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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이겼는데 국가배상 ‘0원’

[경고한다] 대법원, ‘2차 진도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에 “6개월 안에 소 내야 배상” 갑자기 시효 단축
등록 2015-12-22 22:17 수정 2020-05-03 04:28

진도농협 예금계장이었던 박동운씨는 31살이던 1981년 3월 영문도 모른 채 서울 남산 지하실로 끌려갔다. 두 달 넘도록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죽음보다 징그러운 고문을 겪은 끝에 간첩이 됐다. 이른바 ‘2차 진도간첩단 사건’이다. 박씨가 남파 간첩인 아버지를 따라 두 차례나 북한에 다녀오는 등 24년간 고정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죄목이었다.
안기부 발표대로라면 박씨는 12살 때부터 간첩 활동을 한 셈이다. 실제로는 항일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돼 박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박씨는 16년을, 어머니·동생·삼촌은 2~6년간 감옥살이했다.
박동운씨 등은 2009년 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 규명을 받고 재심을 청구해 그해 11월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20년 이상 피고인 가족이 당한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의 일”이라고 말했다. 2010년 9월 형사보상 결정을 받고 8개월 뒤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은 지난 1월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소멸시효’는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시효로 인해 소멸한다(민법 제766조, 국가재정법 제96조). 그런데 대법원은 “2013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6개월’이 지나면 소멸한다”고 갑자기 선언해버렸다. 박동운씨가 소송을 낸 지 2년7개월 지난 시점에 날아든 청천벽력이었다. 박동운씨의 국가배상 소송은 결국 지난 9월22일 패소로 끝났다.




심사위원 20자평


양현아  바늘구멍을 빠져나온 낙타를 도로 바늘 저쪽으로 밀쳐낸 판결
송소연  대법원의 묻지마 몽니, 국가범죄를 완성하다!


정은주 기자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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