 옥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실험 결과를 조작·은폐하는 데 관여한 정황도 나타났다. 옥시는 당시 가습기당번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을 2011년 9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의뢰했다. 실험이 진행 중이던 그해 12월 옥시는 실험 의뢰자를 조아무개 옥시연구소장에서 RB 본사 연구원 제넌 애트래시(Jenan Al-Atrash)로 변경한다고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통보했다. 실험 결과는 옥시에 불리하게 나왔다. 가습기당번이 실험쥐들의 폐질환을 유발하고 다른 장기들을 위축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실험 의뢰자 제넌은 2012년 9월 실험 방법을 문제 삼아 그 결과를 승인하지 않았다. 추가로 예정돼 있던 90일 흡입독성 실험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실험 책임자였던 이진규 바이오융합연구소 소장은 “당시 실험 방법은 옥시에서 제시한 방법이었다”며 “실험 진행 중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 어런 박사도 세 차례나 방문하는데 RB 쪽에서 상당히 글로벌하게 이 문제에 대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샤프달 옥시 대표는 이에 대해 “제넌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동아시아 지역 담당자”라면서도 “글로벌 조직도를 다시 한번 참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청문회 셋쨋날 증인으로 출석한 조아무개 옥시연구소장은 “R&D는 기본적으로 본사 소속이고 나 역시 본사 소속이다. 바로 위 보고 라인인 호주연구소에 한국에서의 진행 사항 및 프로젝트를 보고한다”고 증언했다.

‘모르쇠’ 일관하다 청문회장서 쫓겨난 변호사
장지수 김앤장 변호사(왼쪽)와 아타 샤프달 옥시 대표(맨 오른쪽) 사이에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피해자 임성준군(왼쪽 두 번째)이 보인다.

장지수 김앤장 변호사(왼쪽)와 아타 샤프달 옥시 대표(맨 오른쪽) 사이에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피해자 임성준군(왼쪽 두 번째)이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이 불거진 뒤 옥시를 변호하는 김앤장도 옥시의 실험 결과 조작·은폐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옥시는 서울대 산학협력단과도 2011년 9월 가습기살균제 안전성 연구용역 계약을 맺었다. 당시 연구를 맡은 조명행 교수는 마찬가지로 가습기당번에 노출된 쥐에게서 태아 사망과 기형, 폐질환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2012년 2월 최종발표회를 통해 옥시에 보고했다.

당시 연구와 발표회에 참여한 권정택 박사는 “최종발표회에 김앤장 변호사 두세 명이 참석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 그리고 2013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김앤장 변호사·변리사가 원본 데이터 파일과 복사본을 받아갔다고 말했다. 애초의 실험 결과를 김앤장이 인지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다. 이후 조명행 교수는 옥시로부터 1200만원을 받고 옥시에 불리한 데이터를 삭제한 최종보고서를 낸 혐의(수뢰후부정처사)로 지난 5월 기소됐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조명행 교수가 조작한 최종보고서를 수사·재판 기관에 제출했다.

김앤장 쪽 증인으로 출석한 장지수 변호사는 이날 청문회장에서 유일하게 야유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조명행 교수의 연구 결과 최종발표회에 김앤장 변호사가 참석했는지’를 묻는 질문에조차 답변을 거부했다. “변론 준비 과정에 대해 변호인으로서 말하기 어렵다” “확인해드리기 어렵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방청석에선 야유가 쏟아졌다. “인정하세요.” “그럴 거면 여기 뭐하러 앉아 있어?” 저녁 8시께 장지수 변호사는 청문회장에서 퇴장당했다. 우원식 청문회 의장은 “재판과 관련 없는 아주 단순한 사실조차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 국회를 모욕한 죄는 별도 고발 등을 통해 책임을 물을 것이며, 장지수 증인에 대한 신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며 퇴장을 명령했다.

정부의 피해 판정을 기준으로,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를 양산한 가습기살균제는 1997년 출시된 ‘가습기메이트’다.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판매했다. 이 제품의 원료물질은 ‘SKYBIO FG’이고, 주성분은 CMIT·MIT(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라는 독성물질이다. 미국 환경청이 1998년 농약으로 분류해 2급 흡입독성물질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8월18일 기준으로 가습기메이트만 이용한 피해신고 접수자 중 5명을 1·2단계(거의 확실·가능성 높음) 피해자로 인정했다. 그런데 가습기메이트 제조·판매 업체는 제품의 인체 유해성을 여태껏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2012년 2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제품 실험에선 ‘폐섬유화를 동반한 폐질환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연구팀은 당시 실험 조건이 제한적이었고 여러 농도에서의 여러 장기에 대한 영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는 이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보여주지 못한 아이의 사진

청문회 둘쨋날,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인물은 김철 SK케미칼 대표였다. 그는 가습기메이트의 인체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 실험 결과와 환경부 실험 결과 모두를 존중하지만 서로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 아주 당혹스럽다. 하지만 모든 공식적인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모순되는 두 결과를 모두 존중한다는 모순적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가 안전성 검사를 거친 제품이라고 주장한다. 주요 원료 성분이 동일한 1994년 유공의 가습기메이트 안전성 검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문회에선 이 검사가 매우 부실한 조건에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실험 책임자였던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길어야 2~3주 실험쥐 급성독성 실험을 했던 것 같다”며 “급성독성 데이터 하나를 가지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고 증언했다. 이 실험 결과는 보관돼 있지 않아 청문회에서 내용이 공개될 수 없었다.

가습기메이트 피해자 이은영씨는 애초 참고인 자격으로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은영씨는 글을 보내왔다. 그는 2009년부터 2년간 가습기메이트를 이용한 뒤 자신과 아이가 천식·비염·기관지염·폐렴·심장질환 등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와 아이는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그의 글을 대독했다.

“어떻게든 책임지지 않으려 5년의 시간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을 가해 기업들, 책임자들께 지금 당신들이 아무 생각 없이 들이마시는 들숨, 날숨이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쉬지 못할 귀한 숨이 돼버렸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하라. …지금까지 우리는 당신들에게 마루타였다. 당신들이 그렇게 증명하길 바라는 인과관계를 우리 몸이 직접 말하고 있다.”


<i>“가해 기업들, 책임자들께 지금 당신들이 아무 생각 없이 들이마시는 들숨, 날숨이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쉬지 못할 귀한 숨이 돼버렸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하라.”
-피해자 이은영씨
</i>

청문회 참고인으로 참석한 피해자 가족 박영철씨는 부산에서 아내와 한 가지를 약속하고 올라왔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사진을 김철 대표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빠른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의 쌍둥이 딸 나원이와 다원이는 2011년 10월생이다. 태어나자마자 애경 가습기메이트 피해를 입었다. 다원이는 기흉 진단을 받았고, 나원이는 돌이 지나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돌 때부터 4년간 인공호흡기에 의지했고 최근 기관지 재건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숨소리가 거칠다. 박씨는 “증거들이 명쾌하게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김철 대표는 말 돌리기 바쁜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방송으로 청문회를 지켜본 아내 김미향씨는 기업 대표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말에 더 화가 났다. 김씨는 “정부에서 1·2단계 판정받은 걸 벌써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그들은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청문회에서만 그런 말을 하니까 정말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제 물질 유독물 아니라고 관보에 게재
청문회 첫날인 8월2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부로부터 3·4단계(가능성 낮음·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청문회 첫날인 8월2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부로부터 3·4단계(가능성 낮음·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옥시의 가습기당번 원료물질(주성분 PHMG)을 제조한 업체도 SK케미칼이다. SK케미칼은 그 원료가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줄 몰랐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SK케미칼이 자사 개발 물질이 가습기살균제에도 쓰인 사실을 알았을 유력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원료물질을 SK케미칼에서 옥시에 전달한 시디아이(CDI)의 이숭엽 대표는 “(2000년 3월께) SK케미칼이 옥시가 요구한 원료물질 흡입독성 자료가 없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9년 3월30일자 SK케미칼이 작성한 ‘가습기청정기 적용 항균력 분석’ 실험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우 의원은 이 보고서가 가습기당번과 같은 원료물질을 쓰는 홈플러스 가습기살균제 PB상품 제조업체였던 용마산업이 의뢰한 실험 결과였다며, 이런 경위를 명시한 용마산업의 재판 준비 서면을 공개했다. 용마산업이 제조한 ‘가습기 청정제’가 이물질을 일으켜 원료 개발업체인 SK케미칼 쪽에 시험을 의뢰했다는 내용이다.


<i>가해 기업들에 그늘막을 쳐준 건 정부였다. 환경부는 옥시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 주성분으로 쓰인 PHMG가 유독물이 아니라고 1997년 관보에 게재했다.</i>

청문회 셋쨋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군 용마산업 대표는 “실험 결과 보고서에서 ‘청정기’는 청정제의 오타이며 우리 쪽에서 의뢰한 실험이 맞다”고 증언했다. 김철 SK케미칼 대표는 전날 청문회에서 “퇴직자를 포함해 그런 거래 관계나 용도가 있었는지 한 번 더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가해 기업들에 그늘막을 쳐준 건 정부였다. 환경부는 옥시 가습기당번의 원료물질 주성분으로 쓰인 PHMG가 유독물이 아니라고 1997년 관보에 게재했다. 가습기메이트의 원료물질 주성분인 CMIT·MIT는 1991년 제정 유해화학물관리법 시행 전에 제조된 기존 화학물질이라는 이유로 유해성 심사를 보류했다. 2001년 옥시가 애초에 카펫용 항균 용도로 신고된 PHMG를 가습기살균제 주성분으로 용도를 바꿨지만 환경부는 추가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았다. 청문회 셋쨋날 이정섭 환경부 차관은 “당시 화학물질의 용도를 바꿀 때 추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2007년과 2010년 퓨엔코와 글로앤엠이 제조한 가습기살균제에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붙여줬다. 각각 독성물질인 CMIT·MIT와 PHMG를 원료의 주성분으로 하는 제품들인데도, 각 업체가 세정제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정만기 산업부 차관은 “각 업체들이 부가적으로 세정제 명목으로 신청해 관련 규정에 따라 붙여줬지만,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면밀하게 내다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유해물질을 함유한 화학제품에 대해 사후안전검사 대상 공산품으로 지정해 조사할 수 있었지만, 가습기살균제는 조사하지 않았다. 정 차관은 “당시 조사는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만 했고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이 유독물로 지정되지 않아 조사할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늑장 대응으로 피해 키운 정부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11월 1차 동물실험 중간 발표를 하면서, PHMG·PGH를 원료의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당번 등 6종의 가습기살균제만 수거 명령을 발동했다. 다른 제품들은 판매·사용 중단을 권고하기만 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당시 제품안전기본법상 위해성 확인 제품만 수거 명령을 발동할 수 있어 중단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월24일 애경·SK케미칼·이마트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독성물질 CMIT·MIT 성분을 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제재 없이 심의절차 종료를 의결했다. 의원들은 “환경부의 CMIT·MIT 피해자 인정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2012년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도 있고 환경부의 피해보상 판정도 있었지만 환경부가 이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한다고 하니 추후 종합적으로 위해성을 재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5년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의원들은 최대 피해를 낳은 옥시에 원료물질을 제공하고, 두 번째 많은 피해를 낳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에 대한 늑장 수사를 질타했다. 이창재 법무부 차관은 “대기업 수사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약하게 수사할 이유도 없다. 엄정하게 결론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드러난 지 5년 만에 열린 국회 청문회가 끝났다. 그 3일 동안 말문이 막혀 미처 대답을 못하는 자는 없었다. 피해자들에게 정부와 기업의 이름으로 사과한 자도 없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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