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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체납자의 의료 이용 권리와 국가의 징수 관리, 두 마리 토끼 잡은 대만의 전민건강보험 체납자 지원제도
등록 2016-07-13 07:57 수정 2020-05-02 19:28

대만은 의료보장제도로 ‘전민건강보험’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동일한 사회보험 방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만은 한국의 의료급여제도처럼 빈곤층을 위한 별도의 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대만 국민이면 누구나 전민건강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다.
차이잉원 총통의 약속과 실천

유원섭 교수는 건강보험료 체납을 이유로 국민의 건강권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진수 기자

유원섭 교수는 건강보험료 체납을 이유로 국민의 건강권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진수 기자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보험료 체납은 주요 사회적·정치적 이슈 중 하나다. 2016년 5월20일 차이잉원은 민주진보당 소속으로 대만 제14대 총통에 취임했다. 차이잉원의 선거 공약 중 하나는 전민건강보험 보험료 장기 체납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가 총통 취임 직후 이행한 공약 중 하나는 전민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하는 약 4만2천 명에게 전민건강보험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공약이 제기된 배경이 있다. 보험료 장기 체납으로 전민건강보험증(IC카드)이 정지돼 보험급여를 적용받지 못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전민건강보험료 체납자 규모는 약 8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5%에 달한다.

보험료 체납 문제는 관리가 미흡할 경우 보험료 징수율이 낮아지고 제도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론 체납자의 권리를 가혹하게 제한해 사회보험 본연의 취지를 훼손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그러나 대만의 경우 이런 딜레마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97~99%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징수율도 2010년 이후 97% 이상을 상회하고 있지만, 대만과 비교하면 체납자 규모가 높은 수준이다. 2015년 말 기준 건강보험 급여가 정지되는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 지역가입 가구는 140만 가구, 체납액은 약 2조46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월보험료가 5만원 내외인 저소득 생계형 체납 가구만 약 94만1천 가구, 180만 명에 달한다.

한국과 달리 대만 전민건강보험의 보험료 체납자 중 장기 체납으로 보험급여를 제한받는 이가 적은 이유가 있다. 전민건강보험의 취약계층 또는 보험료 체납자를 위한 다층적 지원제도 때문이다. 대만 정부와 전민건강보험은 다양한 제도 개선과 보완을 통해 2007년 69만3천 명에 달하던 급여정지자 수를 2016년 4만2천 명 수준으로 줄였다. 현재 전민건강보험은 보험료 체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① 보험료 지원  빈곤층, 차상위계층, 장애인, 실업자 등을 대상으로 보험료 전액 또는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2014년 304만 명에게 239억대만달러를 지원했다. 2015년 상반기에는 324만 명(전체 인구의 13.7%)에게 129억대만달러(약 4515억원)를 지원했다.

② 보험료 또는 본인부담금 무이자 대출   보건복지부가 규정하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 또는 정상 참작이 가능한 경제적 위기 상황’인 사람들이 해당한다. 이들에게 전민건강보험 빈곤퇴치기금(Poverty Relief Fund)에서 보험료 또는 본인부담 미납금에 대해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고 1년 뒤 분할 납부하게 하는 제도다. 2014년 3045건 사례에 1억9천만대만달러를 지원했다.

③ 체납보험료 분할 납부   무이자 대출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으면서 2천대만달러 이상인 체납보험료를 일시불로 납부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제도다. 체납보험료를 2~48회에 걸쳐 분할 납부하도록 지원한다. 2014년 11만7천 명에게 31억7천만대만달러 규모의 체납보험료 분할 납부를 승인했다.

④ 민간 자선지원  전민건강보험법 제36조에 근거해, 보험자가 체납자의 부담 능력을 확인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회복지기관 또는 자선기관에 체납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2014년 도움이 필요한 체납자 1만377명을 자선기관에 의뢰했고, 이들은 2475만대만달러를 지원받았다.

⑤ 긴급지원  보험료 체납으로 보험급여가 정지됐더라도 의사가 입원, 응급의료, 필수 진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할 경우 보험급여를 지급하고 동시에 보험료 체납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14년 환자 2124명이 5500만대만달러에 해당하는 본인부담금을 지원받았다.

⑥ 복권기금 지원  관련 법률에 근거해 2008년부터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을 위해 복권기금에서 체납보험료와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17만8854명에게 33억대만달러를 지원했다. 2014년에는 3만2274명에게 4억200만대만달러를 지원했다.

⑦ 결손처분   보험료 체납 관련 업무 담당자가 체납보험료를 징수하기 위해 체납자의 재산을 확인한다. 조사 결과 재산이 없거나 체납 처분해도 체납보험료를 납부할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을 때는 전민건강보험법 제38조에 근거해 결손처분을 할 책임을 지는 제도다.

⑧ 취약계층 의료이용 보장  18살 이하 아동 및 청소년(17만7천 명), 차상위계층(16만9천 명), 특수가정상황(한부모가정, 사별, 이혼, 가정폭력 피해자, 미혼모, 배우자가 형무소 복역 중인 자, 비자발적 실업 가정) 등 취약계층의 경우 보험료를 체납하더라도 급여를 정지하지 않는다. 특히 18살 이하 아동 및 청소년은 부모의 보험료 체납 여부와 관계없이 의료이용을 보장한다.

⑨ 장기 체납으로 인한 급여 정지 해지   기존 제도는 전민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다층적인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장기 체납할 경우 보험급여를 제한했다. 그러나 2016년 6월부터 시행된 제도로 장기 체납 여부와 관계없이 보험급여를 보장한다.

2016년 5월 말, 신임 총통의 공약 이행을 위해 대만 전민건강보험 총책임자인 리보장(李伯璋)은 보험료 장기 체납으로 보험급여가 정지된 4만2천 명의 보험급여를 재개하는 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전민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됐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보험료 체납 문제가 국민의 의료이용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보험료 체납자에게 엄격한 체납 처분이 시행되고, 보험료 체납 문제에 더욱 엄정한 법 집행과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체납보다 중요한 문제

한국의 체납 문제 상황을 고려할 때, 대만의 사례는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데 보험료 체납 문제에 앞서 국민을 체납자, 부당이득금 취득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보험급여 제한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성찰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원섭 한양대 건강과사회연구소 연구교수※ 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에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제도의 개선을 위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을 펴는 아름다운재단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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