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국민건강보험 vs 국민납부보험

실소득과 동떨어진 보험료 부과, 생계형 체납엔 칼 같은 급여제한… 건보공단, “6회 체납 뒤 두 달 안에 납부하면 불이익 안 준다”
등록 2016-07-13 07:47 수정 2020-05-02 19:28

지난해 생계형 건강보험료(건보료) 체납자는 100만 가구 정도로 집계된다. 생계형 체납은 ‘낮은 소득 대비 높은 건보료’ 같은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 체계 탓이 크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은 피보험자를 직장가입자,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역가입자(직장을 통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경우), 임의계속가입자(직장가입자 가운데 퇴직·실직 뒤 일정 기간 직장보험료율로 납부를 허용하는 경우) 등 4종류로 나눈다. 이 가운데 특히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소득 대비 높은 건보료가 부과되면서 체납자를 양산하고 있다.
불평등 부과, 엄격한 추심, 까다로운 구제
2014년 당시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현재 더불어민주당 ‘건강보험 부과 체계 개편 태스크포스 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며 한 말을 들어보면, 현행 건보료 부과 체계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송파 세 모녀’는 소득이 거의 없는데도 전·월세가 재산으로 간주돼 한 달에 건보료를 5만원 넘게 내야 했지만, 나는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연간 수천만원의 연금 소득이 있음에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2014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이들에게 매달 5만원가량 건보료가 부과됐다. 한 달 50만원 월세가 재산으로 인정된데다, 딸들에게 ‘인두세’가 부과돼 이들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을 줬다.


"체납자 대부분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인데, 소득과 관계없이 '무조건 내라'는 방식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집행위원

이런 일은 연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전·월세 집이나 자동차 같은 재산뿐 아니라 생활수준과 경제활동 참여율까지 평가해 건보료를 부과하는 ‘평가 소득’ 방식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재산’이 잡히기 때문에 실소득이 거의 없거나,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소득을 벌어도 건보료가 부과되는 구조다. 세대 구성원의 나이·성별에 따라 건보료가 추가되기도 한다.

문제는 저소득층이 건보료를 체납할 경우, 이들이 순식간에 의료 사각지대에 빠진다는 데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제53조)과 시행령(제26조)은 건보료를 6회 이상 체납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체납자를 상대로 보험 혜택을 차단하는 ‘급여제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건보공단은 ‘급여제한 통지’를 했더라도, 체납자가 병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보호장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체납 기간이 길어지면 급여제한 기간에 발생한 보험 비용을 ‘부당이득금’으로 취급해 건보공단이 사후에 강제 환수한다. 건보공단은 “2012년부터 연간 소득 2천만원·보유재산 2억원 미만(올해 1월부터 보유재산은 1억원 미만으로 기준 강화) 생계형 체납자에게 ‘결손처분’ 방식으로 급여비 납부를 면제해 저소득 체납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정부가 잘못된 건강보험 체계를 만들어 체납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일단 병원비를 쓰게 한 뒤 ‘사후 조처’ 명분으로 비싼 의료비를 환수하고 있다. ‘결손처분’도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그나마 기회가 1년에 한 번 정도여서 체납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건보공단은 체납보험료를 추심할 때도 주로 ‘압류’ 형식의 강압적 방식을 취한다. 김 집행위원은 “체납자 대부분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인데, 소득과 관계없이 ‘무조건 내라’는 방식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 게다가 체납자 상당수는 건보료를 사회보험이라기보다 세금처럼 인식하고 있다. ‘세금 비슷한 걸 내지 않았다’는 도덕적 부채감 때문에 이렇다 할 저항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1년 평균 저소득층 체납 102만7천 가구
7월2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마련한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당사자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남긴 글. 정용일 기자

7월2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마련한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당사자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남긴 글. 정용일 기자

건보공단이 체납액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보험급여까지 제한하는 게 ‘중복 처벌’ 및 ‘과중한 처벌’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모가 건보료를 연체할 경우, 세대 구성원인 자녀에게 연대 책임을 묻기도 한다. 유원섭 한양대 건강과사회연구소 연구교수는 “건강보험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함께 보험료를 내고, 함께 의료권을 보장받는 제도다. 하지만 사실상 보험료를 잘 걷기 위한 수단으로 보험급여를 제한하고 있다. 이는 ‘국민 모두의 건강권을 지킨다’는 애초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쪽은 “건강보험법이 ‘6회 이상 체납자의 보험급여 제한’을 명시하고 있지만, 6회 체납 뒤 첫 진료 때 ‘급여제한’ 통지를 하고 2개월 안에 체납금을 납부하면 불이익을 주지 않고 있다. 분기 단위로 결손처분을 통해 저소득 체납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생계형 체납자는 몇몇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2013년 건강보험 개편을 위해 만든 ‘건강보험 부과 체계 개선기획단’이 지난해 낸 보고서를 보면, 2013년 12월 기준 연소득 500만원 이하 가구가 599만6천 가구였다. 전체 지역가입자의 77.7%에 이르는 규모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소득으로 건보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체납자로 전락한다. 건보공단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생계형 보험료 체납 세대 현황’을 보면, 2015년 7월 현재 건보료를 체납한 저소득 가구가 98만1천 가구, 저소득 가구 체납금은 1조1926억원에 이른다. 최근 5년간 통계를 봐도, 한 해 평균 체납 가구가 102만7천 가구, 평균 체납액은 1조1008억원이었다.

저소득층이 감당할 수 없는 건보료 부과 체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국내 건강보험제도는 1977년 도입 뒤, 12년 만에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갖췄다. 당시 근로자는 직장사업장을 통해 월급(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했다. 직장 근로자가 아닌 경우에는 시·군·구 단위의 지역사업장에 속해 월급 대신 소득, 재산, 가족 수 등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했다.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사업장에 속했고, 그에 걸맞은 보험료 부과 기준이 적용돼 그나마 문제가 적었다.

그러나 2000년 보험 운영 주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됐다. 당시 직장-지역 가입자 관계없이 ‘실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법을 개정했지만, 보험료 책정 근거로 삼을 소득자료가 부실했다. 3년 만에 건보료 부과 사업장을 ‘직장(소득)-지역(소득+재산) 이원화 체제’로 되돌리는 게 불가피했다. 다양한 처지의 피보험자가 하나의 운영 주체인 건보공단에 묶이면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가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건보료 부과 체계를 ‘소득 단일 기준’으로 정비해 체납자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6월30일 낸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안’에서, 직장과 지역 가입자를 구분하지 않고 근로·임대소득을 비롯해 이자·배당·연금 등 모든 소득에 대해 건보료를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소득자료가 없을 때는 ‘최저보험료’(2015년 기준 지역 최저보험료 3560원)를 적용하자는 안이다.

건보공단 쪽도 “건보료 부과를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전제가 맞다. 과거 개인별 소득 파악이 어려웠던 시절 ‘재산을 포함한’ 건보료 부과 체계를 만든 게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실소득 중심으로 건보료를 책정하면 생계형 체납 세대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체납자 관리제도 별도 정비해야”

유원섭 교수는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도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건강보험 적용과 보험료 체납 문제를 명확히 구분해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아무리 건보료 부과 체계를 개선하더라도, 현행 체납자 관리 제도를 그대로 두는 한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에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 제도의 개선을 위한 기사를 연재합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을 펴는 아름다운재단에 전해집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