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번화가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범행 동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여성들은 곧바로 ‘나의 문제’라며 ‘집단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 근처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가 붙었고, 온라인에서도 그 열기가 이어졌다. 다들 집에서 나오기조차 무섭다고 했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삼삼오오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둘러앉아 그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상적 조롱과 비하, 노골적 차별과 적대, 그리고 크고 작은 폭력까지 그동안 공론화되지 못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있는 침묵의 소수자가 아니었다.
이것은 지난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벌어진 상황이지만, 소수자에 대한 어떤 상징적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소수자 집단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건 발생 초기 누군가 이것을 ‘여성혐오범죄’라고 하면서 이 사건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심지어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아직 대한민국에는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여성혐오, 잠재적 가해자 등의 말이 불편했던 일부 남성들의 역공이 시작되었다. 있지도 않은 ‘여성혐오범죄’를 빌미로 쓸데없는 대립과 갈등이 조장되고 있다며 억지주장을 중단하라고 나선 것이다.
‘여성혐오범죄’ 맞다 vs 아니다혐오범죄의 개념부터 살펴봐야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혐오범죄(Hate Crime)는 ‘편견의 동기’(Bias Motive)를 가지고 폭행, 성폭력, 살인 등 기존 범죄를 행하는 것이다. 이때 편견은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 차별, 적대 등을 말한다. 편견에 근거한 범죄가 비난가능성이 더 높고 해악도 더 크기 때문에 가중처벌하는 것이 혐오범죄법의 취지다.
그런데 법치국가에서 형벌의 가중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범행의 ‘주된’ 동기가 편견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을 입증할 만한 범행 전후의 정황이 있어야 하다. 이러한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는 한 법적 혐오범죄는 성립할 수 없다. 경찰이 혐오범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자신 있게 ‘혐오범죄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 보도된 것만 가지고 주된 범행 동기가 여성혐오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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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강남역 사건을 두고, 우리가 ‘여성혐오’를 이야기할 수 없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편견 동기가 지배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든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여전히 이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여성혐오범죄 혐의를 가해자에게 귀속시킬 수 없다고 해도, 범행이 여성혐오와 관련 있는 한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혐오범죄법이 실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경찰이 범죄 성격을 정했다고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경찰은 “(여성혐오범죄가) 처음 접해본 용어라 정확한 입장 표명은 어렵다”(서초경찰서 형사과장, 2016년 5월26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래도 여전히 경찰학적·형사법적으로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게 무리이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여성혐오‘적’ 범죄, 여성혐오와 ‘관련 있는’ 범죄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언어의 ‘전유’를 중시하는 것도 타당하지만, 불필요한 논쟁과 대립을 피해서 진짜 핵심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에 무리하게 ‘여성혐오범죄’라고 규정한 것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거꾸로 그렇게 규정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론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혐오’ 용어의 의미어떤 말로 이 사건을 규정하건 수많은 여성들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공포와 분노의 본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자가 속한 집단 전체에 가해진 충격과 공포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말로 정확하게 표현되었으며, 여성혐오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의제화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보여주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반응은 한국 여성들이 그동안 차별받고 억압받아왔으며, ‘소수자로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혐오범죄의 원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차별’이다. 한국의 여성혐오범죄에서는 그것이 ‘여성혐오’로 담론화되었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편견, 무시, 비하, 멸시, 조롱 등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차별하는 모든 것을 통칭한다. 차별적 의식구조에서 발현되는 행태들의 논리는 유치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이 통념이 되고 이데올로기화하면 단단한 ‘사상적 배경’이 된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이것이 남성들에게 은밀한 형태로 산재해 있는 여러 의식을 ‘여성혐오’로 개념화할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강남역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한 하나의 비극적 ‘결과’이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혐오범죄는 공동체에 만연한 편견의 폭력적 발현”(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보고서)이다. 혐오와 차별이 있는 곳에서는 혐오범죄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곳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이주자 차별과 적대가 있는 곳에서는 이주자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혐오, 차별, 혐오범죄는 하나의 메커니즘에서 작동한다. 유럽에서 혐오표현을 ‘표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금지한 이유는 바로 혐오의 의식이 표현되는 순간 언제든지 구체적 ‘행위’(차별과 폭력)로 나아갈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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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며 이 사건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 사회가 정말 ‘진공상태’였다면, 가해자가 굳이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굳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을까?
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 규정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그 개념은 포기한다고 치자. 그럼,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보여준 반응의 의미를 과소평가해도 될까? 여성들이 호소하는 일상적 혐오와 차별의 문제들이 언제든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면,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윤리적·시민적 책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비유하자면, 우리는 대형 화산 폭발 사고로 인해 우리 땅 밑에 거대한 용암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그 용암 제거에 나서야 한다. 용암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화산 분출만 막아봤자 별 소용 없다. 용암은 극단적 형태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인식 기저에 있는 여성혐오 역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는 성적 대상화, 성적 괴롭힘(성희롱), 혐오표현, 고용·서비스·교육 등에서의 차별, 스토킹, 데이트 폭력, 폭행, 성폭행,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 강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그 자체로 미봉책이 되기 십상이지만, 설사 일부 효과가 있다 해도 일상의 크고 작은 다른 위험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 해결 환상 버려야혐오범죄‘법’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혐오범죄법은 처벌되지 않던 행위를 새롭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 범죄가 편견을 동기로 행해진 경우에 가중처벌하는 법일 뿐이다. 어차피 처벌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다만 그 형벌의 강도만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처벌 강도의 상향 조정은 범죄 예방에 직접적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혐오범죄법을 도입한 것은 일종의 상징적 조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혐오범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해 중요한 사회의제로 다루겠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 의지가 자연스럽게 혐오범죄법 제정으로 귀결된다면 모를까, 혐오범죄법 제정 자체를 놓고 다투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거꾸로, 어떤 의지가 분명하다면 굳이 그런 ‘상징’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의지를 가지고 여성혐오를 일소할 수 있는 여러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한다면, 혐오범죄법 없이도 얼마든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면 일단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가 당신들의 편’임을 확인시켜줘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과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섣부른 대책을 내놓거나, 여성혐오범죄라는 점을 애써 부정하는 일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물론 입법적 조치가 가진 위력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위력으로 따지자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욱 우선적 과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혐오와 차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더 분명한 의지 표명이자, 혐오와 차별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는 기제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여성혐오범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서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모든 소수자의 문제다. 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른 소수자로 쉽게 옮아간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그 위기 탈출을 위해, 소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혐오’가 작동하는 전형적 메커니즘이다. 이때 선택되는 소수자는 여성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잔인한 언어폭력을 목도해야 했다. 인터넷에서는 ‘다문화반대론자’들이 이주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게시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는 더욱 노골화되어 성소수자 반대를 표방하는 정당이 버젓이 공직선거에 출마하는가 하면, 성소수자를 겨냥해 면전에서 악다구니를 퍼붓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신질환범죄라는 경찰 발표가 나오자, ‘정신질환자를 모두 감금하라’는 게시글이 베스트에 올랐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면, 지금 당장 ‘혐오범죄’가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주대낮에 오로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주자라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하는 비극적 사태는 이제 ‘임박한’ 현실이 된 것이다.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도록사건 하나 가지고 과민반응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한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회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차별과 혐오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게 이미 십수 년 전 우리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던 나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교훈이 혐오와 차별에 대한 단호한 법적·사회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여유를 부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혐오범죄보다 증오범죄가 혐오의 격정적 상태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나, 강남역 사건 이후 혐오범죄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관계로 편의상 혐오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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