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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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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네 후배로 돌아오는 시간”

부산진구갑 재출마한 김영춘 더민주 후보… 부암동 골목 쌀집 둘째아들, 2012년 총선에서 3598표 석패
등록 2016-03-01 16:43 수정 2020-05-03 04:28
더민주 김영춘 후보가 지역에서 몸을 낮춰 동네 어르신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춘 후보 선거 사무소 제공

더민주 김영춘 후보가 지역에서 몸을 낮춰 동네 어르신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춘 후보 선거 사무소 제공

더불어민주당의 김영춘 후보는 선거 사무소를 기준으로 어린 시절을 더듬어갔다. “이곳에서 900m 떨어진 부암동 골목에 아버지(작고)가 운영한 쌀가게가 있었죠. 여기에서 3km 떨어진 백양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고요. 얘기한 곳들이 다 제 지역구(부산진구갑) 안에 있습니다.”

그는 쌀집 둘째아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쌀 배달을 돕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며 부산을 떠났다. 1987년 당시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 의장의 비서로 정계에 들어와 문민정부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38살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구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4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제18대 총선에 불출마한 그는 2011년 쌀집 둘째아들로 자랐던 동네로 돌아왔다. 부산 발전, 정치 개혁, 지역주의 구도 균열을 꿈꾸며 부산 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부산진구갑은 부산의 18개 선거구 가운데서도 보수 성향이 특히 강한 곳이다.

2012년 총선에서 3598표 차로 석패한 그는 4월 총선에서 재도전한다. 도전이 성공하면 부산과 서울에서 모두 당선되는 최초의 3선 의원이 된다. 그는 “‘영춘이, 영춘이’라고 부르며 동네 후배로 생각하는 분이 늘어났고, 이제 부산 사투리도 (내 입에 익숙할 정도로) 돌아왔다”며 웃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 </font></font>

부산진구갑에 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

전혀 살지 않았던 서울 광진구에 출마했을 때 느낀 막막함보다 더 컸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동네이고 친구도 있고 어머니도 살고 계시지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새누리당 정서가 일방적으로 강하고 야당 후보의 출마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이어서 ‘한 번 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란 각오도 했다.

당시 가족은 부산 출마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제18대 총선 불출마를 하고 정치를 그만두니 아내가 좋아했다. 그런데 정치를 재개한다면서 익숙한 서울 광진구가 아닌 부산에 간다고 하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먼저 오고 6개월이 지나서야 아내와 아들이 이사 왔다. (가족이 오기 전까지) 6개월간 가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갑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과 맞붙어 3598표 차로 근접 승부를 펼쳤다.

당시 손학규 대표 체제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을 맡아 일주일에 4번 정도 서울과 부산을 오갔고, 당 통합 작업도 해야 해서 일이 많았다. 최고위원에서 물러나 지역에 집중했으면 그 정도 표 차이는 극복했을 텐데 아쉬움이 있었지만 희망도 보았다. 4년간 재수를 열심해 해보자고 생각했다.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더 열어주는 걸 느끼나.

처음엔 나를 알아보는 분도 ‘김영춘씨를 알긴 하지만 서울 사람이 왜 여기에서 출마한 거냐’고 물으시더라. ‘이곳에서 자랐고 귀향한 겁니다’라고 하면 ‘진짜입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 정치인이 왜 떨어질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지난 4년간은 다시 부산 사람이 되는 시간이었다. 동창회도 열심히 다니고, 산행 모임도 만들어서 다니고, 족구회에 가입해서 족구도 하고, 무료급식 봉사도 하며 주민과 함께 지냈다. 한 번 실패(2012년 총선 낙선)하고도 떠나지 않으니 이제 ‘부산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것 같다. 동네 노인분들도 많이 알아보시면서 ‘이 사람이 원래 우리 동네 사람이야. 당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라고 말씀하시는 상황까지 됐다. 나보다 10~15년 나이 든 분들도 ‘영춘이’라고 부르며 편하게 받아주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60대 이상 5천 명 늘어 야권 더 어려워 </font></font>

‘부산을 바꾸는 큰 정치인으로’란 구호를 내세웠다.

그게 부산에 온 이유다. 부산은 1990년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지난 20년간 부산 인구가 40만 명 줄었다. 노인 인구는 늘었으니 청·장년층에서 약 100만 명이 줄었다는 얘기다. 도시 활력과 성장 잠재력이 크게 줄었다. 세계 5대 항만을 낀 도시가 이렇게 된 것은 정치의 책임이다.

특히 부산은 (새누리당 간판으로) 막대기를 꽂아도 승리해온 곳이다.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를 좀먹는 한국적 병이다. 그걸 개혁하려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전국 정당화를 꿈꾸며 열린우리당도 만들었지만 성공하는 듯하다가 잘 안 됐다. 그래서 정치 개혁에 대한 부채·책임 의식이 있었다.

침체된 부산을 부활시키고 부산을 한국 정치 개혁의 방아쇠를 당기는 중요한 지역으로 만들고 싶었다. 부산이 바뀌면 울산·경남도 바뀐다. 대한민국 정치 변화의 시동이 걸릴 것이다. 사람만 좋으면 영남에서 야당도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부산이 한국 정치 변화의 시발이 될 것이고, 영남에서 뛰려는 정치 지망생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 진 득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 “난 열심히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야당을 바꾸고, 부산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는 카드로 김영춘을 써달라’고말한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부산진구갑은 구도심 지역이라 부산에서도 야당에 어려운 곳이다. 4년 만에 이 지역의 60살 이상 유권자가 5천 명이 늘었다. 야권으로선 투표 성향이 더 나빠졌다.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경선을 앞두면서 지역 안의 작은 친목 단체들까지 새누리당 각각의 후보들에게 줄을 선 상황이다.

난 열심히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당신이 미는 후보가 새누리당의 최종 후보가 되지 않으면 날 밀어달라’고 바닥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동네에 나가면 4년 전과 달리 장년층이나 노년층에서도 ‘이번엔 김영춘이 꼭 해야 한다’는 말을 주변의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야당을 바꾸고, 부산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는 카드로 김영춘을 써달라’고 말한다.

당의 부산시당 위원장이다. 부산 선거를 어떻게 전망하나.

부산에서 새누리당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과반이지만, 일방 독주는 곤란한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다. 부산에서 새누리당의 독점을 견제하려면 18개 지역구 가운데 5~6석 정도는 야당에 줘야 부산 정치가 바뀐다고 호소한다. 5~6석 정도 당선을 노려볼 사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불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전 대표의 출마를 요구해왔는데.

문 전 대표의 현 지역구(부산 사상구)가 아닌 부산의 다른 지역에서라도 출마해달라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얘기할 만큼 했으니 더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결단에 맡기려 한다.

부산 출마자로서 호남을 놓고 주도권을 벌이는 야권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호남 정치도 개혁해야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적전 분열이 된 것은 아쉬움이 크다. 당이 나눠진 건 너무 아프다. 호남은 야권의 아성이다. 국민들 입장에선 그곳의 주도권 싸움을 기득권·권력 다툼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YS, 3당 합당… 비서였던 내가 결자해지해야” </font></font>

부산을 기반으로 했던 YS(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한 이후 부산은 여권 성향으로 돌아섰다. 3당 합당으로 바뀐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이제 YS의 비서였던 김 후보에게 불리한 측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YS가 잘한 것도 있지만 3당 합당은 잘하지 못한 것 중 하나다. 3당 합당으로 부산에서 야당의 씨가 마르게 됐는데, YS 비서였던 내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해결하고 싶었다. 내가 부산으로 돌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다.

부산=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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